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작가들
9호
서경식, 언어의 감옥 넘어 '문학공화국'을 꿈꾸다
고영직
▲ 서경식 ⓒ시사IN
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徐京植, 1951-2023)의 삶과 글쓰기를 생각할 때 ‘난민’도 ‘국민’도 아닌 ‘디아스포라’라는 처지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경식의 삶과 글쓰기가 디아스포라라는 자신의 상태에서 나오는 독특한 시선과 태도였다는 언급은 반쯤만 맞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세상의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누구나 서경식과 같은 삶과 글쓰기를 보여 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경식의 삶과 글쓰기를 생각할 때 비슷한 행로를 보인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삶과 글쓰기가 연상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서경식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2006)라는 평전을 발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서경식의 삶과 글쓰기는 그 자체로 특이성(singularity)을 이룬다. 그는 문학, 예술비평, 예술 기행, 인문 기행, 평전, 사회과학 논문, 문학평론 등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문학 공화국’을 꿈꾸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글쓰기가 ‘실천자’의 행보이길 바랐다. 이런 행위자로서의 역할 의식은 1966년 여름, 고등학교 1학년 때 ‘재일교포 학생 모국 방문단’에 참가하여 조국의 실상에 큰 충격을 받고 개인 시집 『8월』을 발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66년 조국의 실상을 처음 접하고, 1970년대 서승·서준식 등 친형들의 잇따른 고난을 접하며 자신은 목격자, 증언자, 행위자 가운데 ‘실천자’의 길을 가고자 했다. 그리고 타자의 고통을 들을 줄 아는 ‘아픔의 능력’이 중시되는 문학 공화국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가 꿈꾼 문학 공화국은 국경선을 기준으로 한 공화국은 아니다. 그는 재일조선인인 자신의 상태를 해부하고, 한일 간 ‘계속되는 식민주의’ 문제를 예리하게 투시한 『난민과 국민 사이』(2006)에서 언급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느 국가에 속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집단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식민 지배, 고향 상실과 이산, 민족 분단, 차별과 소외, 근대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 민중이 공유하게 된 이 고난의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묶어주는 것”(120쪽)이라고 말한다.
위 진술에서 보듯이, 서경식은 국경선보다 ‘새로운 민족’으로서 열린 공동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더 중요시했다. 서경식의 이러한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2010년 가을,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한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그 무렵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이름을 ‘한국작가회의’로 명칭 변경한 것을 두고 특정의 지역(=남한)만을 ‘한국문학’의 범주로 스스로 국한함으로써 한 나라의 틀을 뛰어넘는 다양한 조선민족의 문학‘들’을 결정적으로 간과하는 인식론적 퇴행을 보여준다고 예리하게 비판한 것이다.
서경식은 ‘한국문학’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분류 체계와 명명법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재일조선인 문학, 재중조선인 문학 같은 다양한 조선 민족의 문학‘들’을 두루 포괄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서경식은 우리 문학은 ‘민족문학’을 통하여 전진해야 하지, ‘한국문학’으로 후퇴하는 것은 우리 문학의 범주를 국경선으로 획정(劃定)하는 편협성과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파악했다.
서경식의 이처럼 도저한 시선과 태도는 3·11 후쿠시마 사태 이후 침통한 표정으로 역설한 ‘의문형의 희망’이라는 말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의문형의 희망이란 결국 ‘희망(希望)은 희망(稀望)이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희망을 품지만, 희망은 언제나 항상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서경식은 말의 참다운 뜻에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무릇 작가란 무엇인가. 승산이 있을 때만 저항하는 존재가 아니라, 승산이 없어도 자기의 온 실존을 걸어 모어(母語)를 통해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가 ‘시의 힘’을 여전히 신뢰하고, 디아스포라 아트를 비롯한 ‘예술의 힘’을 전적으로 신뢰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역류(逆流)의 상상력으로 실천적 삶과 글쓰기를 보여 준 우리 시대 최고의 디아스포라 아티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80세의 나이가 되기 전에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재미있는 소설로 한 편 쓰고 싶다”고 한 그의 바람은 다음 세대의 몫이 되었다.
문학평론가. 사람은 이야기로 구성된다고 믿는 인문주의자이며, 수년 전부터 ‘동네지식인’을 자처하고 있다. 1992년부터 문학·문화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천상병 평론』, 『인문적 인간』,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행복한 인문학』 등의 책을 썼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했고,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