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5호
현실, 그리고 서사에 나타나고 있는 디아스포라 지형의 변화
손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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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1)를 통해 기사를 검색해 보면, 한국의 신문에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0년이다. 그때 이 용어는 “다시 로마에 점령되어 2천여 년의 디아스포라(離散)에서 차별, 학대, 추방, 학살로 3분의 1이나 되는 종족을 살해당하면서 싹튼 2세기의 엑소더스, 시온 귀환주의 운동에서 맨 처음 입식(入植)한 곳도 공교롭게 이곳 사해변(死海邊)의 예리코 계곡이었다”2)에서 보듯 유대인의 이산 상황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에 가까운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후로도 이런 맥락에 한정되어 간헐적으로 등장하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 그와 유사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보통명사의 용법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국 내에는 플로리다를 비롯해서 도처에 쿠바 사람들의 ‘디아스포라’(해외 집단 이주지)가 있고 이들이 쿠바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3)와 같은 대목이나 “올 12월 촬영 예정으로 기획 중인 극영화 <아무르강에 지다>(감독 김관영). 이 영화는 스탈린에 의해 타슈켄트로 강제 이주한 뒤 ‘디아스포라’(고국을 멀리 떠난 정착민)의 상태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의 역사를……”4), 혹은 “『내 고향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일제 치하의 고난에 찬 항일 운동,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온 강 씨의 5대에 걸친 가족사로서, 미국 내 한국계 디아스포라(이민 집단)의 역사라 할 만하다”5) 같은 대목에서 디아스포라 개념이 유대인, 이스라엘 등에 연관되어 사용되던 상황을 벗어나 모국을 떠나 이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확장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빅카인즈 6)의 1990년 이후의 기사 검색을 통해 디아스포라 개념의 빈도를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한 자릿수 정도로 등장하던 이 개념이 2000년대로 들어서면 두 자리로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는 세 자릿수의 빈도로 급증하는 현상을 다음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표 2> 빅카인즈 검색 연도별 디아스포라 개념 빈도(1990-2023).
이 무렵에 이르면 디아스포라 개념이 성립된 애초의 맥락보다 현대적 이산의 상황을 지칭하는 전용된 개념이 오히려 중심이 되는 일종의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가운데 개념적 상황이 다음과 같이 정리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
디아스포라=이산인·이방인 등으로 풀이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에 관심이 집중된 한 해였다. 문화적·학술적 접근이 주를 이뤘다. 디아스포라는 나라 민족 인종들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리듯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용어다. 올해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 지역에 살던 한민족이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안팎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제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달았다. 학술대회의 분야도 다양해 경제 문화 역사 등의 영역에 고루 걸쳤다. 국제신문은 ‘이방인-디아스포라의 안과 밖’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며 앞으로 더욱 깊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7)
”
위의 인용에서 2007년에 이르면 디아스포라 개념이 문화, 학술 영역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렵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해외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한인들(‘한민족’)을 지시하는 상황과 매우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는 상황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문예지에서 디아스포라 혹은 다문화주의를 주제로 한 특집을 기획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고, 필자의 「디아스포라에 의한, 디아스포라를 위한, 디아스포라의 글쓰기」(《문학들》, 2006년 가을호) 역시 그와 같은 흐름에서 ‘경계, 경계에 선, 경계를 넘는 문학’이라는 특집의 일부로서 발표된 것이었다. 그 글을 쓰던 당시의 시점에서 재외 한인은 664만 명(외교통상부, 『2005 외교백서』, 2005. 9, 200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그 숫자는 그 시점의 남한 인구 4728만 명(통계청, 「2005 인구 주택 총조사 전수(인구 부문) 집계 결과」, 2006. 5 참조)의 7분의 1에 해당됐다. 한편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53만 7천 명(행정자치부, 「국내거주 외국인 실태조사 결과」, 2006. 5 참조)으로 집계되고 있었다. 그와 같은 통계 수치는 우리 역시 민족이나 국민국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당시의 한국 문학에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게 된 배경 또한 그와 같은 현실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글의 제목은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소설을 주체, 대상, 의식의 측면에서 정리하는 구도를 드러내고 있다. 8) 우선 (1) ‘디아스포라에 의한 글쓰기’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이주한 한인들, 그러니까 스스로가 디아스포라인 주체에 의해 추구된 소설적 시도를 지칭하는 범주였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그들과 그들의 글쓰기의 존재는 ‘디아스포라’ 개념과 함께 새롭게 발견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 의해 강용흘, 김용익, 김은국, 김난영, 캐시 송, 노라 옥자 켈러, 이창래, 차학경, 수잔 최, 수키 김(재미 한인 문학), 김사량, 장혁주, 김달수, 김석범, 이회성, 김학영, 양석일, 이기승, 이양지, 유미리, 현월(재일 조선인 문학), 김창걸, 김학철(재만 조선족 문학), 율리 김, 아나톨리 김(재러 고려인 문학) 등의 존재와 그들의 작품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2) ‘디아스포라를 위한 글쓰기’에서는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인식, 실천을 목적으로 삼았던 한국 소설의 양상을 ‘역사 속의 디아스포라’와 ‘현실 속의 디아스포라’로 나눠 살폈다. (2-1) 한국 소설에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수립 이전에는 주로 유이민들, 징용자들, 강제 이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국민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한반도 바깥으로 이주하여 형성된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들로 그 초기에는 멕시코에 이주한 노동자들이 등장하는 김영하의 『검은 꽃』(2003), 프랑스 공사와 결혼하여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한반도 바깥을 경험한 궁중 무희 출신 여성을 모티프로 한 김탁환의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2006), 신경숙의 『리진』(2007) 등이 논의되었고,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한 김연수의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2003)와 『밤은 노래한다』(2005)가 그 뒤에 놓였다. 한편 그렇게 시작된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남긴 현실을 다룬 김연수의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2004)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 구효서의 「승경」(2006), 허혜란의 「내 아버지는 서울에 계십니다」(2004)와 「아냐」(2004), 천운영의 『잘 가라, 서커스』(2005), 전성태의 『여자 이발사』(2005) 등이 이 부분에서 함께 다뤄졌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는 국가 정책이나 망명, 이민, 입양 등의 동기에 의한 이주가 우세한 양상으로 변화했다. 국민국가의 장벽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그 시절 국외로의 이주는 1960년대 정책적으로 독일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들, 1970년대 중동으로 파견된 건설 노동자들, 역시 저개발의 소산인 해외입양아들, 그리고 망명객들에 한정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김원일의 「오마니별」(2005)의 입양아,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2004)과 구효서의 「자유 시베리아」(2004)에 등장하는 망명객들, 조선희의 「햇빛 찬란한 나날」(2005), 신경숙의 「성문 앞 보리수」(2005)의 유학생들, 박완서의 「후남아, 밥 먹어라」(2003), 전성태의 「늑대」(2006), 김서령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2006) 등에 등장하는 이민자들, 김숨의 「트럭」(2006)에 나오는 중동 파견 노동자들이 그 사례로서 언급되었다.
