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title_text

기획특집

이민 문학과 에세이 너머의 상상력

권성훈

1. 이산과 이주 그리고 이민 문학

   이민 문학은 작가가 떠나온 모국과 현재 거주하는 타국의 경계에서 형성된 자의식의 세계로서 존재한다. 이질적인 문화 속에 자국민이 겪었던 차별과 억압에 대한 고유한 정서적 정체성으로 파급되는 이민 문학은 경계 너머의 한민족 언어다. 이같이 이민자들의 문학적 상상력이 모국어로 배태된 것이 ‘이민 문학’으로 이민과 문학의 합성어로 정의된다. 거기에 타국에서 형성된 이민자들의 복합적 감정이 민족의 정서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의적·타의적으로 한민족 집단이 본토를 벗어난 디아스포라 의식으로 생겨난 무의식의 결과다. 디아스포라의 기원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새로운 영토에서 삶을 시작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면서 디아스포라는 세계적으로 곳곳에 흩어져 사는 각기 다른 민족, 공동체, 유색인종 등으로 폭넓게 해석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망명, 난민, 이주 노동자, 국제적인 이동 등이 확대되면서 유대인의 경우뿐만 아니라 국외로 추방된 집단 공동체의 이주민 집단을 아우르는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2) 이민 문학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디아스포라의 이주와 이산 그리고 정착 과정에서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민 문학의 특성은 “소수 집단이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정체성과 자신이 이주해 온 인종적 기억 사이의 어디에도 거주하지 못하는 ‘이방인’ 의식을 집단화하여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3) 이것은 자신이 떠나온 모국과 현재 거주하는 타국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자의식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만큼 이민 문학은 ‘항구적 이방인’으로 차별과 억압을 체험하며 정체성과 고유성이라는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문제로 표명된다.
   최초 이민 문학의 역사는 재미 한인 이민의 역사를 통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03년 1월 13일 101명의 한인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집단으로 도착한 것이 재미 한인의 최초 등장이며 기록이다. 이 한인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로서 생계를 위해 미국에 이주하여 정착을 시도하게 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 중 미국 병사와 결혼한 여성, 혼혈아, 입양아 등이 늘어나는 가운데 1965년 동양인 이민 금지법이 폐지되는 등 미국의 이민법이 개정되었다. 이로 인해 가족 이민자는 물론 노동자, 상인, 의료인, 종교인, 유학생 등이 영주와 생계, 그리고 교육과 사업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이에 미국에 한인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면서 한민족을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미주 한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사회적·정치적으로 개인, 집단, 가족 등의 미주 한인 이민자들의 문학적 정서를 집단으로 탑재할 수 있는 한인 문학으로서 ‘미주 문학’이 파생되었다. 여기서 미주 문학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창작한 한글 또는 영어로서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의 이산과 분산을 다루는 이민 문학의 특징은 해외에서 민족공동체를 구성하고 모국어로 유대를 강화하는 데 있다.
   미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재외 한인 문학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 들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리적인 국경의 의미가 점차 약화되고 세계화 등의 추세로 한국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국내 논자들의 시선이 국외의 한인 문학에 쏠리기 시작했다.”4) 학계에서는 새로운 장르로써 재외 한인 문학을 한국 문학 일부로 보고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미주 문학을 한국 문학으로 간주하려고 할 때 영어로 된 문학을 재외 한인 문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언어적 고찰이 필요하다.
   이에 미주 문학을 「재미한인문학 연구현황과 과제」로 탐색한 최미정은 “한국 문학은 주로 재미 한인 1세대들에 의해 창작과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 반해 영문 문학은 1.5세대나 2세대에 의해 창작되고 있으며 이들의 문학은 미국 문학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5) 물론 한글로 창작된 것은 한국 문학으로 탐구할 수 있지만, 영문 문학은 한국 문학으로 분류하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문학을 모국어와 타국어 중에서 어떤 언어로 창작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에 관한 해석이다. 이때 핵심은 한국 문학의 범주를 언어라는 형식적인 측면이 아닌 내용적인 주제 의식의 문제로 귀결시켜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를테면 영문 문학이라고 하더라도 주제 의식으로 민족 정서를 담고 있는지를 선행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영문 문학과 세대와 관계없이 한국 문학은 한민족의 영토, 언어, 정치, 문화, 사회 등을 교감하고 공유하는 민족 공동체 정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와 미주 문학

