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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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내 안의 섬, 디아스포라

박은숙

  뒤뜰에서 참새, 까마귀, 곤줄박이 새들이 부산하게 나의 아침을 두드린다. 시린 겨울을 지낸 새순이 새들새들 움트는 소리, 지지배배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 뜰은 눈부신 몸살을 앓는다. 뜰 안팎의 웅성거리는 생명마다 노랗고 붉고 푸른 빛으로 차오르길 바라는 나의 아침이 환하다.

  십오 년 전, 밴쿠버 리치먼드의 선박장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서양 여자가 동양 아이와 백조 무리 속에서 함께 까르르 웃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한 장의 엽서였다. 그들과 산책길에 몇 번 마주쳤으나 별생각 없이 지나치다 어느 날은 우연히 인사를 나눴다. 옆에 있던 아이가 볼그레한 얼굴로 “I’m from Korea”라고 내게 말했다. 나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을 느꼈는지 그녀는 한국에서 입양 온 딸, 에밀리아라고 소개했다. 나는 낯이 붉어지고 귓불까지 뜨거워졌다.

  그 후 우리는 서로 왕래하며 차를 나눠 마셨다. 하루는 에밀리아가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낯이 달아오르고 머리칼이 쭈뼛쭈뼛 섰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여섯 살 난 에밀리아는 얼굴빛과 눈빛, 머리색이 닮은 나를 먼저 끌어안았다.

  집마다 화려한 연말 장식이 어둠을 밝히는 하얀 겨울이었다. 성인 입양인이 어린 입양인을 위해 다운타운의 한 극장에서 마련한 ‘Big Family Day’에 초대받아 가게 됐다. 에밀리아 가족도 이미 와서 나를 반겼다.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은 양부모와 함께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얼굴에 태극기를 페인팅하며 즐거워했다. 한쪽에 마련된 음식 코너에 김밥, 김치, 잡채, 불고기 등이 놓여 있었다. 신기한 표정으로 젓가락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 처음 사용하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들어 올린 아이들의 DNA는 이미 김치의 매운맛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김치를 물에 씻어 먹으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던 아이들의 표정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부모들의 표정에 내 마음이 꿈틀거렸다. 나는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아이들 부모에게 사진을 보내며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고 제안했다. 몇몇 가족이 기꺼이 신청했다. 대학생인 아들 친구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과 집마다 방문하며 한글을 가르쳤다.

  하지만 한글교육만을 위한 언어교육에는 난점이 있었다. 언어 환경이 취약한 서양인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들의 나이와 성격, 건강, 그리고 재능을 파악하여 그림에 재능 있는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한글과 접목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노래로, 리듬으로, 때로는 전통 악기를 통해 한글을 가르쳤다. 더러는 한국 마켓에 가서 한국 식품도 샀고, 김밥,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을 만들었다.

  몇 년 동안 자신의 집을 드나들고 아이들을 맡기면서도 양부모들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냉담했다. 잠시 하다가 그만두면 상실의 아픔을 아이들에게 줄까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당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글교육보다 심리적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정서적 안정과 사랑이었다. 자신이 부모들과 피부색이 다른 걸 느끼고 혼란을 초래할 한창 시기의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지역 사회 단체에서 제공한 장소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의 입양인 사후관리 지정 사업으로 점차 ‘해오름’이란 한국 문화 단체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아이들은 화장실에 갈 때조차 부모의 손을 놓지 않았다. 부모님과 떨어져 수업하는 데 오 년이 걸렸다. 그들은 자녀가 입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위험에 빠지거나 차별받고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했다. 소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수업과 함께 매주 한국 음식을 가르치고 만든 음식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야말로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 되어 갔다. 한국 방송국, 로컬 신문, 방송에서 인터뷰 및 취재 요청이 뒤따랐지만 응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나눌 것은 사랑이지 타인의 호기심 어린 관심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존중과 보호가 우선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자라 청소년이 되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도 직업인이 되었다. 젊던 양부모들도 하나, 둘 흰머리가 늘어가고, 성인 입양인 역시 이십 대에서 삼십, 사십 대의 가장이 되었다. 그동안에도 여전히 어린 아기들이 태평양을 건너 이 낯선 땅을 밟았고 이제는 캐나다 속의 한국 가족 공동체가 되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의 시간 동안 함께 나눈 발자취를 더듬어 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 시간은 고되고 험한 과정이었다. 취지는 한국 입양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양부모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으나 그 생각은 옳지 않았다. 오랫동안 친구처럼 나란히 지내던 성인 입양인조차 “네가 입양인의 아픔을 알아!! 지울 수 있다면 콘크리트 바닥에라도 문질러 지우고 싶은 내 삶과 내 피부색을…….” 묵묵히 기다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마음 한편에 차 있는 슬픔과 분노가, 아픔을 딛고 일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그때는 침묵만이 가장 절실한 치유의 도구이자 소통이었다. 입양인이나 입양 가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춰내는 것이 오히려 상처지만 생애 한 번은 내뱉고 싶은 소리 없는 고백이라 말했다. 자신의 심정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 지우는 동안 오랜 갈증이 해소되기도 했다는 참여자, 7-8회 원고를 주고받다 포기한 참여자도 있었다.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혀 책 만들기가 중단될 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결국,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을 글로 사진으로, 그리고 한 줄의 메시지로 차곡차곡 채웠다. 입양인의 사연보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입양인과의 시간과 거리를 담았다. 일반 독자 대상이 아닌, 입양인과 공유할 책으로,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지만 나누고 싶은 속내를 존중했다.

