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9호
기억 노동자와 감정의 모범 시민
한나 미셸
ⓒ 한국문학번역원
한국계 미국 시인이자 수필가인 캐시 박 홍이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에서 썼듯, 역사적으로 제한된 수로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계 미국인의 소설은 주류에서 들을 수 있는 이민 생활의 ‘단 하나의 이야기’, 즉 민족의 문화를 이국적으로 그리고 이주의 혼란에서 야기되는 불행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종종 이런 이야기들은 문화적 충돌에 대한 은유로써 세대 간의 긴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2023년에는 전례 없는 권수의 한국계 미국인의 소설이 출판되었다. 35권의 출판 도서 제목들은 다양한 장르를 대변한다. 신화적인 이야기부터[Sea Change, 지나 정(Gina Chung)] 사변 소설[Flux, 정진우(Jinwoo Chong)], 그림책[Goblin Twins, 프란시스 차(Frances Cha)], 로맨스[The Do-Over, 수잔 박(Suzanne Park)], 스릴러[Fortune, 엘렌 원 스테일(Ellen Won Steil)] 그리고 미스터리[What We Kept to Ourselves, 낸시 주연 김(Nancy Jooyoun Kim)]까지 있다. 이 도서 목록의 한층 풍부해진 다양성이 한국계 미국인의 경험을 다채로운 현실로 대변함과 동시에 형식적인 실험 모두 가능하게 했다.
2017년 이후로 ‘오스카는 백인 위주(#OscarsSoWhite)’ 캠페인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같은 운동이 할리우드와 출판계에 인종에 대한 인식을 불러왔다. 더 폭넓은 다양성과 포용력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런 운동들은 표현의 다양성과 전통적으로 백인 중심적이었던 문화 기관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라는 요구를 북돋웠다. 이와 같은 백인중심주의는 자주 유색 인종의 이야기를 틀에 박히게 박제하고 대중에게 다가갈 서사의 범위를 제한시키는 방식으로 소외시키고 말살하고 말았다. 주로 백인의 경험과 시각에 집중한 이런 이야기들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좁고 왜곡된 이해를 낳는 데 일조한다.
이런 인식에 응해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에 집중된 몇 편의 영화들, 〈페어웰(The Farewell)〉(2019), 〈미나리(Minari)〉(2020),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같은 영화들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일부에서는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시네마의 황금기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이 영화들의 돋보이는 가시성은 여러 이유에서 중요하다. 첫 번째, 오랜 고정 관념에 대항하여 더 섬세하고 다양하고 또 진정성 있게 표현된 아시아계 미국인의 삶을 담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비유나 들러리로 아시아인 등장인물들을 국한하는 대신, 이 영화들은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겪은 복잡한 인물들을 보여 준다.
두 번째,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시네마는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들이 그들 자신의 서사와 목소리에 대해 주도권을 갖도록 한다. 역사적으로 서구 미디어 속의 아시아인 등장인물들은 오리엔탈리스트의 시선을 통해 묘사됐고, 이들을 이국적으로 또 비인간적으로 그렸다.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고 주연하는 일은 그들의 현실과 열망을 반영하는 사회를 표현하게끔 한다. 이런 변화는 문화 경관만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다른 공동체에 걸쳐 더 큰 공감과 이해를 조성한다.
이 글에서는 미국 자본주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데 드는 정신적 및 경제적 삶의 비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두 편의 영상 작품 〈성난 사람들(Beef)〉(2023)과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2024)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작품들은 동아시아인을 묘사할 때 지배적이었던 ‘모범적인 소수 민족’ 신화에 도전하는 한편 이산된 인물들 간의 정서 표현을 확장한다. 이와 별개로 2023년에 출판된 세 편의 소설 『발굴(Excavations)』, 『해방자들(The Liberators)』, 그리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동상이몽(Same Bed Different Dreams)』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들 소설은 탈식민지화된 역사의 필요성에 대한 고조된 인식을 반영하고, 과거의 확고히 굳어진 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성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성난 사람들〉은 보복 및 난폭 운전 사건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명의 아시아계 미국인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 중 대니 조는 힘든 상황에 놓인 도급업자이고 에이미 라우는 성공적인 사업가이다. 이 둘의 첫 충돌은 가중된 복수 행위로 이어지며 악화되고, 이를 통해 각각의 인물들이 개인적, 직업적 삶에서 직면하고 있는 스트레스와 절망을 보여 준다.
