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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운명 외 1편

도종환

운명

운명이라 말할 때
두 입술을 가지런히 모은다

큰 소리로 운명이라 말하지 않기로 한다

순식간에 반 토막 난
네 운명을 지켜본 뒤부터

운명에 대해 겸손해지는 전 과정을
인생이라 한다는 걸 안 뒤부터

고향

그는 내가 이 노래를 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그가 일어나 느린 음성으로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하고 노래를 시작하면
왁자하던 술자리가 수굿해진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하고 이어가면 우리도 눈을 감는다
눈 뜨고 사는 모든 곳이 타향이었으므로
눈을 감아야 고향으로 간다
진달래 저 혼자 피고 지는 고향
노인 몇이서 겨우 지키고 있는 고향
마을로 들어서는 구부러진 길
여전히 고적한 그곳
요즘 아이들은 고향이 없어서
나이 든 우리만 지니고 있는 애틋한 곳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면
우리도 하얗게 바람에 날리는 곳
고개 너머 또 고개 아득한 그곳

필자 약력
프로필_도종환.jpg

도종환.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부드러운 직선』,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사월 바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 정순철 평전 『어린이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신석정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제19-20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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