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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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초롱불 외 4편

평론: 오형엽

'밤'의 아우라와 한국적 이미지즘 - 박남수의 시 5편

오형엽(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초롱불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밑에
행길도 집도 아주 감초였다.

풀 짚는 소리따라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

山턱 원두막일상한 곳을 지나

묺어진 옛 城터일쯤한 곳을 돌아

흔들리든 초롱불은 꺼진듯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든 초롱불……

「초롱불」 전문1)

   첫 시집 『초롱불』의 표제 시인 이 작품의 기본 구도를 이루는 것은 “밤하늘 밑”의 ‘어둠’과 “초롱불”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의 ‘대비’인데, 여기에 “풀 짚는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개입하면서 ‘조화’의 구도가 형성된다. 1연은 시적 아우라를 이루는 ‘어둠’을 묘사하고, 2연은 이에 대비되는 “초롱불”을 제시하는 동시에 “풀 짚는 소리”를 결부하면서 시적 주체의 움직임을 묘사한다. 움직임의 주체는 베일에 감추어져 있고, “풀 짚는 소리”와 “초롱불”이라는 이미지만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은폐된 주체와 그것을 대신하는 시각·청각적 이미지의 형상화는 일면 T. E. 흄의 반인간주의와 T. S. 엘리엇의 몰개성론과 객관적 상관물 이론으로 대표되는 영미 모더니즘, 특히 주지적 이미지즘의 미학적 원리와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시가 보여주는 서구적 미학과의 변별성은 3∼5연에 제시되는 소멸의 아우라와 비애의 감응에서 비롯한다.
   시적 주체의 움직임은 3연의 “산턱 원두막일상한 곳”, 4연의 “묺어진 옛 성터일쯤한 곳” 등을 거쳐 5연에 이르러 명멸하며 소멸하는 듯하다. 과거의 원형이 덧없이 소실되고 퇴색한 장소를 경유하면서 “초롱불”로 암시되는 주체의 움직임은 멈추고 소멸하는 것이다. 이 소멸의 아우라 속에 비애의 감응이 스며드는데, 이러한 미학적 특성을 일단 ‘동양적 모더니즘’이나 ‘한국적 이미지즘’이라고 명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미학성은 시적 배후로서 “밤하늘 밑”의 ‘어둠’이 부여하는 적막감과 주체로서 “풀 짚는 소리따라” “어디로” 가는 “초롱불”의 운동성이 대비적 구도를 형성하면서 마침내 소멸의 아우라와 비애의 감응으로 귀결하는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동양화나 문인화의 기법을 연상시키는 박남수 초기 시의 ‘다중 묘사’의 기법은 이러한 ‘동양적 모더니즘’ 혹은 ‘한국적 이미지즘’의 미학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 미학성의 핵심은 마지막 연의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든 초롱불……”에서 함축적으로 제시된다. “초롱불”이 시적 주체를 암시한다. “조용히”와 “흔들리든”은 그 내면적 감응과 양상을 양극의 결합으로 제시한다. “흔들리든”이 “어디로” 가는 주체의 지향성이나 운동성을 포함하여 내적 갈등과 고통의 파동을 암시한다면 “조용히”는 기본적으로 주체의 정태적 양상을 암시하지만, 깊이 음미하면 “흔들”림을 제어하는 시적 배후로서 ‘어둠’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영향을 받아 생겨나는 소멸의 아우라와 연관되는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주체’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후’가 형성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역학 관계가 박남수 시의 ‘동양적 모더니즘’ 혹은 ‘한국적 이미지즘’의 미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갈매기 소묘(素描)

2
바람이 일고
물이
결을 흔드는
그 설레임에
떠 있던
갈매기는 그저
뒤차기는
한 가운데서
中心을 잡고
있었다.

