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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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버클리문학과 디아스포라

김완하

1. 버클리 문학의 성과

   미주 한인의 이민 역사는 120년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21세기의 세계는 이미 글로벌 시대로 편입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디아스포라의 논의도 이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2009년 여름부터 1년간, 그리고 2016년 봄부터 1년간 두 번에 걸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연구 주제는 미주 지역 한인들의 문학에 나타나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곳에 가기 전 버클리 지역에 사는 한인들의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그들은 대략 30년 이상의 해외 생활로 본국과 격리되어 살아오면서 그동안 펼쳐 온 문학에 어떠한 특색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들의 정서에 깊이 자리할 것으로 여겨지는 디아스포라 의식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과 달리 그들의 문학에 디아스포라는 그다지 큰 특징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필자는 UC 버클리의 주변 문인들이 버클리문학협회를 결성하도록 지원하고 2010년 2월부터 버클리 문학 강좌를 열었다.1) 그리고 필자가 연구년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송기한, 김홍진, 이은하 교수 등이 연구년을 이어가며 그 강좌를 이끌었다. 이어서 2013년 5월 《버클리 문학》을 창간2)했고, 그동안 격년제로 책을 발간해 오고 있다. 2016년 2월 필자는 두 번째 연구년에도 UC 버클리로 갔다. 그리고 전·후반기 버클리 문학 아카데미를 열었다. 문학 아카데미를 통해 버클리 문인들의 문학적 열정이 살아나고 모국어의 감각이 꽃피어남을 알았다. 드디어 4명의 시인이 시집을 냈다. 그중에 3명은 첫 시집이었다. 그들은 시를 쓴 지 30년 이상 되어 첫 시집을 내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필자가 2009년 8월 6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이후 13년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2023년 봄을 지나며 버클리 문학과 13년 이상의 문학적 연대를 지속해 오는 동안 그들의 문학에 내면화되어 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클리 문학에서 시적 성취로 이산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준 시인은 유봉희, 엔젤라 정, 윤영숙, 김복숙 등이다. 이들은 필자에게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한국 문학의 국제화를 향한 문학적 행보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버클리 문학을 통해 우리 문학도 태생적으로 국제화에 맞물려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2. 미국 문화 체험과 내면화

   문학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더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중에 해외 이민으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문학을 하는 것도 그 하나의 국면일 것이다. 모국을 떠나 미국에 살며 낯선 문화를 체험해 갈 때, 그것은 그들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깊이 밀착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환경을 깊은 해저를 운행하는 잠수함으로 비유할 때, 그들에게는 어두운 바닷속을 이동하기 위해 나침반과 항법일지가 필요했다. 바로 그 나침반과 항법일지가 문학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문학에서 낯선 미국 문화에 이질감을 느끼는 단계와 이를 지나 그것과 함께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이들의 디아스포라는 내면화된 의식 세계로 드러난다.

1) 낯선 문화의 인식

   유봉희 시인은 샌프란시스코 부근 월넛 크리크(Walnut Creek)에서 살아가며 버클리 문학에서 높은 시적 성과를 낳았다. 이미 네 권의 시집을 발간했으나 아쉽게도 2022년 9월에 세상을 떠났다.3) 최근에 그의 유고작을 모은 다섯 번째 시집이 간행 준비 중이며 추후에 전집 발간도 기획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미국 문화와의 간극을 인식하는 과정이 형상화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지금 바람 불겠다 너의 계곡에
잔가지 햇살 아침 안개 헤치며
너에게로 팔 뻗겠다
천 미터 해발 높이 바람 좋아하는 세바람꽃*

아득하고 아련한 것과의 대면, 너를 만나면
요즘 담담해서 미안하고
덤덤해서 죄스러운 날들에게
푸른 파도로 뛰는 가슴 보여줄 수 있겠다
한 뼘 그늘 마당에서 바장이는 내 시에게
바람 속 영근 네 향기가
정수리 한번 흔들어줄 수 있겠다

(중략)

너를 만나러
먼 여행 끝자리 다시 시작으로
한라산으로 가야지
백두산으로 가야지

* 빙하기부터 한라산과 백두산 고지에서 자생
―유봉희, 「보고 싶다 세바람꽃」 부분4)

   위 시에서는 아득하고 아련한 것들에 대한 의미를 짚어 볼 수 있다. 아득하고 아련한 것은 자연과 생명의 시원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순수성을 동반한다. 그것은 한반도의 ‘한라산’과 ‘백두산’을 그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시인의 모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바람’, ‘귀향’, ‘여행’ 등의 시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 한다. 이 시의 중심 이미지 ‘세바람꽃’은 “천 미터 해발 높이 바람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세속적인 가치보다 신성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위 시에서는 그러한 의미의 구체화가 펼쳐진다.

