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7호
'탈북인' 이야기가 아닌 '삶'의 이야기
이상숙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와 영화 〈로기완〉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1)는 방송작가 김이 탈북인 로기완을 찾아 브뤼셀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김 작가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시청자들의 성금으로 그들을 돕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우연히 본 시사 잡지에는 “벨기에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탈북인” 두 명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중 한 명인 ‘이니셜 L’이 로기완이었다. 신경섬유종을 앓는 소녀 윤주의 사연을 기획하고 있던 김 작가와 제작진은 방송 시기에 맞춰 수술을 늦추는 결정을 한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에 방송하는 것이 시청률도 높고 성금도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늘 밝은 모습으로 김 작가를 따르는 윤주를 위한 선의의 결정이었지만 수술이 지연된 사이 윤주의 종양은 악화되었고 윤주가 받아야 할 수술은 한쪽 귀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 되어 버렸다. 이 충격에 김 작가는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브뤼셀로 온다. 손끝에 이유 없이 불편하게 남아 있던 로기완의 한 문장이 자신을 그곳으로 이끌었다고 김 작가는 생각한다. 여권은커녕 명함이나 주소 등 자신을 증명할 그 어떤 기록도 없이 브뤼셀에 도착한 탈북인 로기완처럼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김 작가 역시 외롭고 막막했고 고통스러웠다. 난민 단체에서 일하는 전직 의사 박은 김 작가에게 3년 전 로기완의 일기를 건네준다. 로기완의 일기에 적힌 로기완의 행적을 짚어 가며 이니셜 L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로기완은 1987년 5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났다. 로가 다섯 살 때 그의 아버지는 탄광에서 죽었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북한을 탈출하여 연길에서 숨어 지냈다. 성인 남자 로기완은 중국 공안의 눈에 띄어 송환될 수도 있어 집에서 숨어 지내야 했고 어머니는 밖에 나가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죽었다. 로기완은 어머니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오히려 그 시신을 병원에 넘긴 돈을 받아 들고 연길을 떠나 북한 이탈 주민에게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는 벨기에로 왔다. 그리고 공항에서 헤어진 브로커의 말 한마디에 의지해 ‘국제기구가 많아 함부로 사람을 잡아가지 않을 곳, 여러 곳에서 온 난민이 많아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는 곳’ 브뤼셀로 왔다.
인민학교 시절 북한에 닥친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에 겪은 기아와 자연재해, 탈북 후 송환의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내는 생활, 어머니의 시신을 넘기고 받은 돈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자신의 고향과 조국이 얼마나 참혹한 곳이었는지를 설명하고 불행한 운명의 격랑을 헤치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 잘 곳 없이 떠돌다 공원 벤치에 쓰러진 브뤼셀 생활까지. 로기완이 겪은 고통은 탈북인이 아니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북한의 참상과 탈북 과정에서 그들이 겪은 참혹함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김 작가가 탈북인 로기완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지만 김 작가를 이끈 것은 로기완의 고통스러운 ‘탈북기(脫北記)’가 아닌 그의 말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124쪽)였다. 김 작가가 따라간 것은, 3년 전 겨울 브뤼셀에서 보낸 로기완의 살기 힘든 고통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럼에도, 그래서’ ‘살아야 하는’ 삶의 이야기였다.
