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문화
9호
경계, 언어, 번역: 한인 디아스포라와 『해방자들』
오승아
지난 10월 10일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전 세계 한국 문학의 독자를 감동과 흥분에 들썩이게 하는 사건이었다. 노벨 위원회에서는 한강이 저작해 온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이 연약함을 드러내는 치열한 시적 산문”을 수상 선정 이유로 공표했고,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고통받고 잊힌 이들의 아픔을 담아낸 그의 언어와 서사는 명실공히 국지성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한 세계 문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전 세계 소셜 미디어의 축하 분위기 속에서도 한강의 작품을 각 언어로 옮겨 낸 번역자들의 공에 대한 치하가 눈에 띄는 현상은 오늘날 문학이 독자들과 호응하는 과정에서 번역이 담당하는 역할에 새삼 주목하게 한다. “번역 과정에서는 항상 무언가가 잃어버려진다(something is always lost in translation)”는 오랜 명제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넘어서는 공감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번역의 힘은 장벽과 차이를 넘어 이해하고 또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불가분의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계 너머와의 조우를 가능하게 하는 번역의 화두 앞에서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상황은 자못 독특하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디아스포라의 여정은 정착지에서의 새로운 문화 및 언어 경계와의 충돌로 이어지고,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멀어져 가는 고국과의 문화적, 언어적, 정서적 거리는 양측 모두로부터 새로운 경계선을 그려낸다. 더 이상 한국과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국내 독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한국어로 번역되는 통과의례를 거치지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온 한국계 미국 문학 작가들의 경우조차도 해외에서의 반응을 능가하는 공명을 자아낸 예는 드물다. 특히 전미도서상 (National Book Award)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이민진(Min Jin Lee)의 『파친코(Pachinko)』를 비롯, 한국적이라고 평가되는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겪는 난항의 성격은 더욱 미묘하다. 이들 작품에 대한 국내 수용에서 종종 대두되는, ‘어색하다’, ‘사실과 다르다’, ‘충분히 한국적이지 못하다’는 미온적 반응은 해외의 열광적 반응과 대조되는 소외와 기묘한 단절로 이어지며 마치 한국과 한인 디아스포라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대변하는 듯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한인 디아스포라 작가의 ‘한국적’ 서사를 문화적, 언어적, 정서적 거리를 넘어 ‘한국’을 담아낸 하나의 ‘번역’ 서사로 읽을 수 있다면, ‘무언가가 잃어버려’졌다는 감각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오히려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의 역사 속에 자리 잡은 기억이자 오늘날 한인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일부로 존재하는 그들의 한국을 그들의 언어와 서사로 담아낸 디아스포라 문학의 성취일 것이다. 한국계 미국 문학을 비롯, 오늘날 꾸준히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현재는 세계를 향한 한국 문학의 행보가 보이는 기세에 못지않으며, 그 가운데 뉴욕 공립도서관이 선정한 2024년 젊은 사자상(Young Lions Award) 수상작인 소설 『해방자들(The Liberators)』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상처, 기억과 희망을 품위 있고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일구어낸 수작이다. 2세대 한국계 미국인인 고은지(E. J. Koh)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며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진으로 활약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영문학과 창작, 문학 번역을 전공했으며 한국 문학을 영어로 옮겨낸 번역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경계를 넘어서는 재현과 이해, 소통을 향한 열망이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작업이 곧 번역이라면, 『해방자들』의 세계는 번역의 세계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해방자들』은 4대에 걸친 개인과 가족, 국가의 역사와 상처를 통해 한국, 일본, 미국에 걸친 트랜스퍼시픽 디아스포라(transpacific diaspora)의 현재를 섬세하고 애틋한 언어로 조명한 작품이다. 재미 한인 가족의 서사를 중심으로 1980년에서 2014년에 걸쳐 진술되는 각 인물의 경험과 구전된 기억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전쟁과 분단, 해방 후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의 과거까지 폭넓게 담아낸다. 대전에서 캘리포니아를 거쳐 워싱턴주 타코마(Tacoma)에 정착하는 인숙과 성호 가족의 이주 경로는 우키시마호 침몰과 제주 4·3 사건의 기억을 물려받은 재미 언론인 로버트의 투쟁사와 교차하고, 이어 혈혈단신 미국에서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탈북인 제니의 여정과 병합된다. 한반도 안팎의 정치적, 지리적, 사회적 경계는 이주민 공동체에 부단한 갈등을 자아내고, 세대와 문화와 역사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겪어온 가족의 삶 속에서도 다단한 경계와 단절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인숙의 목소리로 서술되는 작품의 마지막 순간은 회복과 치유의 상상으로 빛나며, 새로운 시작의 약속과 아름다움을 읽어 내게 한다.
