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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목마를 탄 아이, 거리의 왈츠

서미라

목마를 탄 아이

말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타닥타닥 발걸음은 불구덩이 속에 타는 지푸라기처럼 들려오고 거대한 보호막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장난감이 가득했던 거리에는 사이렌이 울리고 꺌꺌거리던 아이들은 소리 없이 말하는 법을 익힌다

폐허 속에서 찾아낸 가족사진 몇 장과 모퉁이가 타버린 지폐
배낭 하나를 어깨에 멘 소년은 국경을 넘는다

독일 저녁 뉴스에서는 이웃 나라 전쟁 소식을 전하고 있다 검은 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 몸을 피신했던 노인과 아이를 안은 여자가 해를 보러 나온다 군복을 입은 젊은이가 무너진 교회 앞에서 결혼하며 승리를 표시하고 빈 놀이터에서 목마를 탄 아이가 발을 구르며 달린다

슬픔을 묻은 강물은 때때로 발작을 일으켰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 여름, 흩어진 검정 고무신 위로 시인의 고향 하늘은 붉었고 부서진 별들이 산골짜기를 에워싸며 지켰다

기도하는 들꽃잎 두 손 가득 담아 하늘에 던진다

“여긴 평온해. 아무 이상이 없어”
서울에는 곧 해가 뜰 시간이다

거리의 왈츠

창 너머 바라보는 레이스 달린 금발 드레스는 우아해요 해를 조인 코르셋은 창백하게 부풀어 오르고요 둥근 앞치마는 고기의 핏물과 빵 부스러기를 바람에 털어내요 건들건들 제멋대로인 멜빵 가죽 반바지는 미운 나이 깃털 달린 모자 아래 두 눈꼬리 가늘게 치켜올리며 입안 가득 초콜릿을 물고요 조롱을 달고요

숨죽이며 피아노 건반 위로 연두 잎은 조용히 짙어가고 이웃 담장을 넘어선 앵두나무는 해맑아요 어느 날 예고 없이 천둥과 번개를 몰고 온 날카로운 소나기의 외침으로 가지가 부러지고 열매가 우두둑 떨어진 후 굳은 표정은 한여름 햇살에도 풀어지지 않았어요

서늘하고 쓸쓸한 쉴러 거리에 마을 축제가 열리고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거리로 나와요 쿵 짝짝 쿵 짝짝 가지마다 자라목을 세우고요 돌고 돌아요 돌고 돌아요 발처 발스 발체르 왈츠

쇼팽의 화려한 대왈츠곡이 흐르는 오후

필자 약력
프로필_서미라.jpg

가정방문 간호사.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일보》 신춘문예,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유럽한인문학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수직과 수평 사이에 꽃이 피었다』를 펴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