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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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2부 하와이, 무지개가 머무는 주도(洲島)

홍기돈

  이곳 날씨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다가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는 일이 흔하다. 그러고는 이내 그런 적 없다는 듯 햇볕이 다시 따가워진다. 분명히 해가 저렇게 떴는데 비가 툭툭 내리기도 한다. 하루에 서너 번 무지개를 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몽골에서는 일찍이 우리나라를 ‘무지개 뜨는 나라’라고 불렀다던데, 하와이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우리나라를 달리 불렀을 것이 틀림없다.


하와이에는 무지개가 자주 뜬다.

  하와이가 ‘무지개 머무르는 주도(洲島)’라는 사실은 차량번호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자와 숫자가 표기된 배경으로 무지개가 예쁘장하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번호판 아래쪽에는 “ALOHA STATE”라는 단어도 새겨져 있다. 차량번호판을 보노라면 이곳 사람들의 친절한 심성이 문득 겹쳐서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우쿨렐레 반주로 이즈가 부르는 의 가사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도 여기가 하와이인 까닭이다. 본명이 이즈라엘 카마카위올레(Israel Kaʻanoʻi Kamakawiwoʻole)인 브라다 이즈는 하와이 출생으로 하와이 주권 운동가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ve heard of once in a lullaby.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 높은 그곳에
어릴 적 자장가에서 들었던 동화 같은 곳이 있어요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이 파랗고
당신이 바라는 모든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이지요.


하와이 차량번호판에는 무지개가 가로지르고 있다.

  2023년 4월 15일은 허공에 걸쳐 있는 무지개 대신 땅 위에 펼쳐진 무지개를 보았던 날이다. 지난 서너 달 동안 월요일, 수요일마다 첫째 딸 서희는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등교했다. 스페셜 올림픽에 나가느라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4월 15일, 서희는 드디어 장애 학생들과 보조를 맞춰 진행하는 계주 종목 선수로 트랙 위에 섰다. 지역 예선이 치러지는 헨리카이저고등학교(Henry J. Kaiser High School)에는 초등학교뿐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는 물론 사회단체의 팀들까지도 모여들었다. 각 단체를 나타내는 색깔의 유니폼이 어우러져 입장하는 개막식 장면은 영락없이 무지개가 펼쳐진 풍경이었다.
  시합이라고는 하지만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양새를 보면 자기편 선수들만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힘겹게 휠체어 바퀴를 굴려 15미터 거리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선수를 응원하느라 나 또한 생면부지 선수의 이름을 큰 소리로 연호하며 손뼉을 힘차게 쳤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가 어느 팀 선수인지 알지 못한다. 예선이라고 하니까 본선 진출할 팀을 가리는 절차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본선 치르기 전에 출전할 팀들이 한데 모여 진행하는 시합 혹은 행사를 예선이라 부르는 것이다. 서희가 속한 계주팀은 네 팀 가운데 네 번째로 결승선에 들어왔다. 세 번째 주자가 갑자기 바통 받기를 거부했고, 심통 부리는 세 번째 주자를 교사와 부모가 트랙 바깥에서 달래느라 늦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한 덕분에 서희네 팀도 목에 메달을 걸 수 있었다.


헨리카이저고등학교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의 선수단 입장 장면

  이즈가 부르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스페셜 올림픽은 이곳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알로하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나에게 알로하 정신이란 말을 가르쳐준 사람들은 주먹을 쥔 채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 펴는 ‘샤카(shaka)’ 동작으로 인사했다. 환대, 격려, 고마움 등의 마음을 담고 있는 샤카는 1900년대 초에 등장했다고 한다. 사탕수수 공장에서 작업하던 하마나 카릴리(Hamana Kalili)는 어느 날 오른손이 사탕수수 압착기 롤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검지·중지·약지를 잃었어도 카릴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환하게 오른손을 흔들며 인사했던바, 그 낙관적인 태도가 인사 방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샤카가 알로하 정신의 일단을 담아내고 있듯이, 스페셜 올림픽 또한 알로하 정신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알로하 정신은 다양한 국가에서 모여든 각 디아스포라의 공존 가운데서 운영되어야 했던 하와이의 사회 질서와 연동하면서 더욱 넓게 확산하지 않았을까. 하와이의 모든 대중버스가 저상버스로 운행하고 있는 것도 알로하 정신과 무관치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비행기를 탔는데도 한국에서 하와이로 건너올 때 아홉 시간 가까이 걸렸다. 지금껏 내가 경험했던 여행 가운데 가장 먼 거리이다. 한국을 떠나오기 며칠 전 노나메기민중사상연구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박경석 대표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요즘 인터넷에는 박경석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면서 지하철·버스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여론은 출근길을 방해하는 박경석 대표와 전장연에 지극히 좋지 않게 형성된 상황이다. 시민들의 불편·불만이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존중되지 못하는 한국 실정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니 새삼 하와이와 한국 사이의 거리를 절감할 수밖에. 대한민국은 아무래도 알로하 정신의 하와이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무지개가 머무는 그 먼 곳에서 나는 이즈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듣고 있다.

필자 약력
홍기돈 프로필 사진.JPG

제주 출생. 199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학비평가로 등단했다. 중앙대학교에서 1996년 ‘김수영 시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3년 ‘김동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평론집 『페르세우스의 방패』(백의), 『인공낙원의 뒷골목』(실천문학), 『문학권력 논쟁, 이후』(예옥), 『초월과 저항』(역락), 연구서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소명출판), 『김동리 연구』(소명출판), 『민족의식의 사상사와 한국근대문학』(소명출판), 산문집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삶창) 등이 있다. 2007년 제8회 젊은평론가상(한국문학가협회 주관)을 수상했으며, 《비평과 전망》, 《시경》, 《작가세계》 등에서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