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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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이쪽과 저쪽을 넘어 탈경계의 자유로움을 향하는 이들

박재인

장마당세대 탈북청년들이 찾은 자기서사

1. 탈북 MZ들, ‘새로운 나’로 살기 위한 위험한 모험

압록강 사이에 둔 북한 혜산과 중국 창바이 [© 아시아뉴스통신]

  목숨을 걸고 분단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들은 어떤 존재인가. 이를 탐구하는 작업에 중요한 변인 가운데 하나는 ‘세대’ 문제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1990년 후반부터)에 기아와 극빈을 경험하고 생존하기 위해 탈출했던 1세대, 이들의 도움으로 이주한 2세대, 그리고 자발적 동기로 탈출한 3세대는 각각 다른 이유와 기억, 희망을 품고 탈북의 과정을 겪었다. 이들 각각은 서로 다른 탈북 동기와 과정을 경험했기에 한국에서 혹은 제3국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필자가 만나는 3세대 탈북민 특히 20대 청년들은 이전 세대 사람들과 달랐다. 이전 1세대는 소금 한 줌만 있었어도 탈북하지 않았다고 한탄했었고, 2세대는 탈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3세대에게 탈북 동기를 물었을 때 대답이 놀라웠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요.”

  북에서의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나’로 살기 바랐다는 말은 청소년기에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고민이겠으나, 탈북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어서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이러한 무서운 다짐을 하게 되었나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세부적인 이유는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북에서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어린 나이에 고향 땅을 떠나온 이유였다.
  자발적 동기로 탈북한 3세대는 흔히 말하는 장마당1)세대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국가의 배급이 아닌 시장에서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제 방식으로 변화하면서2) 북한에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경제난에 뚫린 밀수의 통로들로 ‘자본의 힘과 외부 세계의 문물이 밀려 들어와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 방식들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장마당 세대는 ‘비사회주의’적 의식과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세대3)라고 말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변화는 북한의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커졌다.4)

압록강 [© 픽사베이]

  그런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막막함은 단순히 가난과 낙후된 생활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독한 가난과 그것의 대물림, 가정불화와 가정폭력, 학업 중단 및 청소년기 방황과 탈선 등 여러 갈등이 축적되면서 이 불행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이 미래를 꿈꾸는 일을 막고 있는 장애 요소 중 하나는 ‘토대’적 한계이다. 토대는 북한에서 성분이라고도 불리는 사회 계층 제도5)로, 이 제도에 의해 좋은 성분과 나쁜 성분으로 사람이 구분되고 사회적 행위가 제한되며 직업과 학업에 차별이 가해진다. 또 제1대의 기본 군중으로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며 연좌제와 같이 적용되는 지점도 있어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만나 본 탈북청년들은 대체로 이 문제로 고민했었다.
  이렇게 지쳐 갈 때쯤 이들 앞에 놓인 하나의 해결 방안은 ‘탈북’이었다. 처음에는 중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불법체류자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했다. 혹은 탈북을 주선한 브로커에게 후불제를 약속하고 곧장 한국으로 온 친구들도 있었다. 김정은 정권 이후 탈북이 어려워졌다고만 들었는데, 최근 한국에 온 친구들은 이전보다 몇 배의 돈이 들 뿐이지 탈북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만큼 국경 근처의 10-20대들에게 탈북의 길은 손을 뻗치면 닿은 곳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이 주선하여 탈북을 준비해 준 경우도 있었다.

제가 학교를 안 갔어요.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저는 장사를 했죠. 돈도 꽤 벌었어요. 그때는 자신감이 있었죠. 나는 이렇게 능력이 있다. 그런데 친구들이 졸업을 하니까, 갑자기 내 처지가 보이는 거예요. (……) 엄마가 준비해 줬어요. 거기(북쪽)서는 미래가 안 보이니까. 엄마가 보기에도 막막하니까.(2000년생 탈북 청년)

  이 친구의 경우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장삿길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꽤 연약한 분이셔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어린 딸이 생계를 책임졌다는데, 어린 딸에 의지해 사는 어머니가 보기에도 이 소녀가 그렇게 사는 것보다 탈북의 길이 더 낫다고 판단했나 보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딸을 홀로 먼 길, 그리고 위험한 길로 떠나보내려고 했던 어머니가 참 애처로웠다. 다행히 어머니의 소망처럼 이 친구는 소녀 가장의 짐을 벗고서 자기 꿈을 위하여 달려가는 대학생이 되었다.
  이렇게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탈북 청년들의 삶이 달라지기를 소망했다. 그것은 의식주 충족을 넘어선 삶의 질에 대한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과 같이, 탈북청년들은 한국에서는 삶의 질을 높일 기회를 제공받기를 바랐다.

