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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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지도

평론: 고명철

아프리카 문학의 디아스포라: ‘응시’와 ‘구술성’과 ‘문자성’의 서사

고명철 평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1. 『지도』의 소말리아

   장편소설 『지도(Maps)』(1986)의 작가 누르딘 파라(Nuruddin Farah, 1945~)는 소말리아 태생으로 소말리아와 인접한 에티오피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인도와 영국 등지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문학 공부의 바탕을 다졌다. 그는 조국 소말리아를 떠난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삶을 아프리카의 창조적 서사로 웅숭깊게 나타낸다.
   『지도』의 주된 무대인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인도양과 홍해의 입구인 아덴만 사이에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19세기 후반부터 서구(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토가 분할 점령당했다. 그러다가 1960년 소말리아공화국으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군정파(軍政派)들의 심각한 대립 갈등과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 누르딘 파라는 이 같은 역사적 정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작중인물에게 ‘응시’의 권능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그들의 ‘응시’는 이 복잡한 현실을 서구의 분석적 태도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작게는 소말리아가 처한 현실, 넓게는 아프리카가 처한 현실을 중층적으로 이해하고 그 문제의 해법을 아프리카의 문화와 역사에 기반을 두고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 작가 누르딘 파라의 『지도』1)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 읽어야 할까.

2. ‘응시’와 2인칭의 서술 전략, 아프리카의 중층적 현실

   『지도』를 읽는 것은 기존 낯익은 서구식 근대소설을 읽는 것과 충돌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새롭고 낯선 측면은 『지도』의 주류적 화법으로 2인칭을 서술 전략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자 이석호가 언급했듯 “파라는 이 작품 전체를 2인칭 화법으로 관통함으로써 1인칭 화법의 주관성 혹은 3인칭 화법의 객관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11쪽) 그렇다면 작가가 이처럼 줄타기의 모험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작가의 이 같은 2인칭의 서술 전략화를 서구의 비평에 기댄 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그보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작가의 맥락에서 이러한 서술 전략의 의도를 섬세히 읽어내는 일이 긴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인칭으로 불리는 작중인물 ‘아스카르’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아스카르’는 “빼어난 상상력의 소유자로 조숙함의 징후를 풍성하게 지니고 있”는데(19쪽), 특히 그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계시”(22쪽), 즉 ‘응시(gaze)’의 권능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스카르’의 ‘응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아스카르’의 ‘응시’와 서구의 합리적 이성의 ‘시선(see)’이 착종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스카르’의 ‘응시’에 대해 작가는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함축한 직관”(12쪽)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으로 나눠 인식의 유무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는 분별지(分別智)와 구분된다. 특히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명확한 구별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며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합리적 준거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과 구분된다. ‘응시’는 어떻게 보면 서구의 합리적 이성과 전혀 다른 진리 탐구의 방법이자 태도이다.2)
   여기서 이 ‘응시’의 권능이 ‘아스카르’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린 ‘아스카르’를 친엄마처럼 정성스레 키워준 ‘미스라’에게도 이 권능이 있다. 미스라는 마치 주술사처럼 죽은 짐승의 내장을 통해 타자들의 일을 ‘응시’하는가 하면, ‘아스카르’의 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응시’한다.
   서구의 합리적 이성의 측면에서는 이 ‘응시’를 모종의 마법적 주술로 치환해 버리기 십상이다. ‘응시’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아스카르’와 ‘미스라’의 ‘응시’에는 그들이 사는 곳의 “끊임없는 전쟁과 피난 그리고 이산의 역사”(29쪽)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이다. 『지도』는 1977년 오가덴(Ogaden) 지역을 중심으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서 “파편화된 육체의 이야기들!/파편화된 이야기의 육체들!/상심한 가슴과 상한 영혼에 관한 이야기들!”(305쪽)을 보고 ‘아스카르’와 ‘미스라’의 ‘응시’는 전대미문의 참상과 비극을 견뎌내는 정치적·윤리적 항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응시’는 역사와 현실을 비껴난 신비의 영역에서 마법화된 주술이 아니라 도리어 역사에 대한 핍진한 태도로 갈가리 찢기고 흩어지고 소멸해 간 뭇 존재들의 슬픔을 위무해 주는 아프리카 특유의 ‘리얼리즘적 주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응시’의 성격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의 2인칭 서술 전략화는 이 ‘응시’에 함축된 소설적 전언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서구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혹은 이 지역의 특정한 부족 중심의 1인칭 화법을 통해서는 이 지역의 복잡 다변한 중층적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게다가 이렇게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객관적 시선으로 온전히 파악하는 일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객관이란 미명 아래 주관적 폭력이 자행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2인칭 서술 전략화는 이 지역의 중층적 상황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경계하고, 작중인물들 사이(특히 종족 간 분쟁으로 형성된 적대적 관계에 대한 소통)와 독자와 작중인물 사이(아프리카 밖 사람들과 이 지역을 비롯한 아프리카인들의 소통)의 물꼬를 트는 데 매우 긴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아스카르’의 비범함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그는 주변 인물들에게 고백한다. 그의 섹스와 젠더는 남성인데, 그의 몸 안에 여자가 살고 있으며, 심지어 월경(月經)을 한다고 말한다.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의 이러한 면모를 정신분열증과 젠더적 측면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정신분열증을 치유의 대상으로 설정하거나 성(性) 정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도 곤란하다. 그가 실감하는 이 신체의 비정상적 증후야말로 이 지역의 격렬한 내전과 그로 인한 끔찍한 참상은 물론, 그의 ‘응시’가 함의하듯 소말리아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 식민 침탈로 인해 분할된 영토로 뿔뿔이 흩어진 디아스포라적 존재 등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온당한 해석이 아닐까. 말하자면 작가는 ‘아스카르’의 비범함 그 자체를 통해 소말리아의 중층적 현실을 매우 효과적으로 서사화하고 있는 셈이다.

3. 아프리카의 서사, 구술성과 문자성의 회통

   한편, 『지도』가 지닌 서사적 매혹의 비의성은 아프리카의 구체적 삶에 밀착한 소설의 양식의 구술성과 문자성의 오묘한 관계에서 생성하고 있다.
   가령, ‘아스카르’의 비범함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목을 눈여겨보자.

