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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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현장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소개

이태복

문인협회 25년 활동이 아로새긴 인도네시아 이민 100년사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는 한국 문단의 중심인 한국문인협회 8개의 해외 지부 가운데 한 곳으로 2017년 지부로 인준받았다. 개인의 창작 의욕과 자기 발전을 도모하고 한인사회의 일원으로서 문학을 통한 문화 교류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문인들의 모임으로 현재 약 30여 명의 회원이 시, 소설, 수필, 칼럼 등의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기성 문인 또는 글을 쓰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정해진 절차를 통하여 누구나 활동할 수 있으며, 매년 1월에 시행하는 <적도문학상>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예비 작가 및 한국어를 전공한 현지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고 차세대 문학인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한인들의 정서적 소통과 화합을 위한 문학 행사의 하나로 지방 한인 단체로 찾아가는 시 낭송회, 시화 전시회, 명사 초청 문학 강연 등을 개최했다.

1. 태동기(2001-2006)

  2001년 1월, 최준, 이상기, 김명지 시인들을 중심으로 재인도네시아 한인문인협회를 결성하고 김명지 시인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해 11월에는 최준 시인의 지도로 제1회 한국 청소년 백일장 및 <시 창작 교실>을 개최했다. 그리고 매년 시 낭송회를 개최하여 문학을 통한 한인들의 유대 관계를 더욱 견고히 했다. 2006년까지 매년 행사가 이어졌으나 회원들의 개인 사정과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문인협회는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최준 시인은 귀국 후, 시집 『뿔라부안 라뚜 해안의 고양이』(2009)를 내고 당시 시인이 겪은 인도네시아를 세밀한 감성으로 소개했다.

2. 재결성(2010-2015)

  2010년 1월, 인도네시아 한인문인협회 재결성의 기회를 맞이한다. 제2대 회장 한상재, 총무 박정자, 재창단 회원으로 김문환, 김은숙, 김성월, 서미숙, 사공경, 채인숙, 손인식, 이상기, 정선, 이승훈이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한인문인협회’ 운영 규정을 제정하고 자카르타, 수라바야 등에서 시 낭송회 개최를 통해 한인사회의 소통과 결속을 이어 나가게 된다.
  2013년에는 고국에서 이주한 김주명 시인과 고(故) 김길녀 시인, 평론가 신영덕, 아동문학가 이전순 등이 참여하면서 비로소 동인지 《사람과 문학》 제1호를 발간했다. 또한 김문환 회원의 『적도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혼』, 서미숙 감사의 두 번째 수필집 『적도에서의 산책』 등 회원들의 출간이 이어졌다. 아울러 외부 문학 공모전에서도 최장오 회원이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한 활동이 이어졌다. 2014년에는 동인지 2집을 발간했고, 그중에 수록된 시 한 편을 골랐다.

새벽을 맞는다
눈을 뜨고 보는 세상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서 들리는 소쩍새처럼
일찍 눈 뜬 한 마리 새가
작고 분명한 소리로
반복해서 아침을 깨우고 있다
일상처럼 눈을 뜨지만
조금은 무거운 마음
내려놓기에 부족한 부분들
흠집 난 시간을
차분하게
새벽 공기가 메운다
―이태복, 「쉰 다섯, 잠에서 깨어」 전문, 《사람과 문학》 2호, 2014.

  이태복 시인이 사업가에서 문인으로, 예인(藝人)으로 삶의 전환점을 바꾸면서 인간적인 번민과 두려움을 비추려고 쓴 작품이다. 당시에는 누구도 몰랐다. 이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의 인생과 우리 문학사에 어떤 자취를 남길지…….

  2015년에도 활발한 회원들의 활동이 이어졌다. 김주명 회원이 첫 시집 『인도네시아』를 발간했으며, 이태복 시인은 계간 《문장》 시 부문 신인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번갈아 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이 시인은 첫 시집 『민들레 적도』를 발간했다. 그해 5월에는 “시에게 길을 묻다/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주제로 도종환 시인의 초청강연회를 자카르타 한국문화원에서 가졌으며 동시에 이태복의 서양화와 김성월의 사진 공동 전시회 <붓과 렌즈로 담은 인도네시아>가 열렸다.

3. 도약기(2016-2020)

  2016년 정호승, 문정희 시인이 방문, 특강과 교류를 하면서 ‘재인니 한인문인협회’는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로 개편됐고 이듬해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지부 인준을 받았다. 서미숙 회장이 초대 지부장을 맡았다. 아울러 문인협회 자체 공모전을 <적도문학상>으로 확대 개편하여, 2017년 문효치 이사장과 이광복, 지연희 부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적도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 그리고 회원들의 창작 동기 부여를 위해 이태복 시인이 사는 중부 자바, 암바라와로 문학 기행을 떠나게 된다. 당시의 느낌을 옮긴 김준규 시인의 시를 동인지 4집에서 옮겨본다.