   유봉희 시인은 미국 문화를 체험하며 서로 다른 문화의 간극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아득하고 아련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출한다. 그러한 것은 다른 문화에 대한 접근 속에서도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모국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유봉희 시인은 그러한 가치를 내면에 깊이 간직하면서 미국 문화에 대한 낯설고 색다른 시간을 견디어 냈다. 시인은 낯선 문화에서 오는 긴장을 풀고 여유와 재치로 나아감으로써 스스로 극복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여유와 미국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그러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형상화한다.

그때 그 오라버니
겨우 한 모금 마신 위스키 병을
태평양에 통째로 쏟아붓던 그날

해 넘어가는 바다에 낚싯대를 던져 놓고
갯바위에 앉아 멀리 배 한 척 눈 흘기고 있을 때
갑자기 정복을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옆자리 위스키 병을 가리키더란다.
“벌금을 내겠어요, 아니면 바다에 쏟아붓겠어요”*

아까워서 어찌했을까 우리 육촌 오라버니
그래도 지나가던 물고기 한 마리
때맞추어 마신 위스키
우럭 한 마리, 묵직하게 낚싯대에 매어달리더란다

그 오라버니, 원투낚시 멀리 던지던 버릇으로
큰 바다 건너 여기까지 흘러왔을 터인데
지금도 우럭 한 마리의 무게로 두 발을 딛고 있을까

* 도수 높은 주류를 바닷가에서 마시는 것은 위법.

―유봉희, 「물고기가 마신 위스키」 부분

   위 시는 한국 문화로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단면을 제시한다.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곁에 두었던 위스키를 보고 경찰이 쏟아버리도록 종용하는 것은 한국 문화와는 크게 다르다. 술을 턱없이 좋아하던 육촌 오빠의 해프닝이 이 시의 중심 내용이다. 또한 그것은 이민의 삶으로 겪었을 색다른 문화적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 시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면의 심층적인 의미를 읽어 내야 한다. 그것은 시인이 겪어 온 이민 생활의 어려움 속의 숱한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 내용처럼 재미로 받아들이고 넘어갈 것도 많이 있다. 그러나 차마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고통과 슬픔과 눈물을 동반했을 여러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이제 그것 모두를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 안는다. 육촌 오빠가 문화적 차이로 경험했던 일을 통해 시인은 이민의 삶에서 웃지 못할 많은 일들을 너그럽게 품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시에 나타나는 동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아이러니와도 연관된다. 시인은 이민의 삶에서 오는 고단함과 어려움을 보듬는 기능으로 시적 아이러니를 활용한다.

꽃삽을 들고
세 살짜리 아기가
엄마 따라 뒷마당으로

어제 밤비로 촉촉한 텃밭에
상추 고추 심고
파프리카 오이 모종도 심는다

아기가 흙 묻은 꽃삽을 들고
‘엄마, 드럼스틱나무도 심자’
‘아’
목에 걸려 나오지 못하는 대답

드럼스틱과 치킨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저 맑고 빛나는 눈에
(엄마 노릇 하기 싫다)

* 드럼스틱(Drum Stick): 닭다리

―유봉희, 「드럼스틱」 전문

   위 시는 시인이 미국 생활에서 겪은 아이의 동심으로 인한 해프닝을 상황의 아이러니로 보여 준다. 문화적 차이와 그 한계를 잘 설명할 수 없는 엄마의 고충이 재미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우리는 엄마로서의 어려움만 읽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그 상상력에 공감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도 다른 문화를 접하는 순간의 심정을 대변해 준다.
   유봉희 시인이 남긴 시와 함께 버클리 문학은 앞으로 당분간 지속되어 갈 것이다. 그 기대감은 모국어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모습으로 부화해 희망을 안고 솟아오를 것으로 믿는다. 유봉희 시인이 일구어 놓은 문학적 성과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그의 정제되고 압축된 언어와 단단한 상상력은 한껏 더 깊고 따뜻하게 버클리 문학과 그들의 삶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2) 생의 연민과 아이러니

