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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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한인 문학의 창조적 소통을 위하여

홍용희

1. 재외 한인 문학의 재인식과 창조적 소통

   재외 한인 문학은 적응과 극복의 명제를 생래적인 과제로 안고 있다. 현지의 메이저 문학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메이저 문학의 한계를 충격하고 극복하는 것이 재외 한인 문학의 마이너리티로서의 궁극적인 지향성이다. 다시 말해 재외 한인 문학은 현지의 단순한 주변 문학이 아니라 창조적 소수자 문학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외 한인 문학이 현지의 메이저 문학을 충격하고 극복하는 창조적 소수자로서 과제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오늘날 한류의 기반을 이루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적 상상력의 적극적인 탐구를 통한 방법을 설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재외 한인 문인 단체, 문학 단체와 국내 문인, 문화예술 단체 간 적극적인 소통과 교류는 재외 한인 문학의 창조적 발전과 현지의 능동적인 기여를 위해서도 요구된다.
   한편 이러한 재외 한인 문학의 이중적 과제는 한국 문단의 영향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시 말해 재외 한인 문학은 한국의 주류 문단에도 적응과 극복의 과제를 추구해야 한다. 재외 한인 문학은 현지 주류 문학의 자산과 미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한국 문단의 세계적 보편화를 향한 신선한 활력과 성찰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재외 한인 문학의 현지 문화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지니게 되는 혼종성, 이중성, 경계성, 통문화성(cross-cultural)은 글로벌 한국 문학을 위한 문화적 자산으로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외 한인 문학이 이러한 이중 과제를 동시에 감당해 낼 때, 현지는 물론이고 한국 문단에서도 종속적인 하위 주체에서 주도적인 상위 주체로서 창조적인 소수자 문학 역할을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연스럽게 한민족 문학은 탈중심의 중심, 즉 서울 중심을 벗어나서 전 세계 각지가 모두 제각기 중심이 되는 수평적인 소통의 관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 문학은 이러한 수평적인 다중심의 열린 시각을 추구할 때 문학적 자산은 물론이고 비약적 발전의 가능성도 새롭게 열릴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염두에 두면서 재미한인문학, 중국조선족문학, 재일조선인문학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의 특징적인 기원의 내력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한민족 문학의 자산으로서 발전과 소통의 방법론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2. 재외 한인 문학의 내력과 창조적 소통의 새로운 가능성

(1) 재미 한인 문학의 경우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는 조선 말기 하와이 노동 이민을 시작으로 광복 이전에는 250명 정도였으나 광복과 1970년대 중반 미국 이민 쿼터가 늘어나면서 급격하게 증가하여 현재는 21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재미 한인 작가들은 처음에는 《신한민보》를 통해 계몽적인 작품을 발표하면서 출발하여 지금은 서부 지역 12개 단체, 동부 지역 8개 단체, 기타 3개 단체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역사를 일별해 보면, 1928년 최초로 영어로 쓰인 한국계 미국 소설인 류일환의 『나의 한국 소년 시절』이 발표되었고, 1931년에는 강용홀의 『초당』이 미국 문단에도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후 『꽃신』(1956)의 김용익, 『순교자』의 김은국 등 이민 1세대 작가들과 『딕테』(1982)의 차학경, 『토담』(1986)의 김난영 등 이민 1.5세대와 2세대 작가들이 미국 주류 문단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미국 내 소수 민족 문학으로서 기반을 다졌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한국계 미국 작가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는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1995), 하인즈 인수 펜클의 『나의 유령 형님의 기억』(1996),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위안부』(1997), 수잔 최의 『외국인 학생』(1998) 등 을 꼽을 수 있다.
