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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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아프로폴리타니즘과 이주 그리고 ‘오래된 미래’

이석호

1. 들어가는 글

   2023년 2월 21일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서 튀니지로 불법 입국하는 것은 튀니지의 인구 구성을 바꾸어 아랍-이슬람 국가와 무관한 순수 아프리카 국가로 만들려는 음모이며, 이를 차단하기 위한 즉각적인 비상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언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아프리카연합(AU)은 인종차별적인 혐오발언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아프리카연합은 공식 성명을 통해 튀니지 대통령의 발언이 아프리카연합이 세운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하고, 국제법 및 아프리카연합의 내부 규정이 요구하는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모든 이주민을 존엄하게 대우해야 하고 인종차별적 증오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1)

   유럽 이주를 목적으로 하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은 리비아나 튀니지를 기항지 삼아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 본토로 진입하는데, 리비아가 단속을 강화함에 따라 튀니지를 거쳐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으로 이동하는 노선을 선호하게 되었다. 튀니지 대통령의 계산된 이 발언의 저의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 진행된 총선에서 드러난 낮은 투표율과 경제난 속 민심을 잡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이탈리아와 맺은 불법 이주민 단속법이 중요한 한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2. ‘이주’의 세 가지 유형

   필자는 이 지점에서 원론적 차원에서 제기할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의 ‘이주’ 관련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근현대의 이주사에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관계 및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유형의 ‘이주’ 개념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위의 사례에서 드러난 튀니지와 이탈리아의 이주민 단속법의 배경도 ‘어떤’ 이주를 적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동시대의 이주와 관련해 보통의 지구촌 인민들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드러내는 ‘오만과 편견’의 내용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세 가지 유형의 이주 중 제일 먼저 ‘망명(exile)’을 들 수 있다. 이주 형식으로서 ‘망명’의 특징은 비자발성이 압도적이기는 하나 ‘자발성’이 일말의 역할을 하는 이주의 유형이다. ‘망명’의 역사적 기원은 유구하나 근현대의 이주사에서 ‘망명’이 주로 활용된 방식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차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주의 두 번째 유형으로는 ‘난민(refugee)’을 들 수 있다. 이주 형식으로서 ‘난민’의 특징은 ‘비자발성’이 일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과 공동체에 어떤 불만과 갈등도 없는데, ‘난민’이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난민’은 그 내용의 스펙트럼이 ‘망명’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유형으로 그 안에는 기후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피한 이주도 포함한다.
   이주의 세 번째 유형으로는 ‘이산(diaspora)’이 있다. 이산은 그 개념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유대인의 이산이 대표적이지만, 근대에 출현한 국민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농익기 이전에 지구촌 전체에서 가장 전 방위적으로 일어나던 이주의 전형적인 형식이었다. 가령, “오늘날의 수단과 에티오피아에 해당되는 고대 누비아와 메로에인들이 상 나일에서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 나일 삼각주 지대에서 이집트 문명을 일군 이주의 역사와 팔레스타인의 티레(Tyre)와 시돈(Sidon)을 주거지로 하던 역시 고대의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오늘날의 튀니지로 내려온 역사 그리고 이슬람과의 대결을 피해 아라비아의 예멘에서 아프리카로 넘어온 중세 때의 무어인들도 ‘이산’의 역사를 구성하는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2)
   ‘이주(migration)’는 통상 이 세 가지 유형의 ‘이동’을 통합한 개념이다. 모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세 가지 유형의 이동 중 ‘어떤’ 이동을 주목하느냐에 따라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의 이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 수 있다. 필자는 이 세 가지 유형의 이동 중 구미의 언론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악마적으로 재현하는 ‘이주’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구미의 언론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유형의 이주를 무분별하게 섞어 사용하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아프리카인의 이주를 어떤 경우에는 인도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에 입각해 껴안아야 할 필요악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무조건적 배척의 대상으로 원칙 없이 조감한다. 이렇게 조감된 아프리카인의 이주는 두 가지 오해와 왜곡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아프리카가 그 인민을 가장 많이 ‘밖으로 내보내는(e-migrate)’ 대륙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가 그만큼 “살기 힘든” 대륙임을 직간접적으로 증언한다. 다른 하나는 역으로 아프리카가 외부의 인민을 가장 조금 ‘내부로 받아들이는(im-migrate)’ 곳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아프리카를 “경멸과 나병의 여왕/채찍과 종기의 여왕/비늘과 반점의 여왕”일 뿐만 아니라 “노예선의 토사물”과 “자시가 끝나 갈 즈음에, 사라진 연못들/길 잃은 냄새들, 방황하는 태풍들, 돛 내린 배들/낯익은 상처들/부패한 뼈들, 부표들, 사슬에 묶인 화산들/뿌리를 잘못 내린 죽음들/날카로운 울음들”3)과 같은 부정적으로 재현되는 은유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으로 부각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이주와 관련해 구미의 언론이 재현하는 이미지와 달리, 아프리카는 ‘밖으로의 이주(e-migration)’는 극히 드문 반면에 ‘안으로의 이주(im-migration)’는 매우 빈번히 일어나는 대륙이다. 다시 말해, 이런저런 이유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이주민 중 절반 이상은 구미 선진국을 찾아 대륙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륙 안에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아프리카 전략연구소’는 “아프리카 출신 강제 이주자의 95%가 아프리카 대륙 내에 남아 있고, 전체의 절반 이상은 출신국 내에서 강제로 이주하게 된 국내 실향민이란 점에 주목하여 아프리카 위기의 본질”을 “실향민 위기”로 보며, “유럽으로의 이주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강제 이주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분석한다. 4)
