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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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탈북문학에 나타난 유랑서사와 정체성

민유민

1. 집단 존재의 행로, 탈북 디아스포라

  오랜 시간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산’ 혹은 ‘분산’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1990년대 들어 국제 이주, 망명, 난민, 이주 노동자 개념과 더불어 민족 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특히 디아스포라는 “이동이 잦아진 세계, 소속감과 소외감, 고향과 타지, 정치적 포용과 사회적 배제의 세계”1)라는 양면성을 내포하며 디아스포라(인)의 존재 증명에 관한 질문을 던져 왔다.
  윌리엄 사프란(William Safran)은 디아스포라를 ‘국외로 추방된 소수 집단 공동체’2)라고 정의하고, 디아스포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1) 특정한 기원지로부터 외국의 주변적인 장소로의 이동, (2) 모국에 대한 집합적인 기억, (3) 거주국에서 수용될 수 있다는 희망의 포기와 그로 인한 거주국 사회에서의 소외와 격리, (4) 모국을 후손들이 결국 회귀할 진정하고 이상적인 땅으로 보는 견해, (5) 모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헌신, (6) 모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들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개인과 이주민 집단, 그 문화적 공간, 집합적 기억 등은 결국 강제성을 지니지 않더라도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소수자이자 주변인”3)으로 디아스포라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떠나온 모국을 회귀할 이상적인 땅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이방인의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이곳과 저곳을 떠돌며 흩어져 거주하는 유랑 형태의 삶을 집단적 형태로 드러낸다. 즉, “국민으로 편입되지 못한 파편과 같은 처지이며 민족과 민족 사이에 낀 틈새적 존재”4)이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 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상태에 놓인다. 이와 같은 이중의 정체성을 전 지구적으로 뚜렷한 양상으로 보여온 ‘탈북 디아스포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탈북+디아스포라(인)’는 본국을 스스로 떠나왔다는 ‘탈북’이라는 행위가 더해져 디아스포라가 지닌 기존 개념에서 특수한 성질이 내포된 의미로 확장된다. 이들의 탈북은 극심한 생존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들이 모국을 탈출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불합리한 상황을 ‘탈북한다’라는 행동 양식으로 북한의 현실을 전적으로 표출해 왔다. 탈북민, 탈북 난민 등으로 불리며 국제 사회에 흩어져 거주함으로 탈북 디아스포라(인)를 표상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권 국제 경제 체제의 붕괴 등의 요인으로 경제적 위기에 처함과 더불어 폭우와 장기적 기근으로 인한 경작의 어려움, 산림 황폐화 등으로 식량 부족 사태에 빠졌다. 자체 존립이 어려워진 상황에 놓인 김정일 정권은 김일성 사망 이후 혹독한 경제난을 이겨내고 민심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고난의 행군’이라는 강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미 1990년대부터 차별적 미공급으로 인해 식량난을 겪은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국을 탈출해야만 했다. 탈북은 생존권 위협에 처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북한을 떠나오면서 시작됐다. 탈출의 개념으로 출발한 탈북 현상은 이후 체제에 대한 회의, 한류 문화의 영향이 겹치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량 탈북 현상으로 이어졌다.
  첫 탈북 장소인 중국에서 탈북민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며, 강제 송환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중국은 북한과 ‘중국-북한 범죄인상호인도협정(일명 밀입국자송환협정, 1960)’과 ‘국경지역 업무협정(1986)’, 그리고 1998년 1월 1일부터 적용된 ‘길림성변경관리조례’를 협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양자 조약인 ‘밀입국자 송환협정’에 따라 강제 송환 원칙을 지키고 있다. 탈북민은 강제 송환된 이후 종교 접촉 혹은 남한행 목적이 밝혀질 경우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처럼 탈북민은 국제 사회에서 난민의 범주에 속하나 중국에서는 국제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유엔 난민기구(UNHCR)는 ‘2022 글로벌 동향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난민 자격으로 살아가는 탈북민 수가 26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외 망명을 신청한 후 대기 중인 북한 주민을 127명으로 집계했다. 이 수치는 중국 내 탈북민과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은 탈북민이 보호받지 못한 채 살아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뚜렷한 이주 양상을 보이는 탈북민은 어떤 집단에서의 난민보다도 더 실체적이고 수적으로도 우세한 형태를 갖췄다. 공간으로는 중국, 서방 국가, 남한 등으로, 집단적 이주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난민의 형태에 처한 탈북민은 체류 국가에서 일시 또는 장기 거주하기에 불안정한 유랑 상태에 처해 있다. 언제든지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는 강제성과 탈북민 개인에게는 고향을 스스로 떠나온 ‘뿌리 뽑힌 자’의 소외와 불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민은 북한 체제의 불합리성을 정면으로 맞서는 존재로, 탈북을 통해 ‘집단 존재의 행로’를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보여 주는 탈북 디아스포라 현상을 낳고 있다.

