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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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별의 시간

평론: 조혜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그리고 자기 본질과의 대면

조혜진

1. 리스펙토르의 이동하는 삶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 1920-1977)는 여러 언어와 장소를 횡단한 인물이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체첼니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고, 본명은 차야 핀자소브나 리스펙토르(Chaya Pinjasovna Lispector)였다. 차야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인 1921년 그녀의 가족은 1917년부터 계속된 러시아 내전을 피해 몰도바, 루마니아로 이동했다. 차야가 태어나기 전, 그녀의 어머니는 러시아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후 매독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리스펙토르는 자신이 잉태되던 시절에는 임신하면 여자의 병이 치료된다는 믿음이 있었고, 자신이 잉태된 것도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1) 1922년 그녀의 가족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러시아 여권과 브라질 여행 허가증을 취득해 프라하, 함부르크를 거쳐 브라질 북동부 지역인 알라고아스(Alagoas) 주의 마세이오(Maceió)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차야의 가족은 포르투갈어 이름으로 개명했다. 아버지는 피냐스(Pinjas)에서 페드루(Pedro)로, 어머니는 마냐(Mania)에서 마리에타(Marieta)로, 차야는 클라리시로 개명했다.
  리스펙토르 일가는 1925년에 브라질의 또 다른 북동부 지역인 페르남부쿠(Pernambuco) 주의 주도 헤시피(Recife)로 이주했다. 클라리시는 이곳에서 성장하면서 언어가 갖고 있는 마력을 발견했고, 7살 때부터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다. 집안에서는 여전히 이디시어를 사용했지만 클라리시는 헤시피에서 포르투갈어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녀는 포어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그녀가 10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사망한 곳도, 평생을 자신의 진짜 집이라고 생각한 도시도 바로 헤시피였다. 1935년 클라리시는 아버지, 언니와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로 이주한 후 1939년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녀는 법을 공부하는 한편 단편소설을 출간하고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1943년에는 19세에 써둔 첫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출간하면서 브라질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고, 그해에 출간된 최고의 소설에 수여되는 그라사 아랑냐(Graça Aranha)상을 수상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1944년 외교관과 결혼한 후 남편을 따라 브라질을 떠났다. 1944-1949년에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지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끊임없이 이주하는 삶을 힘겨워했다. 1949년에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왔으나 1952년 미국의 워싱턴 D.C.로 이주해 8년간 거주했고 1959년에 남편과 헤어진 후 리우데자네이루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가 남편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외교관의 아내라는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작가로 살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리스펙토르의 삶은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삶, 지속적으로 옮겨 다니는 삶이었다. 또한 그녀의 삶은 자기 자신으로서 오롯이 서기를 추구하는 삶, 때때로 자신이 세상의 부적응자로 여겨질 때도 있지만 자기 내면과 진솔하게 직면하려는 삶이기도 했다.

2. 주인공의 타자성, 그리고 자의식 결핍

  이 글에서 다룰 『별의 시간』은 자신이 사회적 타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던 주인공이 자기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로, 리스펙토르가 1977년 자궁암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출간한 작품이다.2) 이 소설을 집필하던 시기에 리스펙토르는 1966년부터 겪은 화상의 여파, 작가로서의 생활고 등 거듭되는 역경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브라질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인 북동부 알라고아스 주의 오지 출신으로 “그녀의 부모는 귀신도 신발을 잃어버린다는, 숲이 우거진 알라고아스 오지에서 장티푸스를 얻어 생을 마감했다.”3) 즉, 천애 고아인 주인공은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으나 더 나은 삶을 찾아 대도시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해 타이피스트로 근무하는 사회적 타자다. 주인공의 여러 조건은,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 클라리시가 어머니의 사망 이후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가족과 함께 대도시로 이주한 모습과 겹쳐진다. 주인공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데다가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고, 삶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속이 텅 빈 여성이다. 그녀는 마카베아(Macabea)라는 이름이 있지만 마치 그녀에게 출신 지역 이외의 다른 특징은 없는 양 작중에서는 이름만큼이나 여러 번 ‘북동부 여자’로 지칭된다. 작중에서는 북동부에서 이주해 온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는 이런 북동부 여자들이 발에 밟힐 정도로 많다. 주로 원룸에서 생활하며 계산대에 서서 죽어라 일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남아도는 인간들이며 아무도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불만을 말하지도 않고, 내가 알기로는 반항하는 법도 전혀 없다. 누구 하나 들어 줄 이가 없기 때문이다.(23쪽)

