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장
9호
코리안 디아스포라, 돌아보고 내다보는 신세대 작가들의 창발성
이혜진
한국문학번역원이 기획한 2024년 디아스포라 문학예술행사를 위한 기획회의는 4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첫 회의에서는 행사의 대주제를 정하고, 세부 세미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한 논의에 집중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관련 프로그램에 초청할 인사들을 조율하는 과정을 다소 무겁게 접근했던 것 같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의 바쁜 일정에 대한 고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처해 있는 저마다의 사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이야기를 기대할 것인가를 가늠하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태도에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갖고 있으리라고 으레 짐작한 뿌리 깊은 상처에 대한 선입견이 작동했던 것 같다. 식민과 분단에 의한 원초적 이산 경험에서 기인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특유의 소외나 차별과 같은 역사적 트라우마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외동포·한인 디아스포라·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재외 한인에 대한 통일된 지시어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문제들이 한국 사회의 주된 관심사와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한인 디아스포라는 한국 출신의 사람들이 국외에 거주하는 것을 뜻하는 국적 중심의 개념이고,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민족적 뿌리를 가진 전 세계의 한민족 공동체를 뜻하는 민족 중심의 개념이라는 용례에 따라 이 글에서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사용하기로 한다.) 이런 사실은 첫 회의에서부터 디아스포라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기초적인 문제의식으로 발현되었다. 그래서 나는 국적 문제나 용어 사용 면에서 모종의 충돌을 겪게 되더라도 가능한 한 디아스포라의 범위를 넓게 설정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일로 연결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현재 한국 문화가 세계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움직임에 힘입은 바가 컸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해 온 대중문화 백 년의 역사에서 변방의 아시아 국가가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가요 등 전방위적인 대중문화를 선도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실제로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인들에게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드라마, 영화, 뮤지컬, 케이팝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한류의 세계화가 201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것은 대략 20여 년 정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른바 ‘동포들의 귀환’이 예의 주시되고 있는 상황과 예멘 난민 사태 등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는 필연적으로 디아스포라적 사유를 요청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더해 2024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오랫동안 위축되어 왔던 한국 문학계에 커다란 돌파구를 열어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런 시대 변화의 실감은 디아스포라 문학예술행사에서 여지없이 확인되었다. 한국과의 교류가 거의 단절된 상태에서 현지어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2세, 3세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에 초청된 작가들의 작품이 현지어를 통한 것이든 한국어를 사용한 것이든 언어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특별히 강조하거나 역사의 기억이 현재를 규정하는 데서 오는 곤란의 제스처를 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문제의식은 과거에 비해 훨씬 날카로웠고 논의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었으며 현재에 발 디딘 시선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었다. 첫 기획회의에서부터 줄곧 나를 상념에 빠뜨렸던 문제의식의 무게가 일시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틈틈이 초청 작가들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수많은 주제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보다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 탓이었다.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건물 안에 가득 퍼지면서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날씨가 이어졌다.
2024년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총 3일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는 첫째 날 디아스포라 작가 대담과 씨네 토크가, 둘째 날에는 작가와 연구자가 함께 한 문학 세미나가, 셋째 날에는 한국문학번역원 웹진 《너머》가 기획한 제2회 신인문학상 공모전 시상식이 열렸다. 짜임새 있는 진행을 위해 이번에는 특별히 참가자 사전 예약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3일간 진행된 행사였음에도 총 227명이 현장에 참가한 것은 기대 이상의 참여율이었다. 참가자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하고 다과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사적 대화를 공유했던 것은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가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행사가 시작될 때마다 수다가 끊기는 데 대한 아쉬움은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하면서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으로 달래야 했다.