   기실 ‘실향민’에 준하는 아프리카 인민들을 가장 많이 수용하는 나라는 구미의 그 어느 곳도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 내에 있는 우간다이다. 우간다는 중동의 튀르키예와 남미의 콜롬비아 그리고 서아시아의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이주민을 많이 수용하는 나라이다. 차제에 다시 논의하겠지만, 우간다가 이토록 많은 이주민을 수용하게 된 이유는 ‘난민’과 ‘망명자’ 및 ‘이산자’를 포함해 넓은 의미의 ‘이주자’를 바라보는 그들만의 색다른 시각에서 기인한다. 먼저, 우간다인들이 바라보는 전통적인 의미의 ‘난민’ 관념을 보자.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열린 ‘난민을 위한 우간다 연대 정상회의’에서 우간다 대통령인 요웨리 무세비니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 대호수 지역의 토착민들은 난민과 수천 년간 함께 해왔습니다. 우리에게 난민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쓰이는 고정된 정의와 달리 역동적이었습니다. 나쁜 지배자가 있을 때, 공동체의 일부는 그 지배자에게 등을 돌리고 새로운 지배자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지역의 시민이 됩니다. 때때로 일어나는 내전이나 계승 전쟁에서 패배한 편은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다른 왕국으로 도피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왕국 중 하나인 부간다에서는 1797년 두 왕자가 계승 전쟁을 벌였죠. 이 전쟁에서 진 분파는 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흩어져 새로운 곳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중략) 시민들은 때론 출신 지역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안콜레 왕국의 위대한 지휘관이었던 바크와 왕자는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뒤 르완다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그곳의 왕은 그를 의심하여 사형했지만, 그의 아들 비크왓시는 살려 두었습니다. 이후 비크왓시는 다시 안콜레로 돌아왔고, 안콜레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런 난민들은 수피 제작이나 의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돌아오곤 합니다. 이것이 식민 지배 이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난민 관리 개념이었습니다.5)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를 ‘환대’의 대상으로 보아 그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가꾸어 가는 지혜를 실천한 우간다인의 의지는 이주자를 대하는 가장 건설적인 ‘오래된 미래’임에 틀림없다. 사실 우간다의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 수용사는 유럽인을 받으며 시작된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우간다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발생한 유럽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약 5천여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전쟁 포로와 인민들은 시베리아를 탈출하여 서아시아를 거쳐 동아프리카로 달려온 7천여 명의 폴란드 난민들과 더불어 우간다의 난민촌에 머물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자국으로 혹은 제3국으로 이주했다. ‘난민’과 ‘이주민’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아프리카인을 포함해 서아시아인과 라틴아메리카인, 즉 지구촌 남반구인을 떠올리고, 이들의 ‘정착촌’ 하면 자동적으로 구미를 연상하는 작금의 세태에 견주어 가히 역설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구미는 근대의 발명품인 ‘국경’과 ‘민족주의’의 틀에 갇힌 채 낭만적 ‘인도주의’나 온정주의적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각으로 ‘난민’을 포함한 외부의 이주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로 이들을 잠재적 동반자나 순수한 의미의 동료로 바라보지 못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팔아넘길 일종의 ‘잉여물’로 간주했다. 구미인들은 난민 한 명당 그 난민을 수용할 의사를 밝힌 국가에 400불을 지불하고 ‘현대판 노예 상품’을 공급했다. ‘난민 팔이’라는 새로운 거래는 그렇게 출현했다.
   영국이 르완다 정부와 맺은 ‘르완다와의 이주 및 경제개발 동반자 협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영국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진 이주자들은 영국이 아닌 르완다에 가서 이민 심사를 받고 그곳에 머물러야만 한다. 영국 정부는 그에 필요한 비용과 지원금을 르완다 정부에 제공한다. 이것이 이 협약의 골자이다. 양국은 이 협약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정리해 발표했다. 하나는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비합법적 이주자를 들여오는 범죄 조직의 사업 모델을 흔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으로 경제적 이주의 원인이 되는 불균형한 경제적 기회 문제를 직접 다룬다”6)는 것이다. 이 협약은 발표 직후 해당 국가의 내외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이와 유사한 유형의 변칙적 협약들은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발효 중이다.
   아프리카인의 왜곡된 이주 이미지가 빚어내는 또 하나의 촌극은 이들의 집단 이주로 인해 유럽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피해자 코스프레이다. 그러나 “유럽의 난민 위기는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난민 위기가 극에 달해 이들 국가가 더이상 난민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대표적이다. 내전이 발발한 초기에 시리아 난민들은 주로 요르단과 튀르키예 그리고 레바논 등지에서 피난처를 모색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난민 수용 능력이 극에 달한 2014년 무렵에야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세계 언론은 난민 위기를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7) 난민과 망명자 및 이산자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이주자를 수용하는 과제를 두고 지구촌 남반구가 구미에 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 사태를 해결하려 하는지 제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아프리카는 ‘실낙원’일까 ‘복낙원’일까

