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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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뛰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정재훈

▲ 유미리 『8월의 저편』 연재 당시 일러스트 #7 [ⓒ井筒啓之(Izutsu Hiroyuki)]

1. 불규칙한 감정으로 어디에도 정주할 수 없는 글쓰기

   유미리의 장편 『8월의 저편』을 다시 읽었다. 완독을 했던 뒤로 10년 만이었다. 읽을 때의 느낌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상하권으로 길게 전개되는 서사를 따라 경주하다 보면 독자인 나도 모르게 어느새 “큐큐 파파”1) 하면서 감정의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압도적인 정주의 감각에서 벗어나 한발 한발 낯선 코스에 진입하는 심정이었던 그때를 떠올리기도 했으나, 어떤 구간은 다시 읽어봐도 감정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부분은 이른바 난코스라 하겠는데 특히, 작중 인물 김영희가 ‘나미코’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어 위안소(“낙원”, 하 141쪽)에서 살아가는 장면에 진입하면 감정의 호흡이 급격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다.
   『8월의 저편』은 한일 언론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동아일보》와 일본의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에 공동으로 연재된 장편소설이다.2) 그리고 유미리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의 출발점이 바로 마라토너였던 외할아버지3)의 삶이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제가 소설가로 데뷔할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소재입니다. 먼 길을 돌아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에요.” 4)그렇게 작가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수차례 한국을 찾았고, 여러 사전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과정 하나하나가 작가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마라톤이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집필하는 순간에는 더욱 그러했을 테다.

   내 기억에 할배는 우리 집에 열 번쯤 자러 왔습니다. 아침,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올림픽 출전 선수로 뽑혔을 만큼 빨랐다고 합니다.(하, 408-409쪽)

   나는 쓰기 위해서 뛰고 있다 주행 속도 성별 성격 나이 경험의 차만 해도 큐큐 파파 비슷한 부분보다 비슷하지 않은 부분이 큐큐 파파 하지만 뛰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 속도로 달릴 수는 없어도 그 거리를 달릴 수는 있다 큐큐 파파(상, 51쪽)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아버지의 현역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그렇게 반듯한 폼으로 달리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큐큐 파파 키가 180센티미터나 되고 다리도 길어서 양복을 입으면 무척 잘 어울렸다고도 180센티미터라면 1912년에 태어난 사람치고는 상당히 크다(상, 53쪽)

   할아버지는 도쿄 올림픽이 무산된 1940년부터 손기정 씨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큐큐 파파 할아버지는 도망쳤다 징병 조국 가족 큐큐 파파(상, 69쪽)

   유미리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먼 길을 돌아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라 함은 어쩌면 소설가가 되기 이전부터가 아니라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로에서 다시 출발선에 섰다는 것은 결국 외할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비로소 가능했을 테다. 작가가 내세운 작중 인물 ‘유미리’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재생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작가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마라토너로서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뛰었을 할아버지를 좇아 작가 자신도 ‘글쓰기’로 달리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고자 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뛰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재일 3세대 작가라고 평가되는 유미리의 작품 세계는 이전 세대의 작가들이 보여준 민족적 색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였다. 부모님의 이혼을 비롯하여 청소년 시절에 했던 가출과 비행 등 작가 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형상화했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스스로도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계적 자의식이 돋보였다고 하겠다. 그런데 『8월의 저편』은 할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뿌리라고도 볼 수 있는 ‘밀양’을 무대로 씻김굿을 비롯해 밀양아리랑과 같은 전통적인 색채들이 짙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 세계와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것은 뛰어보지 않고서는(쓰고자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기에 당장에는 무엇 하나 가늠조차 할 수 없었을 테고, 따라서 정주의 감각이라는 익숙함도 무용했을 것이다.
   “징병 조국 가족”으로부터 도망을 친 할아버지의 행적도 그러하지 않을까. 이것이 과연 ‘도망’인지, 아니면 ‘탈출’인지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기 어렵다. 할아버지가 지나간 행적을 좇아가려는 유미리의 입장에서 당시 그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으로 도망가 파친코를 해서 성공했다는 소문”(하, 372쪽)처럼 그렇게 고향에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혼자서만 전쟁의 그늘(‘징병’)에서 벗어났다는 비난 뒤에는 또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여전히 고향을 잊지 못해 갓 태어난 손녀의 이름을 “미리”라 짓고, 자신의 운명이 행여 손녀에게도 이어질까 봐 “자신의 불안이 스미지 않게 조심조심”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정주하지 못하는 자’의 굴곡진 어둠을 보여 준다.

