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호
나의 알파벳 - 어떤 시작
아스트리드 트로치
아스트리드 Astrid, 입양인 adopterad, 동양인 asiat, 다른 annorlunda, 벗어나는 avvikande 인간으로 늘 여겨지는.
알레르기 성향 allergiker (일찍이 내가 과민성인 것이 밝혀졌고 나는 내가 알레르기 성향이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 성향이 유전이다 보니 친부모님도 알레르기 성향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유연한 anpassningsbar (나는 다른 사람한테 맞추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익명성 anonymitet (스웨덴은 세계 도처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양적인 외모 때문에 늘 너무 눈에 띈다고 느꼈다. 내 외모는 친구,지인,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까지도 나와 가족과 내 개인사에 관한 질문들을 유발했다 – 내가 스웨덴인답게 생겼다면, 즉, 피부가 더 하얗고 머리카락이 금발이었다면,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았을 텐데. 젊을 때는 외모가 달랐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아니, 때로 스웨덴 주류의 외모에 더 가까운 모습이길 바라는 순간이 여전히 있다고 고백해야겠다. 그랬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가만 내버려뒀을 테니. 익명으로 남을 수 있게.)
수줍은 blyg (나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을 수 있다. 그런데 수줍어 하는 것과 자신 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응석받이 bortskämd (아이 셋인 가족의 막내딸인 나는 응석받이로 자랐다. 부모님은 재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항상 나를 지원해 주었다. 자존감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부모님의 지지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애 같은 barnslig (애 같다는 말을 듣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스웨덴 열두 살짜리와 키가 같아서, 멀리서 보면 아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착하고 순해 보이려고 아이 같은 말투와 목소리를 내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 borderlinediagnos (한동안 정신건강이 나빠졌던 나는 성인이 되어 신경정신과 검사를 받았다.)
부산 Busan (내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도시. 내 입양 서류에 따르면 1970년 1월 경찰이 나를 발견했던 곳. 성인이 되어 세 번 가 봤는데 매번 달랐던 곳. 계속해서 확장하고 발전하는 곳. 내가 태어났을 적에 어떠했는지를 느끼게 해주어 부산에 처음 갔을 때 찾아다니기 좋아했던 소박한(거의 슬럼에 가까웠지만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 동네들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초콜릿 choklad (나는 화이트 초콜릿을 좋아한 적이 없다. 초콜릿은 다크 초콜릿이지. 수 년 전 아들과 함께 크리스 록[(역주) 미국의 흑인 코미디언, 영화배우]이 출연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보러 갔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처음으로 백인이 주류가 아닌 관객의 한 사람으로 앉아 있는 경험을 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워밍업 쇼에서 어떤 코미디언이 아주 멋진 개그를 했다. 화이트보다는 다크가 좋다는 내용이었고 진짜 초콜릿이 아닌 화이트 초콜릿을 누가 원하겠냐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영화광 cineast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아빠 덕분에 프리츠 랑의 초기작이나 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 같이 오래된 유럽과 미국 흑백영화를 즐기게 되었다.)
쿠노 Cuno (의붓아들의 이름. 내가 쿠노의 의붓엄마가 되었을 때 쿠노는 겨우 두 살이었다. 이제 쿠노는 베를린에 살고, 나는 쿠노 아빠와 이혼한 지 오래지만, 쿠노와 나는 여전히 사이가 좋다.)
다니엘 Daniel (오빠의 이름. 내가 스웨덴에 와서 부모님이 내 이름을 지으려 할 때 오빠는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삼 남매 중에 여전히 한국 이름을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다비드 David (아들의 이름. ‘사랑받는 이’라는 뜻을 가졌다.)
장한 duktig (다른 언어로 옮기기 어려운 말. 그런데 스웨덴 사람이라면 장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안다.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을 높이 사는, 칭찬의 말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고집 피우는 egensinnig (고집이 생기면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고 싶다 – 그게 내게 항상 최선은 아니지만.)
