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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구메지마

김숨

   일러두기

   1945년 8월 20일 오키나와 제도에 속하는 구메지마(久米島)에서 일본군들에 의한 조선인 일가 몰살 사건이 있었다. 구중회 씨(일본 이름 다니카와 노보루, 51세)와 우타 씨(오키나와 출신, 36세), 그리고 그들의 다섯 아이(10세, 8세, 6세, 3세, 생후 일 년 남짓의 유아)는 그 섬에 주둔해 있던 일본 해군 통신대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일본 해군 통신대는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 이후에도 구메지마에 주둔한 미군들에 대항하며 주민들을 스파이로 몰아 학살했다. 구 씨는 조선인이라는 것과 고물상을 하며 구메지마의 마을들을 돌아다닌 것이 미군의 스파이라는 오인을 일으켰다. 이 소설은 구메지마에서 실재했던 구 씨 일가 몰살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 사건에 대한 증언들 간에 다소 차이가 있어서, 사실적인 부분을 서술할 때 특정 증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1

   조각배처럼 흔들거리는 우타의 품에는 작년 이맘때 태어난 아기가 안겨 있었다. 벼 베기와 담뱃잎 수확이 한창일 때 아기는 태어났다. 우타는 저녁 내내 집요하게 보채는 아기를 재우려 애쓰고 있었다. 여름 감기에 걸려 밤새 고열에 시달린 야에코는 혼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여덟 살인 아야코는 산수를 풀고 있었고, 여섯 살인 쓰구오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 나는 문지방 앞에 멀거니 앉아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른 저녁으로 감자를 먹을 때까지도 마당을 돌아다니며 풀씨를 쪼아 먹던 닭 두 마리는 닭장에 들어가 있었다. 닭장이 텅 빈 게 아닐까 싶게 닭들은 조용했다.
   북쪽에서 수컷 산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쓰구오가 말했다.
   “엄마, 어제 가즈오 형하고 산양을 보러 갔는데 오가타 할아버지가 산양을 세고 있었어요.”
   “쓰구오, 또 돌멩이를 던진 건 아니겠지?”
   우타가 그렇게 물은 건 쓰구오가 산양 우리 안으로 돌멩이를 던진 일로 오가타 씨가 흥분해서는 우리 집을 찾아온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오가타 씨를 직접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으로, 그전에 나는 그가 다소 괴팍한 노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얽은 얼굴이 꼭 성난 표정의 시사 1)같은 그가 우리 집 마당에서 불같이 화를 내던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심으로 그에게 거듭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튿날 나는 뽕나무 잎과 열매를 한 자루 뜯어 산양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마침 산의 뽕나무마다 까마귀의 눈동자만큼 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엄마, 근데 산양이 세 마리밖에 없었어요.”
   “쓰구오?”
   “엄마, 나는 그냥 산양들을 놀래 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돌멩이를 던진 거란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수컷 산양이 우는 소리는 무척이나 가깝게 들려왔다. 집 뒤 들판에서 울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오가타 씨의 산양 우리는 우리 집에서 삼백 미터쯤 떨어진 우에즈 저수지로 가는 길에 있었다. 거북 모양의 돌 무덤을 지나면 둥근 바위가 불쑥 솟아 있었는데 그 뒤편에 있었다. 작년 여름에 나는 가즈오와 쓰구오를 데리고 우에즈 저수지를 찾아가다 산양 우리를 봤다. 나무 판때기를 이어 붙여 울타리를 둘러친 산양 우리는 집 한 채를 지어도 될 만큼 컸다. 이 섬뿐 아니라 오키나와 본섬 어디서도 나는 그 산양 우리보다 크고 멋진 산양 우리를 보지 못했다. 산양 우리 한가운데에는 웅덩이와 바위, 소철 나무가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우에즈 저수지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던 길이었다는 걸 깜박하고 산양들을 구경했다. 새끼를 가져 배가 부른 암컷 산양이 겁을 집어먹고는 수컷 산양의 뒤로 가 숨었다. 졸고 있던 수컷 산양이 희고 깡마른 몸을 몹시 천천히 일으키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웅덩이 근처에서 놀고 있던 새끼 산양 두 마리는 한 몸처럼 꼭 붙어 구석으로 달아났다. 우타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언젠가 이 섬에서 산양을 키우고 싶었다.