2. 전쟁의 어둠과 제국주의의 쇠사슬에 묶인 자들의 이야기

   재일조선인 문학에서 ‘전쟁’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작품들에서 엿보이는 전쟁의 이미지는 대부분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재일 2세대 작가인 이회성의 단편 「증인 없는 광경」에서처럼 황국 신민 사상에 경도된 소년(작중 화자의 과거 어린 시절)이라든가, 또는 백골로 발견된 일본 병사의 시체를 들 수 있다. 비록 전쟁의 이미지가 포탄이라든가, 총성으로써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제하에 조선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상황 자체가 가히 전쟁에 버금가는 것이지 않았을까. 당시, 재일 조선인에게는 조선보다 앞서 1942년 10월 국민징용령이 적용되어 일본 국내는 물론, 남방 등의 점령지에 군속으로 보내지기도 했다.5)
   『8월의 저편』에서는 일제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집하는 분위기를 볼 수 있는데, 전쟁으로 인해 도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형을 본 “우곤”(춘식, 우근, 할아버지의 동생)의 뇌리 속에는 “큐큐 파파 나는 몇 살에 죽을까 큐큐 파파 어디서 죽을까 큐큐 파파 가다르카날 섬? 솔로몬 섬? 미얀마? 뉴기니? 호주? 큐큐 파파 중국?”이라는 일말의 두려움이 스친다. 그가 떠올린 지명들은 모두 당시 일제가 전쟁을 치르던 곳이었다. 고향인 ‘밀양’과는 너무나 먼 타지로 끌려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과연 어떤 이미지로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가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응결된 어둠”(하, 183쪽)처럼 그 끝을 짐작조차 하기 힘든 절망의 밑바닥까지 그의 영혼을 끌고 갈 “제국주의의 쇠사슬”이지는 않았을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찾을 수 있을까요? 시체가 묻힌 곳을 찾아 땅냄새를 맡는 개처럼 큐큐 파파 나는 이을 수가 있을까요? 산산이 부서진 뼈를 큐큐 파파 나는 들을 수가 있을까요? 재갈을 물린 채 살해당한 사람들의 언어를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나는 할 수 있을까요? 땅을 뒤흔드는 전쟁의 굉음을 전할 수가 추궁당하기 전에 대답할 수가 불타오르는 거리를 끝까지 달릴 수가 한을 품고 가라앉은 혼을 아침처럼 환하게 웃게 할 수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나는 당신의 발소리가 메아리치는 터널을 더듬더듬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상, 76쪽)

   “시체가 묻힌 곳을 찾아 땅냄새를 맡는 개처럼” 쉼 없이 뛰어야만 하는 지금의 ‘나’(유미리)는 ‘제국주의의 쇠사슬’에 묶여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부서진 뼈”들을 잇고, 산산이 흩어진 사람들의 “언어”를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해방을 맞아 더는 먼 타국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이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이데올로기의 광풍은 “우근”의 몸에 총상을 입혔고, 결국 사찰계 일원에게 사로잡힌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두개골이 함몰되는 소리”(하, 310쪽)였다. 해방이 되었음에도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상대(“빨갱이”)를 죽이기 위해, 또는 살기 위해 도망치면서 숨을 헐떡거리는 광경은 지축을 흔들 “전쟁의 굉음”보다 더 참혹했고, 혈기 왕성했던 젊은 영혼들은 땅 밑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쇠사슬’에 묶인 채 전쟁터에 끌려와 타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시신조차 찾을 길이 없는 비참한 운명이 과연 조선인에게만 있었을까. 서두에서 언급했듯 『8월의 저편』에서 가장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난코스(하권 22장 「낙원에서」), 즉 김영희가 ‘나미코’라는 가짜 이름으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어 끔찍하게 고통받는 장면에서 가해자로 등장하는 일본군 장교와 병사들 또한 ‘제국주의의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자들이다. 위안소는 전쟁으로 인해 훼손된 그들의 인간성이 여과 없이 발설되는 고해소(告解所)이다. 천황의 군대라는 엄격한 군율에 의해 억제되었던 불안과 상실감이 격렬하게 표출된다. 이로써 허황된 전쟁 논리의 민낯이 드러난다. 특히, 나미코의 단골인 “가토 중사”는 기울어져 가는 전세(戰勢)를 그녀에게 전하며, 자신이 목격했던 장면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6)