3
내려 꼰지는
바람의 方向에
꼰지고,
튀치는 바람결에
물 面을 차고,
치솟아
어지러운 바람 속에
갈매기는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중략)

7
없는 오늘에
갈매기는

있었다.
없는 바람 속에
내려 꼰지는
方向으로 꼰지고,
튀치면 튀솟는
제 그림자.
어쩌면
갈매기는
六面 거울 속에
춤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갈매기 소묘(素描)」 부분

   두 번째 시집 『갈매기 소묘』의 표제 시인 이 작품에서 “바람”과 “갈매기”의 내밀한 관계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2장에서 “바람”과 “물”은 상호 길항하면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데, 여기에 “떠 있던 / 갈매기”가 “중심을 잡고 / 있”는 모습은 “바람”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넘어서 정중동(靜中動)을 추구하는 시적 주체의 지향성을 암시한다. “바람”과 “갈매기”의 이러한 관계는 3장에서 더 강화되면서 전개된다. “갈매기”는 “내려 꼰지는 / 바람의 방향에 / 꼰지”지만 “튀치는 바람결”에 맞서서 “물 면을 차고, / 치솟아” 몸을 “가다듬으며 / 눈을 / 감”는다. 시적 주체가 고독의 감응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성을 보여주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몸을 “가다듬으며 / 눈을 / 감”는 정중동의 경지는 이 작품에서부터 생겨나는 시적 변모의 특성을 보여준다.
   한편 첫 시집의 특성인 시각·청각적 이미지의 대비와 조화, 시적 주체의 고독의 감응, 이를 극복하려는 운동성 등의 요소들을 수렴하고 결집하는 “바람”의 모티프에서 시적 주체를 상징하는 “갈매기”의 모티프가 분리되면서 파생해 나온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과 「바람」을 비교하면, “바람”이라는 일원적 종합의 모티프로부터 외부 현실의 파동으로서 “바람”의 모티프와 시적 주체의 분신으로서 “갈매기”의 모티프가 분리되고 파생하면서 개별적 고유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7장의 “없는 오늘에 / 갈매기는 / 떠 / 있었다”라는 문장에서 주체의 분신인 “갈매기”는 현존 상태가 아니라 과거적 존재를 투영한다는 것이다. “없는 바람 속에” “꼰지고” “튀솟는” “제 그림자”와 “육면 거울 속에 / 춤추”는 “갈매기”는 현존하는 실재가 아니라 기억이나 무의식의 투사를 통해 관념으로 존재하는 이미지의 위상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새 1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새 1」 전문