삼백 년 환난의 역사가 시작되던 날
인도네시아의 중부 자바
암바라와 가는 길은
교활한 침략자의 눈빛이
적도의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침략자들이 칼춤 추며
놀이 굿을 하던 황량한 벌판은
착하고 아둔한 이들의 피가 시내를 이루었으리
점령자들이 쌓아 올린 철옹성은 그들의 무덤이 되어
붉은 벽돌집 처마 끝 썩은 물은 아직도 고여 있다.

지척이 천 리 같은 도랑을 건너
구름 같은 산으로 에워싼
지옥보다 못한 황량한 일터엔
이름 모를 새들만 떠돌고 있다

원통하게도 점령자들 중에는
나라 잃은 조선인도 있었다니
온몸을 휘감고 도는 끈끈한 열풍은
그때의 절규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암바라와 가는 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가시 무덤이었다고
―김준규, 「암바라와(ambarawa) 답사기」 전문, 《사람과 사회》 4호, 2017.

  이 시기 <적도문학상>을 통해 발굴된 신인 작가들이 한국 문단에도 문을 두드려 데뷔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집 또한 연이어 출간되었다. 2018년에는, 김주명 시인의 시집 『바타비아 선』, 김준규 시인의 시집 『보딩패스』가 출간되었다. 2019년에는 서미숙 시인의 『적도의 노래』, 이태복 시인의 시집 『자바의 꿈』 출판기념회를 자카르타에서 개최했으며, 이듬해 하연수 감사의 수필집 『그 벽에서 멈추다』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전현진 회원이 2020년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맥심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문협의 활동 역량을 소설 부문까지 넓혀갔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단절된 시기에도 회원들은 꾸준히 창작했고 김우재 고문이 시집 『무궁화 꽃 피고』를, 김재구 시인이 『파파야나무』를 출간했다.

제5회 적도문학상 시상식

4. 성숙기(2022-현재)

  2022년 7월, 코로나의 터널을 막 빠져나오자 인도네시아 문인협회도 재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만장일치로 추대된 김준규 신임회장을 중심으로 회원의 창작 활동, 고국의 작가와 교류 행사, 신인 작가 발굴이라는 문인협회의 세 가지 과제에 활동을 모았다. 이에 발맞춰 이태복 시인이 장편소설 『암바라와』를 발간했다,
  소설 『암바라와』는 우리 민족 ‘한(恨)’의 정서를 이역만리,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의 자바에서 헤쳐내고 있다. 자바를 점령한 제국주의 일본은 유럽인들을 포로로 수용하고 이를 지키고 감시할 초병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조선에서 강제로 또는 그럴싸한 꾐으로 포로 감시 군무원을 모집했으며, 3천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 일본 군무원을 인도네시아 전역에 배치했다. 이곳 암바라와를 위시한 자바 수용소에는 우리의 조선인이 700명에서 1,000여 명가량 배치되었다고 한다. 암바라와에 일본인 군속을 따라 전개된 조선인 위안부 수용소가 요새와 7-8미터 거리를 두고 축사처럼 연립으로 지어졌다.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문학기행 암바라와 답사

  2017년, 중부 자바의 살라티가로 거처를 옮긴 사산자바문화연구원의 이태복 원장은 비로소 참담했던 위안부 수용소 현장을 찾았고, 인도네시아 전역의 조선 포로 감시원과 위안부의 흔적을 찾아 동티모르에서 동부 자바 수라바야까지, 오지 현장을 뛰어다니며 채록하고 글을 썼다. 채록한 세월만 5년이 넘고 역사소설이기에 정확한 사실을 쓰기 위해 새로 고쳐 쓴 횟수만 25번이다. 부분적 퇴고까지 합하면 30번은 족히 넘는다.
  우리 조선인은 태평양전쟁에서 철저한 피해자였건만,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인 가해자의 신분으로 유럽인 포로들을 감시하는 노릇을 했다고 하니, 이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도 모자라 전쟁이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잔혹사를 감내해야 했다. 소설에서 그려냈다고는 하지만 강제로 끌려온 일본인 신분의 감시원이었던 조선 청년들은 비밀리에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고 조선의 독립을 위한 거사를 도모했다. 1945년 1월 3일에서 5일까지 일으킨 ‘암바라와 거사’에서 민영학, 손양섭, 노병한 열사가 일본군 12명을 사살하고 쫓기자 조직의 비밀을 지키려고 서로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겨 자결했다. 이어 8일 싱가포르로 수송하는 연합군 포로 1,200명이 탄 ‘수미레 마루호 탈취 거사’는 실패로 끝났다. 강제징용되어 온 조선 청년들의 항일 운동과 독립에 대한 염원이 소설 곳곳에 배어 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패전으로 전격 철수하자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누구도 조선인 일본 군무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합군 측에서는 조선인 일본 군무원도 일본군으로 간주해 전범으로 심판하고 처형했으니, 그 억울함과 애통함을 어디에도 표명할 수조차 없었다. 일본군의 철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남겨진 무국적자 조선인 군무원들, 그리고 돌아갈 길 없는 조선인 위안부 여인들, 그들은 저 초록의 바다에 갇혀 서로를 깊게 응시했을 것이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연합군의 한 축이었던 네덜란드군의 상륙을 거부하고 전쟁에 돌입했다. 소설에서는 한국인이면서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는 양칠성의 이야기도 함께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일본군 무기고를 개방하고 인도네시아 군인들에게 무기를 전달했으며, 네덜란드 군인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이윽고 연합군도 철수했으며 인도네시아는 오랜 식민 통치를 마감하고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돌아갈 조국이 있어도 바다를 건너지 못한 이방인 조선인들, 이곳 자바섬에서 살아간 슬프고도 긴 생을 소설에서는 자바인의 특유한 정서에 녹여 내고 있다. 그리고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 다 피지 못하고 스러져간 조선 소녀의 엷은 자취는 이곳 자바 곳곳에 바람처럼 떠돌고 있다.
  이태복 작가는 우리에게 삶의 화두 같은 질문을 소설 속에서 던진다.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 자바 땅, 초록의 암바라와 평원에 서 있다. 누가 나를 이곳에 세웠는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더 이상의 일본군도, 조선인 군인도, 소녀 위안부도 없다. 포로가 된 유럽인들도 없다. 남겨진 것이 있다면 어두운 적막으로 초록의 긴 그늘이 그날의 요새를 덮고 있을 뿐이다.
  『암바라와』의 출판기념회를 안동, 경북도청에서 가졌다.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본 한국작가회의 대경지부는 소설의 현장을 탐방해 보고 싶어 했다. 이에 우리 문인협회가 초청하여 자카르타에서 두 단체의 MOU를 체결했으며, 암바라와 답사 등 작가 교류 행사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소설이 그려낸 조선인 포로 감시원과 위안부 역사는 인도네시아의 아픈 한인 진출사이며 인류 전쟁사에 없었던 군인 성노예를 공식 제도화한 비극이다. 지금은 암바라와 위안부 수용소에 ‘태평양전쟁 희생자추모비’가 설립 중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추도비