김 작가는 윤주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왔다. 윤주의 얼굴도 목소리도 보고 들을 자신이 없었고 윤주의 힘든 시간을 지켜볼 용기도 나지 않았으며 힘든 수술 과정에 함께 있어 줄 힘도 없었다. 윤주와 보낸 따뜻한 시간, 윤주를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은 사라지고 후회와 자책만이 남았다. 자신을 갉아먹는 후회와 자책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이던 김 작가는 같이 방송을 제작하던 피디이자 연인인 재이와의 관계도 어그러뜨리며 “로기완에 대한 글을 쓰겠다”며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왔다. ‘나 때문에 윤주의 삶은 더 불행해졌다’는 사실을 직면할 수도 그것을 해결할 수도 없었기에 그저 떠나온 것 같지만 사실 몇 년 전 ‘불편하게 김 작가의 손끝에 남아 있던’ 로기완의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라는 말이 김 작가를 이끌었던 것이다. 로기완의 일기를 넘기며 그의 시간을 따라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김 작가는 탈북인 로기완의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라 ‘그래도, 그럼에도, 그래서 살아야 하는’ 도저한 삶의 모습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목숨값으로 받은 돈이 떨어지자 로기완은 노숙자로 떠돌다 공원에서 쓰러진다. 로기완을 발견한 경찰은 그를 고아원으로 데리고 간다. ‘고난의 행군기’ 못 먹고 자란 그는 성인임에도 어린애같이 작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아원에서 힘들었지만 로기완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그래서,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았다. 오랜 도전 끝에 난민 지위도 받고 임시 숙소에, 임시 일자리나마 얻으며 안정된 생활을 했고 마음을 나누는 여자 친구 라이카도 만나게 된다. 불법체류자였던 라이카를 영국으로 보내고 자신도 어렵게 얻은 난민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라이카를 만나러 영국으로 떠난다. 로기완의 일기가 끝날 무렵 김 작가는 드디어 윤주에게 전화를 건다. 매일 밤 윤주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도저히 전화를 걸 수 없었지만 로기완의 힘겨운 삶을 함께 되짚어 온 김 작가는 이제 ‘그래도, 그래서 살아야 하는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늦어진 수술로 잃어버린 윤주의 오른쪽 귀는 매일 밤 김 작가에게 찾아와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윤주와 나눈 짧은 통화는 김 작가에게 이제는 돌아가 윤주와 함께 살아갈 힘을 준다.
“
침묵이 흐른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바로 그 순간이다. 미, 안, 해. 미, 안, 해. 들은 걸까. 언니. 그 애가 나를 부른다. 그리고 이어진, 그 애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실어다 준 여린 문장 하나를 듣는 순간 나는 스르르 주저앉고 만다. 윤주가 들려준 그 문장 역시 즉흥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그 애도 나처럼 그 문장을 입안에 숨겨 두고 틈틈이 꺼내어 연습해 오지 않았을까. (……) 윤주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괜찮아, 윤주야, 나는 정말 괜찮아.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너의 오른쪽 귀는 내가 영원히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을게. 그 귀가 끝내 하지 못한 말, 그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살아갈 터이다. 그러나 윤주야, 너는 이제 네 앞의 괴물과는 싸우지 마. 그건 승패가 없는, 이겨도 진 것과 같은 소모적인 게임일 뿐일 테니.2)
”
어린 윤주는 김 작가에게 “잘 지내요, 언니?”라고 먼저 묻는다. 그리고 미안함에 먹먹해하는 김 작가에게 “충분하다”고 말해 준다. 김 작가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충분히 미안해했으니 괜찮다고 그리고 나는 여전히 김 작가를 ‘언니’로 생각하고 있다고. 윤주는 “여전히 나를 외롭지 않게 하는, 내 혼란과 불안이 모두 이해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고 김 작가는 이에 위안을 받는다. 서로에게 미안함으로 괴로워했지만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위안받는 두 사람. 그 위안은 삶의 의지로 이어진다. 김 작가는 윤주에게 “런던에서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이번엔 늦지 않겠다고, 너무 늦어버려서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또 그렇게 외면하며 지나가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노라고 빠르게 말한다. “미, 안, 해.”에서 시작된 일이다.
우리는 생활에서 “미안”이라고 자주 말하지만 “미, 안, 해.”라는 말은 그리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자책과 후회 속에 허우적대다 겨우겨우 꺼내는 힘겨운 용기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꽤 여러 겹의 감정이 섞인 말이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다, 후회한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잘못으로 네가 힘들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너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에 공감한다, 너의 고통에 나의 마음이 아프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것은 그래서 괴로웠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다. 사랑했기에 미안한 것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며 사랑을 고백했기에 그들은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3년 전 로기완의 난민 신청을 도왔던 박은 로기완의 흔적을 찾아온 김 작가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내주는 호의를 베푼다. 그는 프랑스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은퇴해 이제는 브뤼셀에서 난민 단체에서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로기완처럼 탈북인인 그는 난민을 신청한 사람이 진짜 북한 주민인지를 판별하는 일을 한다. 로기완도 그렇게 만났다. 탈북 후 어머니를 잃은 로기완처럼 박도 탈북 후 어머니를 잃었고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온갖 고생 끝에 의사가 되었다.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의사를 그만두었다. 로기완에게서 젊었을 적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인지 박은 로기완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힘껏 도왔고 로기완은 그에게 자신의 일기를 맡길 정도로 둘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박은 김 작가도 돕는다. 