   세 번째 시집 『신의 쓰레기』의 첫머리에 놓인 이 시의 3장에서 화자는 “새”를 “순수”라고 지칭함으로써 은유를 형성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행 연구들이 “새”가 지니는 “순수”의 의미를 관념의 절대 세계로 귀결시켜 해석해 온 것은 3장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포수”가 “한 덩이 납”이라는 인식의 수단이나 매개인 언어로 “쏘”아서 떨어뜨린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를 본질 획득에 실패한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순수”를 관념의 본질적 세계, 이데아로 해석하고, 이 시를 순수 관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의 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기존의 해석을 수용하지만, “새”가 이와는 대립하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포수”가 “한 덩이 납”이라는 물질적이고 문명적인 도구로 “쏘”아서 떨어뜨린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를 자연 자체의 생명성 획득에 실패한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순수”를 자연의 생명적 실재로 해석하고, 이 시를 순수 자연의 실재를 추구하는 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2) 그렇다면 이 시에서 “새”가 지니는 “순수”의 의미는 순수 관념의 절대와 순수 자연의 실재, 즉 형이상(形而上)의 세계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라는 상호 대립적인 해석이 동시에 가능해진다. 이 시의 구조와 의미가 복잡하고 미묘한 이유는 이 모순적 양극이 공존하면서 비약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1장과 2장에서 “새”가 지니는 “순수”의 의미는 순수 관념의 절대라기보다는 순수 자연의 실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장에서 “새”는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노래”하고,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부리를 / 서로의 죽지에 파묻”는다. 여기서 “모르고”라는 시어에 주목하면, “새”의 행위는 의식과 자각을 벗어나 자연 자체의 무구성을 체현한다. 즉 인위성을 벗어난 순수 생명체의 무위(無爲)를 보여주는 것이다. “새”가 지니는 이러한 “순수”의 의미는 2장에서 더 분명히 제시된다. “새”의 “울”음이 “뜻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은 그것이 의미의 차원, 즉 인간적 의미 부여 이전에 존재하는 순수한 자연적 생명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지어서 교태로 /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라는 문장도 의도성과 장식성을 벗어나는 순수 자연의 실재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전체적 구조와 의미에 대해 세 가지 방향의 해석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가능한 해석은 1~2장의 전반부와 3장의 후반부로 구분할 때, 전반부에 나타나는 “새”가 지니는 “순수”의 의미인 순수 자연의 실재를 후반부에도 적용하여 작품 전체를 일관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3) 두 번째 가능한 해석은 시인이 이 작품을 창작할 때 “새”가 지니는 “순수”의 두 가지 차원, 즉 순수 자연의 실재와 순수 관념의 절대라는 상호 대립적 차원을 혼용했기 때문에 작품 전체에 두 가지 의미가 혼재하면서 결합해 있다는 것이다. 4)이 글은 이러한 두 가지 해석보다 셋째 해석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분석을 시도한다. 세 번째 가능한 해석은 “새”의 “순수”를 전반부에서 순수 자연의 실재로 간주하는 반면 후반부에서 순수 관념의 절대로 간주하고, 작품 전체의 시상 전개가 전반부의 즉물적 형이하(形而下)의 차원을 토대로 후반부에서 관념적 형이상(形而上)의 차원으로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모순적 결합을 시도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전반부의 “새”가 즉물적 자연으로서 형이하의 세계인 반면, 후반부에서는 “그 순수”를 “납”으로 쏘아 얻어지는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가 즉물적 자연물 자체이므로 “새”는 관념적 형이상의 세계로 전이되며, 따라서 전반부의 수평적 구도가 후반부의 수직적 구도로 비약하면서 작품의 구조상 균열을 안은 채 모순적으로 결합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3장의 1행에 붙어 있는 ‘줄표(―)’를 이러한 균열을 가진 단절이나 비연속적 도약을 의미하는 시인의 무의식적 기호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神의 쓰레기

天上의 갈매에서
부어내리시는
부신 볕은
다시 하늘로 回收하지 않는
神의 쓰레기.
*
아침이면
비둘기가 하늘에



굴리면서
記憶의 모이를
좇고 있다.
다스한 神의 몸김을
몸에 녹이면서.
*
神의 몸김을
몸에 녹이면서
하루 만큼씩 밀려서 버려지는
무엇인가 所重한 것을
詩人들은 종이위에 버리면서
오늘도 다시
하늘로 歸巢하는 비둘기.

