경계를 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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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이미륵 - 독일에서 발견한 조국

정은경

▲ [ⓒ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 [ⓒ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이미륵(李彌勒, Mirok Li, 본명 李儀景, 1899∼1950)은 일찍이 낯선 독일 땅에서 독일어 작품을 통해 한국 전통과 동양 문화를 알리고 이산의 삶의 신산함과 이중 정체성을 아름다운 글로 승화한 디아스포라적 글쓰기의 선구자이다. 1946년 출간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 낯선 동양 문화로 독일 문단을 놀라게 하고 서양인들을 매료시켰다. 그것은 물론 오래전 고국을 떠나온 이방인 이미륵의 그리움에 의해 포착된 과거, 소년,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그 아련한 향수에 의해 되살아난 조선의 풍속과 일상 등은 서양인들에게 ‘야만과 자연’으로 인식되었던 동양을 다시 보게 하고 조선을 발견하게 한 중대한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1899년 황해도 해주시에서 1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난 이미륵은 천석지기인 아버지 덕택에 유복한 생활을 한다. 엄격한 유교 전통에서 자란 그는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고 신식 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을 공부하다 휴학, 통신 학습을 통해 1917년 서울 경성전문학교 의학부에 입학한다. 1911년 전통 풍습에 따라 6살 연상인 최문호와 혼인하여 딸과 아들을 둔다. 의전에 다니던 이미륵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이 일로 인해 일본 경찰에 쫓기게 되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압록강을 건넌다. 만주, 상하이 등을 거쳐 배(프랑스 여객선 ‘Le Paul Lecat’)를 타고 먼 항해 끝에 1920년 5월 독일에 도착, 1922년 뷔르츠부르크에 정착한다. 뷔르츠부르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1925년 뮌헨대학에서 전공을 바꿔 동물학, 식물학 등을 공부하여 1928년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1931년부터 잡지 등에 한국을 소개하는 짧은 산문(「한국의 종교」, 「한국과 한국인」 등)을 발표하다가 1946년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의 피퍼(Piper) 출판사에서 발표하여 일약 명성을 얻는다.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뮌헨대학교 동아시아학부에서 한국어와 중국문학, 역사를 가르치다가 1950년 3월 20일 그레펠핑에서 영면한다. 사후 독문학자 정규화가 그의 유고를 모아 『이야기(Iyagi. Kurze Koreanische Erzählungen)』(정규화 편, St. Ottilien, 1974),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등을 출간했으나 생전에 정식 출간되어 널리 읽힌 것은 『압록강은 흐른다』 한 권이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미륵의 소년 시절에 대한 회고록이고 자전소설이자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어린 시절 사촌 수암과 제기차기를 하고 꿀단지를 훔쳐먹은 일화에서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신식 학교와 경성의전에서 수학하다가 3·1운동에 가담한 뒤 망명길에 올라 중국을 거쳐 독일 땅에 밟기까지 과정을 섬세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이 회고록이 독일에서 그토록 조명받았던 것은 조선과 동양에 생소한 독일 독자를 감안한 작가의 문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봉산탈춤이나 설날에 대해 “맨 처음에는 절간을 버리고 도시로 나온 승려가 등장했다. 그는 어쩌다가 예쁜 여자에게 반해 기쁨에 넘쳐 춤을 추었다. 다음에는 수없이 많은 방울이 달린 관목을 들고, 몸을 놀릴 때마다 방울 소리를 내는 우스꽝스런 바보 광대가 등장했다.”(37쪽)1), “우리 고장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설이 가까워졌다. 한밤중에 조상의 신주 앞에 제사를 드린 뒤에 축제가 시작되었다.”(38쪽)와 같이 외국인을 배려한 간결한 설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도승, 취발이’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인명을 삭제하여 이질성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또 이국적인 동양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어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려와 어조에 의해 천자문 외우기, 거북점 치기, 제기차기와 팽이 돌리기, 붓글씨, 불공 드리기, 한의사의 침술 등은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이 회고록에 서양인을 향한 한국 전통 소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근대적인 조선인들이 신학문과 서구 문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돌과 이질성을 묘사함으로써 우월과 열등이라는 위계 없는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은 경성의전에서 처음 해부학 실습을 경험한 화자의 모습이다.

