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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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끊어진 압록강 다리 앞에 서다

구본환

   내 앞에는 지금 북한의 위화도가 있다. 위화도!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 야망이 실행된 곳. 이성계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회군하여 개경을 점령, 실권을 쥐고 난 후 조선 왕조를 개창하였다. 이성계보다 조금 더 북쪽에 와 있는 나는 더 이상 남쪽으로 갈 수는 없고 - 이 위치에서 월남(越南)은 곧 월북(越北)이다 - 코로나 격리로 인해 집 밖을 나설 수도 없다.



▲ 강 건너 위화도가 보인다.

   중국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이 조금 완화된 시점에서 입국 후 선양에서 일주일 동안 격리 기간을 보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격리 장소인 호텔로 이동, 로비에서 체류비를 정산하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하얀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이 5층 버튼을 눌러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Good Luck.’ 순간 오징어 게임이 연상되었지만, 차이가 있다면 현실에서는 다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탑승객 중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 의심 환자로 판명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전부 또 다른 집중 격리 장소로 이동해야 하니까.



▲ 코로나로 인한 단동 시내 봉쇄로 외부에서 오는 차량을 차단하기 위해 도로에 흙을 쌓았다.

   삼 년차의 코로나 시국은 사람들에게 많은 일을 겪게 했다. 나 역시 작년 10월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심각해진 중국의 코로나 재유행으로 발이 묶여버렸다. 그 와중에 올해 4월에 들어서는 단둥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많아져 무려 두 달간의 도시 봉쇄 상황이 벌어졌다. 봉쇄 직후 ‘길어야 보름 정도겠지’ 하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이곳 주민들은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조차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레 수업이 중단되면서 학생 이천 명이 격리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도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방향성을 잃은 느낌이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이제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평범함은 깨지고 낯선 상황과 불규칙한 변화들은 아직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TV에서는 한중 수교 30주년의 작은 기념 행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 중공이 아니었나? 그럼 자유 중국은 어디로 간 것이지?



▲ 단동 기차역의 전광판에는 시발역과 종착역이 ‘평양’임을 자주 볼 수 있다.

   며칠 전 단둥역에서 출발한 화물차가 압록강 다리를 건너 신의주역에 도착했다. 끊겼던 북·중 간의 교역이 지속될 수 있을까? 아마 단둥 해관 앞의 북한 상점과 상인들은 모두 사라진 황량한 분위기일 텐데……. 중국 한족, 만주족, 조선족, 북한 사람들, 한국 사람들,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말을 아주 잘하는 북에서 온 화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단둥에서 사흘간의 격리가 끝난 날, 아내는 차를 몰고 아이들과 마중을 나왔다. 10월 1일 중국 국경절 연휴의 시작일. 대련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출국한 지 정확하게 일 년이었다. 필연적 우연일까?



▲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며 시작된다. 그 배경인 구련성지.

   운전대를 잡은 나는 왼편으로 압록강을 끼고 시내로 접어들었다. 두 개의 검은 압록강 철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류 쪽 압록강 단교.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끊어진 다리와 흐르는 압록강을 바라보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건너고 윤봉길 의사가 지나간 그 다리, 약산 김원봉, 박헌영, 신여성 나혜석,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지난 그 다리, 시라소니가 건너고 해방을 단둥에서 맞이한 문인 염상섭과 백석이 바라보던 그 철교, 전쟁 때 중국인민지원군이 건너고 미군의 폭격에 의해 끊어진 이 단교(斷橋)에 서기까지 범인(凡人)인 나는 도대체 얼마나 돌아온 것일까? 압록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르지만 내가 지금 강을 건너지 못하는 까닭은 압록강 다리가 끊어졌다는 그 까닭만은 아닐 것이다. 하늘길보다 먼 이 1킬로미터 거리의 이 강을 나는 언제 건너갈 수 있을까?



▲ 나는 언제쯤 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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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환, 요동대학교 조선어학과 한국어 강사로 재직 중이다.
2008년부터 중국 요녕성 단둥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2020~2021년 계간지 『제주작가』에 단둥을 소개하는 「단동통신」을 연재한 바가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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