   재미 한인 이민 문학은 디아스포라라는 미주 집단 공동체 이주민의 정착과 편성 속에서 벌어지는 이종 문화의 탄생이다. 이들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게 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으나 동시에 다양한 모든 것들을 포용하여 새로운 어떤 것으로 태어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6) 초기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해방 이후 재미 1세대 한인의 문학 단체 조직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귀향을 전제로 한 미국 사회의 이방인 의식이 주를 이루는데 디아스포라 문학은 “민족 혹은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탈민족·탈국가의 문제의식에 비롯된 문화적 혼종성을 내재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개념에서 시작된다.”7) 이처럼 1세대라고 지칭되는 초기 재미 한인 문학에는 문화적 혼종성에 따른 새로운 세계의 수용과 정착 과정에서 생겨나는 작용과 부작용을 담고 있다.
   한편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고투한 재미 한인들의 삶은 이들의 시 의식 속에서 다양하게 관찰되고 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타민족이 가지지 못한 한글이라는 고유한 언어가 있었기 때문에 재미 문학이 확산될 수 있었다. 그것은 재미 한인의 문예지가 미국 전역에서 시대별로 발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8)
   먼저 1973년 미국 서부에서 창간한 재미 한인 동인지 《지평선》이 미주 문학지의 원조다. 이후 문예지 창간은 본격적으로 1980년대 들어와서 이루어졌다. 1982년 미주 최초 문예지 《미주문학》이 창간되었고 1983년 미주 한인 기독인들에 의해 《크리스찬문학》이 간행된다. 이어 1985년 시카고 문인회가 《백항목》을 발간했으며, 1985년 뉴욕 한인 동인지로 《신대륙》이 선을 보였으며, 1988년 재미시인협회가 《토지》를 창간했다. 1990년대 들어서 재미 한인들의 창작 활동은 이민자들에 비례하여 확대된다. 이를테면 1991년 《뉴욕문학》이, 같은 해 《워싱턴 문학》이, 1995년 《센프란시스코문학》이, 1996년 《해외문학》이, 1999년 《재미수필》이 각각 창간되었다. 2000년대에는 2002년 《문학가주》가, 같은 해 《문학아메리카》가, 2003년 《미주PEN문학》 등이 뒤를 이었다.
   재미 한인들의 초기 시 의식으로 “재미 한인들은 한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며 한국인으로서의 결속을 다지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민 생활의 힘겨움 등을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다.”9)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이주와 정착에서 생기는 부정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단일 민족, 단일 혈통이라는 강박 관념적인 순혈 의식에서 탈피해 미국 사회를 긍정하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화합하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0)이러한 의식은 재미 한인들이 다른 소수민족과의 다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분리된 민족의식을 극복해 나가면서 태동한 것이다. 이에 “민족의 경계를 넘어 같은 운명에 처한 타 인종과의 연대를 통해서 상생과 공존을 추구하는 다문화적 공동체를 지향했다.”11) 게다가 이민 초기 재미 한인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이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는 데 국제 사회의 정치적인 작용도 한몫했다. 현대 한국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과 최근 한류 열풍 등은 재미 한인들의 문화적 위상 속에서 재미 한인들의 갈등과 소외를 벗어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디아스포라 상황 속에서 재미 한인 문학은 민족 공동체로 결속을 다지면서 위로와 치유, 화합과 성장을 이루게 되는 동력이 되었다.

   미국 이민 생활 10년 차를 넘어서는 요즈음에 과연 ‘이민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 땅에 정착한 청교도 이민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그들 삶의 전부였다. 부(富)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을 찾은 유럽의 백인 이민자들에겐 ‘거대한 농토와 수확’이 그들 삶의 가치였다. 노예로 팔려 온 아프리카인들은 ‘자유와 평등의 인간적 매우’를 받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이민의 문이 확대된 20세기에 아시아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환상이며 목표였다. 불법 체류자들에겐 영주권이나 시민권(합법 신분증)을 취득하는 것이 급선적 목표가 될 것이다. (……) 이민자는 그리 녹록지 않은 환경에 늘 약자라는 불안 속에 눈치로 삶을 이어간다.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못하고, 미국 사회의 시스템도 잘 모르고, 관광이나 여행 같은 문화생활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우직한 열정과 정직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보영, 「이민자의 삶」 부분12)