습진 eksem (어렸을 때부터 습진으로 고생했던 나는 광선 치료도, 강한 코르티손 연고도 써봤지만, 다 효과 없었다.)
외톨이 enstöring (혼자 있기를 즐기기에 나는 외롭다고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발적이지 않은 외로움에 관심이 간다. 내가 쓰는 글은 주로 외로운 사람들을 다룬다.)
민족성 etnicitet (내가 어렸을 때나 자랄 적에는 거의 안 쓰던 어휘였는데,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켜 스웨덴에서 이제는 쓰이지 않는 ‘인종’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게 된 표현. “너는 여기 출신이 아니야, 진정한 스웨덴 사람에 끼지 않아”라는 말을 좀 더 ‘괜찮은’ 표현으로 나타내려는 시도. 민족성은 같은 민족끼리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한편으로 소외감과 차이를 강화하지 않는가? 그리고 민족성 때문에 멸시당하는 것은 결국 인종 차별 아닌가?)
에바 Eva (엄마의 이름.)
망명 exil (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고통과 갈라짐, 이중성, 고향을 그리고, 또 떠남을 그리리라.)
제외된 exkluderad (나는 일찍이 태생 때문에 완연한 스웨덴성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알았다 - 생후 5개월부터 스웨덴에서 자랐어도 모자란다. 하지만 나는 완연한 한국성에서 또한, 그리고 계속, 제외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 내가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한국말을 할 줄 모르고, 무언의 코드, 문화, 사회계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한국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못생긴 ful (<슈퍼맨과 나>라는 어린이책에 실린 수기를 쓴 적이 있다. 열한 살 때를 다루었는데, 내가 못생겼다는 것을,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자애가 없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작가 författare (내가 원하는 작품을 쓰며 지내던 것도 벌써 수 년 전 얘기다. 그럴 만한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그런 책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다.)
낯선 främmande
호기심 많은 frågvis
이혼한 frånskild (나는 두 번 결혼했었고, 두 번 누군가에게 독이 되었다.)
안경잡이 glasögonorm (어렸을 때부터 안경잡이가 되어 놀림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 안경이 익숙해졌고 안경 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누렇다 gul (고 한다. 내 피부색이.)
관대한 generös, 진심 어린 genuin (이런 사람이도록 늘 애를 쓴다.)
눈물이 많은 gråtmild (너무도 쉽게 눈물이 난다.)
구스타브 Gustaf (아빠의 이름.)
한글 hangul (내가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을 가기 전에 익히려 했던 한국어 알파벳. 아직 익히지 못했는데 아마 앞으로도 못할 듯 싶다. 나는 한국어를 몇 마디밖에 못 한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모국어 수업으로 한국어를 배우겠냐고 물었다. 집에서 식구들과 스웨덴어만 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해 봤자 쓸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때 배워둘걸 싶은 생각이 든다.)
한나 Hanna (언니 이름.)
흉내쟁이 härmfågel (나는 원어민처럼 들릴 정도로 – 스웨덴어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 말 흉내를 곧잘 낸다. 남들한테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체성 정치 identitetspolitik (스웨덴에서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고 사방에서 비판을 받곤 한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관점에서 말하면 요즘 좌파로 간주되지만, 나는 다수가 때로는 소수의 경험담을 듣고 그것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때로는 소수가 다수를 우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멍청함 idioti (우리 가족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 멍청하다고 여긴다.)
경솔한 indiskret (나와 우리 가족의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수없이 받다 보니, 나 역시 경솔한 질문을 던지는 데 도가 텄다.)
잉아뢰 Ingarö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별장이 두 군데 있었다. 한 곳은 스톡홀름 밖의 잉아뢰 섬에 있었다. 동절기에 긴 주말을 그곳에서 보내곤 했는데, 집은 아빠가 지었고 나와 언니는 한 방을 썼다. 정원에는 우리가 각자 즐겨 오르던 나무가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뭇가지에 끼어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적이 있다. “아빠를 불러줘!” 옆 나무에 오른 언니에게 소리쳤는데 언니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지가 부러졌고 나는 땅으로 곤두박질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무 밑에 쌓여 있던 퇴비더미 위에 떨어져 비교적 푹신하게 착지했다. 아빠는 연꽃과 금붕어를 두려고 연못도 팠다. 어느 겨울, 연못이 얼었다. 나는 스케이트 타는 흉내를 낸다고 빙판에 올랐지만 얼음이 나를 지탱하지 못했다. 그때도 언니는 마냥 깔깔댔다.)
