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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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지니의 퍼즐

평론: 이승진

‘불가해’한 세계를 향한 물음 ― 최실의 『지니의 퍼즐』

이승진 평론

   2022년 3월 세계적인 OTT 서비스 애플TV+에서 한 작품이 소개된다. 2017년에 소설로 발표되어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화제를 끈 재미 작가 이민진(Min-Jin Lee)의 소설 『파친코(PACHINKO)』를 동명으로 드라마화한 작품이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삶을 서구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조명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한 이 8부작 드라마는 완성도 높은 작품성과 OTT 서비스의 확장성을 배경으로 영미권을 넘어 전 세계의 폭넓은 대중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낯선 존재와 이들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드라마의 성공은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으로 환원한다. 특히 한국에서 관심이 매우 뜨거운데, 저자가 이 재일 서사를 구상하게 된 출발점에 ‘혈통’을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당한 끝에 자살한 재일조선인 소년의 일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4세대에 걸친 재일 가족의 연대기 『파친코』는 미국 유학을 거쳐 1980년대에 일본에 돌아온 솔로몬이라는 4세대 주인공의 서사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그는 아버지의 ‘파친코’, 즉 재일 사회를 둘러싼 희망과 부정의 양가적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장소(역사)를 물려받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작품에 주목한 많이 이들로 하여금 이 서사를 희망적인 성격으로 읽게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이 작품의 서사가 끝을 맺는 1989년에서 벌써 3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의 일본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가. 그리고 재일 문학은 이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일본에서 배외주의가 극에 달한 2010년대 중반에 한 작품이 발표된다. ‘혐한’ 현상이라는 일본 사회의 뒤틀림에 직면한 한 소녀의 청년기적 불안과 세계와의 불화를 다룬 최실(崔實)의 『지니의 퍼즐(ジニのパズル)』이 그것이다. 군조신인문학상의 선정 심사평에서 “초신인의 출현”이라는 표현으로 극찬을 받았고, 같은 해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올랐을 때에는 “위태로울 만큼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굉장한 재능이 드래건과 같이 나타났다”와 같은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한 이 작품의 등장은, 각광받는 신인 재일 작가의 출현을 알렸을 뿐 아니라, 재일 문학이 지금 직시하고 있는 주제가 여전히 ‘뿌리’에서 기인한 ‘혼란’, ‘소외’, ‘차별’과 같은 문제임을 다시금 일깨웠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지니의 퍼즐』은 현재 미국 오리건주의 시골 마을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 지니가 과거 일본에서 보낸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일본 학교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기억이 있는 지니는 부모님의 권유로 옮겨간 ‘조선 학교’에도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아무 짓도 안 하기로 맹세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던” 일본 학교와 달리 그녀에게 “굳센 자유”를 줄 것이라고 믿은 중학교는 그러나 ‘조선말’과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 ‘민족의상’과 같은 낯선 것들로 가득 찬 세계이다. 이 새로운 세계와 관계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생들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 학교는 여학생들에게 다음 날 치마저고리 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등교하라는 공지를 내리나, 지니는 그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채 집을 나선다. 그리고 경찰을 사칭한 일본 남자들에게 성추행과 함께 “조센진은 더러운 생물”이라는 모욕까지 받는다.
   이때의 충격으로 다음 날부터 등교를 거부한 지니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혁명’을 계획한다. 결심이 선 어느 날 다시 학교로 향하고 “북조선은 김씨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성명문을 교내에 뿌린 후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교실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것으로 자신만의 혁명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 행동은 “더는 일본 이름도, 한국 이름도, 어느 쪽도 말할 수 없”는 절망 속에 주인공을 더 깊숙이 떨어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애초의 의도와 달리 “자기 상처를 핑계로, 정작 제일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하고, 속이고, 기만하고, 내쫓고,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밀어뜨려 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지니는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했고,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동화 작가인 스테파니를 만나고 나서야 간신히 “도망칠 구멍 없는 과거”에서 구원받을 실마리를 찾는다.
   이처럼 『지니의 퍼즐』은 학교로 상징되는 외부 세계와 대면하면서 한 소녀가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갈등, 안정이라는 심리 변화를 치밀하게 따라간다. 특히 재일조선인이라는 주인공의 출생 때문에 그녀가 마주한 ‘일본 학교(일본)’와 ‘조선 학교(조국)’라는 매우 이질적이나 이웃한 두 세계가 모두 종국에는 배타적이며 위협적인 모습으로 주인공을 카오스 상황에 밀어 넣게 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작품에서 성장기의 10대 소녀 지니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같이 ‘질식’할 것 같은 감촉으로 묘사되고 있는 원인으로, 이에 대해 최실은 작품의 군조신인상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쓰기 전에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에서 내보내줘. 부탁이야. 숨을 쉴 수가 없어”라고, 목소리의 주인은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외치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두개골을 쪼개려는 듯이 뇌수의 막(硬膜)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식도를 타고 혈관 속까지 침입해 너의 심장을 먹어버릴 거야”라고 그녀는 나를 위협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제발 좀 조용히 해달라고 애원하면서.

