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_text

내가 죽었다고 들었다, 은하철도 999

정국희

내가 죽었다고 들었다

Open your eyes!
Open your eyes!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남자가 소리쳤다
내 말이 들리면 손을 들어보세요

나는 힘껏 눈을 떴고 손을 들었으나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눈을 뜨라고 재촉했다

그 순간 감은 눈에서 덧없이 부유하는 나비들을 보았다
나비 속에서 멀어져 가는 내 발끝은 온통 별이었다
새벽이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이 보고 싶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누구였을까
흔들리는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 파생되는 나를 보았다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파생된 내가 앰뷸런스 창문을 통과하여
함박눈처럼 날렸다 어딘가에서 나의 강아지가 울었다

화사한 도시가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소리가 들렸다
모시 적삼 같은 날개로 한 백 년쯤 날았을까
환한 빛이 신작로 길 버스처럼 덜컹덜컹 흔들렸다

Open your eyes!
Open your eyes!
발소리들이 우르르 빨라지고 나는 내 딸들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은하철도 999

언제부턴가 뒤꿈치를 들면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았다

뒤꿈치를 세우는 이 버릇은
어릴 적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알 수 없는 설움이 가슴까지 차오를 때면
양팔을 수평으로 벌리고 새처럼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정말 새가 되어 우주 정거장에 닿을 것 같았다
그때마다

울음 무성한 가슴으로 새가 들어와 내 울음을 삼켰다
어떤 날은 종아리에 노랗게 핏발이 섰고
어떤 날은 잠들기 전 기도가 기차처럼 길었다
그런 밤이면 누군가의 품 안에서 흥건하게 잠이 들곤 했다

물론 나는 마침내 아흔 살이 되겠지만
그 나이엔 그리움이 다 닳아서 한 방울 눈물도 없겠지만
행여 뒤꿈치라도 살짝 올릴라치면
뜻밖에 부는 바람으로 예의 양팔이 올라갈지 몰라

아마도 그땐,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 우주 정거장으로 달려올지 몰라

필자 약력
정국희_프로필.jpg

《미주한국일보》 시 부분에 당선됐고, 시와정신 평론신인상, 재외동포문학상, 가산문학상, 동주문학상 해외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미주시문학회 회장과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로스앤젤레스, 천사의 땅을 거처로 삼았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도서 선정) 외 3권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