  “밴쿠버의 입양인 모두의 감사함을 담을 수 있어 기쁘다”는 나의 발간사와 함께 <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입양인에 대한 애정 그리고 끊임없는 관심으로 격려해 온 한국인 상원의원인 연아 마틴은 “우리 미래의 리더로서 꿈을 믿고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며 헌신하고 노력하는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밴쿠버 총영사관의 정 총영사는 “한인 입양인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해온 해오름 관계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한·캐 양국을 이끌어 나가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격려”를 보내왔다. 처음 사무실을 아이들의 수업 공간으로 제공해 주었던 6·25 참전 유공자회 이 회장님은 “특별한 우정으로 함께 성장해 온 우리는 여러분의 친구”라는 축사로 봄,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를 열었다.

  <여름을 여는 페이지>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권 봉사자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부모님의 사랑과 수고를 깊이 느낄 수 있었고 함께한 시간은 사랑과 따스함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박 봉사자는 “마음을 다해 봉사하고 싶었던 인연으로 다양한 추억과 함께 성장”했음을 고백하고 “언제나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을 더 하고 싶다”는 바람, 팔순의 봉사자는 “남은 밥도 소중히 싸가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에게 따스한 밥을 해줄 수 있어 기쁘다”고 표현했다. 이 봉사자는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내 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내가 알고 싶은 아름다운 세상은 아이들의 맑은 웃음”이었다고 말하는 정 봉사자, “어머니와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가족의 의미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는 따스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 해온 든든한 조력자로 함께 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양부 죠는 “데이비드는 한국인과 캐나다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진 십 대로 잘 자랐다”라며 봉사자들의 열정과 시간 그리고 사랑에 감사와 고마움을 표했다. 청소년기를 맞은 제이슨은 “한국을 알고 배우는 동안 자신감이 생겼고 특히 모국 방문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고 말했다. 카알의 가족은 “입양 자녀들이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갖게 되어 감사와 존경”을 표했으며, 나빌 가족은 해오름에서 만난 인연과 봉사자들의 사랑, 배려, 공감과 관대함에 대해 더할 수 없는 감동을 고백했다. 폴 가족은 “그의 가족에게 끼친 커다란 영향력과 서로 다른 다민족 다문화를 가진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라운 추억이 되었다”고 말했다. 코비 가족은 입양 자녀들로 비롯해 연결되어 쌓은 우정에 감사했고, “가족 간의 유대감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받은 축복과 우정에 감사하다”고 남겼다. 부끄러움이 많아 참여하지 못한 봉사자와 가족들이 많아 아쉬웠지만, 마음만은 함께 했음을 고백했다. 모두가 기쁨과 감사와 깊은 우정으로 가족 공동체로서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닿아 있었다.