   작품 속에서 지니는 학교라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누구보다 먼저 어른이 될지, 아니면 다른 애들처럼 미쳐 날뛸지”라는 고민 앞에 놓인다. 일본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의 기억을 “누구보다 먼저 어른이 되는” 선택, 다시 말해 침묵하고 움츠러드는 행위를 통해 외면했다면, 조선 학교로 전학 온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는 다른 대안을 줄 수 있는 장소여야 했다. 자신에게 가차 없는 폭력을 가해온 일본 사회와 달리 조선 학교는 그녀에게 반드시 희망을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니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다. 2000년 재일 작가로서 최초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GO』가 바로 그것이다. 『GO』는 ‘민족’, ‘이념’, ‘국적’과 같은 재일 문학의 전통적인 주제들을 ‘부자 관계’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과 치마저고리 테러 사건 등 재일 자녀 세대들이 직면하는 에피소드를 작품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이 문제들이 매우 현실적인 위협임을 부각한다. 작품 속 주인공 스기하라는 지니와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이며, 일본 학교와 조선 학교라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겪는 혼란과 절망, 그리고 안정의 과정을, 그의 시선을 좇아 조명한다는 점도 『지니의 퍼즐』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GO』의 주인공에게는 ‘가족’이라는 배경이 매우 유력하게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재일 사회라는 ‘닫힌’ 세계에서 아들을 적극적으로 ‘해방’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하와이 여행을 구실 삼아 아들을 위해 북한 국적의 여권을 남한 국적으로 바꾸고, 귀국 사업으로 북한에 간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들과 부딪치면서도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계는 자신이 겪어온 것과 다름을 명확히 인정할 만큼 그는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가 있어서 스기하라는 ‘국적’, ‘이념’을 강요하는 ‘북한’이라는 부조리함과, ‘차별’, ‘배제’를 서슴지 않는 ‘일본’이라는 폭력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어른들이 멋대로 구획해 놓은 ‘경계’를 부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고, 실제로 ‘해체’하기 위해 움직인다.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한 ‘일본 학교’로의 전학이야말로 스기하라의 내적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그 변혁의 욕망은 일본 사회와 재일 사회 모두를 향해 균등하게 향한다. 요컨대 『GO』의 주인공이 조선 학교에서 일본 학교로 전학하면서 겪은 혼란은 재일 소년이 일본 사회에 자라면서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로, 그곳에서 마주할 위기는 주인공이 충분히 예견 내지는 대비 가능한 성격을 처음부터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지니의 퍼즐』에서 지니가 일본 학교와 조선 학교를 거치면서 겪는 위협은 훨씬 더 무거운 질감으로 작품에서 그려진다. 주인공의 성장기 심리 변화에 빠짐없이 주의하면서도 결국 조선 학교에 다니던 중학생 시절의 혼돈과 상흔으로 작품의 모든 시선을 집중하는 구조가 이를 말해 주는데, 스기하라와 달리 지니에게 학창 시절의 기억은 결코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적 성격에 머물지 않는다. 가령 주인공은 현재 오리건의 고등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중학교 때의 상처 때문임을 학교에서 불쾌한 인간으로 낙인찍힌 남자아이 존과 발화(發話)가 자유롭지 못한 친구 메기를 등장시킴으로써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과거에 결코 ‘유쾌’하지 못했고 나아가 ‘진의’를 주변에 ‘제대로’ 전달하기조차 어려운 존재이던 자신의 상태가 지금도 그다지 변함없음을,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친구를 향한 시선 속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 학교가 지니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까닭은 “그 자리에서 아무 짓도 안 하기로 맹세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던” 일본 학교와 달리, 이곳은 “굳센 자유”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차 없는 폭력을 가해온 일본 사회와 달리 이 장소만은 지니에게 희망을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실제로 주인공이 경험한 조선 학교는 이상(기대)과 현실 사이의 커다란 격차만을 끊임없이 각인하는 세계이다. 자신을 향한 일본 사회의 가차 없는 차별의 시선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교단 위의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도 어딘지 수상쩍으며 불가해한 시선을 지니에게 지속적으로 보낸다. 하지만 이 꺼림칙한 감촉에서 주인공은 벗어나기 어렵다. 새로 사귄 친구와 교사들, 가족이 모두 지니가 느끼는 이 감정을 이해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 세계와 반목하는 행위는 그들을 전부 부정할 수 있는 위험성을 띠며, 이는 곧 언젠가 ‘안정’을 찾아야 할 장소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니의 ‘혁명’은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엉금엉금 기어 나올 수밖에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뜨렸음을 자신에게 가장 호의를 베푼 친구의 울음을 통해 안 순간, 자신이 혁명의 대상으로 ‘도망칠 구멍 없는’ 재일조선인의 현실을 상정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당연히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보다 훨씬 불투명해서 그 명확한 실체조차 ‘알기 어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 작품에서 주인공 지니가 왜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 일본 사회보다 조선 학교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는가, 바꾸어 말하면 왜 그녀의 혁명은 일본 사회와 재일 사회를 향해 균등하게 향하지 않았는가와 같은 질문은 거의 의미가 없다. 일본이든 북한이든 재일 사회든 간에 마치 타협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가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재일조선인 자녀 세대 앞에 있으며, 이 어떻게 해서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촉에 작품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향후 이 신인 작가가 그려갈 세계는 또다시 ‘혁명’을 꿈꿀 것인가. 작품 말미에서 주인공이 간신히 부여잡을 수 있었던 ‘구원’의 실마리가 또 다른 지니를 ‘희망’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의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문학은 때때로 불행한 삶의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작가 최실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필자약력