2. 탈북 문학의 디아스포라적 상상력

  탈북민은 탈북 체험이라는 삶의 극한 양상을 지속적인 형태로 보여 왔다. 탈북민은 한민족이자 같은 문화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공통분모를 갖췄다. 특히 남한에 오면 정착을 위한 보호를 받는 민족이다. 이들은 생존 극복의 한 방법이자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권리 회복을 위해 모국을 스스로 떠나왔다. 탈북 디아스포라는 이주와 분산의 의미를 넘어 탈북과 유랑의 양상에 더 의미를 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사회를 떠나옴’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성에 근거한다. 더욱이 탈북민은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나아가 소속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의 최전방에 서 있다. 그리하여 탈북 디아스포라는 모국 탈북과 타국 도착, 유랑과 이주, 갈등과 화합, 정착과 상생 등의 분산과 응집의 양면성, 그리고 이들의 정체성까지 포괄된 의미여야 한다. 이들을 재현한 탈북 문학은 인간 근원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탈북 디아스포라 성격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체제의 불합리성을 비틀어 재현하고, 인간 본연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구현하는 탈북 디아스포라의 문학적 상상력이 자리한다.
  탈북 문학은 탈북과 탈북민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탈북 디아스포라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 더욱이 통일 문제와 탈북 디아스포라의 양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통일 이후 새롭게 생겨날 문제를 진단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탈북 문학은 시, 소설, 아동문학의 분야에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그 중심에 가장 조직적인 구조 속에 디아스포라 현실을 여실히 형상화한 소설이 있다. 탈북 작가는 북한의 현실을 과감히 드러내 모순된 사회를 꼬집기도 하고, 남한 작가는 탈북 과정이나 남한 정착 이후의 상황을 위주로 주목한다.
  북한 사회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탈북 작가와 탈북을 소재로 한 남한 작가의 소설 내용을 살펴보면, (1) 북한의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현, (2) 제3국에 거주하는 탈북민과 남한에 정착했으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민 인물을 다채롭게 형상화, (3) 남파 간첩, 망명자, 행방불명자 등과 같은 생존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인물로, 경계인으로서의 처지를 밝히는 소설 등이 있다. 작중 인물이 처한 상황을 기준으로 하면 (1) 유랑 중인 상태, (2) 제3국에 정착해서 사는 상태를 다룬 소설5)로 구분할 수 있겠다.

▲ 왼쪽부터 황석영 『바리데기』, 강영숙 『리나』,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대표적으로 탈북 후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중국에 머물다 인신매매 피해를 보고 영국에 정착한 ‘바리’라는 인물을 그린 황석영의 『바리데기』(2007), P국을 향하다 제3국을 유랑하며 살인과 유기, 매춘과 인신매매 등의 고난을 겪는 강영숙의 『리나』(2006), 국제 사회에 탈북 난민의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 추적하는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2011),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지내며 갖은 고난을 겪는 ‘충심’이라는 인물을 그린 정도상의 『찔레꽃』(2008)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탈북 디아스포라(인)의 유랑 형태와 정체성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리데기』, 『리나』, 『로기완을 만났다』이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경계와 경계 사이에 선 자, 뿌리 뽑힌 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생존한다.
  『바리데기』와 『리나』는 소녀라는 인물 유형을 내세워 유랑 서사, 난민 소녀 서사, 이주 매춘 서사라는 소설적 구조를 긴밀하게 조직화하고 있다. 바리와 리나를 통해 제3국을 유랑하며 임금 착취, 인신매매, 폭력 등의 고난을 겪거나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정착하지 못한 채 탈영토화된 공간을 표류하는 탈북 디아스포라(인)의 삶을 단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로기완을 만났다』는 탈북 난민 ‘로기완’을 통해 진정한 정체성 찾기와 회복을 의미화한 소설이다.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생명수를 찾는 문제 해결 서사 형식을 갖춘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바리의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성장기 유랑 서사를 담아내고 있다. 탄광촌에서 탈출 이후 겪는 매춘과 인신매매, 자본의 병폐를 담은 강영숙의 『리나』는 제3국을 유랑하는 여성 탈경계인의 인권 유린 현장을 형상화해 낸 시대적 산물로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리나는 이곳저곳의 탈영토화된 공간을 유랑하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성을 지닌다. 이 두 소설은 제3국에서 여성의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소녀 서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열두 살의 바리와 열여섯 살의 리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랑 서사는 탈북 디아스포라에 나타난 여성 문제와 인권 유린 문제를 통해 탈북 과정에서 참혹하게 파괴되는 여성성을 형상화한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시사 주간지 《H》에 실린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라는 탈북민에 관한 기사를 보고 벨기에로 떠나 로기완의 삶을 추적하는 남한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타인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공감하게 되는 순간, 본인의 삶까지도 이해하게 되는 위로의 서사가 펼쳐진다.