  이어 <가을 이야기>는 지나온 발자취를 담은 글을 소개했다. 한국 5인의 화가들이 바자회 참여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 화폭에 담아온 풍경에는 아름다운 모성이 담겨 있었다. 진주를 품은 아이들의 마음을 화폭에 담고 싶다는 작가들의 따사롭고 감미로운 마음이 표현된 작품들이다. 기억 저편 너머 봄이 오는 길목을 그리움으로 표현한 작품, 흙과 불의 힘으로 피워낸 대지의 어머니를 그려낸 작품, 빈 항아리에 고인 달빛 속에 한국의 미와 풍경을 담아내 입양 가족에게 감동을 안겨준 이야기들이다.

  <터치 & 터치>에서는 성인이 된 입양인과 양부모들의 대담을 담은, 생애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한 퍼즐 조각을 조심스레 꿰어맞춘 시간이 눈부셨다. 땀땀이 수놓아진 조각보에 담긴 형형색색 그 조화로움이 아름다움을 자아낸 시간을 기록했다. 해와 달과 별의 서시를 통해 추석 전야, 해를 닮은 달을, 별을 닮은 송편을 빚는 모습이 웃음꽃 출렁이는 달빛 아래 비쳤다. 이 보름달은 그냥 보름달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본향에 고인 그리움이라 한 부모는 토로했다. 이어 <풍물 마당에 담은 모국의 심장 소리>에서는, 쇠의 쨍쨍거리는 울림이 천둥, 번개와 흡사하고 징은 바람의 소리를 나타내고 장구의 잦게 몰아치는 소리는 비에 견주고, 둥실대는 소리를 주는 북은 구름에 비유하기도 한다는 봉사자의 설명에 귀 기울이던 아이들이 펼쳐낸 연주는 증폭된 그리움의 소리였다. 노랑머리 어머니가 쳐올린 첫 징의 울림에서 동서양을 어우르는 모성이 느껴졌다. 불연소 된 알갱이에 정점의 감흥을 느끼는 내 우주는 작지만, 풍물에 모국의 심장 소리를 담은 아이들의 세계엔 천지를 진동하고도 남을 새로운 우주가 담겨 있다고 나는 고백했다.

  <천 개의 컵 받침에 담은 이야기>는 모국 방문 시 아이들이 입양된 기관의 서울 영아 일시 보호소에서 만난 영아들을 본 아이들의 표정을 담았다.

  “야! 우리가 아기였을 때 여기에 있었대, 믿어지지 않아, 이렇게 예쁜데…….”

  아이들은 한동안 아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순간 나는 아이들의 가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스침은 한동안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도 입양아로 우주를 떠도는 아이. 그 안에 우는 아이를 나는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을까? 희망이라는 공갈 젖꼭지를 물려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내 안에 섬처럼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의류업체에서 제공한 버리는 천 더미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조각 조각을 이었다. 다시 마름질하고 재봉으로 박아 뒤집은 후 하나하나 수를 놓아 천 개의 컵 받침을 만들었다. 거기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천 번 흔들릴 때마다 견딜 힘과 용기와 사랑, 마음을 담았다. 천 개의 컵 받침을 완성하고 맞은 새벽, 미명을 타고 들려오는 물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 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스치듯 들려오는 그 소리, ‘A thousand of coasters’에 담긴 내 마음의 풍경이었다. 그 컵 받침으로 바자회에서 장학금 기금을 마련했다.

  또 이야기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갔다. 민요 시간을 통해 배운 「아리랑」에서 가사의 뜻을 음미하며 1절 2절 3절을 나누어 부르는 동안 아이들과 부모님은 캐나다에서 만난 진정한 캐나다 속 한국인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리랑 고개 넘어 태평양을 건너 가족으로 만나 살아온 질곡의 시간이 풍년과 희망의 노래로 승화되는 순간이었으리라 고백했다. 「아리랑」을 부르면 우리보다 더 가슴 뭉클한 감동에 젖는 서양 부모들의 가슴에 아이들은 희망의 꽃이었다. 우리는 희망의 꽃에 입김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나는 고백했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 나비야 너도 가자>에서는 우리 문화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아로새긴 불림을 되새겼다. 청산에 함께 갈 나비의 꿈을 꾸는 추석맞이 탈춤의 날이 비상의 의미와 함께 담겨 있다. 또한, “택견을 통해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포용하고 서로 닮아가는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 택견의 기본 포용의 정신”이라 말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활갯짓을 타고 도약하는 극복의 동작이 태극의 정신에 스며드는 순간, 우리는 캐나다 속의 한국인이라 통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홍 샅바와 청 샅바를 두른 씨름판>에는 한라장사 윤문기가 떴다. 씨름도 생소한 밴쿠버에서 해오름 가족들만 누린 특권처럼 곳곳의 숨은 봉사자가 등장했다. 전날까지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그치고 그지없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청, 홍 샅바를 두른 아이들의 즐거운 씨름판에 징 소리를 휘감은 신명이 넘실대고 한국인의 멋과 맛과 인정, 사랑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으로 그려져 있다.