첫째 날(9월 29일)에는 (1) 디아스포라 작가 대담과 (2) 디아스포라 씨네 토크가 열렸다. 먼저 작가 대담은 시인이자 세인트 올라프 칼리지(St. Olaf College) 영문학과 교수인 제니퍼 권 돕스(허수진)와 소설가 조해진이 진행했다. 제니퍼 권 돕스는 한국 원주 출생의 입양인으로, 현재 미국에서 입양인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 미국에서 출간한 시집 『심문실(Interrogation Room)』을 소개하면서 “입양의 역사를 한국 근대사, 즉 식민화, 분단, 국수주의적 이념 경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써보고 싶었다”는 시인은 13년간 한국에 있는 가족을 찾는 과정을 담담하게 술회했는데, 자신의 입양 서류에 ‘의도된 삭제’ 표시가 조작된 것이었음을 밝혀낸 과정이 자신의 창작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그런 내밀한 고백의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마침내 자신이 ‘교정되어야 할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의 경험 고백이 부추긴 문학 행위에 대한 제니퍼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오늘날 세계문학이 직면해야 할 문학의 미덕을 상기하게 해준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국가적 경계의 비인간화 언어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증언하라고 요구하고, 우리가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더 깊고, 더 넓게, 그리고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강요합니다”.
오후에 이어진 씨네 토크에서는 한국계 캐나다인 앤소니 심 감독의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2022)를 상영한 후, 감독과 제니퍼 권 돕스가 함께 무대에 나와 창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앤소니 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개봉한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현재 전 세계 영화제와 비평가협회에서 31관왕을 차지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1994년 캐나다로 이주한 앤소니 심 감독은 이 영화의 창작 배경에 대해 캐나다의 ‘라이스보이’로 대변되는 주인공 “어린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나는 정서적 여정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아 여성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된 데 대해 감독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한국 여성의 입체적인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30년 전 엄마가 싸준 김밥을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던 ‘쌀 소년’에게 현재 해외 시장의 케이푸드 열풍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감독의 허탈한 웃음이 인상에 남는 장면 중 하나였다.
둘째 날(9월 30일)에는 연구자와 작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문학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디아스포라 문학 세미나는 총 세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세션은 <디아스포라 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대주제하에 일본 류큐 대학의 오세종 교수가 재일한국인 작가 유미리(柳美里)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2019)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단편화된 삶들이 1923년 관동대지진에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경유한 천황제가 최종심급으로서 일본 사회의 구조적 층위로 수렴되어 버린 점을 면밀히 분석했다. 이어진 소설가 김남일의 발표는 망명지를 떠돌던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Zakaria Mohammad)의 타계 소식이 전해 준 복잡한 심경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발표는 일본어·독일어로 글을 쓰는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 인도계 미국 작가임에도 자기에게 익숙한 벵골어나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그리고 일본어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자신을 키워낸 일본어에 대한 보복으로 삼으며 문필 생활을 이어갔다고 고백한 자이니치 시인 김시종(金時鐘)에 이르기까지 자기 파괴적 문학을 존재성의 근거로 삼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특별함을 예의주시했다. 특유의 열정적인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작가 김남일의 발표는 청중의 진심에 호소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세션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지구적 쟁점>이라는 대주제하에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을 연구하는 비르기트 가이펠(Birgit Geipel)과 오키나와 문학을 연구하는 부경대 일문학과 조정민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비르기트 가이펠은 독일어권의 아시아계 문학이 2000년대에 들어와 독일 문학의 제도권에 진입해 온 과정을 돌아보면서 최근 한국계 독일·오스트리아 작가로 부상한 안나 김(Anna Kim)이 유럽 문학계의 주류에 진입할 수 있었던 원인을 글로벌한 주제 의식을 통한 초국가적·초역사적 접근성에서 찾았다. 두 살 때 독일로 이주한 1977년생 안나 김의 작품이 1세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과 다른 점은 1950-196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요소를 채택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때의 자전적 요소는 “개인의 경험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종 차별의 배후에 있는 원리에 관심을” 둔 것인 만큼 보다 거시적인 동시에 세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신세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사해 준다. 이어서 조정민은 2차 대전 시기 남양군도로 이주한 오키나와인들을 통해 지배-피지배의 절대적 관점에 내재해 있는 반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세션은 <디아스포라와 문화콘텐츠>라는 대주제하에 소설가이자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한나 미셸(Hannah Michell)과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인 이주혜의 발표가 이어졌다. 먼저 한나 미셸은 「성난 사람들」과 「패스트 라이브즈」(2024) 등 최근에 부상한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시네마를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현상에 주목함과 동시에 자신의 소설 『발굴(Excavation)』과 한국계 미국인 작가 고은지의 장편 『해방자들(The Liberators)』, 그리고 에드 박(Ed Park)의 소설 『동상이몽(Same Bed Different Dreams)』이 역사에 대한 복수 해석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관습에 대한 전복을 꾀하는 데 성공했음을 역설했다. 또한 이주혜는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 말레나 최 감독의 「조용한 이주」(2024), 그리고 조해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로기완」(2024)을 통해 코리안 디아스포라 재현의 변화 양상을 탐색했다.