「神의 쓰레기」 전문

   이 시는 “천상”과 ‘지상’의 이원성에 기초하여 ‘수직성의 구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박남수 시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1연에서 “천상”의 “신”이 “부신 볕”을 지상에 “부어내리시”고 “다시 하늘로 회수하지 않는” 것은 신의 증여, 즉 은총을 표현한다. 그런데 은총의 의미를 가지고 ‘하강’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볕”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상”의 “신”이 지상에 “부어내리시”는 “부신 볕”은 순수 관념의 절대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기 쉽지만, 화자는 그것을 “쓰레기”라고 표현함으로써 즉물성, 즉 사물의 실재성을 부각한다. “부신 볕”을 즉물성이나 사물성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것이 다시 “하늘로 회수”되지 않는다는 점과 밀접히 연관된다.
   편 2연에서 “비둘기”는 “기억”을 “좇”는 장소가 “하늘”이고 “신의 몸김”을 받아들이므로, ‘하강’의 이미지인 “부신 볕”의 즉물성이나 사물성과는 달리 ‘상승’의 이미지로서 순수 관념의 절대에 접근하는 듯하다. 3연의 마지막 문장인 “하늘로 귀소하는 비둘기”에서도 하늘을 향한 귀소성, 향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인용한 시는 수직적 구도하에 “부신 볕”과 “비둘기”의 관계를 즉물성과 관념성, 하강과 상승 등의 대립 개념으로 설정하고 양극의 길항과 긴장을 형상화한다. 「새 1」이 “새”를 통해 순수 자연의 실재를 토대로 순수 관념의 절대로 도약하고 비상하는 시상 전개를 보여준다면, 「신의 쓰레기」는 순수 자연의 실재와 순수 관념의 절대를 지상과 천상의 이원적 구도로 설정하고, 즉물성과 관념성, 하강과 상승 등의 양극을 긴장 관계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양극의 대립 속에는 상호 연쇄적 관계가 잠재한다고 볼 수 있다. “신의 몸김을 / 몸에 녹이면서”라는 구절이 2연의 말미와 3연의 초두에 반복하면서 연쇄의 고리로 작용하므로, 2연의 “비둘기”와 3연의 “시인들”은 일맥상통하면서 동궤에 놓인다. 한편으로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종이 위에 버리”는 “시인들”은 1연의 “부신 볕”이 가지는 즉물성과 하강의 속성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1연에서 “신의 쓰레기”로 묘사된 “부신 볕”의 즉물성과 하강의 속성은 2연에서 “기억”을 “좇”는 “비둘기”와 3연에서 “하늘로 귀소하는 비둘기”의 관념성과 상승의 속성으로 변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3연의 “시인들”은 이러한 연쇄 구조 속에서 “신의 쓰레기”의 속성뿐 아니라 “하늘로 귀소하는” 속성을 동시에 가짐으로써 즉물성과 관념성, 하강과 상승 등의 양극을 동시에 한 몸에 껴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용한 시는 “천상”과 ‘지상’의 이원성에 기초를 두어 ‘수직적 구도’를 제시하지만, ‘순환적 구도’의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배태하고 있다. 박남수의 시에서 ‘수직적 구도’가 ‘순환적 구도’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은 네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이다.

새의 암장(暗葬) 3

땅 속을 자맥질 하던
한 쭉지의 날개는
三千年의 季節을 넘어서, 지금
이승 쪽으로 떠 오르고 있다.

高句麗의 하늘이었을까, 아니면
濊貊의 하늘이었을까
부릉 날아 오른 활촉에
꿰뚫린 것은 새가 아니라, 그것은
죽음에 앞지른 絶叫,
一瞬 後에
새는 피를 쓰고 곱게 落下하였다.
*
땅에 떨어져 내린
한 쭉지의 날개는 地下로 降下하여
어느 地層을 날아가고 있었다.

피를 앞지른 絶叫.
사람의 귀에 세운 不立文字.
化石은 어느 標本室
유리창 속에서 證言하고 있다.