관료적인 이놈의 나라가 요구하는 그 어떤 신분도 너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스카르! 네 이름 가운데 있는 ‘스’자를 사람들은 부드럽게 발음했다. 괜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카’자의 ‘ㅋ’은 발설되지 않은 소리의 비밀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감미로운 혀 속에 휘감겨 있었다. 아스카르! ‘르’자의 ‘ㄹ’은 반나절 동안 신나게 풀을 뜯은 뒤 뜨거운 모래 위를 뒹구는 소와 같았다. 아스카르!(27쪽)

   소말리어로 ‘아스카르’를 부를 때 조음기관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에서 비롯된 느낌과 이미지가 그의 비범성을 암시한다. ‘아스카르’의 비범성은 ‘응시’와 양성(兩性)의 공존을 통해 뚜렷이 부각되는데, 여기에는 이처럼 ‘아스카르’를 소리로써 호명할 때 지니는 어떤 마술적 힘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 힘은 아프리카의 대지, 바람, 물, 살아 있는 뭇 존재와 공명(共鳴)하는 가운데 절로 생성한다. 이것이 바로 구술성의 힘으로, ‘아스카르’의 ‘응시’를 통해 아프리카가 직면한 첨예한 문제들은 “전방위적인 맥락에서 탈식민화의 도구적 내러티브로 적극 활용”3)되는 구술성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
   『지도』에서 이 같은 면은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에티오피아인 ‘미스라’는 비록 소말리아인 ‘아스카르’를 친자식처럼 돌보며 소말리아 땅에서 살고 있으나 소말리아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거나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상처 입은 자신을 추스를 때마다 에티오피아어인 암하릭어를 몰래 읊조리곤 한다. 오가덴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히 벌어지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전쟁의 틈새에서 ‘미스라’는 소말리아에 살면서 남몰래 에티오피아어를 읊조리는 것이다. 전쟁의 난민이나 다름없는 ‘미스라’에게 에티오피아어는 그녀의 현존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구술성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삶 그 자체이다. 한때 서구 제국의 언어가 아프리카의 구술성을 외면하고 심지어 이를 폭압적으로 금기하고 한갓 노예의 언어로서 취급했으나, 아프리카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비전승한 구술성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지도』에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서사문학적 산물들, 신화, 전설, 민중가요의 중요성과 가치를 작중인물들이 주목하는 것은 문자성을 주축으로 한 서구 제국의 언어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임을 쉽게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아프리카 스스로 근대국가의 기틀을 정비하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이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서구의 식민 통치를 받은 아프리카는 신생 독립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들 특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일방통행식 문자성을 고집하기 어렵다. 물론 ‘아스카르’의 삼촌 ‘힐랄’은 근대국가의 공식어의 자리를 잡기 위해 소말리어의 공식어 사용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문자성으로서 소말리어 사용이야말로 아프리카가 그토록 희구하던 근대국가의 정치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파악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지도』의 경우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근대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하루속히 내전을 종식하고 근대국가의 체제를 정비하는 일환으로 구술성보다 문자성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작가가 작중인물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서 경계하고 있듯, 작가는 문자성의 맹목이 가져올 위험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작가는 ‘아스카르’와 ‘미스라’를 통해 구술성의 가치 또한 소중히 부각한다. 이에 대한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아스카르’는 화물차를 타고 가는 도중 소말리아인들이 1950년대에 애창되던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우연히 듣는다. 그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 위치한 완충지대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249쪽)는다. 처음 듣는 소말리아의 민중가요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노래를 듣고 잠자는 자신의 영혼을 깨운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영토가 분할돼 점령당하던 1950년대에 널리 불린 민중가요가 그의 영혼을 새삼스레 깨운 것은 지난날 식민의 예속적 삶을 살아온 역사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그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치욕의 역사를 밟지 않으려고 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요컨대 『지도』에서는 소말리어와 에티오피아어의 긴장을 통해 오가덴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토 분쟁과 관련한 현실을 주목하게 하고, 문자성에 기반을 둔 서구 제국의 언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욕망을 인식하게 하고, 신생 독립국가로서 서구의 모델과 구분되는 아프리카식 근대국가의 기틀을 정비하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을 주목하게 한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작동하는 구술성과 문자성의 길항·간섭·충돌에서 서구 중심의 근대소설 양식과 전혀 다른 서사 매혹이 절로 생겨나고 있다.4) 어쩌면 이것이 바로 퇴행하고 있는 서구의 근대소설의 양식을 혁신할 수 있는 자양분일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작가 누르딘 파라의 『지도』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세계문학’이다.

필자약력
고명철 작가 프로필 사진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문화를 공부하는 트리콘의 대표이다. 
디아스포라 웹진 편집기획위원회에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고 있다.
1998년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로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으며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지도 - 누르딘 파라

지도 책표지

『지도』 작품 정보

저자: 누르딘 파라  번역: 이석호  출판: 아프리카  출간: 2017.04.22.


누르딘 파라 약력

소말리아 소설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인물이다. 단편집,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하였으며 1970년대에 고향을 떠나 수많은 나라에 거주하며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서로는 『구부러진 갈비뼈에서』, 『헐벗은 바늘』, 『달콤 쌉싸름한 우유』, 『지도』, 『비밀』 등이 있다.