   “서로 나라를 빼앗고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고 빼앗기고. 한 사람이라도 많이 죽여서 대일본제국을 승리로 이끌어야 동양에 평화가 오는 거야. 죽으면 안 되지, 살아서, 죽이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지.
   고향에 돌아가면 전부 잊어버릴 거야. 나미코도 이곳에서 있었던 일 다 잊어버리고, 나하고 같이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구. 입영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 한 번 때린 적 없고 맞아본 적도 없었어. 늙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어머니나 아버지, 애지중지 나를 키웠는데…… 어서 돌아가서 효도를 해야지…… 손자도 안겨드리고…….”
   (……)
   웃으면서 돌아서는 가토 중사의 얼굴을 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죽을상이다. 낙원에 끌려온 지 1년 3개월, 저런 얼굴의 병사를 몇 명이나 배웅했었다. 그들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다……. (하, 196쪽)

   가토 중사를 비롯한 일본 군인들을 바라보는 나미코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군인들의 폭력으로 자신의 몸과 영혼을 짓밟힌 여성으로서 느끼는 분노도 있겠으나, 가토 중사의 경우처럼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자’라는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기도 한다. 물론,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군인들이고 심지어 조선인 여성들을 강간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용서받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 또한 당시 군부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온 자들이다.7)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고, ‘제국주의의 쇠사슬’에 묶여 전쟁터로 끌려오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럼 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기록되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작품 말미에 이우근과 김영희의 영혼결혼식과 같은 화해적 구원이 과연 이들에게도 내려질 것인가.

3. 재일 조선인과 같은 이름이자, 다른 이름이기도 한 재조 일본인의 시선

   『8월의 저편』에서 “이나모리 키와”는 작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유미리의 할아버지 이우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 할 수 있는 동생 이우근의 출산(당시, 난산이었던 상황이었다)을 도왔던 산파(産婆)인 그녀는 비록 일본인이지만, 십수 년 전에 남편을 따라 조선에 이주하여 정착한 인물이다. 어느덧 그녀의 집안은 삼대(三代)를 이루었고, 그간 그녀는 산파로서 많은 아이들의 탄생을 지켜봤다. 재조 일본인이자, “제국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소수자”8)이며 “당대의 역사가 단순히 제국과 식민지, 일제와 한국이라는 국가적, 민족적 요소로 치환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가 바로 이나모리 키와인 것이다.
   민족적 요소로 쉽게 치환될 수 없다는, 그 경계성이 드러나는 대목은 이우철의 고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철은 친구 “우홍”이 관동대학살을 얘기하며 “왜놈”들을 향해 적의를 드러낸 것에 대해 “하지만 우홍아 큐큐 파파 도저히 큐큐 파파 이나모리 키와란 이름과 그 얼굴과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는다”(상, 129쪽)라며 독백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구축한다면, 자신도 이나모리 키와를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구축할 것인가를 자문한다. 동생의 탄생에 일조한 산파이고, 가족의 은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젠가 서로를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비극적 예감은 앞서 언급한 ‘제국주의의 쇠사슬’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이 땅에 일본 사람들이 사는 것 자체가 조선 사람들에게는 상처라고 한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는 올바르지 않다. (……)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사람보다 조선 사람의 아이를 받는 일이 많았다. 조선 여자들 사이에서, 난산일 때는 이나모리밖에 없다고 평판이 나 있는 모양이다. 기쁜 일이다. 조선의 가정에서는 아기의 첫 생일 잔치에 아기를 받아준 산파를 모셔 정중하게 대접하는 풍속이 있다는데, 이렇게 이 두 손으로 받은 아이가 서서 걷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는 기쁨이다.(상, 218-219쪽)

   또한, 이나모리 키와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다. 전쟁터에 끌려가 누군가를 죽이는 일보다 탄생에 일조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생업이고, 이것은 곧 그녀의 윤리 의식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업신여기고 폭력을 휘두르지만, 조선인 여자들에게 산파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식민 지배 논리의 쇠사슬은 가볍게 끊어져 버린다. 낯선 풍속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보편적인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은 ‘탄생’이라는 존재적 사건 앞에서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인간다움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녀의 평온한 삶에도 마침내 ‘전쟁’의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나모리 키와는 인력거 위에서 거리를 바라보았다. 폭탄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살육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살 속에서 모든 것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파란 윗도리를 입은 인력거꾼이 숨을 헉헉거리며, 이거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습니다, 헉 헉 헉 헉, 우리들도 일본 거리가 텅 비면 가게 문 닫고 떠나야지요, 헉 헉 헉 헉, 나는 여기서 태어나서, 아버지 고향인 야마구치에 대해서는 얘기밖에 들은 게 없어요, 헉 헉 헉 헉, 그래도 핏줄한테 의지하는 수밖에 없죠, 정말 큰일입니다, 하고 말을 걸었지만, 가슴이 메어 뭐라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하, 225-226쪽)