   2011년에 필자는 한국교육방송에서 진행하는 〈세계테마기행〉 모리셔스 편의 촬영을 위해 인도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주하는 인구가 거의 없어 무인도에 가까운 ‘로드리게스’라는 섬의 초입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만났다. “낙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묘한 여운을 주는 문구였다. ‘이주’와 관련한 주제로 글을 쓰면서 필자는 문득 이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아프리카는 ‘실낙원’일까 ‘복낙원’일까?
   ‘(실/복)낙원’과 ‘이주’를 연결고리로 삼아 아프리카를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한 문학 작품은 여럿 있다. 아프리카를 소위 ‘열대의 느긋함과 게으름’의 대륙으로 상정한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아프리카인을 자의식은 없으나 ‘말귀를 알아듣는 동물’의 수준으로 묘사한 조이스 캐리의 『미스터 존슨』, 그리고 아프리카를 고상하고 고매한 인성의 소유자인 유럽인을 ‘타락과 일탈’로 이끄는 곳으로 재현한 아이작 디네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외부자가 아프리카를 관찰자 시점에서 ‘실낙원’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한편, 아프리카를 비롯한 적도 이남, 즉 지구적 남반구를 통째로 내부인의 관점에서 ‘실낙원’으로 기술한 작품이 있다. 수단 출신의 타예프 살리흐가 1966년에 아랍어로 먼저 발표하고 3년 후인 1969년에 영어로 번역, 출판한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이 그것이다. 다마스쿠스에 소재한 아랍학술원이 2001년 아랍권에서 생산된 작품 중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뽑아 세간에 크게 회자되었던 이 작품에서 저자는 ‘상상의 지리’에 착근해 아프리카와 유럽을 이분법적으로 단호하게 구분한다.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적도 이북의 북반구는 아담과 이브가 사는 에덴동산의 낙원으로, 그리고 그 반대편에 위치한 아프리카를 포함한 지구적 남반구는 뱀과 사탄이 사는 실낙원으로 그린 것이다.
   이 소설은 아프리카 이주민의 신분으로 어릴 때 런던으로 건너가 저명한 경제학자가 된 무스타파라는 이름의 한 인물이 어떻게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으로 추락하게 되는지를 묘파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백인 여성들을 마음껏 유린하다가 두 사람은 자살로 내몰고, 한 사람은 파멸에 이르게 하며, 자기 스스로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비극적 파토스는 ‘남’과 ‘북’을 바라보는 시선의 편차에서 기인하는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유산인 ‘상상의 지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를 신경증적으로 유발시켜 자기 파괴를 정당화한 ‘의사-마조히즘’의 부정적 산물이다. 첼시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만난 후 무작정 3년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 진 모리스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자.

