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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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도쿄 릿쿄대: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김응교

출처: 유시경 신부 제공

릿쿄대학 정문에서 보이는 전경, 중앙은 본관이고 오른쪽에 채플, 왼쪽에 도서관이 있으며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같은 건축 양식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건물이 피해를 입고 다시 지어졌다. 1945년 연합군의 도쿄 공습으로 이케부쿠로 캠퍼스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출처: 유시경 신부 제공)

출처: 유시경 신부 제공

  도쿄 이케부쿠로역 서쪽 출구로 나와 십여 분쯤 걸어가면 붉은 벽돌 벽이 길게 이어지고 이어서 아담한 정문이 나온다. 담쟁이덩굴로 옷을 입은 붉은 벽돌 건물은 낯선 길을 찾아온 나그네를 살갑게 맞이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걸으면 마치 유럽의 어느 중세 대학에 와 있는 듯 고풍스럽다.
  1942년 4월 2일 릿쿄대에 입학한 윤동주의 학적부에는 그가 「참회록」을 쓰며 괴로워했던 ‘히라누마 도오주(平沼東柱)’라는 창씨개명된 이름이 쓰여 있다.
  1948년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낼 때 네 명의 연희전문 동창들이 힘을 모았다. 강처중, 유영, 김삼불 그리고 후배 정병욱이었다. 특히 강처중은 윤동주가 릿쿄대학 편지지에 써서 보낸 다섯 편의 시를 보관했다. 강처중 덕분에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씨워진 시」, 「봄」 다섯 편이 시집에 실릴 수 있었다.
  윤동주 스스로 선택한 19편의 시를 정병욱이 보관했고, 여기에 강처중이 보관한 12편을 합친 31편으로 『하늘과 바람과 시』는 출판된다. 강처중이 보관하여 전한 12편 중에 릿쿄대 편지지에 쓰여 있는 시에서 릿쿄대에서 공부하던 풍경이 나오는 구절을 보자.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ー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윤동주, 「쉽게 씨워진 시」 전문.

  윤동주는 왜 릿쿄대학에 입학했을까.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드문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희전문처럼, 릿쿄대학에서도 채플을 통해 성경을 읽으며 공부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매년 2월 릿쿄대에서 열리는 '윤동주 시인 릿쿄대학 추모회' (출처: 유시경 신부 제공)

대학 채플 입구 사진. 진주만 공격이 있던 다음 날 릿쿄대학이 대영미 선전포고에 참여하는 낭독회를 하면서 채플을 폐쇄한다. 이 채플 공간은 1942년에 창고로 쓰였다. (출처: 유시경 신부 제공)

  불행하게도 윤동주가 입학하기 전에 릿쿄대학은 이미 다른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한 바로 다음 날 12월 8일 릿쿄대학은 전교생을 모아놓고 대미영 선전포고를 따르는 천황의 조서(詔書)를 낭독하는 봉독식(捧讀式)을 거행한다.
  릿쿄대의 교육 과정에 “군국주의 교육 방침을 더욱 명확하게 해야 한다”면서 “채플을 일시 폐쇄”했다.(『릿쿄대학 신문』1942년 10월 10일자)

릿쿄대 채플 폐쇄를 알리는 기사(출처: 《릿쿄대학 신문》 1942년 10월 10일자. 사진: 릿쿄대학교 웹사이트)

  기독교 교육은 사라지고 이미 군국주의 교육을 중심으로 했을 때, 군대와 다름없는 학교에 윤동주는 입학했던 것이다. 윤동주가 그리던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이나 채플과는 관계없는 군국주의 교육을 받아야 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자유를 찾기는커녕 제국주의에 빠진 학장의 지시로 머리를 삭발하고 군인처럼 지내야 했다. 릿쿄대학에서 윤동주는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홀로 침전(沈澱)”하는 우울에 빠져 있다.

릿쿄대 시절, 1942년 8월 4일, 마지막 귀향 때, 송몽규(가운데) 등 친구들과 찍은 사진. 윤동주만 삭발머리를 하고 있다.
(출처 :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릿쿄대학 성적부」를 보면, 윤동주는 ‘선과 1학년’ 때 두 과목만 들은 것으로 나온다. 이미 릿쿄대에 마음이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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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씨앗/통조림』을 냈고, 세 권의 윤동주 이야기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 『나무가 있다: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서른세 번의 만남: 백석과 동주』를 냈다. 평론집 『좋은 언어로: 신동엽 평전』, 『그늘: 문학과 숨은 신』, 『곁으로: 문학의 공간』,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일본적 마음』, 『백년 동안의 증언: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韓國現代詩の魅惑)』(新幹社, 2007), 영화평론집 『시네마 에피파니』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어둠의 아이들』, 『다시 오는 봄』,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공역, 藤原書店, 2007) 등이 있다. 《동아일보》에 연재한 ‘동주의 길’, 《서울신문》에 ‘작가의 탄생’, 《중앙일보》에 ‘김응교의 가장자리’를 연재했다. 중국, 일본, 프랑스 파리, 헝가리 부다페스트,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윤동주를 강연했고, CBS TV 〈크리스천 NOW〉 MC, 국민TV 인문학 방송 〈김응교의 일시적 순간〉을 진행, KBS 〈TV 책을 보다〉 자문위원, MBC TV 〈무한도전〉, CBS TV 아카데미숲에서 강연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순헌칼리지 교수이고, 신동엽학회 학회장이다. 샤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대산문화재단 외국문학 번역기금 등을 수상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