1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달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지도 잘 몰랐다. 공포에 눈이 멀어 그저 달릴 뿐이었다. 그는 정신없이 달렸다. 도무지 자신이 달리는 목적을 정의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 넓은 밀림의 사분의 삼을 지나 버려진 인형들이 즐비한 한 공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조차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인형들을 보지 못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있는 곳까지 달려오는데 몇 시간이 걸렸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길이 없었다. 혹 같은 길을 계속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늘에서 작고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그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이런 새벽에 금성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자 빼빼 야위고 새까만 여자가 그 앞에 서 있었다. 미스라를 닮았지만 미스라는 아니었다. 그가 다가가자 여자는 자신을 미스라가 아니라 움마트라고 소개했다. 그 역시 자신을 소개하려고 막 운을 떼었다. “전……”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를 안내한 사람은 미스라였다. 그녀는 그가 묻는 모든 질문에 그 질문이 어떤 질문이건 상관없이 대답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듯 보였다. 그들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몸에 이름, 국적 그리고 주소 등 자신들의 신분을 알리는 문신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살갗에 왜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적어 넣었고 또 어떤 이들은 이마와 등 뒤에 국기와 기장을 그려 넣고 있었다. 어떤 이는 가슴에 소말리아 국기를 문신으로 새겨 넣고 있었는데 끝이 세 곳이 뾰족한 별은 보이지 않았다. 미스라는 그 이유를 아스카르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 중에는 ‘오가덴에서 온 순교자’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아스카르는 그 사람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끝에 그는 얼굴을 돌려 조금 전에 만났던 여자에게 혹시 그녀도 그 사람을 알고 있는지를 묻고자 했다. 그런데, 아뿔사!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여자만 자리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여자에 대한 기억 자체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자문했다. 혹 그가 “저는……”이라며 운을 떼었지만 끝내 마치지 못한 자기소개가 미스라에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를? 그 자신이 혹 미스라는 아니었는지를? 그는 마음속에서 불완전한 문장을 구성하던 점들을 지워버리고 다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의 귓속에 “저는”이라는 말이 들려왔고 그 말은 메아리가 되어 뭔가 의미 있는 소리로 다시 울려왔다.
  이제 그는 눈을 들어 다시 하늘을 보았다. 금성이 아직도 빛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요량이었다. 다행히도 그 별은 아직 그곳에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의기소침해보였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기분은 뭔가 알고 있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와 비슷했다. 글자가 입에서만 맴돌다가 정작 입술을 통해 소리가 되어 나왔을 때는 완전히 다른 말이 될 때와 비슷했다. 그가 지닌 천국에 대한 인상을 반추해볼 때 그것은 ‘금성’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금성’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오히려 무지막지하게 크고 화려한 색을 띤 거미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밟고 서 있던 꿈속의 정경만큼이나 커다란 거미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작은 배와 몸뚱이에서 실을 뽑아 그토록 복잡한 그물을 짜고 그토록 긴 덫을 만들어 누구라도 한 번 빠지면 그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드는 그런 거미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뱃속에서 뽑아낸 기다란 내장의 사다리를 타고 상승하는 거미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걸었다. 삼십 분 쯤 걷자 강둑에 이르렀다. 정신을 모아 한 그루 나무 밑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그는 골똘히 명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앉아서 기다릴 뿐이었다. 그는 앉아서 자아에 대한 회의주의자들의 질문을 곰곰이 뜯어보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강물이 흐르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말했다. 흐르고 또 흘러서 과일과 채소라는 이름의 음식이 자라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신을 경배하기 위해서? 자연 속에서 신을 찾기 위해서? 인간은 대체 왜 태어나는가? 이런저런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런 생각과 연루되어 있는 듯하긴 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이유로 모든 것에 도전을 했던 어떤 한 사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내는 “심지어는 거울마저도 사물과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을 비치지 않았다”고 떠들고 다녔다. 사내는 대머리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대머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 사실을 확인해주고 또 거울이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주어도 그는 막무가내로 그 사실을 수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보고 또 거울이 확증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떻게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사내는 진짜로 미치광이가 되었다. 아스카르도 종국에는 미치광이가 되어 이런저런 사실에 의문을 품고 기존의 진리에 도전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는 끝내 대문자로 A자가 크게 박힌 거대한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아마도 전생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는 그 문을 이전에 본 기억이 났다. 그때는 그 문을 지키고 있던 제복을 입은 한 사내에게 쫓겨났다. 지금도 그는 그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문이 대체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도 당최 동하지 않았다. 그는 길가에 있는 한 옥석 위에 앉았다. 왼쪽으로는 방초가 푸르른 작은 냇가가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는 작은 샘이 하나 있었다. 그 샘은 마치 그가 보는 앞에서 그가 보는 바로 그 순간에 마법으로 가득한 한 냇물이 되어 온갖 크기와 형형색색의 무늬를 지닌 물고기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물고기들은 어떤 금기와 자제심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쫓고 있었다.
  그가 다시 눈을 들었을 때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하늘은 일곱 가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색들은 그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지개 색을 닮아 있었다. 하나는 빨간색이었고, 또 하나는 은빛 진주색이었다. 그 외에도 황금색과 은색, 오렌지 빛이 나는 보라색과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흰색이 반짝이고 있었다. 점술가나 예언자가 아닌 범상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감상할 수 없는 그런 색들이었다. 그의 오른 편에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그 나무의 가지 위에는 ‘말하는 인형들’이 앉아있었다. 그는 인형이 말하는 소리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시간이 다소 지난 후에 깨달았다. 이 모든 것들이 아마도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헛것이 보여 생긴 일임을 말이다.
  그때 목소리 하나가 그를 불렀다. 그는 그 목소리가 자기 몸속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바깥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그는 너무 놀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금 비단결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오른 편에서 스스슥거리며 다가오는 뱀이 내는 소리였다. 이번에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그 뱀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이 뱀을 노려보는 사이에 그의 손은 어릴 때 뱀에게 물린 허벅지에 남은 흉터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는 뱀이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 뱀의 눈을 쏘아보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는 포크처럼 생긴 뱀의 혓바닥이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 뱀이 머리를 조아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목구멍을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의 몸 안팎에서 일던 모든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어떤 신분도 이름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뱀도 사라졌다. 잠시 그는 여행 관련 서류를 놓고 나온 여행객 마냥 무서웠다. 세월이 가면 자신이 알고 있는 자기 자신에 관한 지식도 이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그는 홀로 우울하게 옥석 위에 앉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슬픈 표정을 지은 채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무척 궁금한데, 그에 관한 질문을 던질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 몹시 슬펐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귀찮은 질문에 대답을 해줄 이가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뱀이 가면을 쓰고 돌아올 것이라는 예시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보라! 때마침 뱀이 돌아오고 있었다. 얼굴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아스카르는 그 얼굴을 어떤 사진에선가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 사진이었다. 그때 한 친척이 그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집에 들어온 뱀에게는 해를 가하지 말거라. 그 뱀에게 네 가족이나 친척의 피가 흐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는 이런 진지한 생각을 하면서 어른인 누군가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저 미물이 생김새와 겉보기에는 뱀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 눈에만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우리 피가 흐르는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미스라는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몰려와 아스카르를 압도했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자신의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이 내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여하튼 어떤 목소리가 그를 상상 속의 목장보다 더 푸르른 잔디가 깔린 들판으로 불러내었다. 그곳에서 그는 다가오는 그를 보며 초조한 듯 나직하게 울어대는 말 두 마리를 보았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끔찍할 정도로 못생긴 말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혈통이 좋은 아라비아산 말처럼 잘생긴 말이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물건으로 안장을 올린 잘생긴 말의 색깔은 새까만 색이었는데 이마와 앞다리만큼은 새하얀 색이었다. 눈동자는 새까맣고 윗입술도 하얀색을 띠긴 했지만 이마의 색처럼 하얀색은 아니었다. 다른 한 마리 말은 못생긴 말이었는데, 잘 생긴 말 옆에 있어 더 못생겨보였다. 그 말은 비질비질 땀을 흘렸고 심한 악취를 풍겼으며 칼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카르는 잘생긴 말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못생긴 말은 멀찌감치 떨어져 게걸스럽게 풀을 뜯고 있는데 잘생긴 말은 자발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숭배라도 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그가 등에 올라타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 등에 올라타자 그 말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속도가 엄청났다. 우아함도 탁월했고 승마감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하고 신선했다. 그 말은 강을 가로질러 달렸고 거대한 산 높이의 장애물을 가뿐히 뛰어 넘었으며 마치 날개를 단 듯 대기를 갈랐다. 말, 그것이 진정 말이었을까? 그렇다고 그 말이 그가 이전에 보았던 말처럼 통뼈가 크고 굵은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말이 여느 아라비아산 말보다 키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고 무게가 더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은 지형의 조건에 맞게 진화된 다리도 갖고 있었다. 가령, 언덕을 내리달릴 때 그 말은 앞다리를 쭉 펴서 긴 다리를 유지했다. 그리하여 이전에 말을 타본 적이 없거나 말을 타는 법을 잘 모르는 그와 같은 사람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안장을 세게 붙잡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었다.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말은 필요한 곳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자 울로 만든 조악한 옷을 걸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말이 없이 가만히 그곳에 서 있었다. 아스카르와 말이 뿜어내는 숨소리가 그의 적막을 깨는 듯 했다. 말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무언가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사과의 뜻으로 머리를 조아리자 그가 말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아스카르가 말에서 내렸다. 말은 할 일을 다한 듯 아스카르와 사내를 등지고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아스카르는 그 말이 전혀 풀을 뜯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말은 뭔가 천상의 음식처럼 보다 고상한 음식을 먹을 생각에 즐거운 듯 귀를 쫑긋 세운 채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사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금빛 찬란했고 달콤했으며 매우 깊었다. “안녕하신가, 젊은 친구, 온갖 신비와 뱀과 거미와 말과 울로 만든 조잡한 옷을 걸친 사내가 사는 땅에서 안부를 전하오. 순례자여, 환영하네”라고 그가 인사말을 반복했다.
  그 후 짧은 침묵이 흘렀으나 그 시간이 아스카르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바로 그 때 그가 어두컴컴한 꿈속의 정경을 지나 빛의 세계로 막 건너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자 사내가 여러 차례 같은 인사말을 반복했고 아스카르는 마침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사내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우린 예전에 아주 잠깐 만났단다, 아들아. 내 눈에 막 서리가 끼고 내 영혼 속으로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고 아무 것도 알아볼 수가 없구나. 안녕하신가.”
  아스카르는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사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전할 소식이 있다. 받겠느냐? 그리고 그걸 적당한 사람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아들아?”
  아스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그 소식을 받을 적당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선지자께서 말씀하셨다. 신이시여, 그의 영혼을 축복하소서! 인간은 잠들어 있노라. 인간은 죽고 나서야 깨어나느니라. 그 말을 따라할 수 있겠느냐, 아들아?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아스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따라해 보거라, 한 마디 한 마디.”
  아스카르는 그 말을 따라했다.
  “또 다른 소식이 있다.”
  아스카르는 그 소식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암시를 보냈다. 비록 그 일이 다른 누군가를 대신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잘 듣거라.”
  아스카르는 주의를 기울였다.
  “독수리는 자기 발톱으로 집을 짓느니라.” 사내가 말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사내는 주의를 기울였다.
  “독수리는 자기 발톱으로 집을 짓느니라.” 아스카르가 따라했다. 울로 만든 조악한 옷을 입은 사내가 아스카르의 소매를 붙잡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 달려와 일말의 거리를 둔 채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사내는 말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아스카르에게 다가가 등에 올라탈 것을 암시했다. 말 등에 오르면서 아스카르는 생각했다. 이 말에게 새벽처럼 밝은 날개가 생기면 아침의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날아갈 수 있을까? 작별 인사를 나누다가 사내는 아스카르에게 말했다. “평화롭게 깨어나거라.”