   이 여인, 그녀가 바로 내 운명이고 파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게 겨자씨만 한 가치도 없다. 나는 남쪽에서 온 침략자였고, 여기는 바로 내가 결코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얼음의 전쟁터였다. 나는 그 해적선의 선원이고, 진 모리스, 그녀는 파멸의 해안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공원에서 그녀를 취했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 황홀한 순간은 내게 전 생애와 같았다.8)

   위의 인용문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 즉 아프리카를 “침략자”와 “해적선의 선원”을 배출한 야만의 공간으로 재현한다. 한편, 그가 ‘의사-마조히즘’에 의해 파괴의 대상으로 점지한 진 모리스는 역으로 그를 “파멸의 해안”으로 이끌어 궁극에는 구원을 선사할 “황홀”경의 주인공으로 섬망한다. 그가 진 모리스를 비롯해 여러 백인 여자들과 인격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남’과 ‘북’이 방위적으로 환기하는 ‘(실/복)낙원’에 대한 기계적 추수 때문이다. 그는 ‘북’이 ‘남’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역으로 이용해 숱한 백인 여인들을 “치명적인 거짓”이 창궐하는 자기 집으로 유인한 후에 그들을 ‘남’의 이국적 분위기를 숭배하는 노예로 만든다.

   백단향, 향목, 타조의 부드러운 깃털, 상아와 흑단으로 만든 조상들, 나일강가를 따라 우거진 대추야자 숲, 비둘기의 날갯짓처럼 물 위를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가는 작은 배들, 홍해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맥 너머로 스러지는 낙조, 예멘 국경선의 모래 언덕을 따라 걷는 낙타들의 대상 행렬, 코르도판의 나무들, 잔디, 누에르, 쉴크 부족의 벌거벗은 소녀들, 적도 근방의 바나나와 커피 농장, 누에바 지역의 오래된 사원들, 화려한 고대 아랍 문양을 장식한 회화 장정을 씌운 아랍 서적들, 페르시아 융단과 장밋빛 커든,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들과 구석에서 빛나는 색색의 조명등을 그린 그림과 스케치들.9)