   한편 한인 문예지를 중심으로 한국어로 창작한 작가들의 활동을 개관하면 《지평선》(1973)을 들 수 있다. 《지평선》은 비록 3집을 발간하고 사라졌지만 재미 한인 문단에서 나온 최초의 동인지로서 《미주문학》의 모태가 되었다. 오늘날 발행되는 주요 문예지로는 《뉴욕문학》, 《워싱턴문학》, 《시카고문학》, 《크리스찬문학》, 《문학세계》, 《한돌문학》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잡지는 등단 제도와 문학상 제도를 마련하여 현지 한인 문단을 지속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문예 창작의 기법과 감각에서 한국의 중앙 문단과 점차 흡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영상 매체와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 문화의 동향을 친숙하게 접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근자에 들어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다루는 소재로 다문화 공동체의 가치와 당위성이 자주 등장한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소외 의식과 고국을 향한 신파적 동경을 넘어 창조적 소수자로서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참여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문단은 세계 문학의 중심부라는 측면에서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의 자기 정체성 추구와 이민자의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세계적 관심의 중심으로 부각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다. 우리의 민족적 특성을 부각하기에 어느 지역보다 용이하다.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지향성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넘어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한국 문화의 가능성 모색이 요구된다. 따라서 근대 기계주의 패러다임을 넘어 21세기가 지향해야 할 생명의 패러다임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의 전통 철학, 사상, 종교, 민예 등에서 입고출신(入古出新)의 노력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다시 말해 근대 산업 사회의 중심인 미국 사회의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는 글로벌 한국학의 가능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민족주의적인 국수주의를 넘어 한국에서 공유 가능한 세계 보편 문화 창출이라는 명제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2) 중국 조선족 문학의 경우

   현재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살고 있는 중국 조선족은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국적이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언어는 한글 문화권에 속하는 이중적 존재성의 특징을 지닌다. 중국 조선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북 삼성은 부여, 고구려, 발해의 땅이며 아울러 이규보의 『동명왕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연암의 『열하일기』, 조선시대 ‘전’자류 소설 등의 무대로서 우리 민족 문화 원형의 발생지이며 북방 대륙 지향의 현장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는 한류의 정신사적 가치의 광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 문인은 1931년 구성된 동인지 《북향회》로 출발하여 《만선일보》,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등을 거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조선족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들은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을 중심으로 민족 자치 구역을 마련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자주적인 발전을 이룩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문단의 정비 작업을 위해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조선족 작가들이 공화국 창건을 전후로 연길에 집중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재만주 조선 문학의 형성 과정은 이주민의 고난상을 담는 데서 출발했다. 이러한 제재는 김동인의 「붉은 산」 , 최서해의 「탈출기」 , 안수길의 「새벽」 , 강경애의 「원고료 이백원」 등 만주 체험을 담고 있거나 만주를 창작 생산지로 하고 있는 작품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문단 활성화는 《북향》을 중심으로 만주에 이주해 온 염상섭, 박영준, 박계주, 박화성, 강경애, 현경준 등 기성 작가들이 활동하면서 문단 활성화가 이루어졌으며 《북향》이 소멸된 이후 《만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신춘문예 공모와 1941년의 재만 조선인 작품집 《싹트는 대지》 등이 발간되면서 문학적 지형이 형성된다. 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는 국내에서 1940년대 들어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폐간되고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된 때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모국어의 사용과 비판 의식의 일단을 내보이는 창작을 수행할 수 있었다.