  그리고 아스카르는 잠에서 깨었다.

2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자 어느 새 잘 생긴 십칠 세 청년이 된 그가 모가디슈에 있는 어느 집 창가에 서 있었다. 힐랄 삼촌의 집이었다. 그의 오른 편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소말리아 국립대학의 입학처에서 온 서류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 서류의 양식은 아직 빈 칸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마음이 두근거려 그 서류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시험을 통과하기는 했지만 대학에 진학할지, 하지 않을지를 미처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어떤 학과 혹은 어떤 과정으로 입학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책상 위에는 작성을 마치지 못한 서류 외에도 두 장의 다른 쪽지가 놓여 있었다. 한 장은 현재 그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힐랄 삼촌에게서 온 쪽지였는데, 미스라가 시내에 나타나서 아스카르가 어디 사는지 수소문을 하고 다니고 있어 아마도 곧 우리 집 앞에 나타나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른 한 장은 모가디슈에 있는 서부 해방 전선의 본부에서 온 편지로 면접을 보러 신병모집 사무실을 방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창가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낯선 곳에 와 있는 한 이방인 같았다. 그는 창가를 등지고 책상으로 걸어가 대학에서 온 서류와 쪽지를 순서대로 집어 들었다. 그는 평소에 걱정거리가 있어도 표를 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의 판단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지난 밤 여자 친구 리요와 유쾌한 밤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힐랄 삼촌이 건넨 쪽지를 보는 순간 그의 영혼은 절망감으로 오그라들었고 그의 몸은 있는 대로 팽창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미스라가 여기 모가디슈에 있다!
  아스카르는 이제 몸집도 크고 키도 큰 건장하고 말쑥한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대체 그녀가 무엇을 더 이상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문했다. 그는 아플 때 그녀가 얼마나 자신에게 무지막지한 사랑을 쏟아 부었는지를 떠올렸다. 망가진 장난감을 고치는 아이처럼 얼마나 그에게 섬세한 애정을 쏟았는지를 상기했다. 그녀는 그를 씻겼고 그의 몸에 매일 두 차례씩 기름을 발라주곤 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그의 부드러운 몸을 이리저리 애무하다가 조그만 상처라도 발견되면 멈추어 서서 심문을 하고 질문을 퍼붓곤 했다. 특히 종기나 까만 점을 보면 아주 유심히 살피곤 했다. 그러나 부스럼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크는 아이들에겐 부스럼이 생기기 마련이란다”라고 그녀는 나이 먹은 할머니들이 부스럼에 대해 늘어놓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곤 했다. “씨앗을 제대로 방사하지 못한 탓이지.”
  그, 다 큰 그를 보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기보다 키가 더 크고 힘도 더 세며 훨씬 남성적인 그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혹 떠오를까? 가령, 목욕을 시키고 싶다던가 아니면 때를 밀어주고 싶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의 등에 비누칠을 해주고 싶다는 따위의 생각들이? 그게 뭐 어떤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구석구석 스펀지로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혹 하지 않을까? 그녀와 그 자신 중 누구의 눈빛이 더 세속적일까? 달리 말하자면, 그는 과연 그녀의 눈빛을 노골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제 열일곱 살이 된 그와 그리고 사십대가 된 그녀 사이에는 약 십여 년의 세월이 가로질러 서 있다. 그 사이 그는 힐랄 삼촌의 보호 아래서 어린 아이의 티를 벗고 성년으로 성장했다. 말 그대로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을 때의 모습이 더 이상 그에게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는 겨우 일곱 살이었고 그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가끔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혹 그녀의 장난감은 아니었는가를. 여하튼 그들 둘 사이를 갈라놓았던 십여 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무척 중요한 시간이었다.
  힐랄 삼촌과 살라도 숙모가 그에게 열어준 세계는 진정 다른 세계였다. 그는 모가디슈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가 그곳에서 만난 세계는 항시 전쟁이 벌어지던 오가덴의 세계는 물론이고 그 전쟁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던 미스라의 세계와 천양지차가 났다. 그는 일면 미스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 전쟁 통에 그녀라고 어찌 공평무사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어쩌다가 그녀가 반역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일관성이 있는 소문도 떠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구하기 위해서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이 사실일까? 그녀가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덫을 놓아 수백 명의 칼라포 전사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소문이 진정 사실일까? 혹 그녀가 영혼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끝에 그는 미스라와 함께 살던 때를 떠올렸다.
  미스라와 함께 하던 삶이 항상 즐겁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슬픈 순간도 많았고 재미없는 순간도 많았다. 나름의 고통과 번민 그리고 좋을 때와 나쁠 때도 많았다. 특히 그녀의 자궁에서 매달 한 번씩 반복적으로 피가 넘쳐흐르던 날이면 그녀를 보는 일이 두려웠다. 그날 그녀는 무척 추했다. 머리칼이 다 빠졌고 기분이 소침했으며 성질이 무척 급해져 그를 때리기도 하고 그에게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그녀는 무척 우울해했고 자살, 아니 살인까지도 저지를 기세였다.
  카린이 그의 삶에 진입하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었다.