   이렇게 ‘남’의 이국적인 파편들이 “치명적인 거짓”을 신화로 뒤바꾸는 ‘그의 집’인 사이비 낙원에서 백인 여자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추며 “무스타파 사이드, 당신은 내 주인이에요. 저는 당신의 노예 사우산입니다”10)라고 자복한다. ‘남’과 ‘북’의 위계를 이렇듯 병적인 방식으로 물구나무 세워 새롭게 도출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건강한 변증법을 창출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한편,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과 반대로 ‘남’과 ‘북’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환기하는 상상의 지리를 전복한 작품이 출현한다. ‘낙원’을 찾는 아프리카 이주자들이 향해야 할 방위를 적도 이북이 아니라 적도 이남으로 상정한 『남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이 그것이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작품은 타예프 살리흐의 소설인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에서 ‘북’이라는 방위를 ‘남’으로 바꾸어 적도 이남의 아프리카를 실낙원이 아닌 ‘(복)낙원’으로 새롭게 조감한 도전적인 저작이다.
   이 저작의 저자인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콜레 오모토소는 실낙원에서 ‘(복)낙원’으로 거듭난 한 아프리카 국가를 구체적으로 거명하는데, 만델라 이후의 남아공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남아공 역사상 처음으로 흑과 백 모두가 참여하는 합법적인 선거를 거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가 이끄는 남아공이 한편으로는 “물리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인” 차원에서 아프리카를 ‘복낙원’으로 인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나이지리아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절대 “달아나지”11) 않을 것이라고 언론과 학회 동료들 앞에서 했던 맹세를 깨고 ‘남’(남아공)으로 “이주”하는 두 가지 이유를 3인칭 시점을 빌려 이렇게 발언한다. 먼저, 물리적인 이유로는 “사회계약론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의 말에 따라 모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작가라면 고국보다는 타국에 머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믿어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주하고자 했으나 “(유럽과 미국이) 아프리카 출신의 이주자들을 반기지 않는 탓”에 “남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에 맞추어 남아공행을 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다음은 만델라 이후의 남아공을 이주의 목적지로 결정한 “지적인” 이유이다.

   서유럽과 미국이 그(저자)의 정신세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북’을 고려하지 않고 그가 다른 곳을 지적 여정의 목적지로 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인이 경험한 유럽과 유럽적인 어떤 것이 유럽과 유럽적인 어떤 것을 바꾸는 데 일말의 공헌을 한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도무지 갖추고 있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이 고리타분한 그 편견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한, 아프리카의 지식인은 어쩔 수 없이 이 입장을 다시 발언할 필요가 있다.12)

   저자는 “유럽과 유럽적인 어떤 것을 바꾸는 데 일말의 공헌을 한” 아프리카인의 입장을 반드시 피력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이를 “지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북’을 버리는 대신에 ‘남’과 ‘북’이 맺을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남아공’을 이주의 목적지로 삼는다. 그러나 문제는 저자가 재구축한 ‘남’이 ‘(복)낙원’에 걸맞은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저자 자신의 막강한 신념과 일말의 맹신에 기대고 있는 만큼 저자의 호소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남아공을 제외한 다른 아프리카 ‘남’쪽 국가들의 경우, “막강한 신념과 일말의 맹신”을 동원해도 의미 있는 포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곳도 몇몇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를 트로츠키가 제출한 ‘연속혁명’이라는 개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55개국에 이르는 아프리카 사회 전체가 최소한 남아공 수준의 물적 토대를 갖추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이상,13)작금의 서구가 아프리카를 ‘(복)낙원’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4. 이중 의식과 이중 부정이 낳은 진부한 변증법: 압둘라작 구르나가 보는 ‘이주’

