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9호
히비스커스, 나의 첫 이별 후 아빠는 내게 최초의 이메일을 보냈다
에밀리 정민 윤
히비스커스
너의 주름진 잔 속엔 진한 색이 담겨 있어.
조용히 가라앉은, 혹은 별 모양으로 흩어지는,
마치 흥에 취한 사람이 너무 멀리서 와인을 잔에 부을 때
그 액체의 모습을 찍은 것처럼.
너는 키가 큰 하나의 군중, 꽃다발 나무.
너를 보면 집 생각이 나
―아니, 거짓말이야. 열대 버전 너의 시끄러운,
놀라운 노란색은 내 눈 속에서 우렁우렁 울려 퍼져.
이곳에서는 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이곳은 내 머리를 물 먹여 불리고 피부를 검게 데워.
이 익숙하고도 이질적인 도시에서는
집이라는 단어마저 잎잎이 색이 변하네.
나의 첫 이별 후 아빠는 내게 최초의 이메일을 보냈다
헤어짐만 제외하고 다 헤는 첫 문장들.
유명 여배우의 죽음에 대하여,
휠라 사장이 주는 교훈에 대하여.
아빠는 ‘사랑’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항상 불완전하다고 생각해.
그와 멀리 떨어져 온 이 새 나라의 사람들과 사물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I love your shoes, he loves her hair,
이것도, 저것도, 그도, 그녀도, 완전히, 전부, 사랑.
아빠와 내가 서로에게 그 단어를 썼던 게 언제였던가?
나는 몇 번이나 아빠의 장거리 전화를 받자마자
지루함에 끊어버리고 나의 새 캐나다인 남자친구에게 달려가
사랑한다고 서둘러 선언했던가?
나의 어린 열정은 귀중한 자산이었고
아빠의 목소리에 어린 외로움은 내 책임이 아니었다.
망각하는 것은 얼마나 손쉬웠던가. 그의 세심함을.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혼자 어두운 아파트에 들어서서
색소폰 연습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과묵한 사람, 닫힌 방문 너머 혼자 노래 연습을 하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악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의 목소리,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번역 : 에밀리 정민 윤 (영 → 한)
미국 거주 한국계 시인. 대표작으로 시집 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Ecco, 2018) 와 Find Me as the Creature I Am(Alfred A. Knopf, 2024) 이 있다. 전자는 한국에서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 2020)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다. 현재 아시아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사회 정의 단체 아시안아메리칸작가워크숍(Asian American Writers’ Workshop)의 문예지인 《더 마진스(The Margins)》의 시 부문 에디터로 일하고 있으며, 하와이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