포함된 inkluderad (내가 한국인 공동체에 포함되는 것이 늘 놀랍다. 기쁘고 영광스러우면서도 마음이 갈린다 – 왜 나를 포함시키지, 한국 사람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치지, 내가 한국에서 고아로 자라났더라면 나를 어떻게 봤을까? – 내가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내게 그 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안다. 소위 ‘성공한’ 작가라는 나의 지위도 한몫을 한다는 점 역시 잊어서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 없이, 한국적인 것 없이, 공동체 없이 자랐고, 그것을 내 것으로 여기기 힘들다. 늘 유보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 성공하지 않았다면 포함됐을까?)
존엄성 integritet (나의 존엄성을 내가 더 잘 지켜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람은 드문 반면 너무나 사적인 질문을 하거나 사견을 피력하며 존엄성을 끊임없이 침범하는 이가 많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외국 태생 입양인이라면, 존엄성을 침범하는 행위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현명하다. 다시 말해, 자신을 너무 많이 드러낼지는 몰라도, 거기서 하고 싶은 얘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어쩌면 내 얘기가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혹은 채워줄 수도 있지 않은가.)
지성 intellektuell (내가 충분히 이지적이지 않아 늘 콤플렉스를 느꼈다.)
지능 intelligens (우리 가족이 늘 중시해 온 것.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학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연구자로, 모자라게 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충동 조절 impulskontroll (을 숙달하는 연습이 때로 필요하다고 느낀다.)
자기 주장이 약한 jagsvag (자아가 강하지 않은, 자아를 드러내 주장하지 못하는. 그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judisk diaspora (한인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들어 보기도 훨씬 전부터 의식하고 있었고 내게 영향을 끼쳤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유대인들의 박해는 내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 한인 공동체가 있다고 느껴지고, 이해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나 그들의 가족이 떠나야 했던 땅이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는 어떤 근본적인 감정을. 많은 경우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어쩌면 공유하는 추억이 있을 수 있고, 가족과 친지를 남겨두고 왔을 수도 있다. – 내게 이런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전함, 결핍, 부재를 느낀다. 내게는 없는 무언가를 그들은 공유하고 있으니.)
고양이 katt (나의 성장기 내내 우리 집에서 키우던 반려동물. 부모님이 당시 우리 담당 소아과 의사한테 내게 알레르기가 있는데 고양이를 계속 키워도 되겠냐고 상담을 했더니 의사는 ‘고양이는 영혼에 좋아요’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커서 부모님 집을 떠났다가 다시 그 집을 방문했을 때, 호흡 곤란에 완연한 고양이 알레르기 증세를 보였다. 검사 결과 알레르기 확진. 당시 내 주치의였던 여의사는 천식까지 번질 수 있으니 고양이 키우는 것은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몇 년 동안은 의사 말을 들었는데, 고양이가 없는 삶은 너무 심심했다. - 결국 나는 천식을 앓게 되고 말았다. 지금도 고양이를 키운다. 현재 리사와 같이 살고 있는데(내 영혼을 위해), 매일같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
중국놈 kines (사람들이 나를 호칭했던, 지금도 호칭하는 말, 나라고 여겼던, 지금도 여기는 대상.)
갈등 회피적 konflikträdd (나는 화난 사람들이 무섭기 때문에 가능한 갈등을 피한다. – 누군가 내게 화를 내면 그 사람이 나를 영원토록 증오할 거라 생각한다.)
한국 Korea (내가 태어났지만 살지 않은 나라.)
키가 작은 kort (나는 키가 작다. 스웨덴 평균키보다 작다. 한국 평균키보다 작다. 한국에 처음 가서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의 실망이란!)
