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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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숨 여인

쉰네 순 뢰에스

  한나의 인생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 스물일곱의 그녀는 이미 법학 공부를 마치고 정규직을 얻어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첨단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했고 은은한 달걀 껍질 색깔로 벽을 칠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하는) 빌리라는 이름을 가진 알록달록한 색의 길고양이를 입양해 함께 살았다. 그녀의 옷장에는 세일 때 구입했던 명품 옷이 있었고, 부엌 찬장에는 24명의 손님을 위한 고풍의 크리스털 잔과 덴마크 왕실 도자기 세트가 있었다. 침대 밑에 있는 상자에는 빈티지 레이스로 장식된 하늘하늘한 연분홍색 웨딩드레스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열여덟 살 때 앞으로 언젠가 입을 것이라 생각해서 파리의 한 중고품 가게에서 구입했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해 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나는 항상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은 그녀의 내면에 또 다른 사람처럼 존재했다. 그녀는 친구나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책상 서랍에서 커다랗고 부드러운 지우개를 꺼내 그녀의 삶에서 그녀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한나는 항상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느낌 속에서 살아왔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하지만 그녀는 태어난 지 10개월이 되었을 때 노르웨이 부부에게 입양되어 마치 예쁘게 포장된 선물처럼 노르웨이로 보내졌다. 그녀는 친부모와 함께 살았던 적이 없었다. 생애 처음 몇 달은 고아원 보육사의 손에서 컸기 때문이다. 한나는 자주 잃어버린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그녀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서울에 갔다. 매우 긴 여행이었다. 그녀는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매분 매초 지속적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일주일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는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만, 동시에 서울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처럼 낯선 느낌을 주었다. 까맣게 염색한 머리, 슬픔과 죄책감이 어린 눈빛을 지닌 두 사람. 그녀는 이 두 사람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났다. 어찌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만약 그녀가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그녀는 이 세상에서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까? 더 행복했을까? 이런 질문들은 그녀의 머릿속에, 그녀의 손에, 그녀의 발에서 항상 맴돌았다. 그녀의 배와 가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그녀는 불면에 시달렸고 머리카락도 하나둘 빠졌다. 그녀는 목소리도 잃었고 균형도 잃었다. 그녀는 숨을 잃었다. 그녀의 숨은 쪼글쪼글한 건포도처럼 쪼그라들었고, 결국에는 검고 딱딱한 점이 되어 그녀의 목에 자리 잡았다. 꼼짝도 하지 않는 점.
  한나는 항상 숨을 쉬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그녀의 가슴속에는 항상 불안함과 조마조마한 느낌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안절부절못하는 외롭고 거대한 나비 한 마리가 그녀의 갈비뼈 뒤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의 숨은 항상 가쁘고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심장과 폐는 흉강 속에 있다는 것과 자신의 가쁘고 불안정한 숨은 거대한 나비의 날개 한 쌍 때문이 아니라 이들 중요한 내장 기관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십 대 시절에 도서관을 자주 찾았고 병리학과 해부학에 관한 책에 코를 박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고는 했다. 심장병에 관한 두꺼운 책도 읽었다. 거기에는 강렬한 소외감과 끔찍한 상실감, 슬픈 짝사랑을 경험할 때는 심장에 병이 들어 검게 변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나는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그녀는 정평 있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어 운이 좋은 셈이었다.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친절했지만 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하얀 이빨과 빳빳하게 다림질된 셔츠 깃과 사무적인 눈빛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미혼에 자녀가 없는 사람은 한나뿐이었다. 한나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는 기계적인 로봇이나 다름없었다. 딱딱하고, 속마음을 알 수 없으며,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녀는 항상 정갈하게 다림질한 블라우스를 입고 등을 곧게 편 채 걸었으며,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직장에서는 매우 적절한 것이었지만 여가 시간이 되면 부자연스럽고 정체되어 있으며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좀 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느낌이 필요하다 싶으면 퇴근 후에 프로그네르 공원에서 한 시간가량 산책을 하고는 했다. 갖가지 조각상으로 가득 찬 그 공원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나는 눈에 띄는 아무 벤치에 앉아 벌거벗은 석상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어떤 궂은 날씨에도 꿈쩍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석상들의 금욕적인 능력에 감탄했다. 영하 20도의 기온과 눈보라, 뜨거운 여름 햇살,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똥을 싸는) 지저분한 도시 비둘기의 무리도 말없이 견뎌내는 석상들. 한나는 석상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스웨덴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얀 요한센의 연주를 들으며 생각과 감정을 모두 동원해 석상들의 운명을 감싸안아 보려 애썼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단단한 석상과 함께 있으니 그다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자 매일의 공원 산책은 위안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주변의 벤치에 앉아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며 불행해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물일곱 살이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만약 그녀가 심리 상담자를 찾는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파헤쳐 보기 시작할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하면 애정 결핍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녀가 만약 정신과 의사에게 갔다면,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즉, 그녀에게는 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어떤 심리 상담자도, 정신과 의사도 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이러저러한 결핍증을 지닌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그녀는 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수명을 10년이나 연장할 수 있으며, 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글을 신문에서 읽었다. 한나는 곧바로 ‘올바른 호흡법’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검색 결과는 ‘숨 여인’이라는 홈페이지였다. 숨 여인은 예순다섯의 할머니였고 한나의 집에서 열다섯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6월과 7월에는 절반 가격으로 호흡 강습을 한다고 광고했다. 한나는 이 여름 세일을 발견한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즉시 숨 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신호음이 두 번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는 한나 홀스트라고 합니다.”
  한나는 숨 여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빅토리아 노르드스톄르네입니다.”
  숨 여인은 약 2초의 떨리는 정적 후에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친절하고 따스했다. 한나는 노르드스톄르네1)가 매우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한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삶의 별이었으니까. 저 높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빛을 발하며 자신에게 생명력 있는 숨을 쉴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숨 여인이 물었다.
  “저는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한나가 말했다.
  하지만, 한나는 그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이 세상에서 숨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빅토리아는 한나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당연히 한나가 숨 쉬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장담하며 환영해 주었다.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2시는 어때요? 주말은 항상 텅 빈 코트 주머니 같고, 구겨진 쇼핑 리스트, 먼지 묻은 목사탕 그리고 TV 시리즈 <트루 크라임>을 연속적으로 이어보는 일 외에는 그 주머니를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한나는 숨 여인의 제안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숨 여인은 전철역에서 2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푸른색 집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단지 ‘푸른색의 커다란 집’이라고만 했다.