(2-2) 한편 ‘현실 속의 디아스포라’에서는 이주의 동기에서 이념성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시선이 망명객으로부터 이민자 디아스포라로 옮겨가기 시작하는 동시대 소설의 상황에 주목했다. 이방에서의 삶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념성을 동기로 갖지 않은 다른 질감의 소설들이 이 시점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박영선의 「휘바, 휘바」(2002)와 「고등어 통조림」(2004), 김윤영의 「집 없는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2004), 「타잔」(2005), 「세라」(2005),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2006), 정영문의 「브라운 부인」(2006), 해이수의 「우리 전통 무용단」(2003), 「어느 서늘한 하오의 빈집털이」(2005), 김서령의 「무화과잼 한 숟갈」(2006), 박정석의 「캐롤라이나 드림」(2006) 등에는 각국에 이주하여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이, 권지예의 「뱀장어 스튜」(2001)와 「정육점 여자」(2001),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2000) 등에는 프랑스와 미국 등 해외에 입양된 인물들이, 은희경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2005)에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일시적인 이산 상태에 놓인 가족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민자 디아스포라와 입양, 혼혈인 디아스포라 등이 ‘타자 안의 우리’를 이루고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우리 안의 타자’들이 있다. 고종석의 「피터 버갓 씨의 한국일기」(2001)와 「고요한 밤 거룩한 밤」(2004), 구효서의 「저녁이 아름다운 집」(2006), 이순원의 「미안해요, 호 아저씨」(2003), 박정윤의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2006), 이신조의 「거울 여자」(2000), 김재영의 「아홉 개의 푸른 쏘냐」(2005) 등에 등장하는 국제결혼 이주자들, 그리고 전성태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2005), 정도상의 「소소, 눈사람이 되다」(2006)와 「함흥·2001·안개」(2006)에 등장하는 탈북자들과 김원일의 「카타콤」(2006)에 등장하는 입북자, 이명랑의 『나의 이복형제들』(2004), 김재영의 「코끼리」(2004), 손홍규의 「이무기 사냥꾼」(2005), 공선옥의 『유랑가족』(2005)과 「명랑한 밤길」(2005), 이혜경의 「물 한 모금」(2003), 강영숙의 「갈색 눈물방울」(2004) 등에 등장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3) ‘디아스포라의 글쓰기’에서는 디아스포라 의식에 기반하여 소설적 탐구를 수행하고 있는 사례로 전성태(월경자의 시선), 배수아(이방인의 시선), 오수연(연대자의 시선), 김연수(방랑자의 시선) 등의 소설을 좀 더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처럼 2000년대 중반 한국 소설에서 디아스포라와 연관된 글쓰기가 급증하면서, 그 뒤에는 데리다, 레비나스, 바디우 등의 논의를 바탕으로 ‘타자’, ‘윤리’, ‘환대’ 등의 개념을 중심에 둔 좀 더 복잡하고 심층적인 비평의 맥락이 형성되었다. 대체로 이 논의들은 그와 같은 경향의 소설들이 한국에서의 이주민들의 삶의 현실과 그 문제점을 일깨우고 타자를 대하는 윤리적 태도를 환기시킨다는 점을 의미화하면서 디아스포라 글쓰기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한편 그 논의들 가운데에는 소설에 나타난 다문화주의의 양상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고, 다문화주의 자체의 한계를 밝히는 지젝(『까다로운 주체』), 웬디 브라운(『관용』) 등의 저작이 번역, 소개되면서 원론적인 차원에서 다문화주의에 내포된 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이런 입장은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둘러싸고 결코 단순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이후의 현실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재외 한인은 7,493,587명(외교부, 『2021 외교백서』, 2019년 기준)으로 그 비중은 더 늘어났다. 국내 거주 외국인 또한 한때 2,216,612명(행정안전부, 「2019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 2019. 11. 1 기준)으로 총인구 대비 4.3퍼센트에 이르렀다가, 코로나19 여파를 통과하면서 현재는 1,752,346명(통계청,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 전수조사결과(전국편)」, 2023. 10. 31 발행, 2022. 11. 1 기준)으로 집계되는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에 비해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의 수도,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도 각각 백만 명가량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아스포라의 존재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에서는 이전에 발표한 글의 구도를 이어 그동안 현실과 서사에서 일어난 디아스포라 지형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디아스포라 주체의 글쓰기 영역은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측면에 대해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2015)가 2016년 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는 사건을 계기로 한국 소설의 번역 현황과 현지 수용의 문제를 살피는 글을 앞서 쓴 바 있다. 「『The Vegetarian』 이후 한국소설의 번역과 현지 수용의 현황과 문제들」(《문학사상》, 2017년 9월호)의 한 대목에서는 특히 그 당시 재미 한인 작가들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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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에는 한국계 미국인 가정의 갈등을 그린 정 윤(Jung Yun)의 Shelter, 8월에는 탈북자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크리스 리(Krys Lee)의 How I Became a North Korean이 출간되었고, 2017년에 들어서는 2월에 식민지 조선과 해방 이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민진(Min Jin Lee)의 『파친코(Pachinko)』와 197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유진 그레이스 부에르츠(Yoojin Grace Wuertz)의 Everything Belongs to Us가, 5월에는 1985년 서울과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한 지민 한(Jimin Han)의 A Small Revolution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그리고 조만간 출간을 앞두고 있는 크리스틴 형옥 리(Christine Hyung-Oak Lee)의 The Golem of Seoul 또한 제목을 두고 생각해 보건대 작가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문화적인 충돌과 융합의 경험을 서사화한 이 한국계 미국인 소설들의 계열에 속하리라 짐작된다. 9)
”