이 시리즈는 아시아계 미국인 출연진이 주축이 된 보기 드문 아시아계 미국인 제작물로, 인종 및 계급 배경이 다른 개개 인물들의 다양한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역사적으로 ‘모범적인 소수 민족 신화’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묘사를 밋밋하게 만들었다. 민족성 혹은 계급에 기반한 구별을 제한하는 한편 조용하고 근면하며 사회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위해 타인과 결집하기보다는 개인적 책임감을 수용함으로써 변화를 성취하는, 본래 성공적인 사람들이라는 획일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했다. 이런 이야기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다른 인종 그룹과 비교하고 아메리칸드림이 순전히 노력과 결단력만 있다면 달성할 수 있다는 관념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성난 사람들〉은 주인공들의 경제적 분투에 뒤따르는 감정적 대가를 조명하며 이 신화에 반기를 든다. 도급업자 대니는 노동 계급 이민자 부모가 아메리칸드림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반면 에이미는 수익성 좋은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인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입맛대로 하는 백인 사업주 곁에 남기로 한다. 가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계 이상으로 자신을 내몰며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다.
〈성난 사람들〉은 사실상 ‘모범적인 소수 민족 신화’의 허상을 폭로하며, 자본주의 아래 성공에 대한 기대에 뒤따르는 정신 건강의 대가와 내재화된 분노를 드러낸다. 캐시 박 홍이 말하듯 “민족 문학 프로젝트는 늘 비백인 작가들이 본인들도 고통을 느끼는 인간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인본주의적 프로젝트였다.” 아시아계 미국인 등장인물들이 무대 중심에 서게 되면서 모범적인 소수 민족 신화 아래 살아가는 이들이 직면한 정신적 비용과 극심한 압박은 정체성의 어떤 내재된 측면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을 실현하게 한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와의 직접적인 관련성 이상으로, ‘모범적인 소수 민족 신화’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에 대한 더 광범위한 비판을 구성한다. 그뿐만 아니라 능력주의의 거짓 약속을 폭로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조명하고, 또 끝없는 성공 추구로 인한 감정적·정신적 건강의 대가를 드러낸다.
셀린 송이 연출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가슴 아픈 로맨틱 드라마이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친구 사이였던 노라와 해성의 관계를 탐구한다. 이 둘은 노라의 가족이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며 헤어졌다. 세월이 흘러 노라(현재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 중인)와 해성(여전히 한국에 사는)은 온라인에서 다시 만나고, 그들 간의 유대감은 되살아난다.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서로 다른 삶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의 감정과 상황이 지금과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심한다. 영화는 유대계 미국인 작가 아서와 결혼 후 뉴욕에 사는 노라를 해성이 방문하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이 방문으로 해성과 노라는 서로를 향한 감정에 직면하게 되는 만감이 교차하는 재회를 하게 되고, 서로 떨어져 지내며 이룬 삶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표면적으로는 한 여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 연인과 있었을 법한 일을 상상하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그 이면에서 미국과 한국에 대한 그녀의 이중적인 애착을 들여다본다. 노라와 해성 사이의 교류는 노라의 소통 가능하지만 제한된 한국어 실력 때문에 피상적이다. 노라에게 해성이라는 인물도 여자 친구와 잠시 떨어져 시간을 갖고 있고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몇몇 사실 외에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전개의 부진함이 또한 중요한 부분일지 모른다. 해성이 얄팍한 인물로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서툰 노라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그에게 피상적인 접근만이 가능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해성은 노라에게 표피적으로만 알 수 있는 어떤 친숙한 공간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또한 원시적이고 그녀에게 최초의 고향이었다. 한 대화 장면에서, 아서는 노라에게 그녀가 자주 잠꼬대를 한국어로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너는 꿈을 꿔……. 네 안의 한 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야.” 이민자로서 노라의 존재는 구획화된다. 미국에서 그녀의 삶은 성공한 극작가로서 또 다른 많은 실질적인 기회라는 포부를 품게 했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그녀는 온전히 살지 못한다. 대신 그녀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한국을 향한 깊은 그리움을 느낀다. 그녀의 이런 부분은 그녀의 남편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녀가 미국에 있는 한 그렇다.