3. 유랑 서사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공간

  『바리데기』의 바리는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나 열두 살이 되던 해 외삼촌의 탈북으로 가족과 헤어진다. 샤먼의 기질까지 타고난 바리는 ‘북한(청진-무산-부령-움집)-중국(연길-대련)-영국(런던)’이라는 공간을 이동하며 고난과 시련을 경험한다. ‘미이 언니’의 인신매매 소식, 밀입국 과정에서 벌어진 강간, 영국에서 팔려 간 ‘샹 언니’ 등을 통해 여성의 몸은 자본으로 ‘교환할 수 있는 육체’이자 ‘팔리는 돈’이라는 비참한 현실과 여성 인권유린 문제를 여실히 보여 준다.6)

바루 너 같은 아아들 팔아먹구 산다 이거야. 나가 너이 언니 행방을 찾았구나!
예에? 미이 언니를…… 어디서요?
소룡 아저씨는 벌써 오래전 일이라면서 용정(龍井)에서 술집을 한다는 어느 후배에게서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너이 아부지 직위를 대주구 무산서 온 체네를 찾는다구 기랬댔는데 소식이 왔구나.
나는 젓가락을 놓고 벌써 의자에서 반쯤 일어서고 있었다.
찾아가 만납시다!
기쎄 말 좀 더 들어보라. 내가 그냥 내버려두었갔나.
미이 언니는 두만강을 건너자마자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에게 걸린 모양이었다.7)

  인용문은 바리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중국인 부부(샹 언니와 쩌우 형부)를 따라 다롄으로 이동하기 전, 미꾸리 아저씨와 나눈 대화이다. 미꾸리 아저씨는 돈 때문에 인신매매가 성행한다는 것을 바리에게 알려 준다. 중국인 부부가 빚에 쫓기게 되자 바리는 그들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밀항한다. 성적 착취는 밀항선에서도 일어난다.

담배를 한 대씩 나누어 피우고 나서 선원들이 샹 언니를 통로 쪽으로 끌고 나가 옷을 벗긴다. 샹 언니가 허우적거리며 저항하자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먹으로 얼굴을 몇 대 후려치고 언니가 축 늘어진다. 다른 선원들이 내려온다. 그들은 서로 잡담을 하면서 발가벗긴 언니를 돌려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면서 여러 짓을 벌인다. 선원들이 완전히 실신해버린 샹 언니를 내버려두고 사라진다.8)