   엔젤라 정은 버클리 문학 회원 중에서 외국인과 결혼한 시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며 겪었던 일들이 흥미롭게 나타난다. 그의 시에는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연민이 아이러니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에 시적 관심을 기울인다. 엔젤라 정의 시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아이러니와 풍자의 미학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미국에서 살아가며 경험한 다양한 체험들을 여유 있게 바라보게 하는 미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엔젤라 정의 아이러니 정신은 이민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여유로 받아들이는 힘으로 작동한다. 나아가 문화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깊이 수용하게 하는 지혜로도 작용한다.5) 엔젤라 정의 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표현이다. 그리고 문화의 이질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갭(gap)을 여유 있게 바라보며 웃음의 동력으로 연결한다. 거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문화의 차이에서 생성되는 그의 웃음에는 통찰과 직관이 스며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엔젤라 정은 한국 여성으로 미국에 이민을 와서 외국인과 결혼하여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한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 시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렵사리 그이가 직장을 잡은 이래
한 달에 두어 번 쏠쏠한 용돈을 준다
파랑색을 좋아한다고 하는 내게
컴퓨터 앞에 장난스레 펼쳐놓은 지폐들
해마다 이맘 때 봄이 되면
새 흙을 구해 꽃나무 가꾸고
화창한 하늘 보며 홈디퍼로 달려가
달기똥을 사서 가든에 뿌렸다
그 사람 붉은 얼굴로 꼬집는 말
내가 준 돈으로 똥을 샀다고!

―엔젤라 정, 「용돈」6)

   위 시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고 그것이 아이러니를 형성한다. 이 시의 내용은 상황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짧은 시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 어렵게 직장을 구한 남편은 월급을 받아 아내를 위해 푸른 지폐를 펼쳐놓는다. 아내는 그것으로 봄에 꽃나무에 주려고 달기똥을 샀다. 그러고 보니 결국 용돈으로 똥을 산 격이다. 이 시는 마지막 부분 “내가 준 돈으로 똥을 샀다고!”의 극적인 반전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한다. 마지막 부분으로 시의 내용을 역동적으로 이끌어 메시지를 환기한다.
   남편이 준 용돈으로 달기똥을 사서 꽃나무에 주고 그 나무가 꽃을 피운다면 그것 이상 좋은 선물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용돈을 준 남편의 입장에서는 여지없이 벗어난 행위일 것이다. 그러기에 남편은 기쁨 반 서운함 반으로 복합적인 감정에 놓인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통해 한 편의 재미있는 시가 나왔다면 남편의 용돈은 그야말로 시인에게는 최상의 선물인 셈이다.
   다음의 시도 앞 시의 연장선으로 파악된다. 앞의 시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선물이었다면, 다음 시는 시인이 남편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앞의 시처럼 남편의 행위도 의외로 나타나 부부간에 일 대 일의 무승부를 기록하는 듯하다.

그이가 좋아하는
바트렛 배나무를 뜨락에 심었다
하양꽃 향기 맡고
하양꽃 보며
맘도 하얘지던 이른 봄
어느새 배나무 알차게 열매 맺었다
통통하고 달디 단 배를 골라
그에게 건네주었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마켓에서 사온 검증 없이는
먹지 않는다는 결벽증
나는 팔짱을 끼고 앉아 생각해 본다
그는 왜 나에게 구혼을 했을까
어떤 검증이
그 사람 마음에 찍힌 걸까?

―엔젤라 정, 「그 사람」 전문

   위 시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다. 부부간의 일상을 통해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보여 준다.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바트렛 배나무를 뜨락에 심고 가꾸었다. 나무가 자라 흰 꽃이 피어 꽃도 보고 향기도 맡고 어느새 배나무에 열매가 익었다.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그것을 따다 주었으나 남편은 검증이 되지 않은 것이라며 먹지 않는다. 이 시는 아내와 남편의 서로 다른 생활 문화에서 비롯하고 있다. 남편은 “마켓에서 사온 검증 없이는/먹지 않는다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내가 아무리 정성으로 심고 가꾼 배를 지성으로 건네도 먹지 않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남편에게 자신은 무슨 연유로 선택이 되었을까 하는 물음을 제기해 웃음을 유발했다. 독자들도 어떤 기준으로 남편이 아내를 선택했을까 생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이 시는 「용돈」과 상호 텍스트적인 관점에서 아내의 행동에 대한 남편의 반격으로 읽혀 흥미롭다. 이 시는 상황의 아이러니로 부부간 사랑의 한 이면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의문과 물음을 동시에 제기하는 것이다. 이로써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엔젤라 정은 이민 사회 속에 살아가며 한국 여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려는 노력을 잃지 않는다. 그러한 구체적인 노력은 된장 담그는 체험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재를 찾아 그것을 시적 아이러니로 형상화한다.