「새의 암장(暗葬) 3」 부분

   이 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새”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지하”의 “지층”에서 “이승”으로 “떠 오르”는 ‘새’를 형상화한다. 이 시는 “저승”과 “이승”의 수직적 구도를 근간으로 “지하”와 “지상”, ‘하강’과 ‘상승’ 등의 대립 개념들을 동반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대립까지 개입시킨다. “고구려”나 “예맥”의 “하늘”에서 “죽음에 앞지른 절규”를 뱉고 “낙하”했던 “새”는 “삼천년의 계절을 넘어서” “이승 쪽으로 떠 오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지하”의 “지층”은 ‘시간의 지층’으로서 “저승”의 공간성과 ‘과거’의 시간성을 결합하면서 누층적 구조를 형성한다. 이 시를 통해 박남수의 네 번째 시집 『새의 암장』은 ‘밤’이나 ‘어둠’이 가지는 물상의 ‘에로스적 모태’이자 ‘타나토스적 심연’이라는 양가성의 연장선에서 양자의 투쟁을 동반하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로질러 순환하는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시집 『신의 쓰레기』의 「신의 쓰레기」에서 배태된 ‘순환적 구도’는 네 번째 시집 『새의 암장』의 「새의 암장 3」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결국 박남수의 시적 전개는 초기 시의 ‘수평적 구도’가 중기 시의 ‘수직적 구도’로 이동한 이후 네 번째 시집에 이르러 ‘밤’이나 ‘어둠’의 모티프를 통해 시적 상상력을 물상의 모태와 심연, 이승과 저승의 영역으로 넓히면서 ‘순환적 구도’로 이동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시선 책표지

갈매기 소묘(素描)

저자: 박남수  출판: 춘조사  출간: 1958년

초롱불

저자: 박남수  출판: 삼문사  출간: 1940년

신(神)의 쓰레기

저자: 박남수  출판: 모음사  출간: 1964년

새의 암장(暗葬) 3

저자: 박남수  출판: 문원사  출간: 1970년

새 壹

저자: 박남수  출간: 1959년 3월


본 저작물은 저작권법 제50조에 의거하여 이용 승인을 얻은 저작물임(법정허락-2022.  9.  29.)


박남수 약력

평안남도 평양 출신 시인(1918~1994), 일본 유학 후 조선식산은행에서 근무, 1·4후퇴 당시 월남하였다. 문화예술 편집위원, 한국시인협회 창립회원 및 심의위원회 의장, 사상계 상임편집위원, 한양대학교 문리 강사 등을 역임하다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39년 문장에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데뷔하고난 뒤, 『초롱불』, 『갈매기 소묘(素描)』, 『신(神)의 쓰레기』, 『새의 암장(暗葬)』 등 8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표지이미지 ⓒ 지식을만드는지식

참고자료

1) 박남수,『박남수 전집 1․시』,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8, 30쪽. 이하 박남수 시의 인용은 이 책에 의거한다.
2) 일반적으로 언어는 물질적 매개, 정신적 개념, 지시되는 사물 등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고, 이 세 가지 요소가 일치할 때 언어적 차원의 진리에 도달한다. 시의 차원에서 이 세 가지 요소는 차례로 시어(매개), 관념(의미), 대상(세계) 등으로 부를 수 있다. 박남수의 「새 1」에서 “새”의 “순수”를 순수 관념의 절대로 해석하는 것은 ‘시어(매개)’를 ‘관념(의미)’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고, 순수 자연의 실재로 해석하는 것은 ‘시어(매개)’를 ‘대상(세계)’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에 해당한다.
3) 이 관점은 3장에서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와 대비되는 “순수”를 죽음의 사물성과 대비되는 생명의 자연성으로 이해하면서 순수 자연의 실재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남수 시의 전체적 전개 과정에서 이 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해석은 일면적 해석의 단순성에 빠질 우려가 있다.
4) 이 관점은 “새”의 “순수”가 전반부에서 순수 자연의 실재라는 의미가 큰 비중을 가지지만 순수 관념의 절대라는 의미도 혼재되어 있고, 후반부에서 순수 관념의 절대라는 의미가 큰 비중을 가지지만 순수 자연의 실재라는 의미도 혼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박남수의 시작(詩作)은 전반적으로 의식적이고 자각적인 현대성의 방법론에 근거하므로, 이 관점도 부적절한 해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 약력
오형엽 작가 프로필 사진

오형엽,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며 한국문학평론가협회와 한국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94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당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비평집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환상과 실재』, 『알레고리와 숭고』 등을 저술하였다.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 편운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가 있으며 월간 『현대시』 주간, 계간 『현대비평』 주간으로 집필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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