이승진,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오사카 대학 문학연구과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주로 재일조선인 문학, 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지니의 퍼즐 - 최실

지니의 퍼즐 책표지

『지니의 퍼즐』 작품 정보

저자: 최실  번역: 정수윤  출판: 은행나무  출간: 2018.08.17.


최실 약력

재일한인 3세 소설가, 데뷔작 『지니의 퍼즐』을 발표하여 제59회 군조 신인문학상, 제33회 오다사쿠노스케상, 제67회 예술선장 신인상을 수상하고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화제를 모았다.

고백, 친애하는 종이에게

  언젠가 누군가 말했다. 잘 웃는 사람은 상처가 많다고. 진심으로 상냥한 사람은 정말로 상처가 깊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상처 입은 인간이 자기가 받은 이상으로 큰 상처를 수많은 사람에게 주고 살아왔다면, 과연 그 사람을 상냥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상처를 핑계로, 정작 제일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하고, 속이고, 기만하고, 내쫓고,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올 수밖에 없는 깊은 수렁으로 밀어뜨리는 인간.
  그게 나다.
  이것은, 그런 나의 이야기다.
  인생의 톱니바퀴가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건 5년 전 일이다. 내겐 전생과도 같이 먼 과거 이야기다. 기억은 단편적이고 전부 다 생각나진 않지만, 오늘은 어쩐지 이것저것 떠오를 것만 같다. 퇴학당한 탓인지도 모른다. 플래시백이 엄청나다. 두통도 있고, 구토 증상까지 있다. 이유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만 머릿속에 어설프게 떠오르는 영상이 멈춰주면 좋겠다. 그 뿐이다. 달리 바라는 건 없다. 누가 이걸 읽을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얘기에서 뭘 배우겠단 생각은 하지 말기를. 그건 큰 착각이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첫 등교일