   광복 직후 주요 소설은 사회주의 제도 아래 새 생활에서 얻는 희열과 감격, 농민 투쟁과 애국증산의 열정을 반영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시문학의 경우 주요 주제 의식은 조국, 당, 수령 흠모와 칭송, 농민의 보람과 노력적 투쟁 칭송, 민족의 역사와 혁명 전통, 사회주의 건설의 인물 형상, 사회주의 제도에서의 행복과 긍지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특히 시의 양식으로 서정서사시, 장시, 시조, 산문시, 풍자시와 송가 형식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오늘날 중국 조선족 문단은 《연변문학》, 《문학과 예술》, 《아리랑》, 《두만강》, 《일송정》, 《장백산》, 《은하수》 등을 중심으로 500여 명의 문인이 활동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반도와 대륙의 점이 지대로서 지역적 특성, 중국어와 한국어의 병용이라는 이중 언어권은 동아시아의 대륙 문화와 반도 문화를 총괄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다. 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 문학은 대륙과 반도의 점이 지대에 속하는 이중적 존재성과 한반도 문화의 원류와 가깝다는 점에서 동북아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 중심지로서 가능성을 추동하는 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 중화 중심주의의 동북공정을 부정하고 한반도와 중국의 호혜 관계를 위한 문화적·역사적 근거와 논리를 구현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주역으로서 한·중·일 공동체를 구축하는 작업의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적 관계성 속에서 배태된 유현한 사상, 예술, 미학 등은 포스트 오리엔탈리즘 문화의 원형과 방향성을 구현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자산은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한류 열풍을 지속시키는 콘텐츠 개발의 보고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문면에서 오늘날 중국의 탈이념화와 더불어 확산되고 있는 문화적 자율성 속에서 조선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다양한 발전과 확장이 요구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경제 무역, 관광 인구, 인적 교류, 재중·재한 유학생 등이 놀라울 정도로 급증했으나 동북공정, 중국과 북한의 외교 관계에서 소외 현상 등 정치적 관계의 소원함을 해결하는 방법 찾기와도 연관된다. 한반도의 남북한과 동시적인 교역과 교류를 하고 있는 중국 디아스포라의 문학적 탐색은 중국과 한반도의 동반자적 관계의 재인식과 더불어 남북한의 문화적 완충 역할, 제3의 시각에서 남북의 협력과 화해의 지점 등을 모색할 가능성을 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 디아스포라 문학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의 지원과 협력의 네트워크 구축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3) 재일 한인 문학의 경우: 재일 조선인 문학을 중심으로

   한민족 디아스포라 중에서도 특히 재일 한인 디아스포라는 한국 근대사의 질곡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인의 일본 이주 역사는 크게 자유 이주기와 강제 연행기로 나뉜다. 19세기 중엽부터 한일병합에 이르는 초기에는 소수의 유학생과 노동자가 일본으로 이주하는 정도였다. 191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산업 팽창에 따른 노동의 필요에 따라 본격적인 ‘노동자 중심의 자유 이주기’를 맞게 된다. 관동대지진(1923) 직후 일본 경제의 만성적 공황으로 실업자가 증가하자 한인 노동자의 유입을 저지한 ‘도항 저지기’를 잠시 거쳤으나, 다시 지진 복구 사업을 위한 한인 이주가 장려되면서 1924년 12만여 명, 1925년 13만여 명이 도일하게 된다.
   이후 한인의 일본 이주 역사는 이른바 ‘강제 연행기’를 맞게 된다. 일본은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을 일으킨 이후, 전쟁 수행에 따른 인력난에 빠지게 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학도병을 강제 연행하고 ‘여자 애국 봉사대’란 이름으로 젊은 여성 20만여 명을 동원하여 8만여 명을 일본군 위안부로 삼는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 법무성 자료에 따르면 중일전쟁이 일어나던 1937년 70만여 명에 불과하던 조선인은 국가총동원법(1938), 징용령(1942) 등을 거치면서 1944년 193만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광복 직전 24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중 60만여 명은 광복 이후에도 한반도의 정치적 혼란과 귀환자의 재산 지참 제한, 귀국 교통편 미흡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귀국을 포기하게 된다.
   한편 일본은 패전 이후 재일 한인을 비롯한 구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이 유효하다고 표명했으나 1947년 외국인 등록령을 선포하면서 재일 한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1952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이후 주권을 회복한 일본은 외국인등록령을 외국인등록법으로 변경하여 재일 한인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한다. 외국인으로 간주된 재일 한인은 한반도의 좌우 혼란으로 아직 독립 국가로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등록 수속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리하여 재일 한인의 국적은 귀화 혹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일본 국적 소지자’, ‘한국 국적 소지자’, ‘조선적 소지자’ 등 세 부류로 나누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한국 국적 소지자는 한국 국민과 거의 동일한 의미이다. 그러나 조선적 소지자는 북한의 국민이 아니라 사실상 무국적자이다. 1965년 한일 관계 정상화에 따라 일본은 북한을 제외한 남한만을 유엔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여 한국 국적을 선택한 한인에게는 협정 영주권을 부여했다. 한국 국적 선택을 포기하거나 거부한 재일 조선인은 결국 무국적 상태로 남게 된다. 재일 조선인은 1982년 일본이 난민조약에 가입한 이후 겨우 특례영주자 지위를 받게 된다.
   특히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한글 문학 창작을 주도한 재일 조선인 문학은 광복 직후 재일 조선인의 계몽 운동에 나선 지식인이 전개하게 된다. 이들은 국어 강습소에서 아이들에게 조선 말글을 가르치고 등사판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한편 문예 잡지를 펴내는 일을 추진한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련맹(1945.10.)이 일본 당국에 강제 해산된 이후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1951)이 결성되었으나 극좌 모험주의와 일본 민주화 운동 종속화 등의 문제로 일본 속 조선인의 주체적 위상을 정립해 내지 못한다. 이들 문제점은 북한의 해외 공민 단체에 해당하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1955.5.)가 결성되면서 조국과 동포들을 위한 주체적인 문예 창작의 길을 열어가게 된다. 총련은 친남한 계열인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에 맞서는 단체로서 일본과 국교 성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상의 북한 공관 역할을 담당한다.