2. 편견과 배제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동화와 비동화, 혹은 그 사이

  이들이 원하는 다른 삶은 ‘삶의 질을 높일 기회의 장’이라면, 사실 남한 사회는 그러한 이상과 소망에 어울리는 공간은 아니다. 경쟁은 심하고, 삶의 만족도를 위한 비용은 더 부담스러우며, 경제적 분배와 사회문화적 차원의 동등한 참여의 기회도 그리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탈북민을 향한 따가운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탈북민은 꽤 많다. 이념적 편견이나 경제난민이라는 시선 등 직업과 학업 공간에서부터 개인적 공간까지 탈북민을 공격하는 말과 행동들은 가지각색이다. 2018년쯤 한 초등학생이 탈북민을 보고 ‘머리에 뿔이 났느냐’고 물었다. 반공 교육과 거리가 먼 어린 세대에게도 마음의 장벽은 너무 단단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에 탈북민들은 이 ‘탈북민 꼬리표’를 없앨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말한다.

삶의 닻을 찾아 [© 필자 제공]

강남을 찾아서 [© 필자 제공]

  2012년부터 탈북민과 문학치료 상담을 해오면서 필자는 탈북민을 향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배제 문제를 회피해 왔다. 그리고 연구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탈북민을 향한 남한 주민의 편견을 없애야 한다거나 남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의 발언을 기록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사회구조적 차원의 ‘분단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이 사안에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데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탈북청년들을 만나고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로부터 도망갈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학치료는 사람에게 스토리 형식의 인지와 감정 도식이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감상‧토론‧창작 등 문학 행위에 사람의 심리가 나타나며 역으로 문학 행위로 사람의 심리가 변화할 수 있다고 보는 상담 방법이다. 문학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어떤 문학 작품으로 대화를 나누는가에 있다. 탁월한 작품은 내담자 내면에 숨어 있던 진짜 문제를 드러내게 하거나, 새로운 정신적 도식으로 내담자의 내면에 안착하여 그의 삶을 바꿔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학치료에서는 『삼국유사』에 나온 「비형랑도화녀」를 상담 자료로 활용했다. 이 작품은 죽은 진지왕(신라 25대 왕)의 아들로 태어난 반귀반인(半鬼半人)의 비형이 귀신을 부리는 능력으로 인간 사회를 이롭게 하고, 여우로 변한 귀신 길달을 처단함으로써 축사(逐邪)의 신격으로 거듭났다는 내용의 옛이야기이다. 국문학계에서는 진지왕 폐위(사회적 죽음)라는 역사적 사실을 ‘죽은 영혼’으로, 폐위된 왕의 자손들을 ‘반귀반인’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석한다.6)
  이러한 비형이 여우가 된 길달을 물리치자, 신라 사람들은 아래의 노래를 지어 첩사(帖詞)로 붙여 귀신을 쫓고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에서 비형을 모시는 신앙이 아주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성스러운 임금의 넋이 아들을 낳았으니, 비형랑의 집이 여기로세.
날뛰는 온갖 귀신들이여, 이곳에는 함부로 머물지 마라.