  1998년 4월— 도쿄에서 제일 큰 조선학교 체육관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봄 내음이 물씬 나는 밝고 상쾌한 날,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새의 지저귐이 들렸다,고까진 말 못해도 비가 오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체육관은 일본 내 어느 학교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주조(十条)에 위치한 조선학교 체육관 2층 좌석에는 극장처럼 붉은 의자가 가득 놓여 있었다. 무대 전체가 바라보이는 붉은 의자에 앉은 부모님을 1층에서 뒤돌아봤는데, 샹들리에만 없었지 하마터면 그곳이 학교란 사실을 잊을 뻔했다.
  지금 입학식이 한창이라는 걸 상기시켜준 건 새카만 치마저고리(조선의 민족의상을 뜻하는 말. 일본의 조선학교 여학생 교복을 일컫기도 한다. 교복은 검정 치마에 동복은 검정 저고리, 하복은 흰 저고리다)였다. 옷이 익숙하지 않아서 몸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발목이 보일까 말까 한 길이의 치마라, 다리를 벌리고 앉아도 참담한 광경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은 나쁘지 않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랑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큰 무대에 새빨간 커튼이 젖혀 있고, 거기 그들의 거대한 초상화가 있었다. 일본학교에서 전학 온 내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같은 교실에서 긴 시간 함께 지낼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태연히 앉아 있었다. 나만 혼자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위화감을 품은 듯했다.
  입학식에서는 양복 입은 아저씨와 화려한 빛깔의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주머니가 잇달아 무대에 서서, 오늘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진 날이라도 되는 양 가끔씩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뜨거운 연설을 했다. 다들 귀담아듣는 듯했지만 난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전부 조선말이었으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참을 수 없는 지루함과 졸음이 밀려올 거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하여, 나는 입학식이 끝날 때까지 깊은 잠에 빠졌다.
  고요한 체육관을 울리는 의자 소리에 잠이 깼다. 돌아보니 전원이 기립해 있었다. 나도 황급히 일어났다. 정면에는 변함없이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가 있다. 그걸 올려다보며 전교생과 교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게 조선학교 교가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나는 입을 다문 채 그저 멍청히 서 있었다.
  의미 불명의 노래는 4분쯤 계속됐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렇게 정식으로 중학생이 되었다.