이때 이미 새로운 세대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등장이 하나의 현상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특히 이민진의 『파친코』는 OTT 매체를 통해 드라마로 각색되어 전 세계에 상영되면서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이후 “예술가가 된 딸의 시선으로 1세대 이민자인 어머니의 삶을 되짚는 이야기” 10)로 말해질 수 있는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가 《뉴요커(The New Yorker)》에 연재되고 또 단행본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2021)로 출간되어 큰 반향을 얻었던 일을 비롯하여 재미 한인 작가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디아스포라에 의한 글쓰기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기사에서는 “심청전 같은 고전을 각색하거나 조선․일제강점기 등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는 추세가 생겼다” 11)면서 한국계 미국인, 캐나다인 작가의 소설에 한국의 고전과 역사가 모티프로 차용되고 있는 최근의 사례를 다뤘다. 심청전을 다시 쓴 로맨스 판타지인 악시 오의 『바다에 빠진 소녀(The Girl Who Fell Beneath the Sea)』(2022),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허주은(June Hur)의 『뼈의 침묵(The Silence of Bones)』(2020), 『사라진 소녀들의 숲(The Forest of Stolen Girls)』(2021), 『붉은 궁(Red Palace)』(2022),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a Little Land)』(2021) 등이 그와 같은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었다.
소설뿐만 아니라 동화와 SF 등의 장르에서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한국의 설화가 모티프로 차용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태 켈러(Tae Keller)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When You Trap a Tiger)』(2020)과 이윤하의 『호랑이가 눈뜰 때(Rick Riordan Presents Tiger Honor a Thousand Worlds Novel)』(2022) 두 작품에는 공교롭게도 공통적으로 호랑이가 등장한다. 한국 할머니의 이야기 속 호랑이가 손녀 릴리 앞에 나타나거나(『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천 개의 세계’ 우주군 군인 세빈이 호랑이로 변신하는 종족의 후예로 설정되어 있다(『호랑이가 눈뜰 때』). 재미 한인 2세대 작가로 『종군 위안부(Comfort Woman)』(1997)를 쓴 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의 딸이기도 한 태 켈러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의 「작가의 말」에서 “할머니의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그리고 4분의 1의 한국인이 섞인 사람이 아니었다(When I listened to Halmoni, I wasn't part white, part Asian, one-quarter Korean, mixed)”12)고 적은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앞서 『H마트에서 울다』에서의 음식과 더불어) 이야기가 정체성의 중요한 매개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태 켈러는 4분의 1의 한국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창래의 『타국에서의 일 년(My Year Abroad)』(2021)의 주인공 틸러 바드먼은 한국인의 피가 8분의 1 섞여 있는 인물이다. 이런 비율에 따라 이야기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층은 점차 엷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되지만, 이런 상황은 다른 한편으로 주인공의 하와이, 마카오, 선전 등 ‘타국에서의 일 년’의 경험과 귀국 후 중국인 혼혈 밸과의 관계를 통해 디아스포라 문제의 외연을 민족적 경계 너머로 확장시키면서 보편적 지평을 도입하는 조건을 제공한다.
다른 기사에서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주변인으로서의 소외감 등에 집중했던 소설은 이제 성장, 가족뿐만 아니라 사랑·성공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3)면서 디아스포라에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 보편적인 이야기로 넓어져 가는 해외 한인 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이 기사는 그 사례로 H. K. 초이(최현경)의 소설 『요크(Yolk)』(2021), 니콜 정의 『내가 알게 된 모든 것(All You Can Ever Know)』(2018),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2021) 등의 회고록 등을 소개하고 있다. 14) 미국 내의 한국계 이민자 가족으로부터 입양된 저자의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 『내가 알게 된 모든 것』은 “인종이 다른 가족에 입양되어 자란 입양인의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증언함으로써, 그간 간과되어 온 인종적 차이라는 해외 입양의 본질적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15)는 「옮긴이의 말」의 한 대목에서 보듯 입양의 문제에 내포된 민족적 층위 이면의 지대를 드러내 보인다.
대학에서 사회학,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한국전쟁 후 가족을 잃고 부산의 기지촌에서 미국 선원을 만나 미국으로 이주한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고하는 『전쟁 같은 맛』 또한 이민자 서사의 민족적 레퍼토리의 경계 너머의 보다 심층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있는데, 그 동력을 “글을 쓰는 내내 어머니를 피해자로만 보길, 내 학문 분야의 규칙을 따르길, 이민자들이 미국에 빚을 지고 있으니 이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또 가장 중요하게는, 다른 가족들이 수치스럽게 여겨 말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길 거부했다. 나는 어머니를 한국 밖으로 몰아내 은둔생활을 하게 한 세력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16)라고 표명된 저자의 의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크』에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지향해 나가는 경향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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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민자의 자식들은 항상 ‘내가 우리 위 세대의 가장 큰 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하잖아. 우리 부모님이 희생한 건 알지만 한편으로는 두 분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와 누나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삶의 터전을 바꾼 거 말이야. 그리고 아버지는 폭력적인 형에게 많은 돈을 주고 있거든. 자아도취 사이코패스인데 그저 장남인지 뭔지 하는 이유로 우린 눈감아 줘야 하지. 자기를 우선시하지 않고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집단주의 사고방식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가끔은 그만 좀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번씩은 선을 긋고 패턴을 깼으면 좋겠어.”