  이들은 자신들이 잉여적 존재라는 것도, 자신들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마카베아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설명할 재간이 있다면 여자는 이렇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세상은 나의 밖에 있어요. 나 역시 나의 밖에 있어요’”(41-42쪽)라고.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자기 처지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도, 스스로에게서조차 소외되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여러 면에서 사회적 타자로 제시되는데 리스펙토르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 중 마카베아가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카베아는 신체적인 면, 지적·사유적인 면, 사회적인 면, 문화적인 면 등 다방면에서 타자성을 띤다. 우선, “그녀에게는 매력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47쪽) 그녀는 못생겼고, 팔릴 만큼 변변한 몸을 갖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건강하지도, 위생적이지도 않다. 그녀는 구루병을 갖고 태어났으며, 얼굴에는 간이 나빠서 생긴 것 같은 반점들이 있고, 피부는 오팔 빛이 살짝 감도는 진흙색에 가깝다. 몸에서는 냄새가 나고, 19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가문 땅처럼 난자가 바짝 마른 상태다. 즉, 마카베아의 신체적 특징은 백인 중심의 가부장 사회 기준이 부과하는 여성 정체성에 위배된다. 지적인 면에서도 초등학교 3년을 다닌 것이 배운 것의 전부이기에 글도 제대로 모르고, 자음 두 개를 연속으로 타이핑하는 것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아둔하다. 그녀는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으며, 스스로 ‘난 누구지?’라는 질문을 품을 정도의 사유도 하지 못한다. 마카베아는 사회적인 면에서도 주변적이다. 그녀는 천애 고아로 고모의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는데 부모님 이름도, 부모님이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등 자신의 근원적 존재와 관련된 정보가 결여되어 있다. 그녀를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끈은 직장 동료 글로리아, 지금은 사망한 고모, 직장 상사 하이뭉두 씨와 남자친구 올링피쿠뿐이다. 마카베아는 자기를 찾는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생기자 그에게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한다. 글로리아가 마카베아의 연적이 되었는데도 그녀는 다른 사회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글로리아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사회적 관계망을 좀 더 넓혀도 고작해야 룸메이트들을 포함하는 정도로, 그녀는 굉장히 제한적인 인간관계만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를 ‘세계-내-존재’로 인식할 기회, 즉 다른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자들을 인식할 기회가 거의 없다. 마카베아는 문화적인 면에서도 타자성을 띤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해 본 적이 없으며, 거리 모퉁이에 있는 간이식당에서 선 채로 패스트푸드를 먹고는 한다. 또한 날짜 지난 신문에서 오린 광고들을 읽거나 다른 영화관보다 저렴한 삼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등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 노출된 적이 없다.
  이렇듯 마카베아가 띠고 있는 다층적인 타자성은 근본적으로 빈곤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녀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으며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순수하고 순진무구하며 무방비 상태고 무해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해 자의식 없이 살아가는 무능력한 인물이다. “생각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마카베아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101쪽) 따라서 “자신이야말로 ‘자살감’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110쪽)

3. 자신의 현실과 대면하는 주인공

  이 대목에서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인 작가이자 화자 호드리고(Rodrigo)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에서 ‘나’라는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 겸 서술자 호드리고는 북동부 출신의 남자이고 “비슷비슷한 수많은 여자들 가운데 굳이 이 여자(마카베아)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22쪽), “그녀를 자기 자신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 나의 의무”(22쪽)라면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화자의 목적에 부합하듯 마카베아도 그간의 수동성과 고정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녀가 글로리아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기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온 이후의 일이다. 즉, 그녀는 심리적·정서적·관계적·신체적 변화를 경험한 후 자신이 세상에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비평가 줄리아 A. 쿠시지안(Julia A. Kushigian)에 따르면, 전통적인 성장소설은 중산층 출신의 백인 남성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룬다. 즉, 백인 남성 화자가 가정에서의 구속과 압박을 거부하며 세상을 탐험하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러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 전통적인 성장소설의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장소설은 정전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다시 말해,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백인 남성 중심의 정전에서 벗어나 여성, 원주민, 흑인, 성소수자, 빈곤한 사람, 사회주의자 등 사회적·문화적·정치적·인종적 배경이 다양한 인물들이 성장소설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성장소설이 사회 규범을 수용하며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데 비해 오늘날의 성장소설은 종종 불행한 결말이나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4)
 마카베아는 전통적인 성장소설의 주인공과 달리 여성이고, 유색인이며, 경제적·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인물이다. 그녀는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 글로리아의 조언을 받아들여, 점쟁이를 찾아가 액운을 없애기로 결심한다.