  인용문은 영국 런던으로 밀항하는 배 안에서 벌어진 성적 착취 현장을 바리가 목격하는 장면이다. 폭력과 성 착취만이 난무하는 세계를 단적으로 제시한다. 열여섯 살 가을, 영국에 도착한 바리는 차이나타운 뒷골목에서조차 여성의 몸은 자본(돈)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나아가 비자도 노동허가증도 없이 체류하고 있는 영국이라는 공간은 바리의 뿌리 없음의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바리는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 아래 유랑하며 소외된 자를 대변한다. 소련의 붕괴와 나라님의 죽음, 폭우와 기근으로 꽃제비가 속출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북한, 인신매매와 매춘이 성행하는 중국, 상품화된 몸으로 자율성을 박탈당하는 밀항선과 영국, 다국적 이주 노동자들의 공간인 램버스 구역의 연립주택, 9·11 테러 사건,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쟁, 영국의 지하철 테러,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 등의 공간과 사건을 배경으로 탈북 디아스포라(인)의 소외된 삶이 조명된다.9)
  『리나』의 주인공 리나는 탄광 지역 노동자인 부모의 큰딸로 태어났다. 키가 작고 갸름한 얼굴에 노란 여드름이 난 열여섯 살 소녀이다. 탄광촌에서 P국으로 향하는 스물두 명의 탈북자 행렬 속에 끼여 탈북한 열여섯 살의 리나가 제3국으로, 다시 국경을 넘나드는 서사를 담고 있다. 탈영토화된 공간인 ‘탄광촌-국경-화공약품 공장-마약과 관광의 도시-창녀촌 시링-경제자유구역인 공단 지대-국경’의 여정은 노동 착취와 폭력, 인신매매와 강간이 성행하는 인권 유린 체험장을 극적으로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네모반듯한 남자는 50명의 공장 노동자들을 그렇게 채찍 하나로 다스렸다. 여자들은 노동자들이 맞을 때마다 두 눈을 가리고 울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누가 우리말로 얘기 좀 해주세요, 제발!” 남자는 툭하면 배배 마른 노동자를 한 명씩 공장 구석으로 끌고 가서 흠씬 때렸고, 맞은 사람들은 고무공처럼 튀어 드럼통에 붙은 사다리로 원숭이처럼 재빠르게 올라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했다. 조금이라도 반항의 기미를 보이면 고무통에 모아둔 인분을 강제로 먹였다.10)

  인용문은 스물두 명의 탈출 과정에서 신혼인 여자와 관리직 출신의 여자, 리나와 할아버지가 끌려간 화공약품 공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일상의 한 장면이다. 특히 ‘화공약품 공장’과 ‘창녀촌 시링’은 소수자들의 인권 유린 문제와 자본의 횡포가 난무하는 공간이다. 국경에서 국경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넘나드는 과정에서 자본은 탈북을 돕는 속임수와 여성을 사고파는 인신매매의 연결로 표출된다. 소설 후반에는 공단의 폭발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리나는 병든 몸을 이끌고 북쪽 유목민의 나라로 달린다. 경계 안과 밖, 국경과 국경, 사이와 사이, 이곳과 저곳 등의 자발적 국경 넘기는 소설에서 원형적 플롯의 형태로 제시된다. 결국 정착하지 못한 채 탈영토화된 공간을 누비는 리나를 통해 탈북 디아스포라(인)의 삶과 정체성을 상징화했음을 알 수 있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주인공 로기완은 탈북 난민으로, 어머니의 죽음으로 생존을 도모한 인물로 그려진다. 20세에 159센티미터의 단신, 47킬로그램의 몸으로 ‘연길-벨기에-영국’으로 이동해 북한을 떠나왔다. 이 소설에 제시된 탈북 디아스포라 공간은 살고자 탈북을 자처한 로기완의 생존 유랑 서사가 담겨 있다.

쏘비에트 연방과 중국의 지원감소,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한 무역량 감축, 무분별한 비료 사용에 의한 토지 황폐화와 연료 부족이 가져온 농업 기계화의 실패, 그리고 오랜 기간 지속된 미국의 경제제재와 무역적자는 마치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처럼 연동하면서 로의 조국으로부터 재앙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앗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1995년은 시작에 불과했다. 홍수는 그다음 해에도 그 가난한 나라를 찾아왔고 1997년에는 해일과 가뭄이, 1988년에는 태풍이 국가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이 기간 동안 아사한 북한 주민은 대략 이삼백만 명으로 추정된다.11)

  인용문은 북한의 재앙적 현실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사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살고자 북한을 탈출한 로기완의 생존 본능을 엿볼 수 있다. 로기완은 탈북 후 연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시신을 4,000달러에 팔아 항공권과 남한 국적의 위조 여권을 만들어 벨기에에 도착한다. 그러나 한국 대사관으로부터의 거절로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좌절되고 고아원에서 만난 엘렌 원장과 박의 도움으로 난민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여러 사회적 혜택과 정착민으로서 안정감을 뒤로한 채 수용소를 탈출한 필리핀 여성 라이카를 따라 영국행을 선택한다.

