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장
2호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 소개
유금란
안녕하세요. 저는 시드니에서 수필과 시를 쓰면서 종합문예지 《문학과 시드니》를 만들고 있는 유금란입니다. 웹진 《너머》 제2호에 시드니 디아스포라 문학 현장의 한 부분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자리를 만들어 주신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와 웹진 《너머》 제작진께 감사 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시드니에서의 한국문학 현장을 소개하기에 앞서 호주의 시드니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호주는 남한의 77배가 되는 면적을 가진 나라로, 남반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자체로 하나의 섬이자 대륙입니다. 대륙의 오른쪽 중간쯤에 자리한 해안 도시가 바로 시드니입니다. 시드니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랜드마크로 두고 있으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어 연중 내내 맑고 온화한 날씨를 유지하는 도시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Sydney’를 발음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저는 '시드니’를 발음할 때마다 제 입에서 ‘시’가 튀어나와 공중으로 굴러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누군가는 ‘시가 든 이’를 ‘시 든 이’라고 부른다 했습니다. 이처럼 시적인 도시 시드니에서 저는 모국어인 한국어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호주에 살면서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모국어는 바로 ‘나’이자 ‘나의 정체성’이고 ‘나의 뿌리’이니까요.
이 도시도 삶의 현장으로 한걸음 들어가 보면 비자 문제를 비롯해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메워야만 하는 숨통 조이는 지점들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햇살과 유칼립투스만큼은 제 빛과 제 향을 멈춘 적이 없지요. 숨 쉬는 존재로서의 모국어처럼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디아스포라 문학’, ‘해외 문학’이라는 범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바다 건너에서 모국어와 모국 문화를 지켜가는 소수에게 붙여준 고국 문단의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은 ‘다름’을 규정짓는 잣대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대중매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트로트를 듣고, K-드라마를 보고,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는다지만 우리에겐 분명히 ‘다름’이 있었습니다. 그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점들’, 계절, 차선, 시간, 심지어는 변기통 물 돌아가는 방향까지도 모국과 반대인 곳이 내가 서 있는 땅의 문화적 배경인 것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모국과의 소통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우리끼리 쓰고, 우리끼리 읽고, 우리끼리 나눌 때는 몰랐던 ‘문학적 필요’가 생겨났습니다. 필요는 절실함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회에 걸쳐 문학 강좌를 열고, 종합문예지 《문학과 시드니》 2호를 발간했습니다. 배후에 금전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회원 10명이 있으니, 이들이 이 결과물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것은 또한, 초석을 놓아주고 4년간 이끌어준 단국대 박덕규 교수와 중앙대 이승하 교수의 변함없는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의 탄생 배경과 활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드니 교민 문학 단체의 시작은 1989년 ‘재호문인회’ 결성이었습니다. 1996년 ‘호주한인문인회’로 개칭되었다가 1998년 ‘호주한인문인협회’로 활동이 이어져 오면서 ‘시드니수필문학회’를 필두로 20여 년간 몇 개의 신생 단체로 세포분열 합니다. 이렇게 세포분열 한 문학 단체가 각자 고유의 색을 지키며 명맥을 유지한 것이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의 뿌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필창작반을 운영하며 《시드니 수필》 등을 창간한 소설가 이효정, 시 창작반을 운영하면서 《호주한인문학》을 창간한 시인 윤필립 등이 1980년대부터 호주 한글 문단의 밑바닥을 다진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인 신문의 탄생도 몫을 했습니다. 1990년 창간한 《호주동아일보》는 1993년 ‘재호문인회’와 함께 ‘동포문예 공모’를 실시했습니다. 이 신문을 계승한 《한호일보》가 2017년 ‘신년문예’로 문예 공모전을 이어가며 호주 한글 문학에 작은 활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남아 규모를 갖추고 활동하는 단체에는 호주한인문인협회, 시드니한인작가회, 글무늬문학사랑회, 동그라미문학회, 문학동인 캥거루, 노만허스트 문학회 등이 있으며, 최근에 수필동인 팔색조가 가세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미국과 비교해서 이민 역사가 현저하게 짧습니다. 한국문학을 하는 작가 또한 현저히 적습니다. 문단 태동을 일으킨 1세대 문인들의 활동이 3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는 하지만 타국은 물론 한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2월 구정을 전후로 획기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한국문예창작학회’와 《한호일보》 주관으로 시드니 ‘국제문학심포지엄’과 ‘문예창작교실’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2년 후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를 탄생시킨 씨앗이 됩니다. 이때 강사가 박덕규 교수와 이승하 교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두 분은 시드니 문단을 한국과 해외로 확장해 주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는 탄생의 비화를 미담처럼 갖게 되었습니다.
제1회가 된 2017년 창작교실(창작아카데미 전 명칭)을 마치고 2회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함께 주관하기로 한 《한호일보》가 내부 사정으로 후원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공중에 뜬 행사를 위해 몇몇이 나선 가운데 ‘문학동인 캥거루’를 중심으로 행사를 꾸리고 나니 다음을 기약할 일이 막막했습니다. 이때 김오 시인, 유금란 작가, 윤희경 시인, 장석재 수필가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의기를 투합했습니다. 넷은 시드니 체리부룩 근처에 있는 유칼립투스 빼곡한 컴벌랜드 숲에서 모였습니다. 모의 내용은 어떡해서든 이 행사를 이어가자는 명목뿐이었습니다.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해서였는지 우리는 우선 사비를 털어서라도 일을 진행하고 후원회를 결성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역사적인 ‘컴벌랜드 결의’가 이루어진 것이었지요.