인간의 육체는, 특히 영혼이 그에게서 떠난 다음에는,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시체를 땅의 일정한 곳에 돌려줘야 하며, 그럼으로써 방해받지 않고 행복한 조화로 자연에 복귀하여 후손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따라서 시체의 해부는 비록 의사에 의해서 시행된다 할지라도 자연법칙과 영혼에 대한 죄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당시 한국 사람만이 다녔던 우리 대학의 초창기 학생들이 이런 해부 준비 실습을 거절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 익원은 슬프게 나를 바라보고 내 손을 잡았다. 그는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향연조차 안 피우고!” (…)
익원은 책상에 앞에 앉은 채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더니 그만 내던져버리고는,
“에이 무서워.” “야만적이야!” “소름이 끼쳐.”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 (…)
“우리 계속해서 의학을 공부할래?”
다음 날 아침에 그는 나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137~138쪽

   위 인용문에는 시체를 대하는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그것이 결코 옳고 그름,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태도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충돌 지점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이미륵은 동서양이 서로 혐오하고 무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가교를 만들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미륵’의 운명 속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미륵이 쫓겨가다시피 했으나 열렬히 희구하던 서구 유럽에서 어찌하여 서구인이 되지 않고 한학과 서예, 동양학을 가르치고 한국을 알리면서 또렷한 동양인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는가이다. 즉, “외국 땅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자기 조국에 발을 딛는 것이다”라고 한 영국 작가 G. K 체스터턴의 말 그대로 유럽 땅에 당도한 이미륵이 발견하고 또 골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 조국과 고향, 동양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었다는 점이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핵심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륵이 널리 알려진 것은 우리 한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의 발견에서 비롯한 것이다. 독일인들이 이미륵의 고향 조선에 대한 향수 어린 서정적 필체에 감동한 것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동양에 대한 서구인의 낯선 동경이 일정 정도 작용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 이중의 시선, 즉 낯선 이국의 땅 독일에서 제 나라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미륵의 시선과 그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독일인의 시선은 어떻게 이 책의 운명을 만들어갔을까.

   어떤 발언이든 그것은 분명하고 구체적인 ‘입지’에서 출발한다. 모든 글과 말은 대체로 분명한 독자와 목적을 상정하는바, 따라서 작가는 그가 서 있는 강단의 물리적 시공간을 절대적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작품의 화자가 회상하는 유년 시절의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륵의 친절한 묘사와 회상은 이미 그러한 전통적인 풍습에 익숙한 한국인이 아니라 동양에 무지한 서구인을 향하는 것이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이 ‘시선’의 방향이 사실은 모든 것의 출발의 원인이자 운명의 형식이라는 것을 이미륵은 작품과 그의 생애를 통해 입증한다. 이미륵은 줄곧 서구 문명을 동경하여 의학과 동물학, 생물학 등을 공부해 온 과학도였다. 그런 그가 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특별히 글쓰기를 좋아했거나 문학을 지망하지도 않은 이 수굿한 청년이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독일인’, 즉 ‘타자’의 시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SBS 창사특집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2008)에서 그려지듯 그는 뮌헨대학에 다니면서 흑인과 황인종을 구분하지 못할뿐더러 인종차별 의식에 사로잡힌 독일인들에게 끊임없이 핍박을 받고 모멸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미륵은 점차 버려두었던 자신의 기원들을 되짚어서 다듬고 타인들에게 펼쳐 보이면서 역설적으로 점차 ‘멋진 동양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서구 학문과 문명 이기를 향해 치닫던 그의 에너지가 막상 서구의 땅에 서자 오리엔트로 역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독일에서 한국의 종교와 한국어를 알리는 글을 쓰고 노자 『도덕경』을 외우고 서예를 가르치며 ‘사해지내개동포(四海之內皆同胞)라는 동양 현자의 말을 통해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이채로운 ‘세계시민’이 되어갔다. 하여 이미륵이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진정한 의미의 세계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낯선 땅에서 느낀 자신의 타자성, 타인의 이질성, 그 간극 사이에서 느꼈을 고통과 소통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자신의 행로를 통해 국지적 전쟁의 실체를 인류라는 보편적인 시각에서 통찰하는 거시적 안목과 동양적 유토피아 의식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또 독일에서 오래도록 읽히는 기념비적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인간이 서 있는 한 뙈기도 안 되는 ‘땅’은 이토록이나 중요하다.

참고자료

1)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정규화 옮김, 범우사, 2003. 이하 같은 책, 쪽수만 기입.

필자 약력
정은경 작가 프로필 사진

정은경,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아스포라 웹진 편집기획위원회에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고 있으며 발표 저서로는 『밖으로부터의 고백-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 『디아스포라 문학』,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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