   총련 결성 이후 재일 조선인 문학은 〈제일조선문학회 제6차 대회〉(1956.4.), 〈재일조선문학회 제7차 대회〉(1957.7.)를 거치면서 모국어 작품 창작 결의,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데 작가 예술인의 과업 등이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신인 등용은 《조대문학》(조선대학교 문학부), 《조선문예》(문예동 가나가와 지부), 《효고문예통신》(문예동 효고 지부)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전개된다.
   광복 이후 총련 결성 이전까지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 시단은 허남기, 남시우, 강순 등을 비롯해 정화수, 김학렬, 오상홍, 정백운, 김태경, 안우식 등이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문예동 결성 이후 성과작을 내며 등장한 주요 문인으로는 재일 조선인 1세 또는 1세에 가까운 세대에 해당하는 정화흠, 김윤호, 김두권, 홍윤표, 서화호, 리금옥, 류인성, 고봉전, 리성조, 최설미 등을 꼽을 수 있다. 1970년대는 조선대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2세가 중견으로 등장하면서 문학적 대오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주요 문인으로 한덕수, 김정수, 손지원, 김리박, 고봉전, 김민, 김수중, 허옥년, 홍순련, 강명숙, 오향숙, 리방세, 최영진, 로진용, 오홍심, 류계선, 황진성, 정호수, 한룡무, 김광숙, 윤정숙 등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는 허남기, 남시우, 정화수, 정화흠, 강순, 김두권, 김윤호, 김학렬, 오상홍, 류인렬 등의 활동과 함께 시집이 간행되었다.
   이상에서 언급한 재일 조선인 문학의 특징적 양상을 주제 의식에 따라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대체로 ‘일본 사회 정착과 시련’, ‘조국을 향한 그리움’, ‘김일성·김정일 송가’, ‘남한 사회 비판과 조국 통일 염원’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재일 조선인 시의 특성은 시기적 추이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변별적 층위를 찾아볼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지속적인 일관성을 표나게 드러낸다.
   한편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 소설의 경우는 광복 이후 재일 1세대로 이은직, 김달수, 김태생, 김석범 등이 분단된 조국과 일본에서의 차별상 등을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출범한다. 특히 김석범은 4·3항쟁을 다룬 『화산도』를 발표하여 마이니치예술상, 오사라기지로상 등을 수상하기도 한다. 1960년대 이르면서 재일 조선인의 현실 인식과 실존적 정주 의식을 다룬 작품이 전면에 등장한다.
   1980년대, 1990년대에 이르러 재일 조선인 잡지가 다채로워지면서 문학적 활동 역시 활발해진다. 《계간 삼천리》, 《청구》, 《우리생활》, 《계간 사이》 등 문예지가 재일 조선인 2, 3세대의 주도적인 참석과 함께 활발하게 간행된다. 특히 《계간 삼천리》(1975.2.)는 김달수, 김석범, 박경식, 강재언 등이 참여하여 조선의 역사와 문화, 재일 조선인의 당대 역사 현실 등을 수록했다. 특히 김지하의 문학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한국 민주화와 통일에 관한 연대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1960년대 김학영, 이양지, 이기승을 중심으로 문학적 보편성, 실존성을 향한 질적 확산을 드러낸 문학은 1970-1980년대 이후에는 김길호, 현월, 김마스미, 김중명 등의 작가를 통해 재일 조선인 문학의 이중적 정체성과 갈등 양상의 깊은 탐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재일 조선인은 ‘일본 속의 북한 사회’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재일 조선인 문학은 북한의 경우와 달리 창작 공간이 제3의 지대라는 변별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재일 조선인 문학인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와 달리 일본의 자본주의 문화의 첨단을 호흡하고 있으며 남한과 원활한 소통과 이해가 가능한 이중적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재일 조선인의 북한 사회와 다른 이중적 존재성은 전 지구적 시장화에 대응하는 북한 사회의 개방화와 함께 남북한의 민족적 통합을 선도할 가능성이 내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 북한 문학의 해외 기지에 해당하는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역으로 교조적인 북한 문학의 변화를 유도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재일 조선인 문학은 남북한의 민족적 통합을 위한 산파로서 작용할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재일 조선인 문학은 앞으로 사회주의의 인간적 덕성과 자본주의의 경쟁력이 결합된 새로운 한국식 문화적 자산(새로운 한류 문화)을 생성하는 토양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자산은 민족통일론이면서 동시에 평화와 화해의 중도적 세계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작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한국 문단과 문예 단체의 다양한 소통에 바탕을 둔 창조적 호혜의 모색이 요구될 것이다.