나는 그와 함께 등을 기댄다. 내 어깨에 그의 어깨가 닿아 온기가 전해진다. 17)
”
『요크』에서 한국인 부모를 둔 패트릭과 ‘나’(제인)의 대화이다. 주로 ‘나’와 언니(준)를 비롯한 같은 세대의 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성장담의 질감은 이전 세대 한국계 미국인 소설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처럼 디아스포라로서의 소외 의식이라는 기존의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경향 가운데에서도 작가의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그 밑바탕에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위의 인용에서도 그 점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개브리얼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2022)에서는 그것이 다소 다른 형태로 드러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 개발자 샘에게는 어머니 안나,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피자 가게(그곳에서 샘은 ‘동키콩’ 게임을 마음대로 했다)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동현, 할머니 봉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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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에서는 아무도 샘을 한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맨해튼에서는 아무도 샘을 백인으로 보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샘은 ‘백인 사촌’이었다. 뉴욕에서는 ‘중국인 꼬마’였다. 그래도 K타운에서 샘은 난생처음 자신이 한국인임을 실감했다. 아니 좀더 콕 집어 애기하자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꼭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중립적인 사실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 깨달음이 샘에게 진지한 자의식을 심어주었다. 웃기게 생긴 혼혈 꼬마는 세상의 언저리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존재할 수도 있었다. 18)
”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소설에서 샘이 한인타운에서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경험하는 일은 그의 정체성에 중요한 사건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작가의 이전 소설들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요소였다.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2015)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네 명의 게이가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 인물들이 만나는 장소로 한국 바비큐 식당도 나오고 그들의 지인 가운데에는 “레즈비언 삼인조의 세 번째 멤버로,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오가며 늘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준비하는, 건장하고 감정적인 한국계 미국인” 19)인 이디 김(남성으로의 성전환을 계획 중이다)과 같은 인물도 있다. 이런 소설 속 상황은 저자에게 한국인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연유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회의 현실에 대응되는 이야기의 표면 아래에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디아스포라 의식이 그런 방식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처럼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양적으로 확대되면서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서사로부터 벗어나 보편성을 지향하면서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다층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었거니와, 다른 한편에서는 디아스포라 의식의 심화라고 할 만한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과 한국계 미국인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2018)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시를 중심으로 “‘나’의 지리적, 문화적, 개인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특수한 맥락과 현재적 경험에 대한 시들을 포함하며, 넓게는 유해한 남성성, 군국주의, 제국주의, 전쟁, 인종차별, 언어에 의한 고통을 다루고 있” 20)는 시집이다.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2020)에서 저자는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몸 안에 살면서 느끼는 나 자신의 상반된 감정을 가능하면 투명하게 풀어놓고자 한다”21)는 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그 ‘상반된 감정’은 그녀가 모범 소수자에 대한 백인의 선입견과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 사이에 놓여 있는 미국 한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양면으로부터의 압력을 받아내면서 디아스포라로서 살아가는 한 아시안 미국인 여성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
나는 두순자가 사회봉사명령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난 것이 부끄럽다. 가게 직원들이 흑인이 물건을 훔칠 것으로 생각해서 그들을 따라다니고, 개업한 동네에서 주민들과 더 열심히 교류하려고 애쓰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 한인 사회에 존재하는 흑인에 대한 반감이 부끄럽다. 바로 그래서 아시아인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계속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피해와 가해라는 표현도 실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22)
”
캐시 박 홍의 이와 같은 의식이 허구 형식으로 전환된 결과가 스테프 차(Steph Cha)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Your House Will Pay)』(2019)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1991년 두순자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소설에서는 한정자 사건으로 치환되어 있으나 “소설이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이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라타샤 할린스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23)라고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사건에 28년에 걸쳐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 사이에서 해소되지 않고 이어진 갈등의 역사를 허구를 통해 제시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사이에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인종적 갈등의 관계를 탐색한 소설이다.
이처럼 시간적 추이에 따른 한국계 미국인 소설의 양적 증가는 보편화와 심층화의 경향을 교직하면서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변화에 대응되는 한국계 일본인 소설의 사례를 가네시로 가즈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연구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 “이전 세대들이 재일 한국인의 입장에서 차별을 나타낸 반면 가네시로 가즈키는 그 범위를 벗어나서 좀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차별’을 다루고 있다” 24)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태도는 일본 사회의 소수자 집단이 민족적으로 다양화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재일 한국인이 취할 수 있는 새로운 공존의 윤리를 모색하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한국계 중국인 소설에서도 유사한 맥락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작품을 발표하여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2015)과 장편 『천진 시절』(2020)을 출간한 금희의 소설에 대해 “디아스포라 주체를 무의식적으로 타자나 이웃으로 상정하던 한국 문학에서 벗어나 그들을 현실 세계 속 주체로 그려낸다” 25)는 분석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금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활과 그 속에서의 고민은 디아스포라라는 관념보다 부분적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인물의 일상에 밀착되어 있어 이전의 전통적인 재만 조선족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실감을 준다.