3

  한 달에 한 차례 미스라는 창백해보였다. 건강도 안 좋고 기분도 우울해 보였으며 성질도 나빠졌는데 그 상태가 오 일에서 육 일, 어떤 때는 일주일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주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그를 때렸다. 그는 그런 그녀가 태엽을 감은 중국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그 인형은 시간이 지나 태엽이 풀리면 생명이 다한 듯 이마를 턱 있는 데까지 떨어뜨렸다. 그 때마다 임시 ‘어미’가 이따금 그녀를 대신하기도 했다. 꾸락스 삼촌의 부인네들은 단 한 번도 그 축에 끼지 못했다. 임시 어미의 이름은 카린이었다. 그녀는 이웃에 살았고 슬하에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장성한 아이들을 두고 있었다. 무슨 병 때문인지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사정 때문인지 아스카르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반평생을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서 사는 남편도 부양하고 있었다. 카린은 그녀가 어딘가를 갈 때 마다 마치 같은 방향으로 두 사람이 심부름을 가는 양 꼭 아스카르를 데리고 다녔다. 오랫동안 그는 그녀를 “이모”라고 불렀다. 기실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진짜 이름이란 게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꾸락스 삼촌을 비롯하여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그녀를 “이모”라고 불렀다. 꾸락스 삼촌의 아들 중 하나는 그녀가 “맨날 잠만 자는 남편”의 아내라고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카린은 미스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가 물으면 짧게 대답해주었다. “미스라의 몸에서 피가 날 뿐이야.” 아스카르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젠가 코피를 한 번 흘려 피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 뿐 남의 피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가 카린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는 어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싶을 때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카린이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카린에게 직접 그녀의 남편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물은 적이 있는데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등이 아프다고 대답했다. 그 병에 대한 의문을 계속 품고 있던 차에 그는 힐랄 삼촌에게서 처음으로 그 병의 과학적인 이름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카린에게 이런 질문도 했다.
  “이모도 ‘피’를 흘리나요?”
  “난 너무 늙어서 안 흘려, 고맙습니다, 신이시여!” 그녀는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아스카르는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카린은 여느 할머니들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주었다. “미스라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싸일’5) 이라고 부른단다. 우리 여자들은 그걸 또 다른 추한 이름으로 부르지. 특정한 나이 대에 이른 여자들만이 그 일을 겪거나 그 일로 고통을 받는단다. 남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 오십 대 혹은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자들에게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단다. 나도 쉰셋에 이 고통에서 해방되었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말했다. 아스카르는 대꾸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그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가 자신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자기가 낳은 자식들에게는 감히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던 온갖 것에 대해 아스카르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을 그녀는 즐기고 있었다.
  “네가 좀 더 크면 이해하게 될 게다.” 그녀는 마치 의사가 처방한 대로 약을 먹으면 곧 낫게 될 것이라고 환자에게 확신을 주는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
  “전 피를 흘리지 않을 거라면서요?” 그가 물었다.
  그녀는 여자들만이 그 고통을 받는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 또한 그 말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시작되면 많이 아프고 많이 괴롭단다.”
  “제가 그걸 조금 나눠 가지면 미스라가 조금 덜 아플까요, 그럴까요?” 그녀는 무언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의 표정처럼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머리가 더 이상 목에 붙어있지 않는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아니라고. 미스라는 여자야.” 그녀가 아스카르에게 대답했다.
  그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런데요?”
  그녀가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그녀가 하는 말이 들렸다.
  “특정한 나이가 된 여자들에게만 그 기간이 온단다. 열두 살에서 오십 살까지라고 해두자. 남자들은 예외지. 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는 놀라움으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또박또박 하던 말을 계속했다. “내 남편과 아들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월경의 고통을 겪지 않았지. 그런데 내 딸네미들은 겪었어. 물론 나도 겪었지. 젊었을 때는.” “여자긴 여잔데 그걸 안하는 여자는요? 그게 사라진 여자는 어떤 여자냐고요?” 그녀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무언가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네 말은 이 문제로 고통을 받기에 충분히 젊고 나처럼 나이가 많지 않은데 그걸 안하는 여자들에 대해 묻는 게냐?”
  아스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건 그 여자들이 아이를 가졌다는 뜻이니라.” 그는 다시금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재차 설명을 시도했지만 그 어떤 설명으로도 그를 더 이상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 유목민이 소말리아의 돈이 평가절하 되었다는 뉴스를 방송에서 접하고 그 뜻을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과 동일했다. “그 기간이 사라진 여자들은 임신을 한 여자들이거나 몸이 아주 안 좋은 여자들이란다.” 그녀가 말했다. 이 말을 듣자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
  그녀가 몸이 좋지 않았던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을까? 미스라의 기간은 우울한 낮과 밤을 동반했는데, 가슴에 통증이 특히 심했다. 상태가 특별히 나쁠 때에는 피를 많이 흘렸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녀의 고통은 일주일가량 지속되었다. 그녀는 특히 아랫배가 많이 아팠는지 늘 그 부위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 모습은 마치 염증이 생긴 상처에서 고름이라도 빼내는 것 같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녀는 가끔 기절을 하기도 했다. 몸속에 긴장이 커지면 마치 산통이라도 겪는 것처럼 그 고통이 배가 되는 듯했다.
  밀가루 반죽에 기장을 섞고 물을 부어 아스카르와 상태가 괜찮다면 미스라가 먹을 칸지라6)를 만들던 카린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가 크거든 미스라의 얼굴에 드러나는 고통과 아픔을 잘 기억하거라. 여자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는지를 잘 기억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발 그녀에게 더 이상의 고통과 어려움은 끼치지 말거라.”
  그는 카린의 부탁을 명쾌하게 들어주고 싶었다. 그가 그런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기를 진정으로 희망했다. 동시에 그는 카린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다. 미스라가 그 기간 중에 항상 아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끔 그는 미스라가 백일몽을 꾸면서 웅장한 침묵 속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는 미스라가 카린에게 그 두 사람, 밤이 이슥해지면 찾아오는 꾸락스 삼촌과 아우아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했다. 밤손님이 없는 날 밤은 미스라가 기간 중에 찾아오는 그 엄청난 고통으로 신음을 내지르지 않는 날보다 훨씬 고요했다. 아무튼 그 두 사람은 미스라의 기간 중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미스라가 다시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를 고대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밤이 이슥해져도 나타나지 않기를 빌었다.