   이 글은 이민자들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거기에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것을 모토로 그만큼 당위성을 요구받는다. 그렇지만 재미 한인들은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어려운 환경에 맞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아시아계의 약자라는 신분과 차별과 불안에 맞서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회고한다. 게다가 극복하지 못하는 문화적 경계와 정체성의 혼돈 등이 미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정착하지 못하는 심리적 디아스포라를 나타낸다. 그렇지만 열정적으로 자신과 집안을 돌보면서 황혼의 나이에 이른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자신을 있게 한 것은, 사실 조국이 아니라 ‘우직한 열정’과 ‘정직’이라는 한민족이 가진 고유한 정신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3. 미주 디아스포라와 이민자의 에세이

   이민자들에게 탈영토화된 시공간의 미국은 새로운 영토에서의 생태성을 가진다. 인간에게 생태는 나란 존재를 구성하게 하는 근원적인 세계이며 절대적인 유기체다. 문명을 지탱하면서 세계와 유기적인 결합을 이룬다는 점에서 생태의 세계는 나라는 존재가 모든 존재 안에서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생명을 유기체로 보는 생태학은 인간 역시 자연 생태계의 일부에 속하는 유기체로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13) 인간은 세계 전체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생존 가능하며 서로가 공존하며 상호 의존함에 있어서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적 집합소’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이 맞이한 미주 영토 또한 생태로서 현존하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실존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적응해야 할 공존의 세계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단순히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한국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한국의 문화, 역사, 사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 속의 한국인도 아니며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능동적이고 새로운 역사, 전통을 재창조해 가는 사람들이다.”14) 이처럼 재미 한인은 한국에 뿌리를 둔 미국에 거주하는 자로서 생태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뿌리가 미국에 파종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시 의식을 생태적인 차원에서 공존의 방식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코이 물고기’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계의 크기에 따라서 난쟁이 물고기가 될 수도 있고, 대형 잉어가 되기도 한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코이 물고기’처럼 우리들의 가능성 또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도, 발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코이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사람도 생각을 키우고 활동 범위를 키우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 그저 순응하며 좁은 어항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우리가 아무리 90-120센티미터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더라도 결국 5센티미터의 피라미 정도밖에 자라나지 않게 된다. 만약 우리가 큰 바다를 가슴에 품고 그에 걸맞게 살아간다면 아무리 시작이 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그저 작은 피라미였더라도 다른 물고기들 못지않게 크게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물고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보영, 「신기한 물고기 코이(Koi) 이야기」 부분15)

   ‘코이 물고기’를 통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드러내는 이 글은 생태적 가능성이라는 수사적 의미를 가진다. 거기에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더 큰 생각을 품고 더 큰 꿈을 꾸면 더 크게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견인한다. 물론 현실은 어항 속에 갇혀 사는 작은 피라미같이 타국에서 또한 자신의 존재는 미미하지만, 더 큰 존재로서의 증명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더 넓은 바다까지 도달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항이나 우물 속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고 좀 더 넓은 세상, 거친 곳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경험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강물이나 바다까지 도달하여 유유히 헤엄치는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다짐한다. 화자의 꿈은 희망이면서 자기 극복이며 정체성의 치유가 된다.

   우리가 이민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동포들이 기독교회에 출석한다. 그중 여러분들은 기독교인으로 깊이 종교 생활을 한다. 교회 생활 중에 구역 혹은 목장이라 칭하는 모임이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교인들을 묶어 형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면서 신앙 생활 교회 생활 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도 한 달에 한 번씩 구역모임이 있다. 식사를 하며 친교가 중심이 되지만 간단한 예배와 함께 참석한 구역원들이 소원하는 제목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한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이웃사촌 친구가 되는 지름길이다.
   대학 진학하는 자녀를 둔 집사 부부가 있다. 그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내어놓은 유일한 기도 제목은 그들의 자녀가 소망하는 대학에 입학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기에 세칭 일류 대학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진하리라 생각된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젊은이는 물론 더 좋은 대학으로 보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느껴진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효섭, 「이게 우리 엄마야, 맞아?」 부분16)

