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9호
작은 새가 일깨워 준 아침
이리나
이민을 올 때 가져온 돈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까지 나서서 일했지만, 생활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보았던 미국에 이민 간 여자 주인공의 삶을 동경했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그렇게 멋있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모든 게 힘들었다. 영어도 서툴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파트 문 앞에 붙인 노티스서부터 은행에서 공과금을 내는 것까지 새로웠다. 평범한 일상생활이란 정의가 새로 정립되는 시기였다. 아빠는 빨리 이곳에서 익숙해지려면 다양하게 부딪혀 보는 것에 두려워하거나 게을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커피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인근의 주립대학교에서 ESL 강의를 들을 때였다. 식당에서 손님이 식사를 끝낸 테이블을 치우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일은 고됐다. 이런 생활 속에서 학교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같이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일을 마친 나는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다. 유료 주차장 대신 멀리 떨어진 길에 주차하고 나올 때였다. 도로변 키 큰 상수리나무 아래 회색 털이 부스스한 새끼 비둘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공원에서 구구대며 빵부스러기나 팝콘을 주워 먹던 큰 비둘기와 사뭇 달랐다. 새가 왜 나무 위에 있지 않고 나무 아래에 있나 싶어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봤다. 새는 몇 발짝을 떼면서 날갯짓했지만, 한쪽 날개가 꺾여 있어서 날아갈 수가 없었다. 날갯죽지에 설핏 피가 보이고, 가로세로의 앙증맞은 주름이 접혀 있는 잘 익은 복숭아색의 발로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은 부리를 열어 구구거렸으나, 그 외침은 지나가는 차 소리에 파묻혔다. 크고 검은 눈을 깜박이며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작은 발로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본능이리라.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엄마 새는 어디 가고 어떻게 이 황량한 곳에 너 혼자 그러고 있느냐고. 안타까웠고 답답했다. 상처 입은 어린 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수업 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수업 끝나고 다시 올게 하며,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주차장을 지나고 강의실에 도착하려면 수업 시작 5분은 지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어린 생명을 홀로 두고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강의를 들으며 생각은 온통 그 작은 새로 향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둠이 짙게 내려왔다. 숨을 곳이 없는 나무 밑동에서 상하고 지친 몸을 어떻게 감추고 있으려나.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저곳에서 어떻게 오늘 밤을 지내려는지. 보통 비둘기는 떼로 몰려다니는데 왜 다른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까만 동그란 눈으로 아직도 두리번거리며 엄마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만 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나는 엄마와 아빠가 그리고 동생이 보고 싶어졌다. 수업이 끝나니 밤이 깊었다. 서둘러 작은 새가 있던 나무 근처로 뛰어갔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간간이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에 의존하며 살펴보았지만, 새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차도까지 둘러봤지만, 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일 일하러 가기 전에 와보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언제나처럼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왜 늦었냐고 물으시며 늦은 저녁을 차려 주셨다. 새벽 일찍 출근하시는 아빠도 그때까지 깨어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함께 있어 주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혹시 필요할지 몰라 알코올과 거즈와 수건을 챙겼다. 상수리나무 윗가지와 아래에 시선이 닿는 곳은 다 찾아보고 주변에 있는 쓰레기통까지 훑어보고 뒤졌지만 작은 새는 보이지 않았다. 변을 당했으면 깃털이나 핏자국이라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살았구나! 어미 새가 와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는지, 아니면 좋은 사마리아인이 치료해 주려 데려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작은 새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일터로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주 5일을 일하고 학교에서 세 과목을 들으며 치열하게 살던 나의 십 대였다. 그나마 다니던 식당에서 일시적 해고를 당할 처지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고용 기간이 제한된 직업이었지만, 막막했다. 다행히 실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 친구의 도움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티켓 카운터 일이었다. 규모가 작은 에어라인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것에 비해 대우가 좋았고 월급도 많았다. 퇴근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식당에 비해 에어라인은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강의 시간을 정하기가 수월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지만, 서서히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친구들이 있는 곳에 돈 벌러 가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작은 새의 고난을 통해 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새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있지는 않았지만, 어미 새를 찾는 절박한 눈빛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이 낯선 나라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나날의 연속만은 아니었다. 서서히 우리 가족은 새로운 도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어느 사이에 유학생 친구들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오곤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 이곳은 낯선 땅이 아니라 전에 봤던 달콤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 갔다. 그 후 거의 사십 년이 흘렀다. 영어가 점차 편해지면서 미국에서의 삶도 안정이 되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거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는데 어떤 생명이 눈에 띄었다. 어미 새 옆에 새끼 비둘기 한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가. 어머, 어머. 그 새다!
《재미수필》, 《퓨전 수필》 편집인.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이다. 《그린에세이》로 등단(2021)했으며, 《재미수필》 신인상(2013)을 수상했다. 저서로 『이런 날도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