적당한 lagom (다른 언어로 옮기기 어려운 또 다른 말. 적당하다는 것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 그 중간인 것.)[(역주) ‘라곰’은 ‘알맞다’는 긍정적인 어감보다는 ‘그럭저럭 걸맞다’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말이다.]
슬픈 ledsen
작은 liten
낮은 목소리 lågmäld
롱스히탄 Långshyttan (내가 요즘 터전으로 삼은, 광업소 주변에 생겨난 달라르나 남부의 마을.)
쉽게 겁먹는 lättskrämd (‘겁난다고 할 말을 못하면 안 된다’고들 말하지만, 나치로 공공연하게 알려진 노인이 먼 발치에서 나와 내 아이의 모습을 찍으면 겁을 안 먹을 수 없다.)
엄마 바보 mammig (나는 엄마 딸.)
머저리 mesig
미 Mi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미 역시 한국 입양인인데,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을 두고 있다.)
열등감 mindervärdeskomplex
어중간한 mittemellan (스웨덴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둘 다인가, 혹은 둘 다 아닌가?)
용감한 modig (수도를 떠나, 엄마에게서(그리고 아빠와도) 멀리 떨어진, 아는 사람 없고 집 구경 갔을 때 딱 한 번 가본 작은 마을로 이사 왔으니.)
평균적인 normal (‘평균적’이라는 것은 지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생기지 않은 모습으로 자라다 보면, 평균적인 사람 취급받고 싶은 열망이 커진다. 혈연이 없는 우리 가족은 평균을 벗어났다고 여겨졌다. 주변에서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보았다면 내 삶은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삶을 원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면에서는 ‘평균적이지 않은’ 것에 만족 nöjd해야 하는 것일지도.)
자신 없는 osäker
사랑받지 못한 oälskad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난 사랑받을 만하지 않다는 걸 알아’. 더스미스, <언러버블> - 인정한다. 나는 내 개인사가 버림받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까다로운 petig
원칙주의자 principfast
공주 prinsessa (어렸을 때 얼마나 공주가 되고 싶었는지, 예쁘고 아름다운. 그 대신 나는 못생긴 노랑이가 되었다.)
퀼트 quiltat (기법의 한국 조각보를 언젠가는 만드리라.)
등을 편 rakryggad (아빠는 어린 우리에게 늘 등을 쭉 펴라고 하셨다. 머리에 책을 얹고 걸어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게 자세를 바로 하라고. – 등을 바로 펴고 산다는 것은 나보다 못한 의견을 내는 사람들에 맞서 내 생각을 지켜낸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빠 말이 옳았다.)
겁 많은 rädd (그럼에도 나는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용감해지고 있다.)
흡연가 rökare (나는 세 보이려 담배를 핀다. 하지만 흡연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담배 피워서 좋아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남들의 건강, 자연환경, 정말 심각한 경우 공공의료에 끼치는 부담. 그러나 니코틴은 중독을 부르는 독이고 나는 중독자이다. 하지만 성격 좋은 사람은 다들 담배 피우더라고 한다지.)
서울 Seoul (한국의 수도. 내가 부산에서 발견되고 나서 보내진 곳, 스웨덴에 오기 전 위탁가정에서 살던 곳. 그 뒤로 여러 번 가 봤고 오늘날에는 좋은 추억들이 많은 곳.)
수치심 skam (나는 나를 어찌나 수치스럽게 여겼는지.)
똑똑한 smart (내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소피아 Sofia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인데, 역시 한국 입양인이며 내게 중요한 사람이다. 2002년 소피아의 제안으로 문집 『집 찾아가는 길. 한국 입양인들의 이야기(Hitta hem : Vuxna adopterade från Korea berättar)』를 함께 펴내면서 알게 되었다. 이듬해인가 우리는 예비 (양)부모를 위한 소규모 간담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부모 될 사람들이 적어도 두 명의 성인 입양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 이 간담회 작업의 결실로, 단과 롯타 회예르가 쓴 『슈퍼맨과 나』라는 9세에서 12세 사이의 입양아들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고독을 즐기는 solitär
언어경찰 språkpolis (언어 덕후인 나는 말을 정확하게 쓰려 하고, 단어와 언어의 쓰임, 그리고 스웨덴어의 적확한 표현에 신경을 쓴다.)