   2021년에 스웨덴의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아프리카 작가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의 이름은 압둘라작 구르나였다. 1986년에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가 같은 상을 수상한 이후로 아프리카 작가로는 네 번째 수상이었다. 그는 1948년에 탄자니아의 부속 도서 중의 하나인 잔지바르 술탄국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에서 혁명이 일어난 1964년에 그는 16살의 나이로 영국으로 망명하여 이후 줄곧 그곳에서 살면서 인종 간 그리고 문명 간 갈등을 소재로 한 일명 ‘자전적 이산자 문학’을 전개해 나간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그의 문학을 “식민주의 효과와 각 문화 간 그리고 대륙 간 심연에 빠져 헤매고 있는 난민의 운명을 비타협적이고 동정적으로 간파”하고 있다는 소감을 들어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프리카-인도양을 배경 혹은 무의식으로 거느린 압둘라작 구르나 소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선보인다. 아프리카-인도양을 전통적인 이주자의 시선에서 구출하는 것이다.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을 쓴 수단 작가 타예프 살리흐 이후로 아프리카 본토는 절망의 땅으로 그리고 유럽 본토는 낙원으로 그리는 아프리카 이주자의 글쓰기 문법이 일정 기간 전형화된다. 이 구도를 전복하기 위해 만델라 이후의 아프리카를 낙원으로 그리고 북쪽의 유럽을 실낙원으로 묘사하는 새로운 유형의 이주자 서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압둘라작 구르나는 인종적으로는 아랍계, 지역적으로는 아프리카,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무슬림이라는 복잡한 그의 실존적 정체성에 기대어 위의 두 가지 전통적 이주 서사를 모두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보인다. 그는 아프리카-인도양 이북의 구미와 적도 이남의 아프리카를 모두 공히 일말의 낙원적 가치를 상실한 공간으로 바라보면서 비판적 심문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문제는 이와 같은 그의 이중 부정이 삼중으로 분열된 그의 정체성에서 기인한다는 데 있다. 뒤 부아(W.E.B. Du Bois)가 개념화한 소위 “이중 의식”14)에 기대어 ‘이주’를 바라본 그는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모든 유형의 ‘이동’을 목적지를 상실한 일종의 ‘방황’으로 전치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낙원’은, 그것이 어디에 있건, 일종의 ‘효과’ 혹은 ‘외상’으로만 남게 되고 그 실체는 사라져 버린다. 다시 말해, 타예프 살리흐가 선택한 ‘북’도 혹은 콜레 오모토소가 목적의식적으로 지향한 ‘남’도 모두 이데올로기적 ‘망상 효과’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 경우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주’하기에 좋은 ‘때/계절’을 놓쳐 정처 없이 망향의 하늘을 떠도는 ‘철새’뿐이다. 그런 철새의 눈으로 본 ‘슈츠트루페’15)는 혁명을 한답시고 폭동과 살육을 일삼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멋지게 진압하는 영웅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후의 삶』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일리아스가 동아프리카의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해 현지에 진출한 독일 행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런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독일민주공화국은 대단히 적극적인 식민지 정책을 썼고, 소비에트의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폭력적 해방운동에 피난처와 훈련 무기를 제공했다. 독일민주공화국은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는 나라들의 옹호자를 자처했고, 독일연방공화국의 장학금은 국제연합 같은 포럼에서 독일민주공화국 장학금에 뒤지지 않고 가난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주는 선물이었다. 일리아스는 면접을 보고 평가를 거쳐 기쁘게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16)

