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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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현장을 찾아서: 우슈토베

김환기

2022년 한여름 인천공항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문화를 연구해 온 필자에게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 현장인 구소련권(역사·문화의 메카)의 카자흐스탄(우슈토베, 알마티, 크즐오르다) 현지 조사는 간과할 수 없었다. 필자는 홍웅호 교수(동국대), 윤상원 교수(전북대)와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이들의 오랜 학문적 도반인 카자흐스탄 외국어대학 한 넬리 교수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일행은 호텔에 도착해 곧바로 일주일간 진행될 조사 일정을 공유했다.


◆ 1937년 강제이주와 우슈토베

   이튿날 아침 8시, 일행은 7인용 밴을 타고 4시간을 달려 우슈토베(Ushtobe)에 도착했다. 우슈토베는 1938년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처음 열차에서 내린 곳이다. 고려인들은 우슈토베 역에서 4킬로미터쯤 떨어진 바스토베(Bastobe)산 기슭에서 개척민의 삶을 시작했다. 지평선이 광활한 스텝(steppe) 지역, 사람이 정착하기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인 우슈토베에서 고려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토굴집을 짓고, 강물을 끌어들여 벼농사를 지었다. 고려인들은 황량한 스텝 지역을 농경지로 개척하며 특유의 근면함과 생명력으로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몸서리나는 강제이주의 서러움을 딛고 마침내 일구어낸 거대한 농경지를 지켜보는 이방인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우슈토베의 바스토베산 기슭에는 ‘한·카 우호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 우슈토베 고려인 정착지 기념비                                           ▲ 우슈토베 고려인 정착 기념비

   1937년 초기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해 정착한 흔적을 보존하고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소련 시절 목숨 바쳐 투쟁한 항일독립운동가 이름을 새겨, 역사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정비해 놓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강제이주 초기의 고려인들 토굴집은 덮개도 없이 비바람에 노출돼 있어 마음까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거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기라도 하듯 패어나간 흙무덤과 쓰러진 철재 비석의 공동묘지에 잠든 고려인들은 사막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별빛 쏟아지는 산기슭에서 자신들이 힘겹게 일군 농경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한·카 우호기념비                     ▲ 우슈토베 고려인 공동묘지                ▲ 고려인이 일군 우슈토베 농경지


필자 약력
김환기 작가 프로필 사진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과대학장과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디아스포라 웹진 편집기획위원회에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다이쇼 대학 대학원 석·박사를 졸업했다. 대표 저서로는 『시가 나오야』,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 『브라질 코리언 문학 선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암야행로』, 『일본 메이지 문학사』, 『화산도』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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