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7호
1부 반얀의 받침뿌리
홍기돈
생김새가 톡특해서 인터넷에서 ‘반얀나무’에 관한 정보를 찾았다. ‘banyan’이 주는 어감에서 ‘반야(般若)’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우리말로는 ‘벵갈고무나무’, ‘벵골보리수’로 번역한다고 올라와 있다. 보리수……. 머릿속으로 반얀 아래 가부좌 틀고 앉아 고행하는 싯다르타를 그려 보았으나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높고 넓게 자라는 반얀나무가 싯다르타의 후경(後景)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싯다르타를 압도하는 인상까지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반얀은 30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어쩌면 싯다르타가 석가모니로 거듭나는 순간 부여되는 초월자 이미지, 즉 지상계와 천상계를 잇는 이미지를 반얀이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와이의 공원에서 반얀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반얀의 생김새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받침뿌리’ 때문이다. 비스듬히 뻗은 가지에서 생겨난 뒤, 마치 치렁치렁 늘어진 끈처럼 흔들리면서 중력 방향으로 자라다가, 땅에 이르러서 줄기를 지탱하는 뿌리로 자리 잡은 것이 받침뿌리다. 말이 ‘뿌리’이지 기실 ‘줄기’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예컨대 나는 마우이섬의 ‘라하이나 반얀트리 공원’에 갔을 때 섣부르게 실망할 뻔했다. 열너댓 그루의 아름드리 반얀으로 가득한 ‘반얀트리 공원’은 다른 공원보다 그저 반얀이 좀 더 많은 것일 뿐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반얀(들)은 이쪽 줄기, 저쪽 줄기로 모두 이어져 있었다. 공원의 반얀은 한 그루였던 것이다. ‘독수성림(獨樹成林)’,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룬다”는 말에 부합하는 현장이었다.
전체가 반얀 한 그루다. 하와이에서는 어느 공원에 가든 이러한 반얀을 흔히 볼 수 있다.
반얀의 받침뿌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하와이 이민자들의 모습이 겹쳐다. 자신의 고향에서 떠나와서 낯선 땅에 새롭게 뿌리내려야 했던 이민자의 처지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하와이 인구 구성에서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퍽 크다. 19세기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된 뒤 아시아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던 결과이다. 1900년에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하와이 인구의 40퍼센트, 16퍼센트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1903년 1월 3일 하와이에 처음 발을 디뎠다. 2010년 하와이 인구는 아시아인 38.6퍼센트, 원주민·태평양 주민 10퍼센트, 혼혈 23.6퍼센트, 백인 24.7퍼센트 비율로 조사되었다. 반얀의 받침뿌리에서 이민자가 떠오른 까닭은 어쩌면 내 처지가 투영된 탓일지 모르겠다. 나 또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받침뿌리인 것이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머리 바로 위까지 늘어진 받침뿌리를 만져 보기도 한다. 상승하는 가지와 하강하는 받침뿌리의 공존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상념은 가끔 불교의 ‘유마 거사’로까지 뻗어 나간다. 아마도 반얀이 보리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영향일 터이다. 유마 거사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다. 그는 어째서 병들었는가. “뭇 생명이 아파서 나도 아픕니다. 보살이 병드는 것은 대비(大悲) 때문입니다.” 유마 거사의 대답에 병문안 온 문수보살이 화답한다. “일체의 번뇌가 여래의 종자가 된다는 것은, 비유컨대 거대한 바다 밑까지 내려가지 않고서 값 매기기 곤란한 보석 구슬을 얻을 수 없듯이, 번뇌의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지혜의 보배 일체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흔히 ‘대승(大乘)’으로 일컬어지는 북방 불교의 성격을 『유마경(維摩經)』은 그와 같이 담아내고 있는바, 반얀은 상승하는 가지와 하강하는 받침뿌리로써 뭇 중생과 더불어 해탈하려는 북방 불교의 내용을 상기시키는 바 있는 것이다.
이제 하와이를 떠날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중 안타까운 소식이 날아든다. 허리케인 ‘도라’로 인하여 마우이섬의 라하이나 마을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사에는 그곳 반얀트리 공원의 반얀 또한 일부 불에 탔다는 문장도 들어가 있다. ‘일부’라고 하지만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一卽多 多卽一)’이니 어디 성한 반얀이 남아 있겠는가. 반얀 그늘 아래를 가끔 걸었던 까닭인지 나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라하이나는 하와이의 두 번째 수도였던 마을이다. 지금은 반얀공원 뒤편 아트 갤러리가 운치 있고, 항구에 늘어선 요트 행렬이 인상적이며, 쇼핑 거리가 아담할 뿐만 아니라 맛있는 레스토랑이 발길을 끄는 정감 가는 마을로 남아 있다. 어찌할 바 모르는 나는 그저 불길이 빨리 잡혀서 내가 느꼈던 라하이나의 평온이 다시 깃들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어볼 따름이다.
※ 2023년 8월, 글을 마감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라하이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반얀트리 공원의 나무가 거의 다 타버렸고, 아트 갤러리는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는 소식. 그러한 참혹한 광경 옆에서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긴다는 내용도 따라붙어 있다.
라하이나 마을 ‘반얀트리 공원’. 화재로 반얀이 타버린 까닭에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제주 출생. 199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학비평가로 등단했다. 중앙대학교에서 1996년 ‘김수영 시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3년 ‘김동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평론집 『페르세우스의 방패』(백의), 『인공낙원의 뒷골목』(실천문학), 『문학권력 논쟁, 이후』(예옥), 『초월과 저항』(역락), 연구서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소명출판), 『김동리 연구』(소명출판), 『민족의식의 사상사와 한국근대문학』(소명출판), 산문집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삶창) 등이 있다. 2007년 제8회 젊은평론가상(한국문학가협회 주관)을 수상했으며, 《비평과 전망》, 《시경》, 《작가세계》 등에서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