로기완 찾기에 진심으로 몰두하는 김 작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로기완의 일기를 건네고 김 작가가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윤주와의 통화를 마치고 환한 얼굴이 된 김 작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180쪽) 박은 이미 김 작가의 고통을 알고 있었고 그 고통이 자신이 겪는 고통과 다르지 않은 ‘미안함’에서 나온 것임도 알고 있었다.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아내를 보다 못해 아내의 요청대로 안락사를 도운 자신도 그 미안함과 자책에서 벗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늘 자신에게 한 치의 관용도 없이 엄격했다. 그래서 존엄한 생의 마무리를 원하는 아내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런 아내의 안락사를 돕는 행동은 아내에 대한 크나큰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아내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아프지는 않았는지 평화로웠는지 들은 바 없고 지금도 여전히 그때를 상상할 힘도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이 한 생애를 마무리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말은 김 작가만을 향한 말은 아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하긴, 내가 이미 말한 적이 있지요. 김 작가나 그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한 치의 관용도 베풀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오” “그러셨죠” “그러고 보니…….” “…….” “닮았군요, 눈매도, 입매도, 여기저기, 아주 조금씩, 사실…… 그 사람도 글을 쓰고 싶어했지. 늘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어.” “…….” 내 어깨에 닿았던 박의 팔이 스르르 내려온다. 잘못 본 것일까. 박의 눈동자에 습기가 어렸다고 생각한 순간, 박은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내게 다가와 예상치 못한 간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소?” “말씀하세요.”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번, 말해주겠소?” (……) 박은 심하게 떨리던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다. 뜨거운 손이었다. 마치 자신이 완성한 조각품을 만져보는 예술가처럼, 혹은 지금 막 떠나온 육체를 애틋하게 지켜보는 한 줌의 영혼처럼 박은 천천히 내 얼굴을 정성스럽게 매만지기 시작한다. 눈가와 입가, 그리고 턱선과 양쪽 뺨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서 나는 한 생애를 느낀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손길에 모두 들어 있다. “……고생했소. 평생을 고생이 많았지.” 박의 그 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는 두 팔을 벌려 박을 안는다.3)
”
박은 자신과 닮은 로기완과 아내와 닮은 김 작가를 도왔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도왔다. 김 작가를 통해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고통 없이 자연스러웠으며 평화로웠음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래도, 그래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 소설은 탈북인 로기완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안함과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은 김 작가에게 영국에 있는 로기완의 주소를 알려 준다. 김 작가는 영국으로 건너가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라이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로기완을 만난다. 로기완에게 일기를 돌려주고 박이 언젠가는 로기완을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전해 준다. 이렇게 서로 닮은 세 명은 만나고 이어지고 연결된다.
▲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 넷플릭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가 출간된 지 13년이 지난 2024년 영화 〈로기완〉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되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이름 또한 로기완이지만 영화는 많은 부분이 각색되어 있었다. 영화의 등장인물에는 김 작가도 없고 박도 없다. 소설에서 가져온 것은 ‘탈북인 로기완이 브뤼셀에서 삶을 살아내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난다는 것’ 정도이다. 소설이 영화로 이동할 때 많은 부분 달라지는 것은 장르 문법상 당연하다. 소설은, 김 작가가 로기완의 이야기를 좇아 브뤼셀에 왔고 그곳에서 로와 박,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액자 구성으로 관찰자와 상상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넘나들지만, 영화 〈로기완〉은 로기완과 마리의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화자이자 관찰자는 카메라일 뿐이다.
로기완이 탈북자이고 난민 지위를 얻어 정착할 곳을 찾아 브뤼셀에 온 설정은 소설과 같고 마리가 로기완의 지갑을 훔치며 둘이 만나게 되는 것은 온전히 영화의 설정이다. 영화에서 마리가 “그것이 우리 어머니 목숨값이다”라는 로기완의 말에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마리는 사격 선수였지만 어머니의 안락사를 아버지가 도왔다는 것을 안 이후 사격 도박과 마약에 빠져 방탕하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안락사를 도운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반항하지만 사실은 어머니의 간병에 지쳐 고통에 눈감고 싶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에 크게 반응한 것이다.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리는 로기완이 보여 준 삶의 의지에 감동하여 자신도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리는 로기완에게 훔친 돈을 돌려주기 위해 위험한 도박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와 로기완에게 돌아오려 하지만 조직은 그런 마리를 추적한다. 소설에는 없는 내용이다. 영화에는 장면을 채울 볼거리와 풍부한 에피소드, 스토리를 가진 등장인물들이 필요하다. 인물 간의 갈등과 긴장을 위한 자극적 설정은 상업 영화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소설이 김 작가의 시선을 통해 세 사람이 만나고 연결되고 ‘그래도, 그래서 살아가는 삶’을 보여 주었다면 영화는 탈북인 로기완과 마리의 사랑을 더 부각한다. ‘네가 훔친 돈이 어머니의 목숨값’이라는 말에 마리는 로기완에게 돈을 돌려줄 생각을 한다. 마리의 마음속에 있던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 평화와 행복은 길지 않았다. 곤경에 처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로기완은 어렵게 마련된 난민 심사장을 떠나 마리를 구해낸다. 마리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며 둘은 평소 꿈꿔 오던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한참 후 힘들게 얻은 난민 지위를 버리고 로기완은 마다가스카르로 가 마리를 만나며 영화는 끝난다.