  한번은 미스라가 달마다 찾아오는 그 엄청난 고통에서 해방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카린이 나타나 그녀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그 후 카린의 방문은 눈에 띄게 잦아져 괜한 아스카르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떤 것은 그에게 설명되기도 했고, 어떤 것은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셋은 방 안에 틀어박혀 귓속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들이 그에게 숨기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평소 기간 중에 보이던 그런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기간 중의 긴장과 유사한 형태의 긴장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주 오래 그리고 여러 차례 백일몽을 꾸었다. 그녀가 그를 때리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밤마다 찾아오는 두 손님에게만큼은 아주 냉정했다. 그녀는 그 둘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우아단은 집요했지만, 그녀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돌아가세요.” 그제야 그는 돌아갔다.
  미스라의 식단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강둑에서 구해온 점토 덩어리를 씹었다. 신 것들을 엄청나게 먹었고 목탄으로 이를 닦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아우아단이 찾아왔다. 그와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를 아스카르는 들을 수 있었다. 아스카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인 창가 아래로 갔다. 귀를 쫑긋 세우고 정신을 집중하자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편린이 들렸다. 짧은 대화였다. 그녀는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혼은 안 돼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그 말을 오래토록 곱씹고 있는 사이 그녀가 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 아이가 당신 아이라고 합디까? 아니에요, 당신 아이가 아니라고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가 버렸다.
  그날 저녁에는 무척 많은 이동들이 있었다. 카린과 또 다른 여자가 이쪽저쪽 분주히 들락거렸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준비했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다음 날 두 여자는 미스라를 바닥에 눕히고 그녀의 배 위로 올라가 그 배를 사정없이 밟았다. 그것으로 모자라다고 느꼈는지 그녀를 앉히고 생강 향을 들이키게 했다. 뿐만 아니라 즉석에서 몰약과 계피를 섞은 좌약을 만들어 그녀에게 사용토록 했다. 그러고 난 후 애를 떼는 데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풀뿌리와 관목을 달인 국물로 약물을 만들어 이를 그녀에게 들이키게 했다. 역시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두 여자 중의 하나가 금속 막대를 가져와 미스라의 몸속으로 집어넣자 미스라는 가장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질렀다. 미스라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바닥에 누워 살았던 남편과 새로운 상처 때문에 아픈 고통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을 미스라 사이를 오가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던 카린이 그는 참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제법 커서 그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장난기가 많은 아스카르가 등에 올라타면 그녀는 앞뒤로 왕복을 반복했다. 그는 그녀처럼 인내심이 많고 친절하며 관대한 사람을 만난 것이 참 즐거웠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지금 모가디슈에 있는 힐랄과 살라도의 집에 있다.
  그는 한 아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아이를 멀지 않은 거리에서 볼 수가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두 발로 일어서더니 뒤뚱거리며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아직 약해 곧게 뻗어 있지 않았다. 그 아이는 반 미터 정도를 걸어 나가다가 엉덩이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곧바로 일어서 다시 걷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아이가 아스카르 쪽을 보자 입에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아이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고 근육을 다치거나 뼈가 부러지는 일도 없었다. 그때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이들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답니다. 보호천사가 넘어지는 아이와 바닥 사이에 누워 있기 때문이랍니다. 체조 선수가 기록을 깰 욕심으로 높이 날았다가 떨어질 때 밟는 매트리스처럼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학교에 있는 체육선생님이 최근에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아스카르, 높이 뛸 때는 조심하거라. 네 나이는 특히 떨어질 때 조심해야 하는 나이거든. 안 그러면 다리가 부러져.”
  그의 마음은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한 여자에게 시선을 붙박았다. 여자는 즐거운 듯 무릎으로 기어 한 아이를 쫓고 있었다. 여자의 꽁지 쪽에는 탐욕스럽게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아이가 그 남자와 여자의 아이인지는 아스카르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혹 이런 식으로 꾸락스 삼촌과 아우아단이 미스라를 처음 보았을 때 유혹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보라. 한 하녀가 있다. 주인의 오물 속에다 팔뚝을 집어넣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하녀가 있다. 그녀는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있다. 주인은 뒤에서 나타나 그녀를 덮친다. 그가 본 영화 중에 얼마나 많은 하녀들이 주인에게 강간을 당했는가? 얼마나 많은 비서들이 사장에게 겁탈을 당했는가? 또한 노예들이 딕손7) 남부의 주인들에게 겁탈을 당하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아우아단은 그녀에게 꾸란을 읽게 했다. 그녀가 말씀의 신비를 정신없이 암송하는 사이 아우아단도 혹 그의 물건을 그녀에게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에티오피아의 잔혹사를 다룬 많은 이야기가 그의 머리를 급습했다. 그 이야기들 속에 항상 강간을 당한 하녀와 정부 혹은 창녀들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속에서 남자는 항상 “취하는 자”로 나왔고 여자는 예외 없이 피해자로 등장했다. “왜냐면 네 어머니, 누이 혹은 부인이 아닌 여자는 모두 창녀니까”라고 그의 동급생이 말했던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치졸한가라고 그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여자는 항상 피해자였다. 미스라, 샤흐라웰로, 심지어는 카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자는 영혼이었다. 파괴되고, 죄를 짓고, 학대를 당하는 영혼이었다.
  카린은 그토록 숭고한 영혼이었기에 그는 그녀가 미스라에 대해 해준 모든 말을 진실로 믿었다. 미스라가 영혼을 구하기 위해 몸을 버렸다는 말도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 대가로 그녀는 자신의 충심에 대한 전사들의 믿음을 저버려야 했다는 말도.