4. 다문화 주체와의 화합과 정체성 회복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거주 장소 이동은 역동적인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온다. 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런던으로의 공간은 소속집단 내에서 문화적 화합과 상생을 이뤄 낸다. ‘이동-접촉-교류-갈등-융합-상생’의 과정을 거쳐 세계 질서 속에서 다문화 주체로 자리한 탈북 디아스포라(인)의 재현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바리데기』의 바리는 주변부에 있는 다문화 주체의 상처와 슬픔을 헤아리고 현실에 침착하게 적응해 나가는 인물로 제시된다. 중국에서 일을 소개해 주는 미꾸리 아저씨, 샹 언니, 손톱 미용 업소를 소개해 주고 여권을 구해 준 상하이 반점의 루 아저씨, 잠자리와 일자리를 제공해 준 통킹 네일쌀롱의 탄 아저씨, 할머니처럼 친절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압둘 할아버지, 바리와 결혼한 파키스탄 출신으로 영국 국적을 소유한 알리 등을 통해 다문화 이주자들과의 화합을 제시한다. 이러한 다문화적 주변부와의 연대는 국제사회에서 약소국 시민으로 위치한 탈북 디아스포라(인)의 생존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리나』의 주인공 리나는 거침없고 당돌한 성격으로 유쾌 발랄한 입체적인 인물이다. P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장소를 이동하며 능동적으로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상으로 그려진다. 또한 봉제공장 언니와 아랍계 혼혈 꼬맹이, 반벙어리인 삐와 할머니, 클럽 퍼즐의 점박이와 후배, 굶주림에 떨고 있는 네 명의 남자아이 등 주변 소수자의 화합과 연대를 통해 대안적 가족을 형성하는 등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디아스포라(인)의 복합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로기완은 1987년 5월 1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났다. ‘이니셜 L’로 소설에 등장하는 ‘로’, 바로 로기완이다. 그는 “무국적자 혹은 난민으로 명명되었으며, 신분증 하나 없는 미등록자나 합법적인 절차 없이 유입된 불법체류자”라는 등 “그 누구와도 현실적인 교신을 할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난민 자격을 포기하고 필리핀 여성을 따라 유럽행을 택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제사회에서 뿌리 없이 유랑하는 근원에서 벗어나 “살기 위하여, 외롭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탈북 난민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학 작품 속에서 탈북 디아스포라 현상과 이들의 정체성 양상은 인물 유형과 공간적 이동에 따라 다채롭게 재현되고 있다. 이처럼 탈북민은 인류사에서 디아스포라 양상을 가장 현대적으로 증명하는 존재이며, 북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분단 국가의 비애를 현재진행형으로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

각주

1) 빈 코헨·올리비아 셰링엄, 최영석 옮김, 『다름과 만나기』, 앨피, 2019, 31쪽.

2) William Safran, “Diasporas in Modern Societies: Myths of Homeland and Return”, Diaspora: A Journal of Transnational Studies 1(1), 88-99쪽 참조; 정은경, 『디아스포라 문학』, 이룸, 2007, 15쪽에서 재인용.

3) 정은경, 같은 책, 16쪽.

4) 서경식·서민정·김용규·이용일, 『경계에서 만나다: 디아스포라와의 대화』, 현암사, 2013, 10쪽.

5) 박덕규, 「탈북 디아스포라 이해와 자아 회복의 의미」, 박덕규·이성희 엮음, 『탈북 디아스포라』, 푸른사상, 2012, 326쪽 참고.

6) 김민숙, 「탈분단시대의 탈경계인의 유형과 특수성」, 《한국문화기술》 27, 2019, 15쪽 참고.

7) 황석영, 『바리데기』, 창비, 2007, 113쪽.

8) 같은 책, 140쪽.

9) 김민숙, 「탈경계인의 유목서사와 정체성」, 《한국문화기술》 30, 2021, 61쪽.

10) 강영숙, 『리나』, 문학동네, 2011, 55쪽.

11)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창비, 2011, 100쪽.

필자 약력
민유민_프로필.jpg

2006년 《전북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레몬타임」)로 등단, 2023년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탈북 문학 연구와 탈북민 인식 개선을 위해 민라이프디자인연구소를 설립,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탈분단시대의 탈경계인의 유형과 특수성」, 「탈경계인의 유목서사와 정체성―『바리데기』와 『리나』를 중심으로」, 「유튜브 방송에 나타난 탈북 유형 분석―배나TV ‘탈탈탈’을 중심으로」, 『탈북민의 체험 양상과 그 문화적 가치―《배나TV》의 <탈탈탈> 1~300회를 중심으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