스톡홀름 Stockholm (내가 아직 고향으로 여기는 스웨덴의 수도.)
자랑스러운 stolt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내가 한국계 스웨덴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고, 내가 살면서 이루어 낸 것들이 자랑스럽다.)
스투레비 Stureby (내가 자라서 초중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부모님 집을 떠날 때까지 살던 교외 주택촌.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추억이 많은 곳이고, 반 친구들 중 셋과는 아직도 무척 친하다. 그러나 그 추억은 소외감과 성취 불안이 깊이 묻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도 학창시절에 대한 악몽을 꿀 때가 있다.)
깜둥대가리 svartskalle (누군가가 이 말을 했거나 아직도 할 때 마음 상하지 않으려고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상대를 극히 비하하는 말. 사실 내 머리카락은 아주, 아주 짙은 갈색인데….)[(역주) 스웨덴에서 머리카락 색이 짙은, 타지에서 온 이민자를 비하하는 표현.]
스웨덴 사람 svensk (내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기 가장 어려운 말. 스웨덴 사람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언제 스웨덴 사람이 되는가, 스웨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누가 정하고 왜 정하는가. 스웨덴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 나는 스웨덴 사람일 수 있는가, 아무도 나 보고 스웨덴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준스웨덴 사람’이라고 부르는데도?)
남한 Sydkorea (어릴 적 우리는 그냥 ‘코리아’가 아니라 항상 ‘남한’이라고 말했다. 남한과 북한을 구분했다.)
말주변이 있는 talför (말은 권력이다. 나는 일찍이 그 권력을 손에 넣는 법을 익혔다고 하겠다. 말주변이 있는 것은 내게 능력이 되었다. 스웨덴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내 외모 때문에 더욱 그랬다. 스웨덴에서 받아들여지려면, 포함되려면, 아니, 그 가능성에 다가가기라도 하려면, 스웨덴말을 잘 해야 한다. 다른 언어의 억양은 최대한 없어야 한다. – 나는 양식 있는 좋은 스웨덴어를 구사한다는 칭찬을 자주 듣곤 한다.)
소속감 tillhörighet
반항적인/트로치 trotsig/Trotzig (내 소개를 하면 ”당신도 그 트로치 집안인가요?”라는 질문을 적잖게 받는다. – 내가 반항적인 트로치가 된 것은 자기 충족적 예언 같다. – 게다가 트로치는 스웨덴에서 긴 역사를 가진 성이다. 트로치가(家)의 시조는 모텐 트로치였는데 16세기 말엽 독일 뤼베크에서 스웨덴으로 건너왔다. 모텐은 달라르나의 팔룬에 있는 구리광산 관련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곳은 현재 내가 고향으로 삼은 마을에서 멀지 않다.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믈라 스탄에 있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좁은 골목은 그의 이름을 따 모텐 트로치 골목이라 불린다. 달라르나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헤데모라에는 한참 뒤 우리 할아버지의 외삼촌인 칼 트로치가 살았다. 그는 많은 활동을 했는데, 특히 수도관이나 전기 공급망 설치 등 이곳의 현대화 작업에 앞장섰고, 팔룬에도 헤데모라에도 트로츠가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 있다. 내가 헤데모라와 팔룬 사이에 위치한 이곳에 오게 되어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소외된 utanför (나는 소외감은 늘 지니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그 감정을 겪은 이들이 참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평범 vanlig 하고 싶다.
채식주의자 vegetarian (”나는 동물 안 먹어요”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묻는다. ”그럼 생선은 먹어요?”)
