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작가들

title_text

4호

세계문학으로 진입하는 북한 문학의 대표 주자 백남룡의 문학세계

오태호

▲ ⓒ연합뉴스

1. 체험적 구체성의 작가

  북한 작가 백남룡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2020년 11월 30일 미국 도서관 잡지 《라이브러리 저널》이 ‘올해 최고의 세계 문학’ 10편의 작품을 선정하면서, 1988년 북한에서 출간된 백남룡의 『벗』을 영역한 『프렌드(Friend)』(2020)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벗』이 전체주의 체제 속 인민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김일성 가계 중심의 독재 국가에서 생활하는 ‘억압받는 인민’이 아니라 한반도 이북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민의 일상성’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주목한 셈이다.
  『벗』의 작가 백남룡은 1949년 10월 19일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출생한 뒤, 1964년 고교 졸업 후 1966년부터 10년간 장자강 기계 공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문학》에 단편소설 「복무자들」(1979)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래로, 현재까지 4·15문학창작단 소속으로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구체적 체험의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어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30대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면서, 1980년대 북한에서 ‘1985년도 성과작’으로 선정된 단편소설 「생명」(1985)을 비롯하여 「퇴근길에서」(1985), 중편소설 『60년 후』(1985)와 『벗』(1988) 등을 출간한 바 있다.

2. 세대론적 갈등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 세계

  백남룡은 등단작인 「복무자들」(《조선문학》, 1979. 2)에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세계 인식 차이를 중심으로 조국과 시대의 장래를 위해 복무하는 지배인 계층과 노동자 가정의 이야기를 구체적 체험의 형상화로 그려낸 바 있다. 이후 「퇴근길에서」는 공화국의 공민증을 받은 18세 선반기능공 철우와 영예군인 출신의 사진기사와의 갈등과 문제 해결을 통해 세대론적 차이 속에 공민으로서의 품성과 자부심 등을 성찰하면서 사회주의적 인간애를 다루고 있으며, 「생명」에서는 대학 학장인 교육자 리석훈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외과의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의사의 아들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입학시키려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원칙대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양심적인 교육자의 형상을 보여준다. 『60년 후』에서는 혁명 1세대인 최현필 지배인과 신세대 마진호 부기사장이 대공장 현장에서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인간애와 신뢰를 회복하게 되는 내용을 다루면서, 세대 갈등과 함께 개인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한 경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2020년 올해의 세계 문학으로 선정된 『벗』은 이혼 위기 가정에 다시 행복을 꽃피워 준 법무 일군의 이야기를 통해 가정과 사회의 윤리를 조망하고 이웃집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동지적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1988년 발표 당시 북한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가정〉으로 각색되기도 했으며, 이미 2011년 프랑스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당시에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코리아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작품 속에서 정진우 판사는 가정과 사회를 각각 독립적인 영역으로 설정하면서, 처음에는 10년 전의 프레스공 처녀 순희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고 있는 선반공 리석춘을 비판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 성악가 순희가 과거에 집착하면서 드러나는 허영심의 발로가 근본적인 불화의 원인에 해당함을 비판한다. 정진우는 자신의 가정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결혼 시절의 지향과 목표를 되새기며 이웃 가정에서의 이혼 위기 문제를 해결해 가는 ‘숨은 영웅’이지만, 본인의 가정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등 내적 갈등을 지닌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입체적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3. 폐쇄적 북한 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의 자산으로

  백남룡은 등단작인 「복무자들」 이래로 최근 김정은 총비서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 총서 〈불멸의 여정〉의 첫 장편소설 『부흥』(2020)에 이르기까지 40년 넘게 지속적으로 북한 문학의 대표 작가로서 그 명망을 이어오고 있다. 초기의 중·단편소설뿐만 아니라 4·15문학창작단 소속으로 북한의 주체 문학에서 ‘위대한 전범’으로 강조하는 수령 형상 문학을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문단에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일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 총서인 〈불멸의 향도〉 중 『동해천리』(1995)에서는 1970년대 김정일이 인민 경제의 부문 사업을 지도하는 내용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또 다른 〈불멸의 향도〉인 『야전렬차』(2016)에서는 김정일의 생애 마지막인 2011년의 활동을 주목하면서 고강도 강행군으로 인민들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의 형상을 그려낸 바 있다. 특히 김정은을 수령 형상화한 역사소설 총서 ‘불멸의 여정’의 첫 장편소설 『부흥』을 통해 김정은이 교육 혁명을 위해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와 ‘인재 강국화의 방향’으로 북한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음을 주목한다.
  1990년대 이래로 수령 형상 문학 중심의 장편소설을 창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백남룡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주체 문학의 전범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백남룡 문학의 세계성’은 김일성 가계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불멸의 역사〉와 〈불멸의 향도〉, 〈불멸의 여정〉 등의 역사소설 총서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에서 주목했던 세대론적 갈등을 통해 제기되는 노동자 문제, 교육 문제, 가정과 사회의 불화 가능성 등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당과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사회주의 수령의 위대한 도정’이 아니라 인민들의 생생한 표정이 확인되는 ‘사회주의 인민의 내면 풍경’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백남룡의 문학성이 ‘인민의 편’에서 더욱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필자 약력
오태호사진1(2022).jpeg

1970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되었다. 문학 평론집으로 『오래된 서사』(2005), 『여백의 시학』(2008), 『환상통을 앓다』(2012), 『허공의 지도』(2016), 『공명하는 마음들』(2020) 등을 출간했다. 연구서로 『문학으로 읽는 북한』(2020), 『한반도의 평화문학을 상상하다』(2022) 등을 냈다.
* 사진제공_필자

공공누리로고

출처를 표시하시면 비상업적·비영리 목적으로만 이용 가능하고, 2차적 저작물 작성 등 변형도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