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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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이방인으로 유랑하기

하목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제일 좋은 시절이면서 제일 나쁜 시절이고, 지혜로운 시대면서 어리석은 시대고, 믿음이 가득한 세월이면서 불신이 넘치는 세월이고, 빛이 넘치는 계절이면서 어둠이 가득한 계절이고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봄이면서 절망이 지배하는 겨울이었다. 1)
  그러면 지금까지 살아온 이 시절은 나에게 어떤 시절인가?
  대입 수능시험(高考)이 끝나고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지만 어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러다가 2012년 9월에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게 되고, 3학년(2014년 9월-2015년 6월) 때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그 후 2016년 6월에 졸업하고 나서 8월 말에 다시 한국에 와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방인의 삶에 들어갔지만 한국어는 이미 오래 배웠으니까 곳곳에서 마주하는 한글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2016년 9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관람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고 했는데, 입구 옆의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한 한국인 아저씨가 내가 중국인인 것을 눈치챈 모양인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Korea is No. 1, China is No. 2.”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한국어에 익숙하더라도 여기서는 이방인이구나. 하지만 영어도 이방의 언어인데…… 이런 찝찝한 느낌이 무엇인지 8년이 지나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2017년 사드 배치 때문에 중한 관계가 악화하자 나에게 한국이 위험하냐고 물어본 지인이 몇 명 있었다. 한국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자식을 한국으로 보내는 계획을 포기한 학부모가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들이 계속 언급한 ‘위험’이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고 나면, 국제정치에 대해서 끊임없이 토론하는 아저씨들을 많이 봐 왔다. 그들은 미국이 세계 경찰이고 제일 나쁜 존재라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개가 되었고, 온 나라에 우익 세력과 군국주의 분자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중국이 언젠가는 일본을 때려잡을 거라고 확신했다. 해외는 물론이고 중국의 다른 지역조차도 거의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오로지 뉴스와 황당한 상상으로 국제정세를 살폈는데 실제로 허무 속에서 사는 아큐(阿Q)들뿐인 것 같다. 한국이 위험하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내린 판단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2017년에 제일 인상적이었던 일은 아버지와의 영상통화이다. 그 영상통화에서 나는 뉴스를 너무 믿지 말라고 했고, 그러자마자 아버지는 “이래서 사람은 지식이 많을수록 반동적이지!”라고 했다. 따뜻한 물을 먹는 게 이미 습관이 된 나에게 한국의 식당에서 종업원이 찬물을 줄 때마다 나는 이방인이라고 의식해 왔다. 결국에 내가 고향에 돌아가도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구나.
  2014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게 신기했다. 더운 날씨인데 식당에 들어가면 에어컨과 선풍기가 동시에 틀어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추웠다. 광동(廣東)에서 온 친구가 자기 고향의 식당에서도 이렇게 한다고 했지만 나는 동북 지역 출신이라서 적응하지 못했다.
  교환학생이라서 어학당에서 한국어만 배우고 전공이 없었다. 10월의 어느 날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서 전에 다른 행사에서 알게 된 캐나다 친구랑 마주쳤다. 그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방금 시험에서 일어난 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학생 두 명이 시험 도중에 몰래 휴대폰으로 답을 검색했는데 감독을 맡은 한국 선생님이 두 학생에게 당장 나가라고 했지만 이 두 학생이 끝까지 자기의 부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나다 친구가 나랑 헤어지기 전에 한 말이 나에게 매우 신선했다. “It’s not fair.” 공평하지 않다. 처음 접한 발상이다. 여태까지 다른 친구가 시험에서 한 부정행위가 그저 타인의 행동뿐이고 나랑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시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이 규칙을 무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은 나에게 왜 이렇게 신선했을까? 지금까지 내 기억에서 이런 주장을 직접 언급한 사람이 캐나다 친구 한 명, 중국 친구 한 명뿐이다.
  수능을 보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 “너무 이기적이지 말아!”라고 한 기억이 난다. 이 말의 뜻은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이 만약에 시험장에서 옆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답안지를 훔쳐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자기의 답안지를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선생님이 학생에게 부정행위를 권장하는 것도 황당하고 내가 선생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한 것도 황당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2학기(2001년 3월-2001년 6월)에 거슬러 올라가면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새로 오신 분이었다. 반의 학생 수가 20명 좀 넘었는데 여러 팀으로 나눠졌고 선생님이 노트를 하나 준비했다. 1팀 팀장에게 노트에서 누가 수업 시간에 짝꿍과 귓속말을 했고 누가 숙제를 완성하지 못했는지 등 자세히 적으라고 했다. 모든 학생의 잘못한 점을 기록한 것이다. 한 번 잘못하면 벌금 0.1원(한국 돈으로 18원 정도)을 노트를 갖고 있는 팀장에게 내야 하고 일주일마다 이 노트를 다음 팀의 팀장에게 한 번 넘기고 학기 내내 끊임없이 기록했다. 이 선생님은 그때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 안 되었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서로 고발하는 것을 권장하는 게 너무나도 황당했다. 내가 캐나다 친구의 말이 신선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아무래도 이 노트 때문인 것 같다.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의 코로나 시국은 확실히 위험했다.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서 마스크도 쓰고 격리도 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 교실에 가서 수업을 하는 게 제일 무서웠다. 한국에는 봉쇄가 없었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원룸에 봉쇄했다. 내가 역시 국제정치에 대해서 토론하는 아저씨들과 큰 차이가 없구나.
  2021년 3월에 지도교수님께서 나에게 하신 두 마디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 모임에서 “너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 억압하고 있어.”라고 하셨고, 나에게 주신 저서 『세계문학, 그 너머』의 맨 앞에 “늘 깨어 있어라!”라고 쓰셨다. 이를 계기로 나는 작은 원룸에서 자기가 받은 교육에 대해서 지금까지 반성해 왔고 위의 서술이 반성한 일부 내용이다. 결론을 말하면 나는 애초부터 이방인이고 애초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에 나를 괴롭혔던 그 노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절이 어떤 시절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원룸에 갇혀 있을 때 바다 건너편의 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항상 당나라 시인 장구령(張九齡)의 「망월회원(望月懷遠)」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海上生明月,天涯共此時。
바다 위로 떠오른 밝은 달을, 저 하늘 끝의 아래서도 함께 보리.

역시 시는 시일 뿐이고 원룸은 원룸일 뿐이다.
영혼의 안식처를 찾을 수 없을 때 사람은 이방인이 된다.

각주

1) 찰스 디킨스, 김옥수 옮김, 『두 도시 이야기』, 비꽃, 2016, 9쪽.

필자 약력

1993년 중국 요녕성(遼寧省) 출생. 2016년 요동대학교(遼東學院) 한국어 학과 졸업. 2019년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2021년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