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_text

4호

내 고향, 탈춤

정경애

내 고향

시인처럼
불새처럼
새벽처럼
그리움을 담고 왔다

미명의 새벽은
세차게 퍼덕이며 조잘대는
얄궂은 새들로
얼풋 든 잠을 할퀴었고

어서 열정을 담아
고향으로 가자
목이 메었던 그 아이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능청스런 웃음 흘리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으리라

어느 날 우연히
노랑 머리의 인형같은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배는 볼록하여

선생님,
둘째 나올 날 얼마 안남았다며
눈물 글썽이던 너를
말없이 부둥켜 안으니

세월이 참 그렇다 참 오래도 버텼다
그림자로 살아온 날들은
언젠가 들려오던 아리랑 노랫가락에 실려
씨실과 날실 위에서
더욱 애처로웠다

그때도 지금도 습관처럼
"나는 곧 갑니다."
30년의 나그네 삶은
여전히 주인 없는 땅이 되어

오늘도 엄숙한 제의 속
고향의 향연으로
내 몸이 지펴 오른다

탈춤

거울을 본다
깊어져 가는 이마의 물결 속으로
깨알 같은 과거들이 비밀스레 묻히어 간다

희미해진 검지로
날인 찍듯 꾹꾹 눌러도 보건만
금시로 되살아나 나이테를 두르고

피부 속 깊이 파고드는 불구멍은
가슴에서 사지로 팔랑이며
꿈틀거림을 주체할 수 없다

어둠 속 냉기 어린 마당판에
털썩 주저앉아 맥을 놓지만
삐리리 당차고 찰진 피리소리에

다시금 각시탈 질끈 동여매고
액운 낀 한삼을 두 팔 멀리 휘뿌리며
아래턱은 흔들흔들 두 눈 부라리며

두리번 두리번 찾아 헤매는 그 넋을
주섬주섬 주워 담고
헛헛한 미소를 흘리는데

앗차! 요놈의 것이
내 안 깊숙이 숨어
해롱거리며 있었구나

네 것과 내 것이
하나 되는 몸부림은
이제 여기쯤 와서
가장 친숙함을 알아내었다.

필자 약력
프로필_정경애.jpg

덕성여자대학 국어국문과, 한국사이버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경희사이버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 1992년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 이주 후 한글학교 중고등부 국어 교사(1992-1998), UWC 국제학교 중고등 국어교사(1999-2014), 프랑스국제학교 초등학년 한국어 교사(2019-2020)로 근무했다. 현재는 경희사이버대학원 졸업 학기를 다니며 시 창작에 집중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공공누리로고

출처를 표시하시면 비상업적·비영리 목적으로만 이용 가능하고, 2차적 저작물 작성 등 변형도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