엘레이 갯마을 교회에서 만든 유기농 메주를 샀다
갈라진 틈으로 프릿한 곰팡이가 살갑다
꼭 장을 담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해도 지나갔고
벼르고 미뤘던 세월 앞에
한국여자라는 자존심이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조상이 즐겨 먹던 애심까지 함께 버무려
간장도 된장도 고추장도 담아야겠다고
꼭 하겠다는 고집까지 꾹꾹 눌러
오늘은 장을 담근다


(중략)

선혈의 탯줄로 이어온
우리 어머니 마음 담그는 날
한국여자 이름으로
된장녀가 되는 날.

―엔젤라 정, 「한국여자 이름으로」 부분

   위 시에서는 엔젤라 정의 개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시의 전개 상황이 후반으로 가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의 도입부는 정감 있게 전개되어 잔잔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시 마지막 부분 “한국여자 이름으로/된장녀가 되는 날”에서 극적인 반전을 꾀해 위트와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이 시의 백미는 이 부분에 놓여 있다. ‘된장녀’란 말은 2006년 야후 코리아가 조사한 인터넷 신조어와 유행어 가운데 1위에 오른 단어다.
   이 시에는 된장의 발효 미학이 관심을 끈다. 시인이 이민의 삶에서 신산고초를 겪고 그것을 감싸 안는 삶의 지혜가 엿보인다. 된장을 담그며 그 체험을 통해 어머니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국 여자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는 된장의 의미와 한국 여자의 심성을 깨닫는다. 시인은 그동안 힘겨운 어머니의 삶을 연민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인이 스스로 된장을 담그며 비로소 어머니의 삶과 깊이 화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단히 소중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깨닫고 인내하는 삶의 간절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궁극적으로 한국 여자가 되고 싶은 심정을 간절히 토로했다.
   엔젤라 정은 시를 쓰며 아이러니를 통해 우리 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다. 아울러 삶의 참다운 깨달음으로 시 쓰기를 통해 자기 완성을 꾀한다. 그는 시를 쓰며 우리 생의 의미를 반추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묻는다. 그 과정에서 엔젤라 정은 생을 넉넉하게 바라볼 여유를 갖는다. 그는 미국에서 삶의 다양한 면들을 경험하고 깨달은 안목으로 생을 통찰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는 진정한 한국 여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것은 그가 미국에서 살아온 삶의 여유로 인해 나타나는데 그것은 아이러니의 인식 방법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엔젤라 정은 미국 문화에 대한 차이를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삶의 여유로 승화한다. 이 점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사유로 그가 개인적 체험의 특수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사유로 나아가는 면모를 보여 준다. 엔젤라 정이 한국 여자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과정은 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삶의 시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련은 곧 엔젤라 정이 시로 나아가는 출구가 되었다.

3) 삶의 표현과 소통 욕구

   미국 생활에서 시인들은 한동안 잊고 살던 모국의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 그리고 고향의 풍경과 자연의 여러 국면이다. 그것은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회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외국 생활에서 스스로를 지탱해 주었던 모국에서 경험했던 시간과 공간적 체험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윤영숙은 시와 더불어 그림과 사진으로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만큼 그는 삶의 표현과 소통의 욕구가 강했다. 윤영숙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부모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가족 및 자녀, 손녀에 대한 관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그에게 가족 중심의 혈육과 고향에 대한 애정은 강한 정서적 힘으로 작용한다.