해성을 떠나보내는 노라의 상실감은 정신적 상실과 기회 추구로 인한 애착의 단절을 잘 보여 준다. 미국이 자아실현의 장소일지 모르지만 감정적으로 노라가 진실로 살아 있는 곳은 아니다. 현실적 삶의 감정적 대가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자본주의하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한 개인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인간 이하로 만들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
나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면 그들은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발굴』 중에서
”
민권 시대 동안 대두된 소수민족학의 목적은 전통적인 학문 영역에서 자주 간과하거나 왜곡된 유색 인종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스카는 백인 위주’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운동의 출현은 주로 학계에 국한됐던 역사 탈식민지화의 필요성에 대한 담론을 주류 대화 속으로 가져왔다. 이런 운동들은 역사적 서사를 구축하는 권력 역학과 그간 무시되고 억압된 소수 집단의 목소리와 역사에 더 큰 관심을 불러왔다.
니콜 한나존스의 『1619 프로젝트』는 미국 기원 이야기 속의 건국 아버지들 영웅주의 신화가 어떤 식으로 흑인 노예 제도의 잔혹한 현실을 덮어 버리는지 잘 보여 준다.
그녀의 작업은 대중문화와 기념물들로 인해 오랫동안 가려진 역사적 관점을 드러내는 데 큰 관심을 불러왔다. 한나존스가 주장한 것처럼 “국가는 과거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공유하며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국가는 국가적 기억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이 발언은 우리가 말하고 기억하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은 역사에 대한 비판적 질문의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알렉산더 지(Alexander Chee)가 말하듯 한국사는 보통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고, 이 때문에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국사를 다른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
“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자주 복음주의 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 학교 프로그램과 그 교회들의 여름 프로그램에서, 동아시아 연구 및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 학부 수업에서,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소설, 논픽션, 시, 회고록 등에서 가족과 선생님들이 말해 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배운다.
”
대학교 수준의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 프로그램에서조차 한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그 프로그램의 교과목은 미국과 한국의 관계, 한국 전쟁, 미국 제국주의와 연관한 한반도의 분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계 디아스포라 소설가들은 산재한 자료로부터 과거를 발굴할 뿐만 아니라 역사 기록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권력 역학 관계, 정서적 감정가, 기억 및 구전 전통 등을 해석하는 기억 노동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기억 작업’이라는 시각을 통해 세 편의 소설 『발굴』, 『해방자들』, 『동상이몽』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소설 작품들은 한국사에 대해 탐구하고,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다룰지라도 각각의 소설은 이 사건들의 의미를 묻고, 역사를 더 광범위하게 사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제기한다. 그들의 탐구는 역사적 기억의 복잡성과 함께 과거를 이해하는 데 있어 다양한 이야기의 중요성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내 소설 『발굴』은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에 대한 내 학문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공부를 한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 역사에 대한 내 지식에 어떤 구멍이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의 수감 사실에 대해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곧 나는 미국 역사 교과목에서 보편적으로 배우지 않는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사실 많은 학생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기억 노동자로서 한국 현대사를 탐구하는 나만의 역사 기록 여정이 시작됐다. 나는 곧 서울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정치적 시위에 대한 내 직접적인 기억과 한국사 담론 내 이 운동에 대한 상대적인 침묵 사이의 불협화음에 주목했다. 종국에는 내 소설 『발굴』이 된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를 시작하며 나는 서대문형무소 박물관을 방문했다. 놀라웠던 점은 전시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역사에 초점을 맞출 뿐 30년간의 독재 정치 동안 정치범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가시적인 증거나 담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억과 역사의 정치성에 대한 내 인식은 급속히 확산되던 케이팝(K-pop)의 인기와 동시에 커졌다. 한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소프트 파워, 즉 정치적 화폐를 창출하는 수단으로써 문화라는 주제는 점점 더 피할 수 없음을 느꼈다. 한국에 대한 새로운 브랜딩의 한 축은 경제적 기적에 집중되었다. 이는 한국전쟁 후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빈민국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점이다.