한국계 러시아인 소설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 논문에서는 소비에트 해체 이후 젊은 고려인 작가와 시인들의 창작 활동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고려인의 정체성에 거점을 두는 ‘고려인 문학’이 아닌, ‘문학하는 고려인’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 26)는 점에서 찾고 있다. 이런 특징을 보여 주는 사례로 박미하일의 『예올리』(원제는 ‘강을 따라가는 가벼운 여행(Лëгкое путешествие по реке)’으로 2007년 러시아 카타예프 문학상 수상작이다)를 들 수 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안드로이드 로봇 예올리가 등장하는 SF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렇지만 “박미하일의 다른 소설처럼 정체성에 대한 서사로서 집단 기억과 역사의 회복, 개인의 서사와 낭만적 꿈의 탐색, 되기(becoming)의 여정에 집중하는 점은 유사” 27) 하다는 분석에서 보듯 디아스포라의 존재 조건에 대한 탐색의 새로운 형태로 볼 수 있다. ‘나’와 예올리가 한국으로 이주하여 살아가는 소설의 결말 또한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입양을 매개로 주로 유럽 지역에서 성장한 세대에 의한 창작 활동도 확대된 상황이다. 한 논문은 이 상황에 대해 “그동안 미국이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입양된 한국 출신 작가들에 의해서 이미 다수의 소설과 시, 희곡이 발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8)면서 그 대표적 작가로 이미 우리에게 번역, 소개되어 있는 제인 정 트렌카(Jane Jeong Trenka)와 아스트리드 트롯찌(Astrid Trotzig), 그리고 브륀율프 융 티옌(Brynjulf Jung Tjønn, 정서수), 마야 리 랑그바드(Maja Lee Langvad) 등을 들고 있다.
이렇듯 디아스포라에 의한 글쓰기의 영역에서는 그 양적인 확대의 양상과 함께 다양성, 보편성의 경향을 띠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주제 의식의 심화와 맞물리면서 디아스포라 서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디아스포라의 주체, 그러니까 재외 한인 사회의 변화한 위상과 그 새로운 세대의 특성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한 한국 소설들의 최근 양상 역시 이전 글의 구도에 입각하여 ‘역사 속의 디아스포라’와 ‘현실 속의 디아스포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세대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사건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의 전환이 눈에 띈다. 가령 최은영의 「씬짜오, 씬짜오」(2016)는 옛 동독 지역의 도시에서 만난 한국과 베트남의 이주민 가정의 관계를 통해 그동안 피해자의 관점에서만 재현되던 베트남 전쟁에 가해자의 문제를 도입하고 있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2020)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하와이에서 노동자로, 또 이후 독일로 이주해서는 아시안 여성 예술가로 살았던 심시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삶이 여성적 관점, 그리고 그 기대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도되어 있다.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2023)는 1960-197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파독 간호사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그동안 연구의 영역에서는 “파독 간호여성에게는, 당시 한국의 일반적인 젊은 여성과도 차별화되는 ‘희생과 헌신’의 이미지가 덧씌워” 29)져 국가 주도의 개발담론에 의해 왜곡된 사실이 비판적으로 지적되면서, 개발 시기에 이주한 한인 여성들이 새로운 삶의 기회를 개척하고 생존을 책임지는 “주체로 살아간 이야기들, ‘민족’과 ‘성공’의 프레임 안에서는 포착될 수 없는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을 재조명” 30)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던 터였다. 이 소설은 그와 같은 기대에 대한 응답처럼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소설화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이런 의식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는 소설 속 “도서관에 틀어박혀 읽은 많은 자료 속에서 가장 빈번히 발견한 단어는 아마도 오래전 ‘윤리’가 강조했던 것처럼 ‘가난’이나 ‘희생’ ‘애국’ 같은 말일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소설을 써나가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과장해서 쓰긴 했지만, 독일로 이주했던 한인 간호 여성들을 ‘희생’이나 ‘애국’의 프레임으로 단순화해서 바라보지 않으려 한 최신 연구 자료들을 장편소설을 준비하는 동안 자주 발견했다. 31)
”
한 대담에서 작가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던 파독 간호 노동자들에 대한 전시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쌍하고 희생적인 ‘누이들’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자성을 강조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보여주는 전시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70년대에 독일로 자발적으로 떠난 여성들은 대체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하는 생각” 32)에서 출발하여 소설을 구상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기초하여 이전 시기 정도상의 『푸른 방』(2000), 조정래의 『한강』(2001), 공지영의 『별들의 벌판』(2004) 등의 소설에서 희생과 헌신이라는 관점에 의해 파독 간호사들이 재현되었던 시대적 한계에 대한 대안적 서사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최근 한국 소설에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새로운 관점에 의해 전유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명』(2016) 이후 지속적으로 ‘위안부’의 문제를 서사화해 온 김숨의 『잃어버린 사람』(2023) 또한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노동자로, 그리고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 부산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려 내면서 그들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존재로서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관점으로 전유될 수 없는 역사도 있다. 1945년 8월 20일 오키나와 제도에 속하는 구메지마(久米島)에서 일본군들에 의한 조선인 일가 몰살 사건을 취재하여 소설화한 「구메지마」(《너머》 3호, 2023. 6)와 오키나와 전쟁 중 1945년 4월 중순부터 일본 육군이 야전 병원으로 사용한 인공 동굴을 배경으로 한 조선인 병사의 죽음을 그려 낸 「20호 동굴」(《쓺》, 2023년 하반기호) 등을 통해 김숨은 지금까지 묻혀 있던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기록과 탐사에 의해 다시 마주하고 있다.
국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의 비중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2009년 12월 당시 국내 체류 외국인은 모두 1,168,477명으로 늘어났다. 그 가운데 근로자는 565,898명으로 48.4퍼센트, 결혼 이민자는 125,087명으로 10.7퍼센트, 유학생은 80,985명으로 6.9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통계」, 2010년 1월 8일 발표 참조). 필자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현실 속의 디아스포라를 등장시킨 한국 소설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에 주목하여 한 편의 글을 쓴 바 있는데, 그 글(「현장의 고통으로부터 상호관계 속의 일상으로—최근 소설에 나타난 다문화적 현실의 새로운 층위」,《문장웹진》, 2010년 5월호)에서는 정한아의 「천막에서」(2008),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2009),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2009), 한지수의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2010) 등을 대상으로 그 변화의 양상과 특징을 살폈다.