  한편으로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동인지 발간을 위해 다시 원고를 모았다. 2023년 11월, 회원들의 작품들을 모아 동인지 《인도네시아 문학》 제8호를 발간했다. 이에 맞춰 김준규 회장은 두 번째 시집 『낙엽의 귀향』과 수필집 『저 바람 속에 운명의 노래가』를 함께 출간했다. 2023년에는 유망한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한 적도문학상을 다시 개최했다. 시, 소설, 수필의 세 분야에 걸쳐 공모했으며, 15명의 문학 신인들이 수상했다. 제5회 적도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인 윤세귀의 「건기(乾期)와 우기(雨期) 사이」를 인용하면서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의 간략한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건기(乾期)와 우기(雨期) 사이

  여름내 머물던 화상의 상처가 빈 들을 핥아먹은 날 선 바람에 적당한 긴장도 없이 슬픈 중력으로 가라앉으면 시월 사각(死角)의 선에 걸어 둔 흐릿한 입김이 흙바닥에 먼저 누운 무덤을 찾아 채비도 없이 떠난 억울한 유배인의 비석을 기어이 파내 한 줌 시무룩한 비구름으로 등을 적신다

  습관에서 출발한 균열이 눈을 떠도, 또는 눈을 감아도, 한 평의 그늘조차 허락받지 못해 불편한 복판을 사연도 없이 가로지른다 누군가 뱉어버린 볕의 흔적과 미처 담지 못한 별의 기다림이 이것과 그것 사이를 오가다 불쾌한 잿빛 청구서로 빈 하늘 저편에 토해낸 정오의 임종을 지키며 젖어오는 가장자리부터 보상도 없이 임시 저장을 시작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말라붙은 그늘이 미련한 세월의 토악질을 양분으로 자라 진흙탕에서 시작한 비열한 담금질로 매일 단정하게 시들어가는 나를 베어 남겨진 어둠을 갈라 먹는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완벽한 균형은 없었다 사실 시작과 끝도 생각만큼 이어지지도 않았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이 분명했지만 누구도 입 밖에 내기에는 아픈 트리거였다. 가끔 알 수 없는 속임수로 예고도 없이 방문할 때조차, 선 새벽의 벼랑에서는 말라붙은 바람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힘겹게 세워놓은 날 선 비탈의 달리기를 멈추고 건기와 우기를 번갈아 오가던 사이 어딘가에 기대 먼저 누운 별들이 미처 지키지 못한 임종을 보내며 흔해빠진 쇼팽의 녹턴을 연주할 것이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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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경북 예천 출생. 1993년 포항제철 퇴사 후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 2015년 ‘붓과 렌즈로 보는 인도네시아’ 서양화 개인전(자카르타)을 개최했다. 2016년 계간 《문장》 시 부분 신인상, 2017년 재외동포 문학상 시 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2018년 ‘암바라와 위안부 사진전’(대구 국립중앙 도서관)을 개최했다. 현재 중부 자바 살라띠가의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과 한국문인협회 인니지부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 『민들레 적도』, 『자바의 꿈』, 소설 『암바라와』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