  <흙의 마음을 품은 도자기 만드는 날>은 가족들이 가장 좋아한다. 해오름 아이들에게 도자기 만들기는 흙 속에 묻힌 자아의 존재성을 발아시켜 정체성을 깨닫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습작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빚은 꽃병, 바구니, 그릇, 잔마다 꽃도 담기고 달콤한 꿈도 담기고 희망을 머금은 미래가 담길 것이라고 나는 기록했다.

  마지막 글은 한국 정부에서 지원받은 마스크 이야기다. 입양인에게 지원한 마스크는 ‘한국의 따스한 품’이었고 한국 입양인도 한국인의 일원이라는 따스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입양인이 한국의 일부라는 것을 아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로부터 자원봉사 표창을 받은 미디어 기록과 이름 없는 영웅들이 캐나다와 세계를 위해 봉사한 헌신과 더 나은 공동체의 삶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하고 표창하기 위해 제정된 ‘캐나다 건국 150주년 상원 메달’을 내가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겨울 이야기>는 성인 입양인 3인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들은 자신의 성장 과정에 겪은 어려움과 감정을 토로했다. 성장 과정 동안 입양인을 지지하고 이해, 포용해 주는 누군가를 만났더라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 거라 고백했다. 더러는 너무 감정이 복받쳐서 싣지 못한 글도 있었다. 참여한 입양인과의 시간을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의도적으로 번역하지 않은 부분도 많아 아쉽고 미흡했다. 하지만 그 미흡함조차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영판이라 한글, 영어의 미세한 부분을 놓칠세라 한국의 출판사를 선정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출판을 의뢰한 출판사도 온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참여해서 일곱 차례 편집 과정을 오가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밤낮을 보냈다. 오타도, 수정해야 할 부분도 잘 보이지 않았다. 행간 사이에 박힌 가시로 줄곧 마음이 아려 왔고 시야가 흐렸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활자가 거꾸로 박혀 나와도 감사한, 소중한 책이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나는 입을 열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함께한 분들의 오롯한 마음자리를 담을 수 있어서 제 삶의 따듯한 순간이었고 관련자에게 책을 보내고 많은 격려와 감동의 리뷰를 받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입양인에게 모국의 심장 소리를 멈추지 않고 뛸 수 있게 밑거름이 되어준 해오름”이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책은 그간 일어난 모든 활동과 이벤트에 대한 아름다운 요약이라는 리뷰를 읽었다. 이 리뷰를 통해 ‘내가 멈출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구나…….’ 깨달았다.

  책에 자신의 입양 이야기를 들려준 성인을 만났다. 책을 통해 슬픔도 불러왔지만, 희망을 느꼈다는 말과 여전히 슬픔을 지니고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의 도움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작은 책을 우리의 어린 아가였을 그대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담아 드리고 싶다로 ‘해처럼 달처럼’은 맺어진다. 짧지만 긴 여정이었다.

  이제 막 두 번째 모국 방문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서 묻어나는 눈부신 몸살로 이 봄은 찬연하다. 뜰 안은 어느새 푸른 잔디가 봄바람에 출렁인다. 양지바른 곳에 푸른 잎 밀치고 올라온 보랏빛 프리물라, 상냥한 데이지, 바람에 안겨 온 아네모네, 옹골진 금낭화, 바위틈의 작은 별꽃 돌단풍이 웃고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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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서울 출생.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캐나다 밴쿠버 해오름 한국문화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이야기 공모전 수필, 경희 해외동포문학상 소설, 무궁화 문학상 동화, 보훈문예 작품상 수필, 재외동포 문학상 소설 등 다수에 입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