짙푸른 향기 날리던 동네 그 자리인데

낯선 발자국 소리

유년시절 이야기 들릴 것 같아
귀 기울이면
빗소리만 수런수런

잠 깨어 설레이던 가슴
새벽 빗소리 적신다

얼마만큼이나
멀리 가버린 걸까
내 유년의 시간들
그 동네 그 자리에 와 있는데
보이지 않으니

―윤영숙, 「그 동네」 부분7)

   위 시는 현실 너머 저편에 존재하는 유년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만큼 윤영숙의 시에는 과거의 그리움과 간절함이 묻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빗소리를 들으며 유년의 그리움을 떠올린다. 비가 내리던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유년의 그 동네를 그리워한다. 그 동네는 그가 이민으로 미국에 옮겨와 살기 이전의 시간대를 응축시켜 놓은 고향이다.
   “얼마만큼이나/멀리 가버린 걸까/내 유년의 시간들/그 동네 그 자리에 와 있는데”에서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리움을 강조했다. 이 시의 그리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그 자리에 우리만 시간을 더하여 낡은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의 의식 속에서 그러한 시간이 더할수록 유년이나 이전의 시간을 향한 그리움은 강하게 자라난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움으로 윤영숙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다.

어제 고향에 눈 내렸다는 소식 듣고
꿈속 고향을 찾아가 보았다

우리가 눈싸움 하던 언덕
여기였나 저기였나 헤매고 다녀도
찾을 수 없었다

따끈한 사과차 마시던
조그만 찻집 보이지 않았다

눈 위에 가득 뿌려놓은 웃음 조각들
온데간데없고

휑하니 비어 있는 가슴으로
차가운 눈발 날려올 뿐이었다

―윤영숙, 「고향에 내린 눈」 부분

   위 시도 자연 현상과 연관된 추억에서 출발하고 있다. 시인은 꿈속에서도 눈이 내리는 고향을 떠올리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풍경은 곧 어린 날을 표상하는 고향의 간절한 모습으로 제시된다. 겨울로 접어들어 자연이 고즈넉함 속에 잠겨 있던 순간 하늘을 메우며 흩날리는 눈발은 실로 많은 추억을 일깨워주는 게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와 함께 기쁨을 나누던 설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눈이 내릴 때 문밖을 향해서 고향을 떠난 사람과 멀리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애틋해하는 것이다.
   윤영숙 시인은 이민으로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살며 눈 내리는 풍경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풍경은 그에게 고향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기에 그 그리움은 더없이 큰 것이다. 고향과 눈의 연관은 계절적 감각과 유년을 연결하여 고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채색된다. 그리고 사라진 고향과 그 유년의 시간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과 소통의 강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에서 김복숙 시인도 함께 살필 수 있다.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생의 긍정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에는 생명의 뿌리 의식이 수직의 힘으로 일어서는 역동적 힘을 느끼게 한다. 김복숙 시인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수년간 재미 한국학교 북가주 협의회 소속 산호세 한국학교 교장과 알마덴 한국학교 교장을 맡아서 노력해 왔다. 그러한 일도 그가 시를 쓰는 의미와 함께 모국어를 사랑하는 적극적인 노력과 연관되어 있다.

나무 자체
미더운 의지로 솟는
너희 바라보면
그것만으로 힘 난다

나무는 의연히 산을 지키듯
너희 강건한 모습으로

(중략)

너희를 보면
탁 트인 바다 같은
흐믓한 미래 보인다

―김복숙, 「수직」 부분 8)

   김복숙의 시에는 차세대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위 시에서 그는 비유적으로 한 그루 나무를 키우며 그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루는 과정을 바라보는 눈물겨운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시의 제목으로 ‘수직’이 암시하는 바도 상징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적극적인 생의 의지와 진취적인 사유로 미국 속에서 한국인을 지키며 키워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다음의 시 「푸른 교실」에서 구체화된다.