(4) 중앙아시아 고려인 한인 문학의 경우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구한말 사회적 혼란과 절대 가난 속에서 연해주로 이주한 유이민의 삶, 국권 상실기 독립 운동의 전진 기지로서의 부침, 스탈린의 민족 강제 이주 정책에 따른 희생 등이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 한반도의 분단 체제 이후 북한 출신 망명자들이 가세하면서 고려인 디아스포라 논의는 광복 이전은 물론이고 광복 이후 분단 시기까지 포괄되는 비극적인 한국 근대사를 가로지르는 일이 된다.
   우리 민족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경부터인데, 주로 생계형 농업 이주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가 본격화되는 한일병합을 전후로 이주민은 급격하게 늘어난다. 1920년대 연해주 거주 한인 수는 20만여 명에 달한다. 점차 한인 집성촌이 확장되면서 신문, 잡지, 극장, 모국어 학교 등 사회 기반 시설도 갖추어지게 된다. 그러나 1937년 8월 21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연해주 한인의 강제 이주를 결정한다. 고려인의 집단 강제 이주 정책은 일본 침략에 맞선 소련의 대응 전략의 일환이었다. ① 일본이 러시아 극동 지역 침략 전략으로 조선인을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② 소련과 일본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상당수 조선인이 일본에 협력할 가능성이 크고 ③ 이미 일본의 조선인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고려인은 연해주 지역에 건설해 놓았던 전답은 물론이고 모든 교육 기관, 사회 기반 시설 등을 그대로 둔 채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소련 공산당은 강제 이주를 단행하기 직전, 저항을 방지하기 위해 고려인 지도자와 인텔리 2,500여 명을 무단 체포하여 처형했다. 또한 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풍토병으로 2만여 명의 어린이와 노인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1937년 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 3만 6,422가구 17만 1,781명 가운데 2만 170가구 9만 5,256명이 카자흐스탄에, 나머지 1만 6,272가구 7만 6,525명이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하게 된다. 고려인 강제 이주는 한민족 해외 이주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 중 하나였다.
   한편 2010년대 들어 구소련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52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구성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앞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으로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이주된 약 20만 명의 한인과 그 후손, 둘째, 일본군에 징용되었던 일본 식민 통치하의 한인과 그들의 후손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에 잔류되었다가 1970년대 말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사람들, 셋째, 1950년 이후 조선의 국비 장학생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학생들 가운데 소련으로 망명한 이후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 부류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소수이고 첫 번째가 절대다수를 이룬다.
   한편 구소련 지역 고려인 문학의 전개 과정을 시기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크게 2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1단계(1863~1937)는 고려인 문학의 건설기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연맹 공산당 원동변강위원회와 원동변강 직맹 소비에트 기관지인 《선봉》이 창간되면서부터이다. 《선봉》을 중심으로 연해주로 건너온 조명희를 비롯하여 연성용, 채영, 태장춘, 전동혁, 조규동, 조기천, 한아나똘리, 김기철 등이 활동했다. 그 외에도 포석 조명희가 주도한 합동 작품집 『로력자의 고향』의 발간을 통한 고려 인문학 지망생들의 작품 활동이 있었다. 이 시기의 고려인은 제국 러시아 후반부터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탄생 등에 사회 건설의 역군으로 적극 동참했다. 이들의 문학 세계 역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제도를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그 주된 이유는 고향과 조국에 대한 향수나 소련 비판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학 활동은 ‘신한촌’(한인촌)이 고려인 문학의 산실 역할을 하면서 ‘스탈린클럽’ 등 문인 서클이 결성되어 각종 문화 활동과 기념 집회, 연극 공연 등을 개최했다.