   폭탄이 떨어지거나 살육이 벌어지진 않았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데에서 밀려오는 절망과 상실감은 어쩌면 ‘전쟁’이 주는 충격파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날벼락과도 같은 상황에서 피난민의 심정으로 그동안 일궈왔던 터전을 떠나야만 한다는 어수선함과 불안감 사이로 그녀는 텅 빈 일본인 마을 거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손수 받았던 우근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녀는 우근에게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할머니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없어졌어요”(하, 230쪽)였다. 키와는 “지금 잃어버리려는 것의 크기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제국주의의 쇠사슬이 끊어지자, 그것에 의해 지탱되고 있던 조선에서의 평온했던 생활은 무너진다.
   해방으로 불리든, 아니면 패전으로 기억되든 간에 이들 두 인물 사이에는 ‘탄생’의 순간으로써 이어진 끈이 있다. 이것은 차가운 ‘쇠사슬’과는 전혀 다른 ‘인간다운’ 온기를 지녔다.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유일한 걱정은 증손자인 “달우”가 밀양에 남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 자신과의 인연의 끈이 유일하게 남은 우근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증손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해줄 수 있느냐고. 그녀의 입장에서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앞으로의 여생을 ‘잃어버린 것들을 추억하며 그곳에서의 행복했던 일상’을 반추해야 하지만, 증손자인 달우는 자신의 고향인 이곳에서 증조할머니와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9)

4.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의 저편을 상상하며 호흡하기

   이번 글을 작업하면서, 자료를 읽다가 우연히 어떤 인물을 알게 됐다. 그의 이름은 ‘오가와 다케미츠’였다. 1969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사무소 옆에 홀로 ‘야스쿠니 법안 반대’라고 가슴에 쓴 조끼를 입고 서서, ‘유족이므로 반대한다! 전쟁은 위업이 아니다’라는 전단을 나눠주는 남자(당시 55세)가 있었다. 1942년 1월 입대해 다음 해인 1943년 3월부터 북지나군의 군의관으로 스자좡(石家莊) 병원에 배속, 같은 해 10월부터 패전까지 베이징 제1육군병원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다.10) 지금도 일본 우익 세력들이 성지처럼 여기며 해마다 광복절(패전일)에 맞춰 과거 제국주의의 허황된 이상을 기념하는 그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그것도 일본인이 야스쿠니 법안 반대 시위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날 그는 힘겹게 홀로 서 있었다. 어떤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가운데, 생명을 걸고 야스쿠니신사 경내에 서 있었다. 그는 전범으로 처형된 장병들의 마지막 순간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남긴 유지를 짊어지고 홀로 서 있다. 그는 ‘전몰자(戰歿者)’를 ‘영령(英靈)’으로 바꿔치기하고 ‘전쟁’을 ‘위업’으로 치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십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치유되지 못하고 죽어간 병사들의 마음의 상처와 공명하고 있었다.(같은 쪽)