다문화 현상을 소재로 한 그 시기의 소설들에서 나타나고 있던 새로운 점은 우선 다른 문화에 대한 동정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인물들 사이의 대등성, 수평성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앞선 시기 다문화주의 소설들이 이주민들의 불행을 부각시켰다면, 이 신진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그들의 일상과 삶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서로 다른 국적인 인물들은 상호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다문화주의와 관련된 당시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갈등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성급하게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의 방향으로 이끌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그 소설들은 그와 같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일상을 견디며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해 뚜렷이 인식하게 되고 더욱 긍정적인 의지를 품는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전망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결혼 이주민 여성의 현실을 그린 서성란의 『쓰엉』(2016)과 강희진의 『카니발』(2019), 33) 이주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취한 김민정의 「안젤라가 있던 자리」(2012), 민정아의 「죽은 개의 식사 시간」(2013), 강화길의 「굴 말리크가 잃어버린 것」(2013), 유현산의 『두 번째 날』(2014), 탈북자를 모티프로 하여 서사화된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2011), 강희진의 『유령』(2011), 이경자의 『세 번째 집』(2013), 정이현의 「영영, 여름」(2014) 등이 발표되었다. 34)
그렇지만 해외 한인들의 문학적 활동이 확장, 심화되고 또 그 성과가 번역 등의 과정을 통해 국내로 더 원활하게 전달되는 현상에 비해, 국내에서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은 그와 대칭적이지 않다. 현실의 상황이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문제의 지형을 이전에 비해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2018년 6월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의 수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내부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한 논문에서는 “500여 명의 난민 신청자들을 두고 70여만 명이 수용 반대 청원에 서명한 상황,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700여 명의 국민이 모여 ‘국민, 먼저’와 ‘혐오가 아닌 안전’을 외치는 상황, 그중 많은 이들이 청년이며 여성이라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35)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독재정권 시절까지/탄압을 피해 이 나라를 떠난 한국인들과/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 글로벌 시대에/내전을 피해 이 나라를 찾아온 예멘인들은/속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36)는 발언이 시적 형식을 빌려 제시되기도 했었지만, 그에 비해 ‘반다문화적 정동’이 훨씬 거셌다. 다문화 담론을 지탱하고 있던 타자성에 관련한 이론적 논의의 영향력은 가라앉았다. 이런 추세는 단지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일본의 한 평론가는 “2017년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은 ‘타자와 함께하는 데 지쳤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더는 누구도 타자가 소중하다는 진보적 주장에 귀담아듣지 않는다” 37)면서 ‘타자론’으로부터 ‘관광객론’으로의 이론적 선회를 선언한 바 있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프랑스로 입양된 여성과 기지촌 출신 여인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디아스포라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는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2019), 그리고 해외 입양된 인물을 기존의 피해자 자리에서 꺼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박민정의 「신세이다이 가옥」(2019)과 「백년해로외전」(2022-2023) 등이 발표되었다. 국내 거주 해외 이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르포 형식으로 취재한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의 생존 보고서』(2023)와 같은 노력 또한 한편에서는 이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공현진의 「녹」(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에서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며 이혼 후 육아의 곤경에 처한 화자와 수업 교실의 학생이면서 아이를 돌봐주던 이주민 여성 녹과의 관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디아스포라 문제를 둘러싼 관계가 한층 복잡해진 상황이 드러나 있다. 손병현의 「맹랑한 월남댁」(《너머》 4호, 2023. 9)에서는 결혼 이주민 여성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고 적극적인 의욕과 행동을 펼치는 상황이 세태적 관점에서 재현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 소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젠더를 비롯한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쓰는 한편 여전히 미지의 지대로 남았던 역사적 사건을 서사화하는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실 속에서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문제의 지형은 한층 복잡해졌고 소설 또한 그에 따라 더 구체적인 문제와 의식을 천착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은 어디에도 온전하게 소속되지 못한 불안정한 것이지만, 글쓰기의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 경계의 자리는 내부 혹은 중심을 반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처럼 경계인의 의식에 기반하여 수행된 글쓰기의 사례들을 얼마든지 떠올려볼 수 있다. 멀리는 제임스 조이스나 사무엘 베케트(아일랜드와 프랑스)를, 가까이는 G. W. 제발트(독일과 영국), 밀란 쿤데라(체코와 프랑스), 다와다 요코(일본과 독일)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손창섭(일본), 박상륭(캐나다), 마종기(미국), 허수경(독일) 등의 사례들이 있다.
이민자로 살아가지만 한국 문단에 등단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도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독 한인들의 삶을 소설화한 변소영의 『거의 맞음』(2013), 캐나다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의 삶을 그려낸 반수연의 『통영』(2021), 호주 이민자의 일과 생활의 다양한 양상을 순차적으로 서사화하고 있는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2020), 『유진과 데이브』(2022), 『올리앤더』(2022) 등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해외 체류의 경험을 토대로 문화적 경계를 창작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지속, 확장되고 있다. 박형서의 『새벽의 나나』(2010)에서의 태국, 윤고은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2014)에서의 호주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럽의 도시나 소읍을 주유하는 『바셀린 붓다』(2010),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어떤 작위의 세계』(2011), 텍사스에서 겪는 일들로 채워진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2018) 등의 정영문 소설 또한 이런 맥락에서 되돌아볼 수 있다.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2022), 백수린의 「빛이 다가올 때」(2023)에서 뉴욕이라는 공간 또한 이들의 이야기에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뉴욕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노동자 지혁의 이야기인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2020)와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비정규직 대학 강사 생활을 하며 겪는 이야기인 『중급 한국어』(2023) 연작에서 뉴욕과 서울이라는 공간은 서사의 기본 구도를 이루고 있다. 김사과의 『천국에서』(2013)의 서사 공간 역시 뉴욕에서의 케이와 그녀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로 분할되어 있다. 김사과의 경우 뉴욕과 서울 사이의 경계 의식은 산문의 형태로 추구되어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2020)에 담겼다.