알고 싶은 것이 많은 vetgirig
이해심이 넘치는 vidsynt
길 잃은 vilsen (나는 숲에서 길을 잃은 적은 없지만, 삶에서 길을 잃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회오리바람 virvelvind (작은 식탁과 그 식탁에 딸린 의자 네 개를 판 남자는 온라인 거래후기에서 나를 이와 같이 평가했다. 나를 이렇게 부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소중한 värdefull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왜 이리 힘들까?)
하찮은 värdelös (내가 이렇다고 자주 느낀다.)
원 won (한국 통화. 내가 처음 한국 여행 갔을 때 난생 처음으로 한국 통화를 다뤄보았다. 다음에 또 한국 갈 때를 위해 틴 케이스에 지폐와 동전을 조금 보관하고 있다. 오빠의 한국 이름인 대원의 일부이기도 하다.)
제노포비아 xenofobi (이방인 혐오증이 우리 사회와 세계를 특징 짓는 측면이 많다. 어떻게 보면 낯선 것이 두렵고 이방인이 두려운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 문제는 우리의 두려운 감정을 어떻게 하는가에 있다.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해서 이방인을 향한 적개심, 편견과 증오로 변하게 내버려두는가에.)
영인 Young-in (나의 유일한 한국 친구. 어릴 적 스웨덴에 몇 년 살았고, 스웨덴어를 유창하게 하고 스웨덴어 번역도 한다.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계속 연락하고 지냈으면 하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내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다. - 하지만 영인이는 남았다.)
황도 십이궁-십이지 zodiaken (통 흥미가 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점성술이나 별자리 운세 같은 것. 자신의 정확한 출생 일시를 모르면 그런 것들은 다 상관 없어진다.)
오비 Åby (우리 가족의 오두막 별장이 있던 욀란드 섬의 마을.)
불안 ångest (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 대부분과 안면 트고 지낸다.)
사랑스러운 älskvärd (입양 서류에서 나를 묘사하는 표현이지만 내 것으로 결코 만들지 못한 말.)
섭식장애 ätstörd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너 똑똑한 사람이잖아. 어쩜 계속 그러니?” 나는 먹는 것이 두렵다. 먹으면 살찐다고 믿는다. 나와 내 몸이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내 몸은 내 외모다. 남들이 보는 대상이다. 나는 나와 내 몸을 보는 남들의 시선이 두렵다.)
겸손 ödmjuk (하기를 바라, 삶 앞에.)
욀란드 Öland (어린 시절 여름은 늘 이곳에서 보냈다. 이제 고인이 된 삼촌이 사두었던 작은 오두막이었는데, 그 뒤로 아빠가 물려받았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 삼 남매가, 그러다가 나와 언니만, 마지막으로 나만 이용했다. 그 집은 이제 팔았다.)
버림받은 övergiven (내 입양 서류에 있는 내용 중에 가장 뇌리에 파고든 낱말이다. 내가 버려졌다고 나와 있다.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버림받은 사람으로 여기곤 한다. 나는 결코 내 아이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번역가 översättare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작문과 영어였는데, 오늘날 나는 작가이며 프리랜서 영어 번역가로 일한다. – 그럴 수 있어 특혜를 누리는 편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자랐더라면 내 삶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아마 말과 언어와 글을 다루는 삶을 살지 못 했으리라. – 글을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안의 무엇이 요구된다.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말. 인간 번역가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서 비용을 아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코 이득이 아닌 것은 언어가 마멸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나의 가장 중요한 도구이며 내게 완전무결한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온전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스웨덴어뿐이다.)
번역 : 기영인 (스 → 한)
아스트리드 트로치는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아기 때 스웨덴으로 입양된 스웨덴 작가이다. 1996년 발표된 데뷔작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해외 입양인으로서의 경험을 다룬 자전적인 글로,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한국을 다시 찾았던 내용도 담고 있다. 이후 그녀는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소설집, 그리고 한 권의 어린이책을 펴냈으며, 정체성, 소속감, 고독 등을 다루는 글로 다수의 문집에 참여하고 다양한 문예지에 기고했다. 트로치는 또한 편집자, 번역가이자 교열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