   이민자들에게 현지 종교는 탈영토화된 상실에 대한 그리움과 한민족의 동일한 향수를 가진 공동체 집단이 쉽게 조우할 수 있는 장소다. 여기서 긴밀한 애착감이 생기고 고국에 대한 기억이 복원되는 현실적 공간으로 통하며 무엇보다 서로가 가진 배려와 관심의 공간으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주 사회에서 당장 도달할 수 없는 장소로 고향은 “현실 세계에서 늘 동경의 대상으로 호명될 수밖에 없는 ‘먼 곳’이다.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본질, 진정한 삶이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고향’인 것이다.”17) 이곳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함께 바라면서도 타국에 있는 가족보다 더 진한 형제와 자매와 같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이는 예배와 교리라는 전도적 차원이 아니라 한인 이주민들과의 삶에 대한 교감이 생겨나며 인간에 대한 유대감이 강화되는 곳이다. 더불어 자신의 삶과 삶을 치유하며 이어주는 교각 역할을 하면서 소통된다는 점에서 민족공동체와 같은 의미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구체적인 가족의 문제로서의 자식들의 진학과 앞으로의 삶을 공유하면서 디아스포라의 세계에서도 한국 사회와 다를 바 없는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다. (……) 나도 세 아이를 키울 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세상은 악해가고 경쟁은 치열해져 미래는 불안한데, 어떻게 아이들을 바르고 슬기롭게 양육할까 늘 고민했다. 그들의 무궁한 잠재력을 보면서도 수많은 시작과 선택의 기로에 홀로 설 아이들이 안쓰러워, 아이들 뒷모습에 가슴 한쪽이 뻐근해지기도 했다. 혹시 필요한 것, 배워야 할 것이 빠진 것은 없는지 전전긍긍했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세상의 이치를 어떻게 알릴까 고민했다. 실수를 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자신을 수시로 점검하는 속 깊은 사람이 되라고 심장에 뜨거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떠 있는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과 진짜 이야기가 아쉽고 아련해질수록 당시 그들의 손짓, 몸짓의 변화와 깨우침을 글로 남겨주지 못한 회한이 컸다. 이제 며느리의 남자, 사위의 여자로 세상을 향해 활짝 날개를 편 그들에게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김영란, 「할매 시크릿」 부분18)

   이 글 역시도 미국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할머니가 되어 버린 자신을 회고하면서 자녀에 대한 소고를 드러낸다. 타국에서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살았던 삶이 그것을 말해 준다. 이 가운데 자식이라는 ‘뜨거운 희망’이 늘 함께했기에 지금은 ‘며느리의 남자’, ‘사위의 여자’ 등으로 출가한 자식들을 표현한다. 이렇게 누군가의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은 그만큼 어디에 내놔도 당당할 수 있었던 자식과 자신의 삶이 동일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일기를 자서전 같은 기록으로 자녀들에게 남겨주지 못한 회한을 드러낸다.
   이 같은 이민자들에게 자기 정체성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다문화 속에서도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자의식에서 성립된다. 그것은 한글로서 매개하며 타국에서 이민자들이 남기는 글은 자신의 문화를 재정비하는 데 우선시 되는 것으로 이민자의 고유성을 지키고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화자에게는 남아 있는 여생을 온전하게 보내는 자아 성찰로서의 이민자의 마지막 기록이 된다.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출판사를 운영해 왔다. 말이 운영이지 일은 많고 수입은 안 되는 열악한 상황에서 그동안 수십 권을 출간했으니 기특하긴 하다. 10여 년 전 미주 이민사를 연구할 기회가 있을 때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한 후, 미주 한인들의 사라지고 묻혀버릴 일상을 남길 수 있는 출판을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삶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개인 역사와 더 멀리 더 넓게 본 경험에서 우러난 독특하고 다양한 가치가 있다. (……) 그동안 나는 십의 이조를 내가며 고국의 독립자금 보내는 데 일생을 보냈던 초기 이민 이야기도 여러 권 발간했고, 미국에 사시는 6·25 참전 용사와 체험자 27분의 6·25의 경험을 담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모두 이어져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다. 집안의 남자란 모두 전쟁터로 간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길로 나섰던 소위 ‘양공주’라고 멸시당하던 분들의 이야기도 살려내어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위로해야 한다. 조국의 전쟁과 가난의 소용돌이 속에 가족 수십 명을 미국으로 이민시켰으나, 부끄러운 과거라며 가족들에게까지 외면당한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입양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기록도 한국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우리가 남겨야 할 일로, 그 꿈은 느리지만 서서히 이루어 가는 중이다.
   ―김영란, 「글로 동여맨 우리들의 이야기」 부분19)