소설은 “나는 어릴 적부터 여섯 가지 언어를 읽고 쓸 수 있었다”1)는 요한의 일인칭 서술로 시작, 1980년의 대전으로 단숨에 독자를 인도한다. 하나둘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점을 얼키설키 땋아 나가는 서사의 흐름은 각 개인의 삶 속 내밀한 상처로 자리 잡은 한반도의 군부 독재, 분단, 전쟁, 식민 지배와 이주, 귀향의 역사를 정교하게 풀어낸다. 과거로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기억을 생생히 담아내는 나지막하면서도 치열한 시적 목소리는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의 『딕테(Dictée)』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말로 가득 찬 소년”이었던 요한이(15쪽) 전쟁과 군사 조직 생활을 거쳐 “침묵”으로 변해 가며(14쪽) 군부독재 치하에서 타인의 소통 오류로 때 이른 죽음을 맞듯, 언어는 결코 손쉬운 해방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슬픔과 상흔을 지닌 가족들은 소통과 이해의 불가능성을 전제하는 듯 자신만의 세계에 머무는 채 서로의 이야기들을 공유하지 못하는 세월을 관통해 나간다. 서술을 주도하는 일인칭 화자의 특권은 요한에게서 딸 인숙을 거쳐 인숙의 아들 헨리로 이어지지만, 그들의 내면과 목소리를 지배하는 감각은 단절과 고립에 가깝다.
그러나 작품은 모든 인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찬 존재들임을 분명히 하며, 홀로이면서도 끝끝내 서로를 향하는 조용한 열망을 차분히 기록하는 언어의 힘은 강렬하다. 갓 태어난 인숙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요한의 일인칭 서술이 마무리될 때, “아이가 눈을 뜨고는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작은 발이 내 손바닥 안에서 버둥거렸다”는 마지막 문장은(60쪽) 그가 미처 “대비할 수 없었”고 “막을 수 없는 물줄기와도 같은” 사랑을 체험했던 잊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59-60쪽). 반면 세상을 떠난 요한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아버지께 뭐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을 걸며 서술의 문을 여는 인숙의 내밀한 목소리는 생전에 불가능했던 부녀간의 소통을 방증하는 동시에 지금이라도 가감 없이 털어놓는 자신의 속내를 들어줄 대상으로써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담는다(71쪽). 연인 성호와의 결혼을 통해 시모 후란을 만나고 아들 헨리를 얻었다 해도 생존과 이주, 정착을 위한 시간 속에서 가족은 인숙의 고립감을 증폭시키는 존재들로 자리 잡지만, 가능한 소통의 상대로 다가선 로버트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립되었으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베풀고 공유하며 연대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한반도 통일을 주장하며 이주민 공동체로부터도 미묘하게 소외되는 국외자 로버트는 1980년에서 2014년에 이르는 작중 시간의 일부에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총 16개 장(章) 가운데 유일하게 타임라인을 이탈한 장으로서 소설 정중앙에 위치한 「우키시마호. 1945년, 마이즈루」는 소설 속 가장 오랜 과거이자 참혹한 역사의 상흔을 로버트와 어머니 고일의 서사로 담아내며, 다섯 살 로버트의 기억 속에 남아 훗날 미군들에게 그려주곤 하는 한반도 모양의 호랑이 그림은 작품의 유일한 삽화로 삽입되어 모자(母子)의 삶이 함축하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무게를 뚜렷이 제시한다. 위안부 동원을 피하고자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았던 제주 여성 고일은 일본의 강제 노역 동원 후 송환 과정에서 우키시마호 침몰을 겪고, 폭발의 기억은 금속 파편과 수술 자국으로 그의 육체에 남는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고향에서 목격한 4·3 사건의 참상은 그를 제주에 머물지 못하도록 내몰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출산한 후 복부에 남은 봉합 자국은 아들의 상상 속에서 한반도 분단과 중첩되며, 이주와 노역, 해방과 혼란, 전쟁과 분단을 아우르는 그의 상흔은 로버트에게로 계승된다. 일찍이 도미(渡美)하여 유창한 영어와 미국식 이름까지 갖추었음에도 한반도 해방과 통일의 염원에 천착하는 로버트는 고일의 숨죽인 기억과 상처뿐 아니라 귀향조차도 결코 평화로운 안식이 될 수 없었던 디아스포라의 경험까지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의 모습으로 남는다.
이와 같은 고일과 로버트의 역사가 제주 4·3 사건 희생자 후손으로 알려진 작가 고은지의 가족사를 떠올리게 하는 한편, 마치 작가를 대변하듯 공감과 연대를 향한 열망을 언어로 구현하는 인물 또한 로버트임은 흥미롭다. 경계를 넘는 언어의 힘에 대한 매혹은 일제의 지배와 미국 인종차별을 연관 지은 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의 글을 읽으며 미국행을 꿈꾸기 시작한 로버트의 학생 시절부터 분명하며, 강연으로 통일과 남북 화합의 필요를 설파하고 《해방신문》을 발간하여 “바다만큼 오래되고 친숙하게 울부짖”는 글을 써 내려온 언론인으로서의 세월 속에 소통을 향한 그의 의지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186쪽). 정파와 이념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교민 사회에서의 소외와 경계심을 낳고, 짧고도 절실했던 인숙과의 만남조차도 “자기 펜 앞의 종이처럼” 인숙을 찾을 로버트의 고립으로 끝맺음 되지만(187쪽), 로버트의 이상과 말의 힘에 대한 믿음은 현재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이어지며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는다.