  이 노래는 인간의 영역과 귀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 지으며, 비형에게 인간 사회의 소속이 명확하게 부여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비형을 통해 인간 사회와 귀신들의 소통이 이뤄지다가 그것이 다시 중단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열과 통합, 재분열의 서사가 삼국을 통일한 신라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꼽혀 기록되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비형의 서사는 분단 구조 속 북한 출신으로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의 생애와 유사한 면이 많다. 비형이 죽은 진지왕의 아들로 왕족으로서의 사회적 권위가 박탈되어 있었다는 점은 남한에서 북을 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탈북민들을 이념과 경제적 문제로 차별하는 사회적 상황과 유사하다. 그리고 ‘귀(鬼)’라는 절반의 정체성으로 인간 세상에 이롭게 활용하는 장면은 이들이 남한 사회에 진출하는 상황과 유사하고, 신라 사람들에게 축사의 신격으로 추대되는 장면은 탈북민의 성공과 지위 상승을 떠올리게 한다. 또, 진평왕(신라 26대 왕)이나 신라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이들의 소속을 결정짓는 중심 집단의 형상이며, 탈북민들이 중심 집단의 편견과 배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그리고 비형, 길달, 귀신 무리는 소수 집단 내의 다양한 입장과 행보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문학적 형상들은 단순한 이주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함께 있었는데 그 존재성이 부인되고 상황에 따라 그 존재성이 이리저리 밀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필자는 이 작품이 탈북민들에게 ‘나를 밀어내는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 문학치료에서 탈북 청년들이 ‘비형’과 같이 남한 사회를 이롭게 하여 사회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식의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다만 비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탈북 청년들은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작품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나, 인간과 귀신 사이에서 고민했던 비형 혹은 길달의 속내에 공감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비형의 선택보다 더 자기 삶에 기능적인 서사를 상상해 내길 바랐다. 그것이 바로 ‘탈’경계인7)으로 자기 서사이다. 적응 모델이나 도덕적 규범을 한정하지 않았고, 중심 집단의 입장에서 비롯된 획일화된 윤리관에서 탈피하여 특별한 사유를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분단의 경계를 넘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자신만의 기준과 판단으로 ‘나의 세상’을 구축해 가는 내면의 이야기를 찾아내길 바랐다.
  그렇게 2021년 겨울 일곱 명의 탈북 청년을 만나, 이 작품을 가운데에 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8) 이들은 모두 20대이며, 김정은 정권 이후에 탈북하여 남한에 왔다. 현재 남한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이들이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것이고 ‘탈경계의 자기서사’를 찾는 일에 앞장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대학생들로만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개인사를 묻지 않고, 주로 작품 속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이 작품이 어떤지 소감을 말해 주세요”였다. 예상했던 대로 탈북 청년들은 비형의 서사에 몰입하고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비형의 처지에 깊이 공감했다.

(비형이) 차별받았었는데 나중에는 되게 뭐 누가 막 부적으로 쓸 만큼 되게 훌륭한 사람이 됐다는 게. 그러니까 뭔가 비하받고. 저희가 지금 탈북민이라고 하면 좀 낮게 보고 좀 그렇게 하잖아요.(탈북 청년 1)

일단은 인간이랑 귀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출세도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귀신도 인간인데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요. ‘차별’ 그런 것들이 떠올라요.(탈북 청년 3)

  탈북 청년들은 텍스트에 기술된 내용 그 이상을 상상하며, 자신의 경험을 넣어 비형의 감정과 입장에 공감했다. 그리고 ‘차별’ 문제를 거론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때문에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받는 상황에 대해 공감한 것이다.
  그리고 연구자는 두 번째 “이 작품에서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것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비형의 성공’에 대하여 참여자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다. 비형의 성공을 긍정하는 반응과 그것에 의혹을 품는 반응이었다. 특히 비형의 행보에 의혹을 품는 경우는 ‘길달 처단’에 대한 것이었으며, ‘정말 길달이 잘못한 것일까, 그것을 지켜본 귀신 무리는 동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현했다. 절반 이상이 비형의 성공은 인정하지만 길달을 처단한 행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하는 얘기가 항상 북한 사람들은 다 저래, 그러니까 여기도 분명히 그랬을 거야. (필자: 비형이 나서서 처단을 하는 까닭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죠. 그래야 나머지 사람들이 피해를 안 보니까.(탈북 청년 1)

옛날에 탈북 초창기에는 지원을 엄청 해주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탈북민들이) 일을 안 하고 흥청망청, 그런 모습들을 보이니까 지원을 대폭 줄였어요. 그런 부분에서는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야 나중에 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사람(길달)이 잘못했다고 죽일 정도로 잔인하고 냉철하게 보는 것은 안타까워요. 슬플 것 같아요.(탈북 청년 3)