   그는 분명 그때 당시 자기 앞에서 서서히 죽어갔던 병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유지”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었을까. 어쩌면 그들이 전쟁터에 끌려오기 전에 누렸던 평범한 일상이라든가, 소중했던 가족들에 관한 추억도 함께 스며들어 있지는 않았을까. “마지막 순간”에 결국 조각조각으로 남은 이야기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얕은 숨을 쉬었던 누군가가 있었음을 증언할 것이다. 죽은 병사들이 남겨둔 이야기의 여백 사이로 (아직 살아남은 자의) “마음의 상처”가 “공명”한다. 이것은 ‘역사적 책임’ 또는 ‘반성’이라는 익숙한 수사적 표현보다는 오히려 죽기 직전의 병사들과 그가 잠시나마 짧은 대화를 시도하고, 희미해지는 온기를 느꼈던 순간으로써 더욱 무겁게 각인될 것이다.
   왜 갑자기 ‘가토 중사’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을까. 어느 늙은 부부의 소중한 외아들이자, 전쟁터에 오기 전에는 한 번도 누군가를 때리거나 맞아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정말로 전쟁터에서 죽게 되었을까, 아니면 전쟁이 끝나고 무사히 귀환하여 다시 부모님도 만나고 이전의 일상을 돌아갔을까. 작가는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을 이나모리 키와는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또 전쟁이 끝났어도 위안소를 떠나지 않았던 “에미코”의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갔을지,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광풍에 휩쓸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김원봉의 여동생”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의도한 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책임한 공백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비어 있는 페이지, 쉽게 읽어나갈 수 없는 여백, 규칙적인 호흡을 깨뜨리는 난코스와도 같은 구절. 이것은 우리를 위해 작가 남겨둔 또 다른 길목이다. 아직 우리가 다가가지 못한 지점이라면 이제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더 움직여야 한다. 그 지점이 만약 누군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야만 이전과는 다른 길목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이다. “뛰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 속도로 달릴 수는 없어도 그 거리를 달릴 수는 있다 큐큐 파파”.

참고자료

1) 유미리, 김난주 옮김, 『8월의 저편 上』(상), 동아일보사, 2004, 9쪽. 이하, 쪽수만 표기한다.

2) 윤송아, 『재일조선인 문학의 주체 서사 연구』, 인문사, 2012, 463쪽.

3) 유미리의 외할아버지 양임득(1912-1980)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던 손기정을 잇는 유력한 마라토너 중의 한 사람이었다. 유미리의 디아스포라적 위치는 일제강점기 징병과 해방 후 이데올로기를 피해 일본으로 밀항했던 양임득의 이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변화영, 「기억의 서사교육적 함의」, 『한일민족문제연구』 11, 한일민족문제학회, 2006, 5쪽.

4) 유윤종, 「유미리 장편소설 ‘8월의 저편’ 18일부터 연재 시작」, 《동아일보》, 2002년 4월 15일 자.

5) 정영환, 임경화 옮김,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푸른역사, 2019, 76쪽.

6) 그는 중대장의 명령으로 어느 소집병이 중국인 포로의 목을 베어버리는 과정, 전투 경험도 없는 철부지 소년병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부들부들 떠는 장면, 시체가 둥둥 떠 있는 강물로 밥을 지어 먹은 상황, 정신이상 증상을 보이며 군 병원으로 간 쓰카모토 중사의 모습을 나열하면서 마지막에 나미코(김영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기가 길어져서 미안하군. 부대에서 하면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고,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할 수 있겠어…… 나미코밖에 없어.”(하권, 188-196쪽)

7) 왜 이런 어리석은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지, 당시 전쟁터에 끌려간 이들은 의심했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징집되어 필리핀의 민도로 섬에서 경비를 맡다가 미국의 포로가 된 오오카 쇼헤이는 포로수용소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장편 『포로기』를 썼다. 그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군부를 향한 증오를 드러냈다. “나는 생물학적 감정에서 진지하게 군부를 증오했다. 전문가인 그들이 절망적인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또한 근대전에서 일억 옥쇄 따위가 실현될 리가 없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면서도 여전히 항복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 자신이 전쟁 범죄자로 처형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이 전쟁을 시작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고, 상황이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은 알겠지만, 이러한 시점에서 아무런 대응책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들의 자기 보존이라는 생물학적 본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생물학적으로 증오할 권리가 있다.” 오오카 쇼헤이, 허호 옮김, 『포로기』, 문학동네, 2010, 357쪽.

8) 손종업, 「유미리의 『8월의 저편』과 언어의 문제」, 『어문연구󰡕』 40,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2, 334쪽.

9) 우리의 탄생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지만 일종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행위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탄생으로 세계에 나타난 인간은 말과 행위를 시작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에 새로움을 형성한다. 김세원, 『진정성, 자기다움의 윤리』, 한국학술정보, 2019, 147쪽.

10) 노다 마사아키, 서혜영 옮김, 『전쟁과 죄책』, 또다른우주, 2023, 68-69쪽.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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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을 통해 등단했다. 경희대학교, 광운대학교 강사로 있으며, 한국작가회의 대변인, 《뉴 래디컬 리뷰》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평론집 『그럼에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공역 『‘재일’이라는 근거』 등이 있다.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사업을 수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