니나

  “지니야, 괜찮으면 이거 쓸래?”
  손 글씨로 쓴 조선말 ‘아이우에오’ 표를 여러 장 건네준 건 조금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니나라는 아이였다. 산뜻한 용모에 머리칼은 윤기가 흘렀다. 머릴 위로 동그랗게 말아 올렸는데, 귓가에 살짝 늘어뜨린 귀밑머리만 봐도 부드럽고 가는 머릿결임이 분명했다.
  니나는 내 책상에 글자 표를 펼쳤다. 하지만 솔직히 ‘아이우에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매주 토요일 집에서 한국인 선생님에게 기초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묵묵히 니나의 친절한 마음을 받아들였다. 반 애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있던 나는 니나의 배려가 기쁘고 고마웠다.
  니나는 조선말 표를 펼치자마자 성취감에 가득 차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멋대로 내 앞자리에 앉더니 표를 보는 나를 관찰하듯 바라봤다.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니나는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응. 고마워.”
  “근데 있지,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뭐?”
  “일본학교는 어떤 분위기였어?”
  “어떤 분위기라니, 뭐가?”
  “안 무서웠어? 왕따를 당했다거나 그 뭐니, 차별 같은 거—“
  막판에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별로.” 난 거짓말했다.
  “그랬구나. 즐거웠어?”
  니나는 또 미소 지었다.
  “즐거웠어.”
  “그래. 앞으로 조선학교도 즐거우면 좋겠네.”
  “응.”
  정말로 즐거우면 좋겠네, 그랬으면 좋겠어.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학교에 입학한 날부터,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선택을 해야 했다. 아주 간단하지만, 끝까지 해내기가 무척 어려운 선택이다.
  —누구보다 먼저 어른이 될지, 아니면 다른 애들처럼 미쳐 날뛸지.
  일본 초등학교에 있을 때, 나는 ‘먼저 어른이 되는 길’을 골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날뛰고 다니면 언제든 날뛴 쪽이 욕 먹기 마련이다. 설령 차별을 받는다 해도, 날뛰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비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침 우산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빗속을 걷고 싶었다. 젖은 도로에 자동차 불빛이 반사돼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났다.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 차에 차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차도로 뛰어들려면 인도 옆에 심어놓은 식물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내겐 그런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리를 끌듯 걸었다. 차가 지나가지 않으면 인도는 새카만 어둠이었다. 달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찰서에도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남자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겠지. 목만 졸랐다면 경찰서로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어.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경찰서에 가기는 커녕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리고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비와 눈물이 뒤섞인 덕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았다.
  엄마는 그날 내가 학교에 안 왔다는 연락을 받은 후, 경찰서까지 전화를 하며 하루 종일 소동을 피웠다고 했다. 나는 죄송하단 말도 없이 곧장 방으로 들어가 치마저고리부터 벗어 던졌다.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었지만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치마저고리는 더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비에 흠뻑 젖었으니 상관없다. 몸과 얼굴에도 큰 상처나 멍은 없었다. 여기가 아파, 라고 말하지 않는 한 상처는 없었다. 내 몸에 손을 대는 게 너무 무서웠다.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래. 아무도 날 덮치지 않았어. 더럽혀진 것도 아니고, 멍이 들 정도로 폭행을 당한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괴롭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 따윈 나와 함께 다 망해버리면 좋겠어. 제우스의 번개가 우르릉 쾅쾅 내리쳐, 후지산이든 한라산이든 백두산이든 다 산산조각 나면 좋겠어. 어차피 국경 같은 거 누군가의 낙서잖아. 왜 그 따위 낙서 때문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해. 왜.
  “지니야!” 1층에서 날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온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둘러 방 안 가구들을 문 앞으로 끌어왔다. 그래도 엄마는 억지로 방문을 열려고 온 힘을 다해 문을 밀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책꽂이까지 끌고 와 책을 마구 집어넣었다. 엄마 혼자 힘으로는 방법이 없었다.
  “지니야, 무슨 일 있었니? 제발 부탁이야, 말해줘.”
  엄마는 연약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부탁이야”하고 한 번 더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고 있었니? 오늘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간 애는 한 명도 없었어. 지니 너밖에 없었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다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갔단다. 어제 오후부터 벌써 미사일 뉴스가 보도돼서, 오늘부터는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기로 결정이 돼 있었대. 그런데 네가 사라져서, 정말 난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엄마는 괴로운 듯 숨을 뱉으며 콧물을 훌쩍였다.
  나는 오늘 하루 내게 쏟아져 내린 악몽을 하나하나 곱씹어 생각하며, 참을 수 없이 솟구치는 분노와 절망을 제자리로 밀어 넣으려는 듯 손톱으로 팔뚝을 할퀴었다. 겹겹이 쌓인 가구들 앞에 등을 둥글게 말고 무릎을 감싸고 움츠리고 앉아 몇 번이고 팔을 할퀴었다. 피부가 벗겨져, 작은, 정말로 작고 흰 피부가 산과 골짜기처럼 생겨났다. 그 사이로 붉고 가는 마그마처럼 열기를 품은 한 줄기 강이 흘러넘치듯 손목으로 흘러내렸다. 강은 점점 더 불었다.
  “학교, 예전으로 돌아갈까.” 엄마가 말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한번 “일본학교로 돌아갈까?”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고 엄마는 참을성 있게 내 대답을 기다렸다. 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엄마의 각오가 느껴졌다. 대답을 듣기 전까진 떠나지 않을 테세였다.
  “이젠 못 돌아가.” 분명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무슨 뜻이야? 어째서 못 간다는 거야.”
  “돌아갈 수 없어. 그뿐이야.”
  “제발 부탁이니 말 좀 해봐. 오늘 학교 근처에서 자전거 탄 남자가 한 학생한테 침을 뱉었대. 너도 오늘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
  “아무 일 없었어?”
  “응.”
  “정말로?”
  나는 다시 침묵했다.
  “근데 소리는 왜 질렀어. 뭐가 있었으니까 소리 지른 거잖아.”
  “글쎄. 나도 몰라.”
  “지니야, 부탁이야. 제발 말해줘.”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나 좀 내버려둬!”
  나는 문을 향해 책을 던졌다.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문 너머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온몸이 묵직해졌다. 그 중력에 몸을 맡기고 땅속 관으로 들어가버리고 싶었다. 누구의 우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지긋지긋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무거운 눈꺼풀을 감았다. 지쳤어. 너무 힘들어. 이도 저도 다 싫어. 깨끗이 사라져버리면 좋겠어. 난 그저 혼자 있고 싶을 뿐인데. 이대로 잠들어 두 번 다시 깨지 않으면 좋을 텐데.