소설 『발굴』은 어머니이자 전직 기자, 전 학생 운동가인 한 여자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녀의 남편은 그가 일하던 고층 건물 야망 타워가 무너지고 실종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빌딩 건축을 감독한 대기업 사장과 독재자의 압축 개발 정책과 권위주의적 관행에 대항해 시위한 한 여자 사이의 대화로 이어진다.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 안에서 성별에 따른 노동 구조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한국 경제 성장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예를 들어 인기를 끈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한국 경제에 기여한 남자들의 공헌과 희생은 강조되는 반면, 여자들의 경험과 공헌은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가부장제와 압축 성장의 환경 속에서 한국 여자들의 경험을 밝히고자 『발굴』을 썼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우리들 개인의 삶과 인간관계, 그리고 우리 역사 안에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살펴봐야만 한다고 느꼈다. 『발굴』은 사실상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과 한국사를 다루지만, 이 소설은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집필되었다. 믿을 수 없고 부패한 사장과 가짜 뉴스가 만연한 트럼프 시대에 트럼프의 우선순위를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미국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뜻에서 썼다.
『해방자들』은 회고록 작가이자 시인 고은지(E.J. Koh) 작가의 데뷔소설이다. 4대를 아우르는 소설은 1980년 대전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군사 독재 시절 아버지를 잃고 남편 성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는 인숙의 운명을 그린다.
『발굴』과 같이 소설은 한국사의 많은 중추적 사건을 다룬다. 일제 항복 후 한국인의 송환부터 5·18 민주화운동,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그리고 근년의 세월호 참사까지. 한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첫 몇 챕터에서 고 작가는 이민을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폭력을 생생히 표현하며, 한국 이민자들이 그저 아메리칸드림을 좇기 위해 미국에 온다는 통념을 흐린다. 미국에 온 이후로도 등장인물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계속 영향을 받는다. 휴전 이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 남북 정상 회담과 세월호 침몰과 같은 중대한 순간들을 미국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습은 그들이 고국과 가지는 지속적인 연결감을 보여 준다.
고 작가의 산문은 지적이고 사정을 잘 아는 독자를 상대로 한 듯 시적이며 단출하다. 미국 독자들에게 사건들을 설명하고 전후 사정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지 모를 이전 세대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과 달리, 고 작가는 사건들이 등장인물들에게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탐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교도관들과 수감자들, 가해자들과 해방자들처럼 이 소설의 묘미는 다양한 관점을 표현한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의 다중의 목소리를 통한 접근으로 고 작가는 소설의 시각을 넓혀 주고, 권력자와 비권력자 모두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 준다.