김솔의 『유럽식 독서법』(2020)은 영국,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그리스, 알바니아, 러시아 등을 배경으로 이민자, 불법체류자, 난민들의 모습을 통해 유럽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다. 배수아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2023)에서 그녀가 베를린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수행하는 사유는 머물지 않는다는 조건 위에서 얻어진 것이다. “은둔할 수 없다면, 집이 아니다. 38)는 글 속의 구절이 그 점을 말하고 있다.
한편 황모과의 「스위트 솔티」(2020)에서 디아스포라 의식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발생한다.
“
목소리는 말했다. 부산에서 새로 가족이 된 고향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우리는 모두 먼바다에서 외롭게 떠돌다 결국 만나게 된 형제들이라고. 바다 위에 살든 육지 위에 살든, 우리는 모두 그저 망망대해 위를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고. 목소리는 우리를 부산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전 세계 곳곳 항구마다 난민들이 들어와 선주민들과 난민들이 섞여 살며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세상을 계획했다.
예지몽처럼 가까운 미래가 눈앞에 보였다.
인류가 새로운 별로 떠나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빙하가 모두 녹은 뒤 풍랑은 더욱 거세어졌다. 부산항은 절반 이상 수몰되었다. 바다에 잠겨 얼마 남지 않은 지상은 지진이 계속되어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어지럼증을 안겼다. 인류 전체가 곧 난민이 될 예정이었다.
39)
”
‘나’는 여러 국가로부터 탑승한 인물들이 모인 배 위에서 태어났다. 그 자체가 ‘선상에 부유하던 연합국’인 배 안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배에서 내려 도착했던 나라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어머니의 나라 ‘바다거품’의 언어로 진주라는 뜻의 ‘무티아라’로부터 시작한 ‘나’의 이름은 타스만에서의 ‘스위티 솔티’를 거쳐 마침내 도착한 부산에서는 ‘김진주’가 된다. 그렇지만 그녀가 예지몽처럼 바라보는 가까운 미래에서 지구는 종말의 상황을 맞아 인류 전체가 난민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되고, 우주를 향해 새롭게 떠나야 하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의 상황이 다시 시작된다.
이처럼 한국 소설에서 디아스포라 의식은 다양한 공간 위에 파편적으로 산재(散在)하면서 글쓰기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범위는 세계 각지의 국가와 도시를 거쳐 가상의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어 온 디아스포라에 의한, 디아스포라를 위한, 디아스포라의 글쓰기는 그 진전의 과정에서 각 범주의 구획을 넘어 연결되면서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상에서 앞서 발표했던 필자의 글들 이후에 전개된 디아스포라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우선 디아스포라에 의한 글쓰기의 영역에서는 해외 한인 작가들의 저작이 양적으로도 증가하고 내용의 측면에서도 다양해지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외부에서의 디아스포라 영역의 확장과 다양화는 역설적으로 디아스포라의 의미가 희석되면서 보편성의 방향으로 전환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한인 작가들의 성공은 그들 작품의 국내 번역과 소개를 활성화했는데, 그 반대편에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의 해외 소개도 이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2017년 9월 당시까지 해외에 번역, 출간된 한국소설이 1,828편이었던 데 비해, 2023년 11월 현재 한국문학번역원 홈페이지의 ‘Digital Library of Korean Literature’에서는 6,695편의 번역 소설이 확인된다. 불과 6년 사이에 거의 네 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한 기사에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에서의 평가는 높아진 반면 국내에서의 독자들의 반응은 옅어지고 있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있는데, 40) 어떻게 보면 그런 방향으로 문학의 리그도 세계 문학과 국민 문학의 연결 구도로 재편되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한편 국내외의 현실 속에서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지형은 이전에 비해 복잡해지고 다층적이 되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역사적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하나의 아카이브로 통합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건들은 새로운 관점에 의해 전유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쓰이고 있었다. 현실 속에서는 디아스포라의 문제가 더 이상 일면적이지 않고 서로의 이해와 관점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한 소설적 진단 또한 어떤 관념에 의거할 것이 아니라 움직여 나가는 구체적인 상태에 대응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겠다.
디아스포라 의식은 글쓰기와 관련하여 더욱 넓어진 입지를 갖게 된 듯 보였다. 이동이 더 수월해지고 뉴미디어의 접속이 활발해지는 현실 상황이 그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듯했다. 작가들은 그와 같은 경계의 지점에서 기존의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고유한 소설적 시선을 마련하려는 의지를 가다듬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의 의지로부터 새로운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미래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는 1999년까지의 기사를 검색할 수 있다. 검색 결과 디아스포라의 연도별 출현 빈도는 다음 표와 같다.
<표 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검색 연도별 디아스포라 개념 빈도(1970-1999).
2) 「전란(戰亂) 속의 성지순례 2—예리코 계곡」, 《조선일보》, 1970년 9월 27일 자.
3) 「탈냉전…종교…—불(佛) 국제관계전문가 급변 세계 진단 대담」, 《경향신문》, 1991년 10월 21일 자.
4) 「효과음 귀재 김벌래 비디오 제작」, 《동아일보》, 1993년 9월 27일 자.
5) 「한국문화 오해 풀렸으면—미국서 가족이민사 펴낸 코니 강」, 《한겨레》, 1995년 9월 20일 자.
6) 빅카인즈(www.bigkinds.or.kr)에서는 1990년 이후의 기사를 검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7) 「올해의 발견—디아스포라」, 《국제신문》, 2007년 12월 21일 자.
8) 이 제목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의 한 대목인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전용한 것이다. 원래는 국민의(주체), 국민에 의한(수단, 말하자면 총 같은 것이 아닌 법률과 선거에 의해 선출된 ‘민중’에 의한), 국민을 위한(목적)이라는 순서와 내용을 글의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사용했다.
