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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이국땅에 묻으며, 여행

김병학

선배를 이국땅에 묻으며

태어난 곳을 일러 고향이라 하지만
죽어 묻힌 곳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자유로운 자, 버림받은 자 고향 떠나
외로운 방랑길에 오른다

지친 몸 때때로 쉴 곳 찾아
타인의 집에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구름 같은 것, 바람 같은 것, 이슬 같은 것
바로 이것이 인생이라 자조하면서

가슴 속에 묻어둔 슬픈 이야기들
행여 무덤가에 꽃으로나 피어날까

별도 지고 꽃도 지고 사랑도 졌다
이제 다른 곳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태어난 곳을 일러 고향이라 하지만
죽어 묻힌 곳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흩어진 발자국은
무엇을 찾아 그리도 헤맨 길이었던가



여행

날이 밝았으니 떠나야 하리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고뇌의 중력을 떨치고 날아올라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그냥 이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리
이제 막 눈을 뜬 어린 말처럼

언젠가 불꽃 이글거리는 지평선과
회오리치는 별무리를 그리워했느니
새벽길 나서는 자 정녕 행복하여라

목마른 삶의 빈터를 찾는 길손아
얼어붙은 심장에 피를 돌리며 외치는
너 깃발 펄럭이는 자유야

꿈속에 가두어둔 노래를 풀어놓으렴
하늘과 땅이 맞닿는 시간이 열리면
번뇌의 부스러기들 뭇별로 흩어지리니

바람을 거슬러 내딛는 발걸음마다
눈부시게 깨어나는 삼라만상의 숨결
들불처럼 번져오는 기쁨의 물결

필자 약력
김병학 프로필 사진.jpg

1992년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민간한글학교 교사, 대학 한국어과 강사, 고려인 한글신문 《고려일보》 기자, 카자흐스탄한국문화센터 소장으로 일하다가 2016년에 귀국했다. 시집 『천산에 올라』,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에세이집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번역 시집 『모쁘르마을에 대한 추억』,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 『초원의 페이지를 넘기며』, 『회상열차 안에서』를 펴냈다. 그 외 다수의 고려인 관련 저서, 역서, 편찬서를 출간했다. 현재 월곡고려인문화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