   “엄마, 산양이 세 마리밖에 없었어요. 하나, 둘, 셋. 그런데 오가타 할아버지는 산양을 계속 셌어요. 넷, 다섯, 여섯, 일곱.”
   쓰구오의 말대로 오가타 씨의 산양 우리에는 산양이 세 마리뿐이다. 하지만 한때 일곱 마리까지 있었다.
   지난봄에 나는 경방단2)원들이 오가타씨의 산양 두 마리를 몰고 우에구스쿠3) 산으로 올라가는 걸 봤다. 가오리처럼 생긴 이 섬 전체가 손바닥처럼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곳에는 야마토4)사람인 가야마 대장의 군대5)가 머물고 있었다. 섬 주민들은 그들을 산 군인이라고 불렀다.
   “엄마, 가즈오 형은 오가타 할아버지가 바보라서 산양을 세고 또 세는 거래요.”
   “쓰구오, 그 할아버지는 바보가 아니란다. 피난 명령이 내려졌을 때 사람들에게 물이 있는 곳으로 피신하라고 이른 분이 그 할아버지란다.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물이 흐르는 산으로 피신했단다.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사람들이 살 수 있었어.”
   “네, 감자하고 물만 있어도 사람은 살 수 있으니까요!”
   미군 천여 명이 전차 다섯 대와 함께 이 섬의 남동쪽 이후 해변에 상륙한 것은 두 달여 전인 6월 26일 새벽이었다.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과 우에즈 저수지에서 안개가 거미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날 새벽, 나는 잠결에 거대한 철문 같은 게 서서히 열리는 소리와 쿵 하고 묵직한 게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총성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식경쯤 지나서였다. 날이 환하게 밝고 경방단원들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피난 명령을 통보했다. 마침 섬에는 중일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이가 있었는데 공포에 질려 떠들고 다녔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중국 난징에서 군인들이 주민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봤어! 여자들을 어떻게 욕보이는지 봤어!’ 농사를 짓고 바닷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이 섬의 주민들은 피신이 뭔지 몰랐다. 섬에 살면서 피신이라는 걸 한 경험이 없어서였다. 어찌할지 몰라 하는 주민들에게 오가타 씨가 물이 있는 데로 피신하라고 이른 것이었다.
   “엄마, 오가타 할아버지는 산 군인들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오, 그러니?”
   “네, 오가타 할아버지는 바보라서 산 군인들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오, 쓰구오. 누가 그러던?” 우타가 물었다.
   “가즈오 형이요.”
   우타가 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자 쓰구오가 말했다. “엄마, 나는 가즈오 형하고 강에 갔어요.”
   “쓰구오, 강에 언제 갔지?”
   우타는 아이들이 강에 가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곤 했다.
   “산 군인들이 강에서 칼로 돼지를 찢고 있었어요.”
   “쓰구오?”
   “가즈오 형하고 강에 갔을 때요. 검은 새끼 돼지였어요. 수염을 기른 군인은 담배를 입에 물고 씹으며 구경하고 있었어요. 새끼 돼지를 끌어안고 있던 군인들에게 수염을 기른 군인이 말했어요. ‘얼른 돼지를 부숴!’ 칼을 들고 서 있던 군인이 새끼 돼지에게 다가갔어요. 칼을 휙 내저어 새끼 돼지의 목을 찢었어요. 엄마, 새끼 돼지가 꽥꽥 소리를 지르며 피를 흘렸어요! 꽥 꽥 소리를 듣고 오가타 할아버지와 아저씨들이 강으로 달려왔어요. 오가타 할아버지가 두 발을 벌리고 서더니 소리쳤어요. ‘돼지를 내놔!’ 수염을 기른 산 군인이 욕을 하더니 오가타 할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어요. ‘영감, 우리가 저 돼지를 먹어야겠어.’ 화가 난 오가타 할아버지가 입을 벌리고 천둥 같은 소리를 질렀어요. 아저씨들이 다가가자 겁을 먹은 군인들은 새끼 돼지를 내던지고 도망갔어요.”
   “쓰구오, 쉿!”
   “엄마, 찢긴 새끼 돼지가 피를 흘리며 꽥꽥 소리를 질렀어요.”