다른 이야기로 풀어 보면 어떤 정착해 있는 국가에 있는데 다른 이민 무리가 들어온 거예요. 그 무리에서 대표 격의 인물이 있었겠죠. 근데 그 사람이 주도하에 기존 세력들하고 잘 맞아서 이해관계가 맞아서 이제 그래서 잘 살기로 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사고를 친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원주민들)이 해도 되는 건데 굳이 내가(이주민이) 본보기를 보이는 거죠.(탈북 청년 4)

  탈북 청년들은 탈북민 일부의 행동으로 전체가 오해받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들어서 ‘비형-길달-귀신들’의 관계를 해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관계를 더욱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경계인으로서 그 사회적 관계에 얽혀 있는 복잡한 요인들을 바로 보고, 자신들이 남한 사회에서 탈북민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과 인식들을 담아 중심 집단과 소수 집단의 관계, 그리고 소수 집단 내의 다양한 입장들을 입체적으로 사유했던 것이다.

나침반 [© 픽사베이]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일곱 명의 탈북민이 저마다 각각 다른 인물에 더 무게를 두고 이 사태를 해석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1) 비형의 입장에서, (2) 길달의 입장에서, (3) 귀신 무리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자신만의 해석 방식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해석 방식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와 닮아 있었다.
  첫째, 비형 입장에 몰입한 탈북 청년은 비형의 성공을 옹호했다. 자신도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 내면 나중에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겠다며, 이 작품에서 비형이 귀신을 보는 것이 오히려 능력으로 인정받아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 참가자는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꼭 성공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내세웠고 로스쿨 입학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자신이 “실수하는 것에 대한 관대함이 없다”고 하고, 그것이 때로는 갈등을 야기한다고도 인정했다. 이렇게 강한 동화의 의지, 성공의 의지가 강한 청년이었다.
  둘째, 길달에 공감한 참가자는 길달에 대해 “어차피 본성을 잃지 못했을 거였다”며 ‘여우’로 변한 길달이 본성을 따라간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를 처벌한 비형이 나쁘다며, 혹시 길달을 질투해서 벌인 일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길달에 특별한 공감력을 표현한 그는 탈북을 후회하는 참가자이다. 탈북을 후회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등 괴로워하다가 환각과 불안 증세로 정신 건강 진료를 받은 바 있다. 당장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길달을 옹호하고 비형을 비판하는 반응을 표출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탈북민 집단 내에서 심한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의 길달과 비형의 관계에 대한 해석 방식은 자신이 탈북민 집단에서 경험한 불편함과 관련된 듯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참가자가 ‘귀신 무리’에 공감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한 참가자는 작품에서 중심 집단과 소수 집단의 관계를 눈여겨보며 그 안의 정치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비형의 선택이 “장기적으로는 비형도 위험해질 수 있는 나중에 충분히 자기 발목을 잡을 만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누구보다 귀신 무리 입장에서 비형의 행보를 평가한 것으로, 비형의 길달 처단 사건이 소수 집단 내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남한 주민과 탈북민 중 특별한 소속감이 부여되는 일을 거부했고,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성향이었다. 그리고 탈북민들의 남한살이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탈북민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것 자체가 없잖아요. 굳이 힘이라는 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좀. 그냥 개 개개인이 자기 정착을 잘해서 잘 살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 지금은 사실 어느 편에 서거나 아니면 자기 의견을 낼 때가 아니라 그냥 조용히 지내면서 밉보이지 않아야 되는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은 딱히 이용하기 너무 좋잖아. (……) 우리는 가진 힘이 없잖아요. 근데 나중에 우리가 잘 살고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 막 무력행사가 아니라 힘이 있다는 모습만이라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해서 그냥 이제 지금은 좀 조용히 있어야 되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귀신무리’에 몰입한 탈북 청년)

  이렇게 그는 점진적인 성장을 소망하고 있었다. 그는 탈북민들의 무리한 동화 추구나 눈에 띄는 일탈의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깊이 있게 사유한 결과로 평범과 인내의 길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비형-길달-귀신무리’의 입장에 몰입한 탈북 청년들은 각각 다른 삶의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 탈북에서 출발하여 동화와 비동화, 혹은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자기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삶의 서사일지 필자 역시 아직은 잘 모르겠다.

