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호
서랍 속의 시간, 오늘도 생방송 중
지성심
서랍 속의 시간
낡은 나무 책상 서랍 속
오랫동안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이야기들
풀지 못한 수수께끼와 함께 잊힌 모습으로 숨 쉬고 있다
한때 이야기를 끌어내던 색색의 연필들이 담긴 필통이
기억의 침묵 속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을 지문처럼 누르고 있다
서랍을 열자, 신음하듯 삐걱거리는 소리
희미한 과거의 쌉쌀한 향기가 퍼진다
시간이 잊은 소중한 비밀의 봉인 해제를 알리듯
기억을 끌어내는 속삭임이 미세가루처럼 떠오른다
저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시간은 멈추었을까
한때는 익숙했었으나
이제는 떠나온 한 생의 이면과도 같은 저 흔적들
먼지 쌓인 기록 보관소
한쪽 구석에 입장권 더미와 낡은 사진첩들
잊힌 기억을 넘기며 타임슬립을 한다.
부유하는 먼지들
한 가닥 빛줄기 속에서 시간의 연대기를 엮는다
오늘도 생방송 중
산타 모니카 비치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그가 손을 놓았지만 나는 넘어지지 않고
수평선을 따라 두 개의 바퀴를 굴릴 수 있었다
넓은 바다 위를 수놓아 가던 햇살은 오늘도 여전하다
작은 안장에 내 몸을 싣고 줄지어 선 팜트리 사이를 달린다
두 바퀴는 완벽한 대칭이다
팜트리가 하늘을 향해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내 자전거도 멈추지 않는다
뒤에서 밀어주던 그는 멀리 앞서가 버렸는데
바람 소리에 섞여 모래알 같은 목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몸을 낮춰. 겸손해야 해.’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해.’
기억은 점점 아름다워져서 그의 말이
좁은 길을 만들어 준다
지금 이곳은 생방송 중이다
나는 더 생생하게 손잡이를 꾹 눌러 준다
두 개의 바퀴가 수평선에 이를 때까지
지는 태양과 나란히
세 개의 바퀴가 될 때까지
재미시인협회와 ‘시와 사람들’ 동인. 2011년 서울문학인으로 등단.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주.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