소설의 중심축이었던 미안함과 생의 의지는 축소되고 둘의 사랑이 부각되며 영화가 끝나는 것이다. 관객들은 “탈북인으로 갖은 고생을 하여 얻은 난민의 지위를 로기완이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랑이라니 뜬금없다”라는 반응도 보였다. 특히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사랑이 로기완 이야기의 핵심이 아닌데’ 하는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다. 소설보다는 영화에서 탈북 후 로기완의 힘든 상황이 더 자세히 더 자극적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영화 역시 탈북인의 고난 서사가 주제는 아니다. 로기완은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떠나 뿌리뽑힌 자, 불행한 과거 외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이 없는 자이다. 어렵게 받은 난민 지위는 벨기에를 떠나면 사라지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소설에서는 여자 친구 라이카를 따라 영국으로 가서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영화에서는 마리를 만나러 마다가스카르로 간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고난의 아이콘 탈북인 로기완에게 사랑은 비현실적이고 뜬금없고 개연성 없는 선택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여권, 주민등록, 난민 체류 허가서인가? 이 중 로기완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북한을 떠날 때 그를 증명할 서류는 모두 버렸다. 그럼 로기완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야말로 뿌리 뽑힌 자인가? 그러나 로기완은 존재하는 사람이며 누구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다. 서로를 증명할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는 없지만 어머니가 남긴 말과 어머니가 남긴 돈은 그를 살아가게 하는 기회이자 이유이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은 로기완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게 했다. 살아 있다는 것, 살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가장 명료한 살아 있음의 증명이다. 김 작가가 윤주를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마음, 김 작가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윤주의 밝은 마음, 아내를 존엄하게 지켜주었던 박의 선택, 그럼에도 괴로워하는 박의 마음, 난민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라이카를 따라간 소설 속 로기완, 마리를 구하기 위해 난민 심사장을 박차고 나간 영화 속 로기완, 마리를 만나기 위해 또 자신을 증명해 준 벨기에를 떠나는 영화 속 로기완. 이들은 선택에는 모두 사랑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뿌리내림이며 존재 증명이기 때문이다.
“
로기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덥석 내 손을 잡아준다. 체온이 있는, 진짜 두 손으로.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나는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홀 안쪽에서 앳된 인상의 여자가 삐죽 고개를 내밀더니 금세 달려와 나를 빈 테이블로 안내한다. 라이카는 차를 준비하러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고 지금 내 앞에는 로기완이 앉아 있다. 살아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 오늘 나는 그에게, 이니셜 K에 대해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다.4)
”
난민증도 여권도 없지만 로기완은 체온이 있는 두 손을 가진 진짜 사람이고 라이카와 함께 있어 행복한 사람이다. 내 앞에 앉아 있고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에는 살아남을 사람이며 그것이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이를 확인한 김 작가는 이제 이니셜 L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인 ‘이니셜 K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자들은 지금까지 이니셜 L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니셜 K, 이니셜 P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오늘 나는 그에게, 이니셜 K에 대해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다”는 이 소설의 첫 문장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와 이어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이렇게 끝난 이야기가 소설로 쓰였고 우리는 방금 그 소설을 다 읽은 것이다. 그것은 탈북인의 고난의 서사가 아닌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이야기였다.
1)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창비, 2011.
2) 같은 책, 181쪽.
3) 같은 책, 187쪽.
4) 같은 책, 194쪽.
196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대학원 박사 졸업. 19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2005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제6회 젊은 평론가상을 수상했다. 2006-2007년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펠로우를 했다. 2007년부터 가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북한의 시학연구』(2013), 『통일시대 남북의 시』(2016),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북한 문학 속의 백석』(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