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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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피와 뼈

유은경

양석일과 재일문학과 자이니치:
양석일의 『피와 뼈』

유은경

2024년 6월 29일, 일본의 주요 신문에서는 ‘재일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라는 수식어구를 붙여 소설가 양석일의 죽음을 알렸다. 한국에서도 몇몇 신문에서 일본 신문을 인용하여 그의 죽음을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세 편의 소설이 영화화되고 대중적인 소설에 수여하는 나오키상 후보에까지 오른 꽤 유명한 작가였으나 한국에서는 양석일이라는 이름을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작게나마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가 열었다는 재일문학의 새로운 지평에 대해서, 그나마 한국에 조금은 알려진 소설 『피와 뼈』1)에 대해서 이 글을 쓴다.
양석일은 1936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가 쓴 소설은 일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이니치(在日의 일본식 발음)’,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해방이 된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은 조선인들과 그 자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쓴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을 재일문학이라고 한다. 일본도 한국도 아닌, 두 나라 사이의 어디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문학이 바로 재일문학이다. 그들 중에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조선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도 있고, 한국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일본인이라거나 한국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국적이 어떠하든 그들은 여전히 ‘자이니치’인 것이다. 소설 『피와 뼈』는 식민지 시기인 1930년대부터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약 50년의 세월 동안 오사카 이쿠노(生野) 지역에 살아가는, 이후에 ‘자이니치’라 불리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전에는 과거 조선이었던 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외지인들이 일본의 오사카의 이쿠노라는 지역에 모여 살면서 생긴 일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끼니도 잇기 힘든 처지에 도박과 술을 끊지 못하는 하루살이 인생의 어묵공장 노동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원칙주의자이지만 근본은 선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료나 친구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못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조선인들이 이주해 간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상이 이 소설에도 등장한다. 이들이 아이를 낳고 세대를 이어가면서 ‘자이니치 2세, 3세’로 이어져가는 과정이 50년의 세월 동안 그려진다.

국가적 폭력의 표상화로서의 아버지와 거부하는 아들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상상하기 쉬운 것이 차별받는 조선인과 학대하는 일본인의 구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일본인과의 대립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더 특별한 존재가 등장한다. 일본인보다 더 강하고 폭력적인 절대적인 힘을 가진 김준평이라는 인물이다. 『피와 뼈』에서는 김준평을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은 물론 야쿠자마저도 김준평과 맞서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김준평은 식민지 조선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일본에 온, 이른바 외지인이다. 일본인이 그를 차별하거나 학대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조선인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일상처럼 차별하고 학대하는 경우도 있한다. 그를 이렇게 특별한 존재로 만든 것은 그가 가진 난공불락과 같은 절대적인 힘이다. 그러나 일개 인간에게 이러한 절대적인 힘이 가능한 것일까?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모든 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휘두른다. 자신의 편의에 따라서는 가족도 여지없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 오히려 가족은 더 손쉽게 그가 휘두르는 폭력의 먹잇감이 된다. 이렇게 절대적인 폭력의 힘과 그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있을까? 김응교는 김준평을 가부장적인 절대적인 아버지라고 평가하는 의견에 대해서 “이 아버지야말로, 1930년대 이후 국가가 사람을 전쟁터로 보내고 신체를 훼손하는 폭력적인 사회에서 폭력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른바 ‘국가적 폭력의 신체화’가 된 표상”2)이라고 했다. 물론 김응교가 언급한 ‘국가적 폭력의 신체화’와 같은 의미에서의 표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김준평에게는 조카도 있고 친척도 있으나 부모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가 고향에 있을 때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조카도 있고 먼저 사망한 형제도 있으나 부모는 없다. 그러다 보니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그리움이 드러나지 않는다. 혈연 중에서는 그가 가장 연장자이고 다른 연장자에 대한 의무가 없는 그에게는 다른 혈연자들이 모두 자신에게 복종하고 의무만을 이행해야 하는 존재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당시의 국가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선은 백성들에게 묻지도 않고 국권을 다른 나라에게 넘겨주었고, 국권을 잃었으면서도 끊임없는 애국심을 요구한다. 과거에 조선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조국,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도록 한 조국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마음대로 전쟁을 벌이고 사람들을 그 전쟁터로 몰아넣고,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른다. 이 중에서 그런 절대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것은 그의 아들 김성한뿐이다. 성한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인 준평이 자신에게 의무만을 강요하고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를 거부한다. 그리고 늙고 힘이 빠진 그에게 손을 내미는 것조차 거절하고 외면한다. 여기서 잠깐 양석일의 자전적 소설이면서 데뷔작인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3)와 비교해 보자.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고향도 없고 집도 없다.
내 삶은 짐스러운 것들을 하나하나 버려 가는 과정이었다.
혈연, 이데올로기, 돈, 책 나부랭이, 사랑, 그리고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보루였던 알량한 자존심마저 시궁창에 던져 버렸다.
이제, 내게는 광막한 황무지 먼발치서 나를 향해 휘몰아치는 한줄기 돌개바람뿐이다.4)

소설 첫머리에 아버지를 버리면서 그에 속한 모든 것을 함께 버리고 황무지에 홀로 선 ‘나’의 모습을 그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양정웅5)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버린 김성한이다. 양정웅도 김성한도 모두 폭력적인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그를 버리고 혼자가 된 주인공이다. 양정웅에게 아버지는 도쿄에서 고독하게 택시 운전사를 하면서 궁핍한 삶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강한 거부 반응이 나를 증오심으로 불타게 만든다. 내겐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다. 소년 시절의 나는 아버지의 강인함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세속적인 의미로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가족을 내팽개치고 공사장의 합숙소나 도박장을 전전하기도 하고 여자와 동거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동거한 여자는 열 명이나 스무 명이 아니다. 개중에는 완력으로 폭행당한 여자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배다른 형제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자와의 사이에도 열두셋 된 장녀를 비롯해서 다섯 명의 자식이 있다. 모두 나와는 대 다른 형제가 되지만 난 얼굴도 모른다.6)

양정웅이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과 폭력적인 면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마치 『피와 뼈』의 김준평을 그린 듯하다. 양정웅은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택시 운전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피와 뼈』의 김성한은 약간 다르다.