한 인터뷰에서 고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의도한 바는 “파괴와 복구의 얽힘”과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기억이 역사 안에 부호화되는 방식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고 작가는 역사를 현재에서 해결해야 하는 유산의 한 형식으로 접근한다. 이런 접근은 그녀가 개인과 공동체에 가해지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회복력이 계속 이어지는, 세대 간 영향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다른 시간대를 넘나드는 소설의 구조는 분열되었지만 서로 연결된 등장인물들의 삶의 성격을 반영한다. 각 세대는 그 세대만의 고난과 업적을 살아 내지만, 그들 모두 자신들의 정체성과 운명을 규정하는 공통의 역사에 매여 있다. 고 작가는 한국사와 이민 경험에 대한 다면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유산의 난해함에 대해 헤아려 볼 자리를 마련한다.
에드 박의 야심 찬 소설 『동상이몽』은 역사의 복잡성을 탐구하기 위해 여러 장르와 서사의 실타래를 엮는다. 한편으로는 과학소설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순 쉰(Soon Sheen)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은 쉰의 손에 우연히 들어온 미출판 원고라는 제3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원고는 1919년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세운 실제 조직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그린 “꿈”이라는 논픽션 역사 기록물이 주를 이루는 모음집으로 드러난다.
소설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 명의 학자들 간의 기획된 논쟁으로 시작한다. 그들 사이의 지적 대결 중에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은 쏟아지는 잠과 씨름한다. 그 모습은 공식 기록에서는 삭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되어 조직 외부로 퍼지게 되고 역사의 한 부분이 된다. 도입부에서는 역사적 서사가 지워 버리는 것에 대한 소설의 관심을 드러내고 박 작가가 그리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해체된 적 없는 한 세계를 위한 무대를 설정하여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에 맞선다.
소설에는 나운규(한국 최초의 현대 영화로 알려진 영화 〈아리랑〉의 제작자)와 같은 실제 역사적 인물들과 예술가들이 짧게 등장하지만, 소설은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하며 독자들에게 그들 지식의 진위성과 완전성에 대해 심문하게 한다. 소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들은 얼핏 보기에는 사소한 단편들과 세부 사항들이지만, 함께 모여 더 큰 그림을 보여 주는 직소 퍼즐의 조각들처럼 그것들은 이후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알렉산더 지는 이 난해한 소설이 “역사에 대한 실제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조국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독자들을 향한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소설의 퍼즐과 같은 구조는 자주 총체적인 교육 과정의 부재 속에서 한국사와 한국계 미국인의 역사를 모두 이해하려고 애쓰는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의 경험을 반영한다. 이런 서사 테크닉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역사 기록의 파편화되고 종종 불완전한 특성을 주변부의 관점으로 역설한다.
최근 인종에 관한 인식은 다양한 문화적 작업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한다. 그에 호응해 우리는 이제 보다 입체적이고 감정을 담은 더 많은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과거를 향한 다른 관점과 해석에 살을 붙이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에 대한 한층 복합적인 접근 방식들을 목격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단 하나의 이야기가 대신하던 시대는 복수의 해석이 환영받는 시대로 대체되었다. 『동상이몽』의 도입부에 나오는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 본다. 이번에는 객관식으로 물어본다.
역사란 무엇인가?
ㄱ) 중대한 교훈
ㄴ) 심심풀이
ㄷ) 상징의 총합
ㄹ) 고통의 기록
역사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다른 답변들도 덧붙이고 싶다. ㄱ) 우리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열쇠, ㄴ) 권력 시스템에 대한 의문, 또는 ㄷ) 오늘날까지 파급 효과를 미치는 유산. 아마도 정답은, 단 하나의 유일한 답이 존재하기보다는 ㅁ) 위의 모든 것이 아닐까.
번역 : 김래이 (영 → 한)
영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랐다. 첫 장편소설 The Defections는 2014년 프랑스와 영국에서 출간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두 번째 소설 Excavations(One World, 2023)는 《리터러리 허브(Literary Hub)》에서 선정한 2023년 최고의 범죄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가 뽑은 2023년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 10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UC 버클리에서 K-팝과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