한국어와 역사 배우며
어렵고 힘들지라도
교실에서 만난 우리
서로 알기 원하고

꿈 나누는 정원에
새들 조잘대는 둥지에
노래하고 꽃 피우며
함께 하며 나누고

세상에서
배우고 알아가는 일
모르는 것 있음은
부끄러운 일 아니다

우리는
보란 듯이 어우러져
아름드리로 하나 되는
푸른 교실

―김복숙, 「푸른 교실」 전문

   위 시에는 김복숙 시인이 시를 쓰는 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내면에는 시를 향한 강한 의지와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집약적으로 ‘푸른’이라는 의미로 압축되어 드러난다. 시인들은 자기만이 좋아하는 색으로 상징적 의미를 표출한다. 김복숙 시인이 좋아하는 ‘푸른’색은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 세상을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키워 가려 하는데 그곳이 바로 ‘푸른 교실’인 것이다. ‘교실’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자세를 읽게 한다. 김복숙 시인은 한국학교 교장으로 수년간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바 있다. 그렇듯이 시인 또한 여러 국면에서 ‘선생’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교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복숙은 강한 시 의식을 통해 생명의 가치와 사랑의 의미를 성실하게 추구해 왔다. 그는 시를 통해서 모국어의 본령을 지키려는 의지와 모국에 대한 정서를 간직하려는 노력을 잘 보여 준다. 그의 시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주변 삶에 대한 애정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그만큼 그는 이민 생활 속에서도 삶의 표현과 소통의 욕구가 강했던 것이다.

3. 버클리 문학의 미래

   재미 한인 시문학의 강한 개인적 정서 표출을 그 특색으로 지적한 것은 유효하다고 본다.9)그 점에서 이들의 시에 대하여 재미 디아스포라 시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들 문학의 정체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미 글로벌 시대라는 관점으로 문화의 보편성이 세계 문학 속에는 자리하고 있다. 문화의 보편성과 그 경험은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해도 크게는 하나의 체험 안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행의 자유화로 인한 세계 속의 문화적 교류와 일상의 소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해외 이민자들의 모국어와 문학에 대한 이해나 관심도 상대적으로 옅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재미 한인 문학에 대해서 이제는 좀 더 보편성 속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유효하다고 본다. 차이로서의 개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다양성으로 인한 변화에 역점을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버클리 문학에 나타나 있는 디아스포라 의식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민으로 미국 문화 앞에서 거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서 그들은 그것에 동화되어 갔으며 그것을 여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욱이 외국인과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경우의 일상은 두 문화 사이의 재빠른 융합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면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한동안 잊고 살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동력으로 모국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펼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버클리 문학의 결과는 하나의 성과를 보여 주기에 족하다고 본다. 또 그것은 현재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 지향적으로도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1) 권성훈, 「미주문학의 시의식 연구―《버클리 문학》을 중심으로」, 《국제한인문학연구》 30호, 국제한인문학회, 2021. 권성훈은 이 논문에서 버클리 문학의 태동과 활동 과정, 그리고 그 성과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2) 김완하 외, 《버클리 문학》 창간호, 시와정신사, 2013.

3) 김완하 외, 「유봉희 시인 특집」, 《버클리 문학》 6, 시와정신사, 2022.

4) 유봉희, 『세상이 맨발로 지나간다』, 시와정신사, 2017, 53-54쪽. 유봉희의 시는 이곳에 수록된 것들이다.

5) 문화를 보는 관점은 상대적 입장과 절대적 입장으로 나뉜다. 문화 절대주의는 자문화 중심주의로 자기 문화만 중요시하고 다른 문화를 배타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문화 상대주의는 모든 문화는 고유한 가치를 갖기에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시대에 무엇보다 당위성을 갖는다.

6) 엔젤라 정, 『룰루가 뿔났다』, 시와정신사, 2016, 16쪽. 엔젤라 정의 시는 이곳에 수록된 것들이다.

7) 윤영숙, 『소금꽃 피기 기다리다』, 시와정신사, 2016, 57-58쪽. 윤영숙의 시는 이곳에 수록된 것들이다.

8) 김복숙, 『푸른 세상 키운다』, 시와정신사, 2016, 100쪽. 김복숙의 시는 이곳에 실린 것이다.

9) 김홍진, 「이산의 시학」, 《버클리 문학》 2, 시와정신사, 2015, 83-84쪽 참고.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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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길은 마을에 닿는다』,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네가 밟고 가는 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절정』, 『집 우물』, 『마정리 집』, 저서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심층』, 『한국 현대 시정신』, 『신동엽의 시와 삶』, 『김완하의 시 속의 시 읽기』 1-8권 등을 저술했다. 소월시우수상, 《시와 시학》상 젊은시인상, 대전시문화상(문학), 충남시협본상 등을 수상했다. 계간 《시와정신》을 2002년 창간하여 편집인 겸 주간을 맡고 있다. 2010년과 2016년에 UC 버클리 객원교수를 역임한 이후 2013년에 《버클리문학》을 창간했으며, 2018년부터 《시와정신》 해외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함으로써 미주 및 해외 문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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