4

  그녀는 왜 자신의 몸을 근친상간에 가까운 방식으로 버려야만 했을까? 그는 자신의 몸보다 그녀의 몸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몇 주 동안 그의 마음은 무덤덤했다. 그 역시 근친상간에 가까운 방식으로 버려진 그 몸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몸 중 어느 정도가 혹은 여자의 몸 중 어느 정도가 그들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는 힐랄 삼촌에게 물었다. “아주 조금이지.” 힐랄이 대답했다. 그러나 이 대답조차 그의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는 경멸의 불길을 잠재울 수 없었다. 힐랄 삼촌은 궁금했다. 혹 아스카르가 미스라의 배신을 한 남편에게 충실하지 않았던 한 여자의 배신과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아니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아이의 면전에서 아이의 머리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을 남긴 어미의 배신과 같은 것이다.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몸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구제를 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영혼이란 또 뭘까? 오후가 깊어갔고 태양은 시간의 계단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카린이 내게 그 일과 관련해 진실을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살라도가 말했다.
  “아니, 어쩌면 진실을 말해주었는지도 몰라요.” 아스카르가 대꾸했다.
  “그렇다면 네가 미스라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아닐까?” 살라도가 말했다.
  아스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은 많은 우정을 깨뜨리기도 하고 대신 새로운 형식의 신뢰와 상호의존을 가져오기도 한단다. 그렇지 않은가요, 힐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아스카르?” 살라도가 물었다.
  힐랄은 살라도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어요. 서로 죽고 못 살았죠. 물론 저도 그랬고요.” 아스카르가 대답했다.
  “그렇지. 너도 그랬지.” 살라도가 말했다.
  그때 아스카르의 마음속에 질문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대체 한 인간의 몸 중 어느 정도가 순수하게 자기만의 것일까? 인간은 주인이다. 그의 일부가 말했다. 인간은 자기 몸의 주인이다.
  “네가 미스라를 그토록 철저하게 비난하기 전에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직접 묻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한때 네 자신의 전부였던 여자 아니냐?” 힐랄이 말했다.
  침묵 속에서 아스카르의 마음은 힐랄의 마음과 똑같은 궤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랬다. 미스라는 한때 그의 세계의 전부였다. 그가 지닌 비밀의 핵심이자 근간이었고, 그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가 만져보거나 본 것 중에서 가장 커다란 팔을 위로 뻗어 짧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그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그녀는 바로 그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씻겼고 코를 풀게 했으며 자신이 앉아있는 땅을 곧바로 가리키기도 했다. 그녀의 생각은 시계추마냥 신의 거처인 하늘에서 시작해서 인간을 먹여 살리는 땅으로 그리고 그에게로 혹은 그녀 자신에게로 왔다갔다 진자운동을 계속했다. 그에게 사물과 사람을 제 자리에 위치시키고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바로 그녀였다.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어떤 한 세계의 중심, 바로 그녀 자신의 세계에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 사람 역시 바로 그녀였다.
  “하늘은 어디에 있지?”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땅은, 땅은 어디에 있지?”
  그러면 그는 그녀를 가리켰다.
  “땅 말이야. 땅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여러 차례 반복적인 시도를 한 후에야 그는 땅을 올바르게 지적했다. 그런 후에 그는 “어머니, 어머니는 어디 있죠, 미스라?”라고 물었다. 그러면 그녀는 짧은 손가락을 두 가슴 사이에 대고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너의 어미다”라고 대답했다. 수년 동안 그는 목구멍으로 내는 쉰듯한 소말리어의 후음을 제대로 발음하는데 큰 애를 먹었다. 자신의 모국어를 말이다. 그녀에게서 발음을 정확하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년 동안 그는 소말리어로 “하늘”과 “땅”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녀를 따라 배웠기 때문이었다. 수년 동안 그는 또한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구절을 기억해야만 했다. “넌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 그녀는 이 말을 그를 보느라 지쳤을 때 사용하곤 했다. 가령, 그가 울음을 그치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할 때 말이다. 그녀는 이 말을 좋지 않은 소식을 알리는 선봉대의 구호처럼 즐겨 사용했다. 그런 후면 세상은 그녀가 빠져나갔으므로 그의 눈앞에서 하나하나 해체되었고 그는 공식에 맞추어 그녀가 눈앞에서 자신의 세계 밖으로 사라지는 즉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세계는 그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고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행동규범을 지닌 세계였다. 가끔 그녀는 밖으로 나가는 척 하다가 맨 앞에 있는 벽 뒤에 몸을 숨기고 발작에 가까운 울음을 울어대느라 뺨이 눈물 자국으로 새까매지고 딱딱한 땅바닥을 쉼 없이 차느라 발뒤꿈치가 얼얼해진 그를 지켜보곤 했다. 또 가끔 그녀는 그가 울다가 지쳐 잠에 곯아떨어진 다음에야 긴 잠행을 끝내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장난스럽게 돌아와 그를 간질이고 뽀뽀 세례를 퍼부으면서 그를 가슴에 꼭 껴안고 사랑스러운 어투로 “내 남자” 혹은 “내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스라가 여기 모가디슈에 있단다. 그는 쪽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 말은 내가 그녀를 만지고 입 맞추고 껴안고 포옹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사람과 육체적인 접촉을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 줄을 상상해보았다. 만져야만 하고 입을 맞추어야만 하고 포옹을 해야만 하는 그 사람이 증오의 대상이 된 상황을 연상해보았다. 왜 우리 인간은 서로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동물 같은 그 습속을 왜 경배하는 것일까? 왜 또 우리 인간은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과 접촉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일까? 몸이 말하면, 영혼은 복종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몸은 완벽하게 무감각해진 사랑과 접촉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한 사람의 신뢰를 저버린 미스라를 만지고 입 맞추고 껴안아야 한다고? 여기 이곳 모가디슈에서? 해방 전선에 가입을 할까 아니면 학문의 세계에 진입을 할까를 놓고 아직도 투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내가? 그는 갈등했다. 차라리 해방 전선에 편지를 띄워 넌지시 그가 그 조직에 얼마가 가담하고 싶어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했다면 그는 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깨끗이 씻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해방 전선의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힐랄 삼촌도 그 선택과 죄의식 사이의 연관관계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더라면 그는 자신의 양심을 옥죄는 차꼬를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혹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는 영혼의 안식을 찾은 젊은이, 즉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을 선택한다면? 그는 걱정스러웠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의 사유가 보다 고상한 지적 전통을 탐닉할 것이 뻔했다. 따라서 오가덴처럼 준 사막에 가까운 건조한 지역을 해방시키느라 싸우다 죽는 일이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확신했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가 동지애를 중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많은 사람들이 나서 오가덴 주민들처럼 민족주의적인 명분 때문에 귀한 목숨을 저버리지 말라고 그를 설득할 것이 뻔했다. 대다수의 소말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제기한 주장이 반대에 부딪히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대학교육을 받으면 보다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게 될까?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합리성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될까? 보다 정교한 논쟁을 진행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될까? 아마도 그는 오가덴에 관한 역사를 책으로 쓰거나 아니면 그 지역주민들의 구전 전통을 통해 얻은 배경 자료를 토대로 하여 그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을 자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총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펜의 힘을 믿고 그 펜에 모든 것을 쏟을 것인가?
  모가디슈에 발을 딛자 미스라는 반역의 현장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이제는 더럽혀진 그녀의 과거가 그녀보다 앞서 다니기 때문이었다. 벌거벗은 아이처럼 말이다. 미스라는 새롭게 찾아낸 아이를 만지고 주무르기보다는 그 아이와의 접촉을 피할 것이다. 그는 그녀가 두 배의 죄의식으로 치욕의 고통을 맛보기를 바랐다. 온 몸의 뼈에서 흘러나오는 골수가 차가운 냉기에 노출되어 꽁꽁 얼기를 고대했다. 여느 반역자의 목처럼 그녀의 목도 힘줄이 부러지길 신에게 간구했다. 피가 놀래 거꾸로 치솟아 눈이 멀기를 기도했다. 온 몸의 진이 다 말라 비틀어져 끝내 그 고통으로 죽게 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땅이 시신을 거부하고 하늘이 그녀를 관객으로 인정해주지 않기를 신심을 다해 빌었다. 만약 그리고 진정으로 그녀가 배신을 한 것이라면! 오로지 그 경우에만!
  그는 한때 자신의 삶을 그녀와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가 한때 그녀와 얼마나 절친한 사이였는지를 회상하는 것 자체가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물론이다. 그는 그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가! 그녀는 그를 마치 물처럼 집어 들고 던지기 놀이를 했다. 그리고 자신은 파도인 양 그 물을 따라 거듭, 거듭, 거듭 나타났다. 그는 그녀의 눈물에서 소금 냄새를 맡았다. 월경을 할 때는 피 냄새도 맡았다. 그는 그녀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라고 불렀다. 과연 그가 그 둘 사이를 옭아맨 동아줄을 단번에 끊어낼 수 있을까? 과연 그가 마치 시간처럼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고리를 절단해낼 수 있을까? 그는 ‘시간’을 젖은 빨래 마냥 못 위에 걸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리고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려서 그 빨래가 마르지 않기를 얼마나 기원했던가? 그랬다. 그는 ‘시간’을 유예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미스라는 말했다. “넌,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 싫었다. 아이일 때 그는 결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홀로 남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미스라나 아우아단과 같은 어른들 속에서만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여러 가지 상황들을 분석해주고 여러 가지 사물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들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자기 자신에 관한 것들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스라가 말한 “넌,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라는 말은 한 사람이 그가 오랫동안 먹이고 키워 오던 강아지를 집 밖으로 내치면서 그 강아지가 알아서 자기방어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동일한 강도로 보복의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가 밤새 오줌을 지려 침대를 적신 날 아침이면 그녀는 닳고 닳은 공식 같은 주문을 내뱉었다. “넌,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밖으로 나가는 척 했다. 그가 다섯 살 남짓 되던 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미스라.” 그가 불렀다.
  그녀에게 그 목소리는 다 큰 어른의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그가 시키는 대로 멈춰 섰다. 그녀의 눈에 자신의 샤마 숄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숄을 걸친 그는 여자처럼 보였다. 그가 말했다. “제가 커서 어른이 되면…….” 그는 무언가 오래토록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운을 떼었지만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자신이 어깨에 무엇을 걸치고 있는가를 그녀가 보지 못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장난을 치려는 듯 애교를 듬뿍 담고 “그래, 그럼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될 테고…… 더 늙으면 이빨도 모두 빠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테지. 그래, 너는 어른이 되고 나는 천덕꾸러기 할망구가 된다 이거지……! 언젠가 네가 젊은이가 되면…… 그러면 난 늙고 빼빼 마른 친구도 없는 할망구가 된다, 이 말을 하려 했던 거지…….”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단호하게 그는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앞질러 그런 말을 해버려 그가 하려던 말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암시를 주었다. “아니라고요.” 그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반복했다. “제가 하려던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고요”라고 그는 말하려 하는 것 같았다.
  “뭐가 아니고, 왜 아닌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공연히 그의 화를 돋우었다는 생각에 그를 향해 팔을 쭉 뻗으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 둘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다. 포옹을 할 때 그의 손은 그녀의 몸을 완전하게 에둘러 손가락 깍지를 끼고 싶었으나 그 손가락들은 서로 닿지 않았다. 그 상태로 그는 절반은 농담조로 또 절반은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에 걸려 있던 샤마 숄이 미끄러지듯 땅으로 떨어져 그의 발등을 덮었다. 그러면 그가 절반은 성인이고 절반은 아이인 얼굴을 쑥 내밀었다.
  “대체 뭐가 아니고, 왜 아니라는 거냐? 네가 하려고 하는 말이 뭐냐?”
  시 한 번 그의 목소리에서는 어른 티가 묻어났다. “제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이에요. 잘 들으세요, 미스라…….” 그는 미스라와 거리감을 유지했다.
  “그래, 뭔데?”
  “전 당신을 죽일 거예요.”
  그녀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이유가 뭔데?”
  “제가 살기 위해서 전 당신을 죽여야만 해요.”
  “네가 살기 위해 네 어미를 죽였듯이 말이냐?”
  “예, 제 어미를 죽였듯이 말입니다. 살기 위해서.”