   다음으로 2단계는 다시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시기(1937-1980)는 문예 활동의 중심 세대가 극동 지방에서 태어나 강제 추방당한 세대로서, 대부분 우리말 교육을 받지 못해 러시아어로 창작 활동을 하는 면모를 보인다. 1세대에 비해 러시아를 조국으로 인식하는 면을 엿볼 수 있으며 한 작가가 다양한 주제로 다작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가로는 강태수, 태장춘, 김광현, 정상진, 전동혁, 김준, 김기철, 연성용 등이 있다.
   또한 원동 출신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에 징용당한 사할린 동포의 자녀로서 카자흐스탄공화국이나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수도로 합류한 문인들이 있다. 리정희, 정장길, 최영근, 남경자, 허남령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1950년대 망명한 북한의 소련 유학생을 여기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80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제3세대 문학이 해당한다. 이 시기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의 영향으로 언론 통제가 완화되기 시작한 문화적 해빙기에 해당한다. 그 당시의 문학적 중심 주제는 사회 현실적인 문제, 남녀 간의 사랑, 가정 생활, 러시아의 자연, 도덕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해체와 함께 《레닌기치》가 폐간(1990.12.30.)되고 《고려일보》(1991.1.1.)가 창간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언어 문화 정책을 추종하던 《레닌기치》와 달리 《고려일보》의 제작 방침에 상응하는 친한국적인 변화의 양상이 급격하게 일어난다. 특히 고려인이 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이후에 해당하는 2단계는 《레닌기치》의 창간, 전개 과정과 깊은 연관을 지님을 알 수 있다. 《레닌기치》가 고려인 문학의 구심적인 발표장이면서 문학 제도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한편 고려인 문단에서 한글로 창작할 수 있는 세대는 ① 원동에서 강제 이주당한 1세대와 ② 사할린에서 이주한 고려인 2세대 그리고 ③ 1950년대 망명한 북한 출신 유학생이다. 여기에서 ①은 이미 대부분 사망하거나 고령으로 창작 활동을 접은 지 오래되고 ②는 한글이 서툰 반면에 ③은 비교적 한글과 러시아말을 가장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세대이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양원식을 비롯하여 이진, 허진, 한진 등의 문학 작품이 한글의 미적 감각과 운용에서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발표된 고려인 문학의 주제 의식은 ① 사회주의와 당 칭송의 문학 ② 각국 전쟁에 개입하는 미국 비판 ③ 강제 이주와 민족정체성 인식 ④ 한민족의 항일투쟁 등이다.
   여기에서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 디아스포라와 한국의 미래 지향적인 바람직한 관계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은 단순히 과거형만이 아니라 현재형이며 미래형으로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구소련 지역의 국민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이들의 모국에 대한 향수는 물론이고 한글 인식 역시 세대가 변하면서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한민족 문화 내지 문학의 규정력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이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 우리의 말을 지켜 나가고 자신의 정체성 확인으로서 일련의 뿌리 찾기 모습을 면면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한민족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응집시키면서 동시에 현지에서 경쟁력 있는 적응력을 갖도록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현지 문단의 마이너리티로 머물지 않고 주류 문학을 충격하면서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 찾기와 연관된다.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인 중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고려인 3세 아나톨리 김의 경우는 구체적인 실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능성을 찾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내의 문화 콘텐츠 개발과 정책 수립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비극적인 근대사는 물론이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지난 20세기의 세계사적 모순을 안고 있다. 따라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삶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가로지르는 것은 지난 세기의 세계사적 문제를 가로지르는 의미를 지닐 것으로 판단된다.