   이 글은 미국에서 출판사를 경영하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자서전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자서전이 개인적인 사건을 공적 기록 역사로 승화시켜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후대에서는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유산을 남기는 일이 자서전 쓰기라는 점이다. 그에게 역사란 개인 기록이 모인 것일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는 지혜롭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이해와 연민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가 경험한 역사적 진실이 가슴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전쟁에서 겪은 사연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자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도 미래에는 역사로 편성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개인마다 이민자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며 자기 극복이 되는 것이다. 이같이 이민자들의 기록은 “공간의 이동에 따른 자신과 조국, 그리고 현 거주국 사이에서의 혼란과 새로운 공간에 다시 적응하는 양상 등이 작품에 나타나면서 오히려 자아 정체성의 ‘탐색’이라는 사유를 더 강하게 포함하게 된다는 것이다.”20) 이민자들의 작품에 투영된 자아 정체성의 문제는 재미 한인들이 미국 안의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가져다준 결과지만 한글에 관심을 두고 기록하고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분리된 자아를 극복하고 역사로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이민 문학의 에세이는 각자의 이민 체험을 중심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고 있다. 여기서 타국이나 고국이든지 어디에서도 속할 수 없기에 디아스포라 상상력이 발휘되며 이민자만이 기록할 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 에세이가 탄생된다. 물론 이러한 이민자들의 문학적 상상력은 경계 너머로부터의 경계에서 분열되거나, 분리된 가운데 직간접적인 체험을 재현하고 이방인의 삶을 환기한다. 이것은 자아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로서 자신이 겪은 고통스러운 삶의 재현과 정서적 통찰이 가능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리된 자의식에 대한 감정의 정화를 일으키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자아의 통찰과 세계의 통합을 가지는 데 기여한다.

각주

1) 이 글은 필자의 「미주문학의 시의식 연구: 《버클리문학》을 중심으로」, 《국제한인문학회》 30, 2021를 참고해서 완성했다.

2) 윤인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7쪽.

3) 김태만, 「제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트라우마」, 《동북아문화연구》 25,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0, 374쪽.

4) 최미정, 「재미한인문학 연구현황과 과제: 시문학을 중심으로」, 《한국문학과 예술》 24,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7, 283쪽.

5) 최미정, 같은 책, 287쪽.

6) 고혜림, 「다양성을 넘어서는 실존적 가능성: 화인디아스포라와 문학」, 《오늘의 문예비평》 118, 2020, 117쪽.

7) 이미나, 「재일 디아스포라 한국어 시문학 연구」, 《국제한인문학연구》 25, 국제한인문학회, 2019, 37쪽.

8) 미주 한인 동인지와 문예지의 연대별 각 창립은 최미정의 「재미한인문학의 현재와 미래」, 《한국문학과 예술》 14, 한국문학과 예술, 2014, 53-81쪽 참고.

9) 조규익, 『해방 전 재미한인 이민문학』, 월인, 1999, 22쪽.

10) 최미정, 앞의 책, 68쪽.

11) 김상률, 「디아스포라와 아프리카계 미국 문학」, 《한국아프리카학회지》 19, 한국아프리카학회, 2004, 17쪽.

12) 《기독문학》 22, 미주한인기독문인협회, 2019.

13) 이원영, 「생태학적 인식을 위한 문학교육의 구성 방향」, 《문학과환경》 18(3), 문학과환경학회, 2019, 223-224쪽.

14) 장태한, 『아시안 아메리칸―백인도 흑인도 아닌 사람들의 역사』, 책세상, 2005, 148쪽.

15) 《시카고문학》 12, 시카고문인회, 2019.

16) 《시카고문학》 12, 시카고문인회, 2019.

17)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이기숙 옮김,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2011, 120쪽.

18) 《버클리문학》 3, 버클리문학협회, 2016.

19) 《버클리문학》 3, 버클리문학협회, 2016.

20) 임수경, 「탈영토화적 관점에서 본 세계민족문학 형성 가능성 고찰」, 《한민족문화연구》 29, 2009, 165쪽.

필자 약력
프로필_권성훈.jpg

한신대 종교학과, 경기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박사후과정을 수료하고 고려대 연구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 경기대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저서로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 외 2권,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정신분석 시인의 얼굴』, 『현대시 미학 산책』, 『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 편저 『이렇게 읽었다: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공공누리로고

출처를 표시하시면 비상업적·비영리 목적으로만 이용 가능하고, 2차적 저작물 작성 등 변형도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