   산 군인들은 섬 주민들에게 쌀과 고기, 달걀 등을 자신들의 식량으로 공출해 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축을 훔치곤 했다. 강에서 군인들이 칼로 찢고 있던 새끼 돼지도 훔친 것이었다.
   마당에 어스름이 깔려오는 걸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가즈오의 목소리가 집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기분이 몹시 이상했는데 순간적으로 그 애가 이 섬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착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쓰구오, 가즈오 형은 어디에 있지?”
   “가즈오 형은 사이판에 할머니를 만나러 갔어요!”
   “쓰구오, 거짓말을 어디서 배웠지?” 우타가 꾸짖었다.
   “정말이에요, 그 배를 타고 사이판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갈 거라면서 가네구스쿠 부두로 뛰어갔어요.” 이 섬의 서쪽 중간에 자리한 가네구스쿠 부두는 본섬과 다른 섬들을 오가는 배들이 들고 났다. 그곳에는 엔진을 단 사바니6) 십수 척이 정박해 있었다.
   “엄마, 근데 할머니는 가즈오 형의 할머니예요?”
   쓰구오가 그렇게 묻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애는 태어나서 할머니를, 그러니까 우타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계시다는 걸 그 애는 형인 가즈오에게 들어서 알았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쓰구오, 할머니가 보고 싶니?”
   “보고 싶어요!”
   “쓰구오, 너는 할머니의 얼굴을 모르지? 그런데도 할머니가 보고 싶니?”
   “난 할머니 얼굴을 모르지만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엄마, 나도 할머니가 보고 싶은걸요.” 아야코가 말했다.

   쓰구오가 연필심을 꾹 눌러 공책에 글자를 쓰는 소리가 방 안에 떠돌았다. 우타가 아기의 볼을 아주 살짝 꼬집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가 잠을 자야 엄마가 바느질을 하지.”
   우타의 앞에는 파란색 기모노가 펼쳐져 있다. 도리시마 마을의 여자가 맡기고 간 기모노였다. 우타의 바느질 솜씨는 얼마나 뛰어난지 소문이 돌고 돌아서 내 귀에까지 들어올 정도였다. 보름 전에도 나는 여자들이 아와모리7) 양조장 앞에 모여 서서 나누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조선인 고물상 마누라가 바느질을 얼마나 잘 하는지 한 손으로 기모노를 꿰맨대요.” “한 손은 뭐하고?” “자장자장 애를 재우지.” “밥에 넣을 콩을 까지.” 게다가 우타에게는 바늘과 실이 있었다. 그것들은 전시 중 국가 통제품으로 구하기가 어려웠다.
   아기가 잠들기는커녕 더 집요하게 보채자 우타는 웃옷을 풀어헤치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여보, 산 군인들이 정말로 갓난아기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공책 앞에 에 개구리처럼 엎드려 있던 쓰구오가 발딱 몸을 일으켰다. “군인들이 갓난아기를 죽였어요?”
   우타는 쓰구오가 묻는 말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낮에 우물에 물을 길러 갔다 여자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촌민처럼 위장한 산 군인들이 갓난아기가 우는 집에 뛰어 들어오더니 칡잎과 줄기로 친친 감은 칼을 빼들고 소리 질렀대요. ‘아기 우는 소리는 듣기 싫어! 아기가 계속 울면 아기를 죽일 거야!’”
   “엄마, 갓난아기를 죽였어요?”
   “쓰구오, 쉿!”
   쓰구오는 도로 개구리처럼 엎드렸다. 오가타 씨의 산양들이 또다시 울었다.
   “여보, 가야마 대장이 갓난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했으면 군인들은 갓난아기를 죽였겠지요?”
   “우타…….”
   그녀는 그러나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닭장의 닭들도 덩달아 울어대는 데다 쓰구오의 손에 들린 연필심이 툭 하고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봄에 산 군인들이 먹을 밥과 반찬을 만들어 산에 올라갔다 가야마 대장을 봤어요. 가야마 대장은 성터 가장 높은 곳에 지팡이를 짚고 서서 이 섬을 저주하듯 노려보고 있었어요. 소름이 끼치더군요. 그 전날 그가 자신의 부하를 처형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자신의 명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요. 나는 가야마 대장이 군도로 부하를 어떻게 죽였는지 경방단원한테 들었어요. 가마야 대장은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군도로 부하의 목을 내리쳤어요. 목이 반만 떨어진 부하가 피를 용암처럼 뿜으며 30여 미터를 달려가더니,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덤불에 쓰러졌어요.”