  그 후, 며칠 동안 한나는 긴장감과 기대감 속에서 지냈다. 목이 간질거리기도 했다. 그녀는 약속을 취소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배앓이나 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했다.
  금요일 저녁, 그녀는 숨 여인을 방문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이, 레몬, 바질 향이 나는 연녹색 입욕제를 넣은 욕조에서 오랫동안 목욕을 했다. 한 시간 후에 욕조에서 나온 그녀는 부드러운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달팽이 점액 함유 크림을 발랐다. 그렇게 하면 진짜 한국인이 된 것 같고, 더 나아가 진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실로 나갔다. 커다란 책장 앞에 있는 북극곰 모양의 인조 카펫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드러누웠다. 책장 속에는 그녀의 모든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들. 낡은 책, 새 책, 두꺼운 책, 얇은 책. 아름다운 책과 추악한 책. 읽었던 책과 읽지 않은 책. 수줍은 책과 생기발랄한 책.
  한나는 거실 바닥에서 잠들었다. 활짝 펼쳐진 커다란 책(나비 도감 최종판)으로 얼굴을 덮고서. 그녀는 종종 이렇게 바닥에 누워 ‘책 속에 코를 박은 채’ 잠들고는 했다. (침대에 누워 자면 마치 나는 양탄자 위에 있는 것처럼 불안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전, 그녀는 새 한 마리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깼다. 몸이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를 느낀 그녀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말라붙은 달팽이 점액과 잠을 씻어냈다. 물기를 닦고 얇은 브러시로 화장을 했다. 눈 주위에는 검은색 아이라인을 그렸다. 입술에는 하트 모양으로 산딸기 색의 루주를 발랐다. 거울에 입을 맞추었다. 미소를 지으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윙크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작은 한국인 소녀…… 오늘 너는 숨 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오늘이 바로 그날이란다.”
  밖은 날씨가 흐렸고 온도계는 17도를 가리켰다. 그녀는 얇은 검은색 튤 스커트를 입고 무광택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반짝이는 단추가 달린 하얀 울 카디건을 입었다. 그리고 발레리나 슈즈. 그녀는 찰랑거리는 긴 금색 사슬이 달린 작고 빨간 핸드백을 꺼냈다. 실크 안감의 그 벨벳 가방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핸드백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었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아파트를 향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도시로. 세상 속으로. 시간 속으로. 그녀는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전철은 그녀를 숨 여인에게 데려다줄 것이다. 전철에 몸을 싣고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는 자신이 예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세주.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는 존재. 그녀는 멜로드라마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에 몸을 맡겼다. 정장을 입고 말에 권위를 담아 말하던 평소 자신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한나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커다란 푸른색 집’을 발견했다. 그 집에는 조그마한 창문이 몇 개 있었고, 언뜻 푸른색 헛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는 비행선. 또는 좌초된 잠수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집 주위에 무성한 풀과 덤불과 야생화는 마치 자리를 확보하려고 서로 싸우는 것 같았다. 바로 그 때문에 한나는 그 집이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신비롭다고 느꼈다.