처음이자 마지막 혁명

  무용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각기 교실로 돌아갔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제일 빨리 체육관에서 뛰어나왔다. 오른쪽에 있는 중등부 건물을 향해 바람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조선학교 건물 외관은 잿빛 콘크리트뿐이라 흡사 폐허와도 같았다.
  로비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지도 않고 교실로 달려 올라갔다. 아무도 없다. 조용하다. 선생님도 경비원도 누구도 없다. 나의 발소리와 헐떡이는 소리만 복도를 울렸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단을 달렸다. 두 칸씩 뛰어오르며 가볍게 점프했다. 1학년 교실은 제일 높은 층이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1층, 2층, 3층, 몇 번이고 원을 그리며, 이윽고 4층 교실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아주 신성한 장소처럼 보였다. 배란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반쯤 커튼에 가려, 부드러운 빛의 그림자가 교실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교실이 한층 더 사랑스러워 보이도록 연출한 것 같았다. 빛 속을 날아다니는 먼지마저도 작은 요정 같다. 다만 칠판 위에 언제나처럼 버티고 앉은 김씨 일가가 그걸 더럽히고 있었다. 북조선은 지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경 너머 일본의 조선학교까지 그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마라. 학교의 체제 때문에, 어른들의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내 친구까지 상처 입게 된다면, 학교랑 같이 박살 내버리고 네놈들도 지옥으로 보내주겠다.
  나는 내 책상으로 달려가 서둘러 가방에서 성명문을 꺼내 다시 복도로 나갔다. 이미 계단을 올라오는 학생들의 무수한 발소리가 들렸다. 순진한 웃음소리부터 남자애들이 장난치는 소리도 들린다. 성명문 수십 장을 적당히 손에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단숨에 내던졌다. 종이가 공중에 흩날렸다. 바로 앞에 떨어진 것도 있고, 예상대로 아래층으로 떨어진 것도 있었다. 수많은 종이가 변화와 자유를 찾아 날갯짓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복도에도 뿌려대며 씩씩하게 걸었다. 기다란 복도에 종이가 삼색 고양이 얼룩처럼 듬성듬성 떨어졌다.
  “뭐가 떨어져.” 한 남자아이의 조선말 소리가 계단에서 울렸다. 그 목소리를 뒤로하고 후다닥 교실로 돌아가 교탁 위로 올라갔다. 몇 장 안 남은 성명문을 천장으로 집어 던져 다 뿌렸다. 최후의 성명문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처럼 확실한 흔적을 남기며 떨어졌다. 그런 다음 칠판 쪽으로 뒤돌아 초상화에 손을 뻗었다. 초상화는 줄에 걸려 있어서 간단히 뗄 수 있었다. 벽에는 깔끔한 장방형 흔적이 남았다. 대체 얼마나 오래 교실에 걸려 있었으면 이렇게 진한 백색이 남았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지니야, 너 지금 뭐 해?”
  재환이 보건소에서 탈주한 광견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교탁 위에 서서 초상화를 안고 있는 날 올려다봤다. 만약 그날 게임센터에 재환이 나타났더라면 어땠을까─문득 그런 생각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지니야, 침착해.”
  재환은 나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다가오며 달래듯 말했다. 다른 애들은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케부쿠로 게임센터, 파르코 지하에.”
  “뭐?”
  “가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단숨에 초상화를 내동댕이쳤다. 비명이 일었다. 초상화는 마침 교탁 모서리에 부딪혔다. 액자 유리가 깨지며 파편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김정일은 드디어 맨살을 드러냈다. 뭐가 문제인지 알아냈니. 사진이 내게 속삭였다. 교실 출입문에는 사람이 잔뜩 모였다. 그들 모두 숨죽이고 있었다.
  “무슨 소란이냐.” 로리콘 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다.
  “북조선은—“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살인자의 학생들이 아니다. 초상화는 지금이 순간부로 배제한다. 북조선 국기를 탈환하라!”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니, 너—“
  로리콘 교사는 교탁 위에 선 나를 보자마자 난생처음 보는 얼굴로 학생들을 밀치고 내게 달려왔다. 나는 교탁에서 뛰어내렸다. 베란다로 나가려 했을 때—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대포동이라도 장착한 건가—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로리콘 교사 다리가 책상에 매달린 가방에 걸리면서 책상이 쓰러지고 누군가의 교과서와 필통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 뒤로 량 선생님도 쫓아왔다. 초조해진 나는 베란다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문 유리가 깨지나 싶을 만큼 큰 소리가 났다. 하지만 확인할 여유 따윈 없다. 4층에서 내려다보니 학생들을 이미 건물 안으로 이동한 듯했다. 밖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 지금이 찬스다. 팔을 뒤로 크게 저어 두 개의 초상화를 냅다 밖으로 던졌다. 지면에서 완전히 붕괴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기도 전에, 나는 로리콘 교사와 량 선생님에게 두 팔이 잡혀 질질 끌려 들어왔다.
  차마 재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자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복도까지 끌려 나왔을 때, 훌쩍이는 소리의 주인이 윤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왜.”
  윤미의 입 모양이 그렇게 움직인 듯 보였다. 니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천국에 계신 할아버지께