네 명 중 하나인 저는 그날의 결연함과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독립투사라도 된 양 각오와 의지를 거듭 다졌습니다. 커다란 계획이나 구체적인 대안은 없었습니다. 다만 ‘시드니 한국문학 판을 좀 더 확장시켜 보자, 문학 하는 이들끼리 서로 반목하지 말고 격려하며 응원해 주자, 모국어를 지키는 이민자로서 문학을 하는 이유와 자존감을 찾자’는 등의 막연한 명분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름도 없이 대표도 없이 시작한 ‘컴벌랜드 결의’는, 일사천리로 달려 후원회를 결성했고,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붙이면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배는 아직 순항 중이고, 호주 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하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개인 문학회가 아니라 시드니에서 문학을 하는 문학도 전체를 아우르는 협회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학 모임을 하면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힘을 모아 행사를 치르는 체제를 만든 것이지요. 장석재 대표를 필두로 후원회원이 운영위원이 되어 의사를 결정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박덕규, 조동범, 홍억선, 이재무 강사를 모시고 ‘온라인 문예창작아카데미’를 개최했고, 올 2월에는 이재무 시인과 유성호 평론가를 초빙해서 제5회 창작아카데미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이 외에도 크고 작게 온라인을 통한 각종 강연을 알선하고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시드니에서 가장 크게 비중을 두고 있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 발족 후 가장 큰 성과라면 2021년 10월에 발간한 종합문예지 《문학과 시드니》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장석재 대표의 발간사 앞부분을 빌려 《문학과 시드니》에 대한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문예 연간지 《문학과 시드니》가 호주 시드니에서 탄생했습니다.
호주 정부의 기록에 의하면 호주 땅을 최초로 밟은 한국인은 중학교 영어 교사였던 김호열입니다. 그는 1921년 9월 6일 멜본에 도착했습니다. 올해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문학과 시드니》는 시드니에서 출간되는 첫 종합 문예지입니다. 한인 호주 도착 100년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미국이나 동남아에 비해 짧은 이민 역사를 가진 호주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리 늦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제라도 나온 것에 격려를 받고 싶습니다. 《문학과 시드니》가 20만 한인들이 살고 있는 호주와, 우리 모국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문학을 사랑하는 한인들의 관심을 받는 잡지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시드니에는 현재 약 200여 명의 한인 문인들이 8개의 문학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몇몇 단체에서는 이미 동인지를 꾸준히 출간해 왔습니다. 이번 창간된 《문학과 시드니》는 동인지 형태를 벗어난 종합 문예지로서 뜻있는 시드니 문인들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호주 한인 문학사는 호주 주류 문단에서 최초로 인정받은 (고) 돈오 김 작가, 교민들에게 창작 열기를 불어주었던 이효정 작가, 윤필립 시인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번 창간호에서 먼저 이 세 분의 작품 세계를 특집으로 기획했습니다. 호주 한인 문학사 1대의 발자취를 기리고, 호주 한인 문학 전통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드니를 중심으로 퀸즐랜드, 골드코스트 더하여 이웃 나라 뉴질랜드와 탈북 작가 등 현지 문인들의 작품이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 멜본을 포함한 더 다양한 지역의 문인들과 함께하는 문예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문학과 시드니》의 발간과 더불어 시드니에 경사가 겹쳤습니다. 1년 동안 책을 발간한 5명의 작가가 합세해서 합동 출판기념회를 한 것입니다. 1차 코로나 팬데믹이 누그러질 무렵에 열린 행사는 150여 명이 참석해서 그야말로 축제가 되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원 제한이 없었다면 참석자는 배로 늘었을 것입니다. 어렵게 만든 문예지가 시드니 문학인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니 보람이 두 배로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문학과 시드니》는 시드니 문학도의 글을 고국을 비롯해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제대로 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독자와의 만남에 있다면 가시적인 효과는 예상외로 컸습니다. 그리고 후원금으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할 수 있었으니 자부심도 단단히 챙겼습니다.
지금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 온라인 채팅방에서는 50여 명의 회원이 서로의 작품을 올리고 정보를 교환하며 문학적인 교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더불어 독려하고 있는 재외동포문학상에서도 매해 수상자를 배출해 시드니 문학인들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호주에서는 대상 2명, 우수상 6명, 가작 17명의 수상자를 냈는데 이민자 수에 비례한다면 꽤 고무적인 결과입니다. 재외동포문학상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큰 등용문이자 의미가 있는 제도라 여겨 꾸준히 응모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에서는 이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문예 공모전에서 상금이 100만 원 이상에 해당하는 상을 받으면 ‘자랑스러운 호주 문학인’에게 주는 패와 상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벤트 행사였던 ‘문학과 시드니 2호 기념회’에서의 ‘중고 책 나누기’와 제5회 창작아카데미 초청 강의 후 3박 4일간의 문학 기행은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음에는 고국 작가와 해외 작가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문학 기행을 꿈꿔봅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이를 주도해 주면 어떨까 하는 사소한 바람과 함께.
이상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의 굵직한 행사 위주로 시드니 디아스포라 문학의 현장을 스케치해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를 벗어난 듯한 시드니 문학도들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많습니다. 개개인의 글쓰기에 전념하면서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한 장을 제대로 장식할 각오를 다집니다. 디아스포라 문학인들을 위해 기회를 열어주신 웹진 《너머》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시드니에 거주하면서 수필과 시를 쓰고 있다. 산문집으로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바다 건너 당신』(공저)이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동주해외신인상을 수상했다. ‘수필동인 캥거루’ 대표, 《문학과 시드니》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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