  한나는 초인종을 찾지 못해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 안쪽에서 가볍고 재바른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한나는 자신의 한쪽 팔을 힘주어 꽉 움켜쥐며 인사를 건넬 마음의 준비를 했다.
  대문이 열리고 숨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키가 크고 퉁퉁한 여인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다. 은색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헐렁하게 묶어 올린 그녀는 보라색의 긴 바틱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맨발로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녀의 한쪽 손목에는 팔찌 세 개가 찰랑거렸다.
  “들어오세요.”
  숨 여인이 한나를 작은 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작고 아늑한 그 방에는 침대와 의자, 작은 타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침대 앞의 벽에는 사막을 배경으로 커다란 낙타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나는 숨 여인이 그 그림을 직접 그렸는지 궁금했지만 입 밖에 내어 물어보진 않았다. 첫 만남에 무례가 될 것 같아서였다.
  “침대에 누우세요.”
  한나는 숨 여인이 시키는 대로 와플 무늬의 연노란색 새틴 침대 시트 위에 조심스레 등을 대고 누웠다.
  숨 여인은 마치 아기를 감싸듯 그녀의 몸을 담요로 감쌌다. 숨 여인이 그 일을 마쳤을 때 한나는 마치 갓 다림질한 봉투 속에 들어 있는 깔끔하게 접힌 편지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숨 여인은 테이블 위의 양초에 불을 붙이고 음악을 틀었다. 한나는 그 음악이 동양의 신비로운 느낌을 전해 준다고 생각했다. (현악기. 플루트. 드럼.) 한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음악을 음미했다. 그녀는 여전히 외로웠지만 평소보다 더 외롭지는 않았다. 아니, 평소보다 훨씬 덜 외로운 것 같기도 했다.
  “숨을 쉬어보세요. 후~. 후~. 후우~.”
  숨 여인은 그녀의 귀, 이마, 뺨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손을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놓았다. 숨 여인은 손을 얹은 채 ‘밑으로 가라앉는다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이제 당신의 몸은 무거워질 것입니다.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숨을 쉬세요. 후~. 후~. 후~.”
  한나는 큰마음을 먹었고…… 숨을 쉬었다. 숨을 통해 크고 커다란 검은 점을 내어놓았고, 그 점은 둥실둥실 떠올라 천장에 닿았다. 마치, 그녀의 목에 있던 플러그가 뽑혀버린 것 같았다. 마침내, 그녀의 호흡 기관이 깨끗하게 정화된 것 같았다. 이제 그녀는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한나가 숨을 쉬는 동안 숨 여인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당신은 과거로 돌아갑니다.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낳아주신 한국인 어머니를 떠올려 보세요.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세요.”
  “심장으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당신의 심장은 딱딱하고 차갑습니다. 당신은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을 녹이고 따뜻한 피로 채워야 합니다. 심장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당신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신입니다. 심장은 세 번째 폐입니다. 가장 중요한 폐…….”
  숨 여인은 맨발에 바틱 옷을 입고 (자신은 물론 타인의 내면에서도) 진실을 찾아내려 갈망하는 이혼한 지 얼마 안 되는 히피족 여인처럼 보였다. 한나는 평소 바틱 옷을 입은 여성들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여자의 침대에 누워보니 마치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기존의 로봇 같았던 자신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말이다.
  “당신이 미미한 솔잎만큼 작다고 상상해 보세요.”
  숨 여인이 말을 이었다.
  “마음의 문 밖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그 문은 정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방이 매우 많습니다. 이제 당신은 모국이 자리한 방으로 가야 합니다. 그 방에는 당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당신의 한국인 선조들도 함께 있습니다. 그들이 보이나요?”
  숨 여인이 물었다.
  “네.”
  한나가 대답했다.
  “이제 그 옆방으로 가보세요. 거기에는 당신의 노르웨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노르웨이 선조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양쪽 방문을 모두 열어놓고 두 방 사이에 서서 동시에 그들을 보세요. 보이나요?”
  “네.”
  “숨을 쉬어보세요. 후~~.”
  숨 여인이 말을 이었다.
  “당신의 한국인 아버지에 대해 말해 보세요.”
  “그는 폭풍, 허리케인 같은 사람이에요. 슬픈 군인 같기도 해요.”
  “당신의 노르웨이 아버지는요?”
  “그는 일벌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에요.”
  “당신의 노르웨이 어머니는요?”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상. 손가락 끝에 상처를 입은 톱니바퀴.”
  “당신의 한국 어머니는요?”
  “연꽃. 손으로 자수를 놓은 햇살. 평화로운 까마귀.”
  “맞아요.”
  숨 여인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이제 당신은 이 네 명의 사람들이 당신을 낳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동시에. 거대한 소의 뱃속에서부터. 이해했나요?”
  한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고, 자신의 망설이는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숨 여인은 그녀의 카디건 위 가슴께에 두 손을 얹었다. 심장 위에.
  “이제 당신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과거의 현재는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되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당신의 외로움은 홀로 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동물 또는 어떤 감정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것은 자유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외로움은 이제 스스로 숨 쉴 수 있습니다. 당신도 느낄 수 있나요?”
  한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크게 대답했다: “네!”
  그녀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한나는 숨 여인의 집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 머물렀다. 숨 여인은 대문 앞 현관에서 그녀에게 포옹을 건네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한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돈을 지불하고 대문을 나섰다. 비가 오고 있었다. 아스팔트는 거무칙칙했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그녀의 온몸이 흠뻑 젖었다. 우산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물일 뿐이야.”
  한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건 도움이 되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나는 가끔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비를 불행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젖은 머리는 죽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숨 쉬는 법을 배웠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10분 더 늘어났다고 확신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침대에 누워서 90분을 보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삶을 10분 연장하기 위해 천 크로네를 지불했다.