이번 문학예술 세미나를 지켜본 결과 전 지구적으로 개방된 네트워크의 확대가 상호작용을 이루어간 가운데 신세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확장된 창발성을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의 디아스포라 문학예술이 낯선 이민 경험을 토대로 한 문화 갈등 속에서 가족과 민족 정서의 가치를 강조해 왔었다면, 2세대·3세대 작가들은 부모 세대의 경험적 환경을 공유하면서 보다 더 넓은 배경과 다양한 주제를 추구하면서 현대 사회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 속에서 경험한 개인 삶의 궤적과 사회 전반에 대한 분석을 적용해 간다는 점에서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즉 본국의 정체성이나 독창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양한 배경과 환경에서 경험한 자신의 문제를 수용하고 현대적 스타일과 형식을 채용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효능을 검증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이 점은 이들의 작품이 반드시 한국어로 쓰여야 한다는 필연성을 벗어나는 조건을 구성하며, 따라서 자기에게 친밀한 현지어로 작품 활동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케 해준다.
이것은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지역의 창조적 역량을 세계 사회에 통용시키기 위해 인류 공통의 목적을 지향하는 다문화 사회의 덕목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이제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주어는 ‘코리안’에 있다기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를 말소한 세계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을 확보해 가기 위한 하나의 진보를 성취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큰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문학을 현지어로 능숙하게 번역하는 역량 계발과 함께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확장을 위한 적극적인 신인 발굴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행사 마지막 날(10월 1일)에는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제2회 신인문학상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시, 소설, 수필·논픽션 총 세 부문의 수상자들이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수상의 기쁨을 나누었다. 심사위원들은 각 부문의 수상자 송지영(캐나다, 소설), 이원정(미국, 시), 안미혜(미국, 수필)의 작품이 기성작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점을 크게 상찬했다. 수상자들의 수상소감 역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전해 주면서 훈훈하게 행사를 마무리해 주었다.
본 행사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은 행사를 마치고 막 런던으로 귀국한 김주혜 작가에게서 들려온 러시아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나는 김주혜 작가와 몇 차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번 수상작인 『작은 땅의 야수들』(2023)을 비롯해 그동안 집필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매우 흥미롭게 경청했다. 채식주의를 선택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호랑이와 표범 보호 활동을 비롯하여 환경운동가를 자처하게 된 이유까지 김주혜 작가 특유의 열정적인 언변은 누구나 그 매력에 빠지게 하는 힘을 가졌다.
웹진 《너머》 제2회 신인문학상을 통한 신인 작가 발굴과 김주혜 작가의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번역원의 디아스포라 문학예술행사가 지속되어야 할 필연성을 대변해 준다. 더욱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이 새로운 한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지금, 한국문학은 밖으로 나아가는 디아스포라와 안으로 들어오는 디아스포라의 진화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새로운 교류 확대가 보다 더 지속되어야 할 필요를 더하게 되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예술의 진화를 더해 갈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73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도쿄외국어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 당선 후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기획위원 및 2024년 디아스포라 예술행사지원사업의 기획위원으로 일했다. 저서로 『사상으로서의 조선문학』과 『1990년대 문화키워드』(공저)가 있고, 『최재서 일본어 소설집』, 『프롤레타리아문학과 그 시대』(공역), 『자유란 무엇인가』(공역), 『화폐인문학』(공역)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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