9) 손정수, 「『The Vegetarian』 이후 한국소설의 번역과 현지 수용의 현황과 문제들」, 《문학사상》 539호, 2017, 37-38쪽.
10) 정혜윤, 「옮긴이의 말」, 『H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 2022, 402쪽.
11) 「K고전․역사로 무장… 한국계 美 소설가 속속 등장—‘K컬처’ 위상 높아지며 한국 배경 소설 美서 잇달아」, 《조선일보》, 2023년 7월 20일 자.
12) “Author's Note”, When You Trap a Tiger, Penguin Random House, 2020.
13) 「한국계 MZ 작가, ‘히스토리’ 넘어 ‘마이 스토리’를 풀다」, 《문화일보》, 2023년 8월 23일 자.
14) 한편 이 기사는 한국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되 평범한 10대 소녀가 할 만한 일상을 보여주며 재기발랄한 하이틴 로맨스를 선보인 제니 한의 하이틴 로맨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가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함께 전했다.(이 시리즈의 주인공 라라진의 동생 키티를 주연으로 하는 스핀오프 드라마 <엑스오, 키티(XO, Kitty)>(2023)는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아직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지 않은 미국 내 한인 작가들의 주목되는 작품으로 성형 수술·룸살롱 문화 등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다룬 프랜시스 차의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If I Had Your Face)」(2020), 엄마·가족에 관한 이야기인 E. J. Koh(고은지)의 「마법 같은 언어(The Magical Language of Others)」(2020), 한국인 가족을 둘러싼 비밀을 다룬 지민 한의 「사죄(The Apology)」(2023) 등을 소개하고 있다.
15) 니콜 정, 정혜윤 옮김, 「내가 알게 된 모든 것—기억하지 못하는 상실,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 원더박스, 2023, 352쪽.
16) 그레이스 M. 조, 주해연 옮김, 「한국어판 서문」, 「전쟁 같은 맛」, 글항아리, 2023, 10쪽.
17) 최현경, 박아람 옮김, 「요크」, 책읽는수요일, 2023, 291-292쪽.
18) 개브리얼 제빈, 엄일녀 옮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문학동네, 2023, 134-135쪽.
19) 한야 야나기하라, 권진아 옮김, 「리틀 라이프」, 시공사, 2016, 315쪽.
20) 에밀리 정민 윤, 「‘찾은 시’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종족의 잔인함—한국어판 서문」,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한유주 옮김, 열림원, 2020, 19쪽.
21)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한국 독자들에게」, 「마이너 필링스」, 마티, 2021, 14쪽.
22) 같은 책, 90쪽.
23) 스테프 차, 이나경 옮김, 「작가의 말」,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황금가지, 2021, 397쪽.
24) 박죽심, 「재일 신세대 작가의 새로운 방향 모색—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문화콘텐츠연구」 12호, 2012, 50쪽.
25) 황지선, 「디아스포라 주체의 모빌리티와 행복의 젠더화—금희의 소설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86호, 2021, 245-246쪽.
26) 홍용희,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역사적 이해와 창조적 소통의 모색」, 《비교한국학》 30권 3호, 2022, 198쪽.
27) 노대원, 「길 위의 포스트휴먼—박미하일 소설 「예올리」의 포스트휴먼 디아스포라」, 《현대문학이론연구》 87호, 2021, 266쪽.
28) 박정준, 「한국 출신 국외입양인 문학에 나타난 자아 재구성의 문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4, 5-6쪽.
29) 김민정, 「‘조국’에 대한 공헌과 ‘재외한인’으로의 인정」, 「경계를 넘는 한인들—이주, 젠더, 세대와 귀속의 정치」, 한울, 2021, 127쪽.
30) 황정미, 「개발 시대의 해외이주와 젠더—‘국위선양’에 가려진 여성의 해외이주 다시 보기」, 같은 책, 82쪽.
31) 백수린, 「작가의 말」, 「눈부신 안부」, 문학동네, 2023, 314쪽.
32) 백수린․신수정, 「안녕, 선자 이모(들)에게, 그리고 어렸던 나에게」, 《문학동네》 117호, 2023, 429쪽.
33) 결혼 이주민 여성의 문제를 소재로 한 소설에 대한 연구도 지속되어 구재진의 「‘사물’로서의 이웃과 결혼이주여성의 목소리—「쓰엉」과 「카니발」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연구」 68호, 2022 등의 최근 연구까지 이어지고 있다.
34) 이경재의 「다문화 시대의 한국소설읽기」(소명출판, 2015)에는 이 국면에서의 다문화 문제 관련 소설들이 정리, 분석되어 있다.
35) 전의령, 「타자의 본질화 안에서의 우연한 연대—한국의 반다문화와 난민 반대의 젠더정치」, 《경제와 사회》125, 2020, 362쪽. 이런 문제 제기와 병행하여 그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 내부의 성찰이 김선혜 외 36명의 글을 모은 「경계 없는 페미니즘—제주 예맨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와온, 2019)에 담긴 바 있다.
36) 하종오, 「찬반 집회」, 「제주 예멘」, 도서출판b, 2019, 52-53쪽.
37) 아즈마 히로키, 안천 옮김, 「관광객의 철학」, 리시올, 2020, 15쪽.
38)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문학동네, 2023, 22쪽.
39) 황모과, 「스위트 솔티」, 《오늘의 SF》 2호, 2020, 196-197쪽.
40) 「세계가 주목하는 K문학…정작 한국에서 “그게 누군데요?”」, 《매일경제》, 2023년 11월 17일 자.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학 평론 활동을 시작하여 『미와 이데올로기』,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우스』, 『비평, 혹은 소설적 증상에 대한 분석』, 『텍스트와 콘텍스트, 혹은 한국 소설의 현상과 맥락』, 『소설 속의 그와 소설 밖의 나』 등의 평론집을 출간했다.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