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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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오사카 이카이노: 제2부 축제 그리고 ‘공생의 마을’로

정성희

  1980년대에는 이카이노 지역에 거주하는 재일 코리안들의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이 축제와 코리아타운의 활성화이다.
  1982년까지는 에스닉 축제, 즉 재일 코리안의 마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차별적인 환경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반도에 뿌리를 둔 재일 코리안인 자신들의 존재를 일본 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었으며, 1983년부터 “이쿠노 땅에 동포의 잔치를”이란 모토로 민족 축제인 ‘이쿠노민족문화제’를 시작했다. 이쿠노민족문화제는 1983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오사카 재일 코리안의 축제이며, ‘하나가 되어 키우자, 민족의 문화를! 넋을!’이라는 표어로 시작했고, 이 축제를 계기로 2012년까지 121개의 민족 축제가 일본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 이쿠노민족문화제 포스터 (출처: 필자 제공)

▲ 1980년대 초 조선 시장 거리 풍경 (출처: 필자 제공)

  이러한 같은 지역에서의 축제 개최와 함께 조선 시장 또한 활성화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 동쪽 상점가와 중앙 상점가의 아케이드, 가로등, 도로 정비를 실시하여, ‘코리아타운(KOREA TOWN)’, ‘코리아로드(KOREA ROAD)’라는 이름과 함께 새롭게 단장했다. 동쪽 상점가에 있는 아케이드는 현재 ‘백제문’이라는 글이 있으나 1993년 당시에는 없었다. 이것은 2002년에 새롭게 추가된 건데, 이쿠노구는 강이나 땅에 ‘백제’라는 이름이 남아 백제에서 온 도래인이 다수 거주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재일 코리안이 많이 거주하게 된 것도 신기한 역사적 인연을 느끼게 하므로, 그 연결고리를 소중히 여기고자 ‘백제문’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 상점가에 있는 아케이드는 단청을 이미지화하여 디자인했다. 이러한 에스닉 심볼의 등장을 계기로 에스닉적인 경관을 갖게 된 이쿠노 코리아타운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고,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미지가 일본 사회 안에 정착되기 시작한다.

▲ 이쿠노 코리아타운 상점가 (출처: 필자 제공)

  2009년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과의 지속적인 우호 관계를 바라며, 서쪽 상점가에 위치한 미유키모리텐진구(御幸森天神宮)에 왕인 박사가 읊은 「나니와즈의 노래(難波津の歌)」의 노래비가 왕인박사가비건립위원회 등 지역 사람들의 모금을 통해 설치되었다. 노래비에는 「나니와즈의 노래」가 망요가나(万葉仮名), 가나(仮名), 한글로 새겨져 있다.1) 이러한 노래비 또한 이쿠노구가 고대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이 지역의 역사를 지켜온 것이다.

▲ 미유키모리텐진구 (출처: 필자 제공)

▲ 「나니와즈의 노래」의 노래비 (출처: 필자 제공)

참고자료

1) 정성희, 「재일코리안 집중거주 지역의 언어경관: 이쿠노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글로벌문화콘텐츠》 55, 2023, 95-111쪽.

필자 약력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 학과에서 학위를 받았다. 재일코리안과 한국전통예술, 공립학교 속의 민족교육 등을 비롯한 재일코리안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재일코리안과 한국 전통예술의 재창조」, 「재일코리안 집중거주 지역의 언어경관」 등이 있으며 공동 역서로는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