  그 10분이 과연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물론 그렇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 그 90분의 시간이 자신의 변호사 연봉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나는 숨 여인을 방문한 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온몸이 이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온기도 돌았다. 숨은 그녀의 온몸 속에서 잔잔한 강물처럼 흘렀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다. 한나는 보통 사람처럼 숨을 쉬었다. 그녀에게는 짐이라는 애인도 생겼다. 그는 구릿빛의 곱슬머리를 지닌 초등학교 교사였고,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했다. 재즈. 그들은 동물 병원의 대기실에서 만났다. 그들은 둘 다 이빨에 문제가 있는 점박이 고양이(빌리와 비르기타)를 데려왔다. 그들은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짐은 동물 병원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한나를 초대했고, 두 사람은 커피와 브라우니를 먹었다. 두 사람은 정확하게 만난 지 일 년 후, 법원에서 함께 하는 삶을 약속했다. 한나는 (수년 동안 침대 밑에 넣어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하늘하늘한 빈티지 레이스 드레스를 입었고, 짐은 (그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보라색 리넨 셔츠와 연분홍색 리넨 양복을 입었다. 꽤 짧은 시간 내에 두 사람의 가장 가깝고 유일한 친구가 되었던 수의사와 그의 아내는 들러리를 섰다. 하객으로 참석했던 빌리와 비르기타의 앞에는 손으로 직접 껍질을 벗긴 새우가 각각의 도자기 접시에 담겨 나왔다. 파티 규모는 작았지만 형식과 색깔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
  짐과 한나는 행복했다. 그 행복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헌신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으로써 두려움이나 거리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넉 달 후, 한나는 딸을 낳았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코라’라고 지었다. 한때 이 세상에 살았지만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노르웨이의 유명한 작가 코라 산델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평생 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코라는 검붉은 곱슬머리에 한국인의 눈을 가진 평화로운 아이였다. 아이는 밤새 잠을 잤으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숨을 쉬었다. 아이는 영혼으로, 심장으로, 폐로, 피부로, 그리고 온몸의 모든 세포로 숨을 쉬었다. 코라가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한나가 어머니로서의 숨을 아이에게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한나는 마치 비눗방울을 불듯 조심스럽고 천천히 작은 사랑의 공기 방울을 방 안에 채웠다. 그녀는 자그마한 콧구멍으로 그 사랑의 공기 방울을 들이마시는 코라의 모습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한나는 자신이 꿈꾸던 삶을 얻었다. 이제 숨 여인은 그녀에게 빛바랜 기억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산더미 같은 기저귀 더미 아래 묻혀버린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어둠과 그리움과 동경으로 가득 찬 방이 있었다. 가끔 그녀는 그 방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오직 한밤중이나 꿈속에서뿐이었다. 그녀는 그 방을 찾을 때면 항상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이 깨면 항상 외로운 나비의 거대한 유령이 다녀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초, 분, 시간, 주, 달은 저 멀리 수평선에 반짝이는 한 점(마지막 종점)을 향해 마치 행진하듯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도 그 점은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바늘 끝보다 더 크지는 않았다. 한나는 자신과 짐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과, 코라가 부모 없는 고아로 자라 칠흑같이 새카맣고 쪼글쪼글한 건포도 같은 심장 때문에 숨 쉬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 말을 되뇌고는 했다.