3. 열린 결론: 지구화 시대와 한인 문학의 소통의 플랫폼을 위하여

   지금까지 주로 재미한인문학, 중국조선족문학, 재일조선인문학,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의 특징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앞으로는 현지어로 창작된 문학까지 포괄하여 다루는 것이 요구된다. 다만 여기에서는 현재의 재외 한인 문학보다 기원의 내력에 일단 집중하기로 했다. 앞으로 재외 한인 문학은 현지어로 창작되는 빈도가 비약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재외 한인 디아스포라의 성격은 오늘날 지구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전환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는 더는 추방, 망명, 이산의 유랑자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이 자발적인 이주자로서 현대 노마드의 한 유형에 속한다. 자크 아탈리가 규정한 현대의 노마디즘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며 창조적인 행위를 위해 이주하는 자들이다. 현대 노마드 문명에서는 주변과 중심, 피부색과 언어, 모국과 현지국 간의 위계 서열적인 정체성 갈등과 문화적 혼란도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지역적으로 생활하고 세계적으로 사유하는 지구 시민사회의 사고가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은 교통 통신이나 미디어의 비약적 발전은 물론이고 호모 모빌리안(모바일이 신체의 일부가 된 인종)의 등장으로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일상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래서 한순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지구의 노래가 되고, 방탄소년단이 수억 명이 환호하는 지구 사회의 스타로 떠오르기도 한다. 지구 사회에 상응하는 지구 문화가 도처에서 한순간에 떠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구 사회의 도래에 대응하는 한국 문학의 성격과 지향성도 새롭게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 중심의 문단을 내세워 지역과 해외 한인 문단을 서열화, 주변화하는 것은 한국 문학을 폐쇄적인 ‘우리식 문학주의’로 고립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문학과 문단 역시 글로벌 한국 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탈중심의 중심, 즉 서울 중심을 벗어나서 전 세계 각지가 모두 제각기 중심이 되는 문단을 구축해 나갈 때 가능할 것이다. 우리 문학은 이러한 수평적인 다중심의 열린 시각을 추구할 때 문학적 자산은 물론이고 비약적 발전의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세계 220개국 중 194개국에 걸쳐 750만 명에 육박하는 재외 한인은 현지화, 세계화의 전략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실현해 나가야 할 글로벌 한국의 주역으로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지구 사회에서 재외 한인의 현지 문화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지니게 되는 혼종성, 이중성, 경계성, 통문화성(cross-cultural)은 한민족 문학의 매우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서 작용할 것이다. 지구 사회에 대응하는 미래 지향적인 지구 문화는 개별과 보편, 주변과 중심이 혼융되면서 새롭게 열어나가는 차원 변화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종과 혼융의 이중적 교섭을 재외 한인 문학에 적용하면 적응과 극복의 방법론으로 확장 해석하여 응용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지 주류 문학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주류 문학의 한계와 결핍의 지점을 극복하는 창조적 소수자의 길을 상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에 이르면, 한민족적 정체성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첫째,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문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재외 한인 작가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생활화를 통해 한국 사회와 시공을 초월한 소통의 네트워크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그래서 지구 어느 구석에 있어도 한국 사회의 지적 활동과 문화 현상 간 밀접한 상호 교감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민족 문학의 창작 공간을 국민국가(nation-state)의 단위로 제한하여 논의하는 속지주의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고 할 것이다. 둘째는 첫째의 연장선에서 장거리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설정해 볼 수 있다. 노마드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지역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초국가적 장거리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말했듯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다. 장거리 민족주의 역시 상상의 공동체의 새로운 범주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지구화 시대 한인 문학의 새로운 인식과 가능성 논의가 앞으로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단순히 한국 문학의 부가 가치의 상승이 아니라 한국 문학의 지구 사회 발전을 위한 가치 창조의 기여도에 궁극적 목표가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각주

1) 그 외에도 한글 창작을 중심으로 한 주요 문인 단체의 문예지 발간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재미시인협회의 《외지》, 미주시조신인협회의 《시조월드》, 재미수필가협회의 《재미수필》, 미주한국기독교문인협회의 《미주기독문학》, 해외문학인문인협회의 《해외문학》, 오렌지글사랑모임의 《오렌지문학》, 시카고 한인협회의 《예지마을》, 하와이 한인문학동호인의 《시와 하와이》 등이다.

2) 북한의 소련 유학생 망명은 이른바 ‘허웅배 사건’이 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웅배 사건’이란 소련 모스크바 영화대학교에 유학 중이던 북한 유학생 허웅배가 1956년 영화대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된 전연맹 북한 유학생 총회에서 단상에 올라가 김일성 개인 숭배를 공개 비판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유학생 내부에서 심한 동요가 있었는데, 허웅배(허진), 이경진(이진), 한대용(한진), 양원식, 김종훈, 최국인, 정추, 정린구, 이진황, 맹동욱, 최선옥 등 10여 명의 유학생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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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래문명원장,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 『김지하 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고요한 중심을 찾아서』 등을 출간했다.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애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계간 《시작》 주간, 《대산문화》 편집위원,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위원, 문화예술지 《쿨투라》 기획위원, 《K-Writer》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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