  만약 눈앞에서 아이들이 괴로워하고 있다면. 만약 어른들이 자존심을 조금만 버려도 수많은 일들이 해결된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어른은 아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세상의 차별과 불평 등에 목소리를 내다 주류에서 외면당한다 해도. 그것이 민족의식 강화를 촉구하는 길이 아닐까. 강연회에 가도 옛날 조선 이야기만 해. 현재 문제로 들어가면 다들 한국 측 시점에서 역사 문제를 들여다봐. 민감하지 않은 남북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얘길 하지. 우리가 조선학교에 있는 한, 끝까지 북조선 문제를 파고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교내에 한국 대통령 초상화가 있나. 없어.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어째서 지금 이 순간의 북조선 문제를 외면하려고 하지. 학교는 정치와 상관없다고들 해. 그렇다면 어째서 정치적인 것이 교내에 있지. 감사의 표현이라니, 세상에 그런 이유가 어디 있어. 감사한 사람만 알아서 감사하고, 아이들을 위해 사진은 떼도 되잖아. 어른들은 치사해.
  아이들을 협박하는 일본인이나, 아이들이 희생돼도 변함없는 학교 인간들이나, 간단히 사람 목숨을 빼앗는 빌어먹을 김씨 독재자나, 전부 다 같이 엿이나 먹어라. 할아버지, 난 절대 외면하지 않겠어. 어떻게 외면해. 만난 적은 없지만 피로 이어진 가족이 북조선에 있는데. 그러니 할아버지, 난 결단코 외면하지 않을래. 모두를 다 적으로 돌린다 해도 외면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할아버지, 하나만 알려주세요. 할아버지는 진짜로 북조선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서 그런 편지를 보낸 거예요? 그렇게 안 쓰면 위험했던 거죠? 진짜 할아버지 눈으로 직접 본 건 뭐였나요? 편지를 슬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나는 할아버지의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줬어요. 난 눈곱만큼도 좋은 아이로 자라지 못했어. 할아버지의 딸 애린. 애린의 남편이 된, 지니의 아빠. 두 사람에게 남은 건 무너져버린 작은 가족뿐이야. 밥도 못 먹고, 면회 올 때마다 말라가는 걸 알 수 있어요. 엄마 아빠 등에는 말이죠, 피로감, 이라고 크게 박힌 글자가 보여. 난 가족의 웃는 얼굴을 빼앗았어요. 할아버지, 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니나는 쇼크로 등교도 못 해. 지금은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대. 그런 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치마 저고리를 입고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길 바란 것뿐인데. 천국에서 이 편지를 읽고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죠. 난 이제 어쩌면 좋아. 내가 맞서야 할 상대는 어디일까요. 누구일까요. 내가 틀린 거예요? 나는 이름을 잃어버렸어요. 더는 일본 이름도, 한국 이름도, 어느 쪽도 말할 수 없어요. 아무래도 그런 기분이 들어. 싸우고 싶어도 내 결의가 불꽃처럼 흔들리며 흩어지는 것만 같아. 학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안에 모순이 느껴져요. 조선학교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다니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였을까. 의문을 품은 인간은 묵묵히 떠날 수밖에 없는 걸까. 학교에 다니는 위험이란 과연 뭘 말하는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켜 혼란이 커져만 가요. 그러니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할게요. 하지만 잊을 수는 없어. 잊을 리가 없어. 그럴 수 있다면, 언젠가 할아버지와 함께 다 같이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길 바라는 절 용서해주세요.
  지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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