  코라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한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모든 각도에서 찍어 사진으로 남겼다. 그 사진들은 앨범 속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정지시키고 작은 영원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유월의 어느 날, 그녀는 신문에서 숨 여인의 부고를 보았다. 한나가 푸른색 집을 방문한 지 정확히 5년 5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빅토리아 노르드스톄르네라는 매우 특별한 이름이 회색 신문지 위에서 마치 베들레헴의 반짝이는 별처럼 빛을 발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의 아름답고 빛나는 태양, 이젠 편히 쉬세요. 그 문구 밑에는 열두 개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한나는 그 열두 개의 이름 속에 열두 개의 눈물 젖은 슬픈 얼굴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앞을 인도해 주었던 별―아름답고 빛나는 태양―을 갈망하는 열두 개의 아픈 심장과 스물네 개의 그리움으로 가득 찬 폐.
  숨 여인은 숨을 멈추었다. 그녀가 마지막 숨을 쉬었던 것이다. 그토록 숨 쉬는 것에 대해 잘 알았으니 적어도 20년은 더 살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운명은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한나는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다.

  한나의 슬픔은 며칠, 몇 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 개의 찰랑거리는 팔찌, 불 켜진 양초.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창문이 인상적이었던 푸른색 집과 작은 방. 풀이 무성한 정원에 내려앉은 것 같은 비행선. 불현듯, 그녀는 푸른 집에 있었던 한 시간 반 동안 숨 여인이 자신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 주었던 어머니. 자신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었던 존재. 한나는 깊숙한 폐 속으로, 심장 속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몇 초 동안 숨을 몸속에 가두었다. 마치 진주를 품은 조개껍질처럼.
  마치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마치 커다란 나비를 손에 쥔 아이처럼.
  그것을 자유롭게 놓아주기 위해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각주

1) (옮긴이) 노르웨이어로 ‘Nordstjerne’로써 ‘북극성’이라는 의미이다.

번역정보

번역 : 손화수 (노 → 한)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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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8개월에 노르웨이로 입양되었다. 1999년에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지금까지 일곱 권의 소설(청소년 대상 소설 네 권 포함)과 에세이집 한 권을 출간했다. 이 중 두 권의 청소년 소설(『충분히 아름다운 너에게』,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은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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