로버트의 이름을 쓰는 법을 묻는 다섯 살 헨리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자유”라고 쓰는 로버트의 모습은 낭만주의자로 기억된다(95쪽). 삶의 무게에 압도된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방치되었던 일곱 살 헨리는 로버트를 통해 만난 노견 토토와 더불어 소설 속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교감과 소통을 나눈다. 시간의 흐름은 헨리의 성장과 로버트의 쇠락을 동시에 진행하지만, 헨리와 제니의 만남에 도화선을 제공한 로버트의 존재는 잊힐 수 없다.
탈북인 제니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유일한 한인 로버트는 분단의 경계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상주의자였고(122쪽), 분단의 현실을 체험한 제니에게 그의 낭만적 이상은 비판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의 명물 물냉면을 함께 나누며 ‘한글’과 ‘조선글’을 이야기하는 두 젊은 연인 헨리와 제니의 모습은 경계를 넘어 화합을 일구고자 했던 로버트의 희망을 생생히 형상화하며(203쪽), 그들의 열띤 대화 속에서 로버트의 존재감은 부정할 수 없다. 로버트의 말들이 기록된 종이를 석호에 던져 버리는 제니와 이를 조용히 건져 말려 소중히 로버트에게 되돌려주려는 헨리의 상반된 모습은 일거에 극복될 수 없는 엄연한 신념의 차이를 제시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반된 행위가 궁극적으로 말, 단어, 언어가 지닌 힘을 인식한 행위라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물에서 건져 말려 “잉크가 번졌어도 여전히 내용은 읽을 수 있”는 로버트의 글을 통해 그의 언어가 지닌 의미에 주목하는 헨리의 모습은 로버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보여 주는 동시에 작품의 모티프로 작동하는 물의 존재감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186쪽).
제니와 함께 있는 석호에서 헨리가 불현듯 “가라앉는 배는 언제나 무시무시했다”고 되뇔 때(184-185쪽), 이는 4·3 사건을 기억하며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을 때는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 안 돼”라고 어린 로버트에게 이르던 고일의 숨죽인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135쪽). 영화 〈타이타닉〉이 스치듯 언급되기도 하지만, 1945년 우키시마호의 기억으로부터 2014년 4월 TV를 통해 바라본 세월호의 소식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에서 물은 침몰과 트라우마의 이미지로 무겁게 존재한다. 헨리의 종적이 묘연해졌던 한순간, 아버지 성호가 두려움에 휩싸인 채 바닷물 속에서 아들을 찾으려 했던 것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물에 던져졌던 로버트의 글이 “잉크가 번졌어도 여전히 내용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살아남았듯(186쪽), 물은 회복, 생존과 화해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헨리와 제니의 딸 하루를 제외한 현재의 모두는 바다를 횡단하는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넘은 이들이며, 헨리와 제니의 육체가 석호의 흐름 속에 하나가 되고 오랜 세월 소원했던 성호와 인숙이 바닷물 속에서 과거의 애정과 열망을 되찾듯, 가족은 물속에서 회복되고 또 일구어진다. 2001년 탈북인 제니의 최종 정착지이자 2010년의 헨리가 짧은 방황 후 돌아온 집, 3대에 걸친 인숙의 가족이 마침내 함께 할 수 있었던 보금자리 또한 항구도시 타코마에 위치하며, 바다와 빛이 함께 하는 정경 속에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으로 땋아 내려진 모두의 여정 또한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이주의 경험은 점점 더 과거의 것으로 밀려가기에, 먼 기억으로만 남은 고국의 역사는 때로 디아스포라의 상상 속에 재구성된 그들만의 서사로 구전되기도 한다. 그 미묘한 괴리가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슬픔이자 정수이기도 하지만, 『해방자들』의 나직하면서도 강렬한 시적 언어는 한반도의 역사와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미국 문학의 영역으로 아름답게 번역해 낸다. 각기 다른 상처를 안은 인물들의 내적 풍경은 그들이 관통해야 했던 삶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어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인숙의 차분한 목소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가 감내해 온 시련의 세월이다(264쪽). 이에 인숙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초록색 한복을 제니에게 입히고 감탄하는 작품의 마지막 순간은 옷고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푸른 길”이 데려다줄 미래의 약속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오래전 여읜 어머니와 이제 고인이 된 시모 후란을 떠올리며 과거와 화해하는 순간이기에 더욱 아름답다(267쪽). 고통과 슬픔의 역사를 딛고 창조된 『해방자들』의 세계는 희망과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마무리되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작가 고은지의 언어가 가진 힘이다.
1) 고은지, 『해방자들』, 장한라 옮김, 엘리, 2023, 13쪽. 이하에서는 본문에 쪽수만을 표기한다.
가천대학교 영미어문학과 교수. 현대 미국문학과 아시아계 미국소설,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연구하고 교육하며 저서로는 Recontextualizing Asian American Domesticity: From Madame Butterfly to My American Wife!(Lexington Books, 2008)가 있다. 국내외 저널에 아시아계 미국 문학 논문을 꾸준히 발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