5. 나가는 글: 아프로폴리타니즘과 이주 그리고 ‘오래된 미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구가 전개한 낭만적 인도주의와 온정주의적 코스모폴리타니즘은 ‘난민 팔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린 국경’이라는 관념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유형의 이주자 철학 및 그에 기반한 대책이 필요하다. 카메룬의 철학자인 아키에 음벰베는 이를 ‘아프로폴리타니즘’이라 호명하는데,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아프리카의 우간다가 이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전형적인 지역이다. 우간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난민촌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난민 정착촌으로 DR콩고와 부룬디, 소말리아, 그리고 르완다 등지의 난민들이 모여 사는 ‘나키발레’라는 곳이다. 다른 한 곳은 ‘비리비리’라는 곳으로 약 28만 명의 난민이 위에서 언급한 ‘열린 국경’과 ‘마을 정착’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가며 ‘소도시’를 이루고 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정착촌이다.
   우간다 시민들이 이러한 정착촌을 정서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난민과 망명자 및 이산자 등 이주자 일반을 아프로폴리타니즘의 관점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해 “문”17)을 항상 열어 두는 일이 옳다고 믿는 신념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7 대 3 원칙이라 부르는 정책 때문이다. 7 대 3 원칙은 이주민을 받아들인 지역 공동체에는 3할의 정책 지원금을 지불하고 이주민에게는 7할의 정착 지원금을 제공하여 양자가 상생하도록 돕는 상호 호혜의 정책이다.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주자 일반을 소위 사용가치를 상실한 ‘호모 사케르’로 보는 구미와 동일한 대상을 낮은 출산율 및 노동 기피 직업군을 대체할 예비군 그리고 결혼 적령기를 넘긴 농촌 총각의 ‘인위적 짝짓기 상대’로 보는 작금의 한국이 공히 귀감으로 삼아야 할 ‘오래된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각주

1) 《아프리카 위클리》, 2023년 16호, 2023.4.21.

2) 강단 사학과 입장이 크게 달라 매우 논쟁적인 주장이기는 하나, 세네갈 출신의 역사학자인 셰이크 안타 디웁이 『아프리카와 문명의 기원(The African Origin of Civilization)』이라는 책에서 아프리카의 문명사를 이주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전형적인 관점이 바로 이 내용이다.

3) 에메 세제르, 이석호 옮김, 『귀향 수첩』, 그린비, 2011, 80쪽.

4) 우승훈, 『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 힐데와소피, 2022, 44쪽에서 재인용.

5) 같은 책, 51쪽.

6) 같은 책, 71쪽.

7) 같은 책, 45-46쪽.

8) 타예브 살리흐, 이상숙 옮김,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 아시아, 2014, 167쪽.

9) 같은 책, 152-153쪽.

10) 같은 책, 190쪽.

11) Kole Omotoso, Season of Migration to the South, Cape Town: Tafelberg, 1994. 나이지리아 언론은 그의 남아공 이주를 두고 “망명을 빌미로 달아났다”고 명명한 바 있다.

12) 같은 책, 8쪽.

13) 문제는 이 연속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55개국에 이르는 개별 국가의 연합으로 구성된 아프리카를 의도적으로 하나로 통합해 보는 일에 익숙한 서구가 아프리카 어느 곳에선가 벌어지는 분열과 갈등―가령,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단의 내전과 카빌라 가문이 통치하던 시기의 DR콩고의 내분 그리고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 및 식민주의 청산을 둘러싸고 짐바브웨에서 벌어진 무가베 시절의 흑백 갈등 등―을 항구적인 것으로 조작하여 아프리카를 영원한 “야만의 땅”으로 “발명”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14)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계-미국인의 분열된 정체성을 일컫는 개념으로 겉은 흑인이나 속은 백인이 되고를 소망하는 무의식을 지칭한다. 이는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반영하는데, 그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신경증’이 발발한다.

15) 동아프리카 독일 식민지에 주둔하던 일종의 외인부대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일으킨 해방운동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이 부대의 구성원 중에는 자원입대한 원주민들도 많았다. 구르나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이 부대에 입대해 아프리카인의 해방투쟁을 진압하는 일을 한다.

16) 압둘라작 구르나, 강동혁 옮김, 『그후의 삶』, 문학동네, 2022, 407-408쪽.

17) 우승훈, 앞의 책. 54쪽.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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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호. (사)아프리카문화연구소장이자 아시아-아프리카 예술가연맹(A-AAA)의 공동의장으로 있으며.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론과 근대성』이 있고, 『조작된 아프리카』 외 약 삼십여 권을 번역했다. JTBC에서 진행하는 〈차이나는 클라스〉와 EBS에서 진행하는 〈세계테마기행〉 에티오피아 편과 모리셔스 편에 출연했다. 국제게릴라극단 상임연출로도 일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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