3. ‘진짜 나’로 살기 위한 정신적 탐색의 여정들

  비형의 이야기로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필자는 작품과 현실 세계를 연결하며 ‘이 사회의 편견과 배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덧붙여 탈북민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정치적 선동 문제나 탈남 현상 등)을 거론하며 탈북민들의 행보에 다양한 의미가 붙는 상황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민으로서 여러분이 어떻게 대처해 나갈 생각인지를 물었다.

억지로 쓰는 왕관은 사양합니다.(탈북 청년 4)

  MZ세대의 성향을 드러낸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 자격과 지위를 부여하며 선도적인 역할을 강요하지 말라는 일침이었다. 개인주의적 특성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고, 이전 세대를 바라보면서 집단주의의 한계를 직접 체감했기 때문에 집단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기대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고무적인 점은 ‘남한 출신’인 필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탈북민 전체를 위해서 소수의 일탈은 경계해야 하고 우리가 모범 사례를 만들어 가겠다고 답변을 하고 말았으면 그만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탈북 청년이 필자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참 맞는 말이기도 했다. 필자는 상담자에게 금지된 개인 삶에 대한 개입이었다고 반성했고, 이들의 차가운 답변에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들었다.
  탈북 청년들은 진짜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어차피 여기 있다가 견디기 힘들어서 가는 사람들 뭐 그런 사람들이 욕할 건 못 되죠. (여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세상이었고 그냥 나랑 잘 안 맞는 거면 갈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굳이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단체로 욕먹는다고 해서 사실 나한테 직접적으로 와닿는 건 없어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요.(탈북 청년 4)

근데 그 사람이 솔직히 거기서도 경험해 보고 여기서도 많은 걸 경험해 봤잖아요. 경험해 봤음에도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한 거는 진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뭔가 있으니까 넘어갔을 건데. 그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막 비난하거나 그러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북한에서 선전물이 필요했을 수도 있잖아요. 협박을 당했을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어요.(탈북 청년 5)

  이들의 말은 윗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분단의 벽을 뛰어넘는 인권에 대한 생각, 한쪽으로 쏠린 편협한 정의가 아닌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한 윤리적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탈북 청년들은 남한 주민들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남한 주민들이 굳이 탈북민을 이해해 줘야 하는 의무도 없고, 남한 주민에게 꼭 필요한 일도 아니라면서 그 시선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 현실적인 판단이었고, 주류 집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또 남한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 탈북민에 대해서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탈북민들이 여기 왔다고 해서 꼭 여기에 맞춰서 생활하기보다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이들은 ‘만들어진 동화 의식’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맹목적인 동화 의식은 남한 사회 중심 집단을 향한 의존성을 야기할 수도 있으며 또 그 허상의 빈 곳이 어느 순간 갈등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진실을 알기에 ‘맹목적인 동화’가 정답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의 발언도 있었다.

가끔씩은 저는 (남한) 친구에게 “너희는 분단된 나라에서 살았지. 난 통일된 나라 양쪽 다 살아 봤다” 이렇게도 이야기해요.(탈북 청년 7)

  북과 남에서 양쪽에서 살아봤던 자기 경험은 소중하다는 발언이었다. 남한 사회에서 북한 출신자로서 경험한 ‘경계선’을 넘어선 생각이 여기 있었다. 이는 맹목적인 동화나 좌절된 일탈 의식이 아닌, 양쪽 사회를 모두 경험한 특별한 존재로서의 그 특수성을 보유하면서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만족하는 사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 [© 픽사베이]