극복하는 아들

두 작품 모두, 도쿄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아들에게 전보를 쳐서 오사카에서 부자가 재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에서 정웅은 여전히 아들을 이용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에 절망하여 홀로 돌아오고, 『피와 뼈』에서 성한은 늙어서 힘이 빠진 아버지와 배다른 네 형제를 모두 외면하고 도쿄로 돌아온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피와 뼈』에서는 그 후 10여 년이 흐른 1980년대의 김성한의 가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연히 신문을 통해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북송을 선택한 이후 소식을 모르던 배다른 동생들의 소식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거부하던 아버지와 피로 연결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성한이는 다시 한번 신문에 실린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선명하지 못한 신문이지만, 보면 볼수록 두 자매는 김준평과 비슷했다. 류이치는 사다코를 닮았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피가 섞여 있는 세 사람이지만, 성한이의 자식들과도 닮았다. 그러고 보면 하루미와 하나코의 자식들도 모두 서로 닮았다. 이 불가사의는 이치를 초월해 있었다.7)

북한에서 친모를 찾는다는 기사를 낸 세 동생은 모두 김준평과 일본인 사다코의 아이였지만 여자 동생들은 김준평을 닮고 남자 동생은 사다코를 닮았는데, 성한과는 아버지만 같은 그들이 성한의 아이들과도 닮았다는 것이다. 조선인의 피와 일본인의 피가 섞여도 서로 닮는다는 사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만 같은 하루미와 아버지도 같은 하나코의 자식들이 모두 닮았다는 불가사의한 이치. 당연할 수도 있는 사실이 성한에게는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거기에는 뼈가 피보다 진하다는 조선 무가(巫歌)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무가(巫歌)에 ‘피는 어머니한테 받고 뼈는 아버지한테 받는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의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너는 내 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는 가부장 제도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피도 역시 뼈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에 묻힌 사람의 피와 살은 다 썩어 없어지지만, 뼈만은 남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지만, 뼈는 피보다 진하다.8)

이것을 근거로 김준평은 아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지만 성한의 배다른 형제들과 그 밖의 형제들의 자식들이 모두 닮았다는 것은 결국 피로 연결된 이치를 초월한 불가사의함을 남긴다. 여기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따로 없다. 결국 성한은 일본 안의 조선인이라는 경계 안의 존재를 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한이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혈육이라는 인연이다. 끊어진 줄 알았는데 쇠사슬처럼 연면히 이어지고 있는 혈육이라는 끈. 이 불가사의한 인연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쨌거나 몸의 일부를 나누어 가진 유사성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성한이는 옆에서 자고 있는 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토끼 같은 눈을 하고 있던 배다른 네 동생을 머리에 떠올렸다.9)

그리고 과거 오사카에서 늙고 힘이 빠진 아버지를 뿌리치면서 함께 외면했던 토끼 같은 눈을 했던 배다른 네 동생을 자기 아이의 얼굴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이 뿌리친 등 뒤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마치 타인 대하듯이 했던 그 ‘자네’라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멀어져가는 화물차의 꼬리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어이, 자네, 자네……” 하고 부르는 김준평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한이가 저도 모르게 뒷좌석을 돌아보니, 등 뒤에는 끝없이 넓고 아득한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성한이는 기분을 새로이 가다듬고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일을 해야지. 마음을 다잡고는 앞쪽을 응시하며 힘껏 액셀을 밟았다.10)

성한의 등 뒤에 끝없이 넓고 아득한 어둠이 펼쳐져 있었지만, 피로 연결된 유사성을 발견한 성한에게는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는 기운이 생긴 것이며 마음을 다잡고 ‘앞쪽을 응시하며’ 뒤에 펼쳐진 어둠은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단절이 아닌 연결, 관계,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 닮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미래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재일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각주

1) 양석일, 『피와 뼈』, 자유포럼, 1998. 원작 『血と骨』, 겐토샤, 1998년. 2004년에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2) 김응교, 「이방인,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문학」,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1호, 2010년, 150쪽.

3) 『狂躁曲(광조곡)』이라는 제목으로 지쿠마(筑摩)서방에서 1981년 출간된 이후, 『タクシー狂躁曲(택시 광조곡)』으로 제목을 바꾸어 1987년에 지쿠마서방 문고판으로 재출간된다. 이 작품은 1993년 최양일 감독에 의해 영화화하는데 한국판 소설은 1994년에 영화판의 제목을 가져와 번역 출간된 것이다.

4) 양석일, 「작가의 말」,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인간과예술사, 1994년.

5) 양석일의 실명이다.

6)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178쪽.

7) 『피와 뼈』 3권, 287쪽.

8) 『피와 뼈』 2권, 31쪽.

9) 『피와 뼈』 3권, 289쪽.

10) 『피와 뼈』 3권, 290쪽.

필자 약력

일본 주오대학교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동 대학원 일본문학전공 박사졸업. 2000년 동국대학교대학원 국어학전공 석사졸업. 한일문학·문화연구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 아사히신문사 국제본부 한국어팀 번역리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일본 국사관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