참고자료

1) 본문에서 『지도』(누르딘 파라, 이석호 옮김, 인천문화재단, 2010)의 부분을 인용할 때는 각주를 별도로 표기하지 않는다.
2) 어쩌면 이러한 아프리카의 독특한 진리 탐구의 태도는 동아시아의 ‘존이구동(尊異求同)’과 유사할지 모른다. 즉, 서로 다른 것의 존재를 인정하되 모두에게 이로운 공통의 것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서구의 합리적 이성의 분별지와 명확히 구별되는 진리 탐구의 태도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게 있다. 아프리카의 근대를 연구하는 무딤베(Mudimbe)는 아프리카 르네상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블라이든(Blyden, 1832-1912)을 새롭게 주목하는바, 블라이든은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의 근대성의 인식론에 토대를 제공한 ‘동일하지만 불평등한 인종들(identical but unequal races)’이라는 인종사회학을 전복해 ‘독특하지만 평등한(distinct but equal)’이라는 탈근대적 인식론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독특하지만 평등한’이라는 관형어는 ‘존이구동’의 인식론 및 윤리학과 포개지는 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3) 이석호, 「아프리카문학과 탈식민주의」, 『세계문학론』(김영희·유희석 공편), 창비, 2010, 175쪽.
4) 아프리카문학에서 “구전과 기술, 두 코드들 사이의 접촉은 구조, 윤리적 미학적 가치들을 수용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테레사 마리아 알프레도 만자테, 「구비문학과 기술문학의 교차」, 『AFRICAN WRITERS』, 전주: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회, 2007, 379쪽)
5) 한 달에 한 번씩 특정한 연령대의 여자들에게만 찾아오는 마술, 즉 달거리
6) 소말리인들이 먹는 팬케이크
7) 미국의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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