  지난날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는 ‘이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농경사회의 문화적 관습으로 정착의 삶을 긍정했고, 이주는 불행한 운명으로 평가했다. 이를 떨쳐내고 이주의 생애를 마냥 긍정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탈북민에게 붙은 꼬리표인 이념의 문제, 경제적 난민이라는 프레임 등은 이들이 이주 사건을 더욱 불행하게 여기게 만든다. 그래서 이전 세대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난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소수 탈북민의 일탈에 대해서도 자신과의 선 긋기를 강조하거나 강한 처벌 의식을 드러내면서 남한 주민을 의식하는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이들은 분단 구조 속에서 자기 정체성이나 삶의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도 하고, 중심 집단으로의 동화 이외에 다른 길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반면, 탈북을 ‘선택’하는 새로운 세대들은 자기 삶에 대한 행복과 자율성 추구가 우선시되는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남한 사회의 편견과 배제 문제, 이 사회가 나를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로 더욱 복합적인 사유를 할 수밖에 없다. 맹목적인 동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이나 경계 안팎으로만 자신을 한정하지 않는다는 자율적 의지, 그리고 탈북민 내에서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며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유가 가능했던 까닭도 탈북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인간 사회에서 ‘이주’는 불행의 원인이 아니라, 행복하고 능동적인 삶의 조건으로 부상했다. 이주를 선택한 새로운 세대는 정체성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여건과 환경에 따라 선택하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탈북 청년들도 특정 가치에 매달리지 않고 자기 삶에 기능적인 정체성을 선택하여, 자신의 진짜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그 길이 외롭고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도록 응원하는 것이 필자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각주

1) 북의 민간에서 운영하는 시장을 말하는데,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배급제가 붕괴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민간 시장이다. 돈주(자본가)의 팽창, 밀수업 증가 등 문제를 낳았기도 했지만 최근까지 북한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길로 알려져 있다.

2) 강원철, 「북한 장마당 세대의 통일의식 변화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6.

3) 김성경, 「북한 청년의 세대적 ‘마음’과 문화적 실천: 북한 ‘사이(in-between) 세대’의 혼종적 정체성」, 《통일연구》 19, 2015, 5-39쪽.

4) 김정은은 2021년 4월 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 대회에서 “지금 새세대들의 사상‧정신 상태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청년 교양 문제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문제”이며 “지금 청년 세대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자라다 보니 사회주의 우월성에 대한 경험과 표상이 부족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갖가지 청년 교육 정책이 나타났다(강동완‧유판덕, 「북한 일용품 포장지를 통해서 본 북한 사회: 개별 일용품 특징과 정치, 경제, 사회적 함의를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34(1), 2022, 41-71쪽).

5) 이 사회 계층 제도는 사람을 3대 계층과 56계 부류로 분류하며 별도의 25개 성분으로 구분한다. 『2022년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사람을 ‘출생 당시 경제적 조건, 가정의 계급적 토대, 본인의 사회정치적 생활 경위, 역사 발전의 특수성과 계급관계’ 등의 조건을 따라 계급을 분류한다(통일연구원, 『2022 북한인권백서』, 통일연구원, 2023).

6) 박일용, 「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인귀교환(人鬼交驩): 「도화녀 비형랑(桃花女 鼻荊郞)」의 정치·신화적(政治·神話的) 함의를 중심으로」, 《일본학연구》 50, 2017, 79쪽.

7) 여기에서 ‘경계’ 혹은 ‘탈경계’라는 용어는 윤보영의 연구를 참조하여 적용했다. 그는 경계인(marginal man) 개념을 사용하여 탈북민이 남한에서 경험하는 사회화의 의미를 해석하고, “두 문화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규범을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탈경계’ 의미를 제시한 바 있다(윤보영, 「경계인 이론을 통한 남한 정착 북한이탈주민 이해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연구》 22(3), 2015, 187-216쪽; 윤보영, 「경계/탈경계의 단계별 유형화를 위한 시도: 자율적 삶을 추구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례연구」, 《북한연구학회보》 20(2), 2016, 63-92쪽).

8) 지금부터 소개하는 문학치료 내용은 이미 학술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박재인, 「『삼국유사』 「비형 이야기」를 통해 본 탈북 청년들의 (탈)경계인으로서 자기서사」, 《문학치료연구》 63, 2022, 103-147쪽).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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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치료 전문가로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5년 「한중일 조왕서사를 통해 본 가정 내 책임과 욕망의 조정 원리와 그 문학치료학적 의미」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문학치료 상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와 학술논문으로는 『탈북민을 위한 문학치료』(2018), 「문학치료 상담에서 나타나는 문학행위 반복 현상과 ‘직면’의 치료적 효과」(20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