아무것도 요구해 본 일이 없는 마카베아는 치통을 앓는 척하며 사장에게 조퇴를 허락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언제 갚겠다는 기약도 없이 글로리아의 돈을 받았다. 이런 과감한 결심을 하고 보니 놀랍게도 생각이 더 과감해졌다. 쾅 이 돈은 빌린 돈이라 엄밀히 따지면 자신의 것이 아니니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다소 삐뚤어진 생각이.(134-135쪽)

  이 장면은 마카베아가 처음으로 자발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과거에 사장이 글로리아만 고용을 연장하겠다고 마카베아에게 경고했을 때 그녀가 싫은 기색조차 비추지 못한 것에 비하면 근무시간에 이탈하고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일종의 반항이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이다. 그녀의 저항은 더욱 과감해져서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택시를 타는 사치를 부린다. 이에 맞추어 ‘쾅’이라는 의성어가 그녀의 내적 변화를 반영하듯 청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자인 호드리고는 마카베아가 “자신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녀에게서 그런 과감한 행동이 나왔던 것은 순전히 절박해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필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으며 완전히 지쳤던 것이리라”(135쪽)라면서 마카베아가 심경의 변화를 보인 이유를 전한다.
  점쟁이는 마카베아의 과거를 모두 알아맞히고는 그녀의 인생이 딱하다면서 거듭 연민을 표현한다. “마카베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껏 자신의 삶이 그렇게 딱하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142쪽)던 것이다. 마카베아는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비참했다는 것을 자각한다. 자기가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타자성 때문에 사회와 갈등을 겪어 왔기 때문이며, 그녀를 둘러싼 사회는 그녀의 타자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백인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부르주아 사회라는 것을 깨닫는다.
  점쟁이는 마카베아가 이 집을 나서는 순간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이며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 거라고, 오늘 밤 어떤 외국인 신사가 그녀에게 복을 넝쿨째 가져다줄 거라고 예언한다. 점쟁이의 집을 나선 마카베아는 미래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느끼면서, 벌써 새사람이 되었다고 여기면서 길을 건넌다. 그때 어떤 외국인이 모는 승용차가 마카베아를 치고, 그녀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점쟁이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마카베아는 바닥에 쓰러져 죽어 가면서 자기와 같은 사회 부적응자는 이런 교통사고처럼 부조리한 일을 겪기 마련이라는 비정한 현실을, 따라서 자기를 기다리는 희망찬 미래 따위는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타인에게서 부여된 희망 고문과 자기기만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본질에 도달하게 된다.5)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의 본질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이렇듯 영원불변의 진리를 터득한 “마카베아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여 이제야 마카베아가 된 듯했다.”(154쪽) 마카베아가 죽는 순간은 다음의 문장으로 표현된다. “그녀가 자신의 본질, 드디어 본질이 본질에 닿았다. 승리다!”(159쪽)6)

각주

1) 리스펙토르는 어머니를 낫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헛되이 태어났으며 지금도 그 실수의 무게를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신유진 옮김, 『세상의 발견』, 봄날의책, 2024, 180-183쪽.

2) 이 작품은 국내에서 두 번에 걸쳐 번역되었다. 각각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추미옥 옮김, 이룸, 2007)와 『별의 시간』(민승남 옮김, 을유문화사, 2023)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이 글에서 인용한 문장과 쪽수는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를 따른다.

3)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추미옥 옮김,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 이룸, 2007, 49쪽. 이후에는 본문의 인용문 뒤에 쪽수만 표기하겠다.

4) Julia A. Kushigian, Reconstructing Childhood, Lewisburg: Bucknell University Press, 2003, pp. 27-36.

5) 자동차에 치여 죽는 여자 모티브는 리스펙토르의 첫 작품인 『야생의 심장 가까이』에도 나오고, 그녀가 이혼한 후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나온다.

6) 주변적 성격을 띤, 순진하고 순수한 주인공이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하는 내용은 독자에게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후 이 소설은 영화, 연극, 〈마카베아의 노래〉라는 곡으로도 제작되었다. 수자나 아마라우(Suzana Amaral)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동명의 영화에서 마카베아 역을 맡은 마르셀리아 카르타슈(Marcélia Cartaxo)는 제3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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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 과거 청산과 트라우마 극복을 여성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데 연구를 집중했고 페미니즘과 디아스포라, 생태로 관심사를 넓혀가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세계문학 속으로』, 『탈유럽의 세계문학론: 제1차 세계대전과 세계문학의 지각변동』, 『질병은 문학을 만든다』(이상 공저), 옮긴 책으로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 『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이상 공역), 『세계 아닌 세계』, 『피버 드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