   나도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수레를 끌며 소 목장 근처를 지나가다 우에구스쿠 성터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것은 인간이 내는 소리였지만 인간이 흉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여보, 낮에 우물에서 만난 여자들 속에 스즈요 씨도 있었어요.”
   “누구?”
   “스즈요 씨요.”
   나는 스즈요 씨가 정말로 누군지 몰라서 물은 것이었지만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이 섬의 모든 사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고물상이었다. 수레를 끌고 이 섬을 순례하며 비누나 성냥 같은 생필품을 팔고, 고물을 사고팔았다. 감자나 고구마, 토란, 바닷고기를 받고 구멍 난 솥이나 냄비를 땜질해 줬다.
   “스즈요 씨하고 나는 가쥬마루 나무8)까지 말동무를 하며 걸어왔어요. 가쥬나무 아래서 그 여자가 그러더군요. ‘딸이 감기에 걸렸다면서요? 미군 약을 먹으면 감기가 낫는다지요? 미군 약을 먹었으니 딸이 나았겠어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내 딸이 미군 약을 먹고 나았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내가 빤히 바라보자 그 여자가 그러더군요. ‘다니카와 씨가 미군 야영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녀는 마을의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 같지 않다는 걸 부쩍 민감하게 느꼈다. 그 때문에 바느질을 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새된 비명을 지르곤 할 만큼 불안해했다. 오늘 아침에는 경방단 단장의 집에 다녀왔다. 아기를 업고 집을 나선 지 한참이 지나서야 단장의 집에서 돌아온 그녀는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을 외로 떨구고 내게 말했다. “당신이 억울하게 미군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단장님은 금시초문이라고 하더군요. 내가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자, 자신이 우리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참, 여보, 스즈요 씨가 전에 우리 집에 들렀다가 우리 아이들이 미군 과자를 먹고 있는 걸 봤어요. 미군 과자가 어디서 났는지 궁금해해서, 당신이 이후 해변에서 주워 왔다고 했어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이후 해변에 가면 미군들이 흘리거나 먹다 버린 과자와 식량을 주울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나는 잠자코 들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집 방에서는 동쪽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만 까맣게 망각하고 달을 찾았다.
   오늘은 오봉9)이자 가즈오의 생일이 아닌가. 지난밤 우타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재우며 내게 말했다.
   “여보, 내일 우리 가즈오가 태어나요.”
   “내일?”
   “네, 내일 달이 뜨면 우리 가즈오가 태어나요.”
   우타가 하는 말은 종종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흐르곤 했다. 어깨를 가늘게 떨던 그녀는 아기가 잠들었다는 걸 깨닫고 풀어헤쳤던 웃옷을 여몄다. 야에코 옆에 담요를 펼치고 그 위에 아기를 누였다. 자신의 앞에 펼쳐져 있는 기모노를 끌어당기고 그것에 꽂아둔 바늘을 뽑아 들었다. 똑똑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가 방 안에 떠돌았다.

   “그녀가 왜 우리 집을 찾아왔던 걸까요?”
   “……?”
   “그날 그녀는 불쑥 우리 집을 찾아왔어요. 우리는 우물에서 물을 긷고 말동무를 하며 걸어오다가도 가쥬나무 아래서 헤어졌어요. 우리 집은 가쥬마루 나무에서 북쪽에, 그녀의 집은 동쪽에 있으니까요. 그녀는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 날 찾아온 게 아니었어요.”
   “누구?”
   내가 묻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우타는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햇볕이 쨍쨍한 한낮에 우리 집을 찾아왔어요. 더구나 그녀는 요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요. 그녀의 집은 돼지를 아홉 마리나 치는 데다 논농사를 지으니까요. 그 전날 나는 논에서 모를 심고 있는 그 여자를 봤어요. 게다가 그 여자는 애가 여섯이나 돼요. 그녀의 큰애는 야에코하고 동갑이지요. 그날 나는 바느질을 하다 깜박 졸고 있었어요.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놀라 깼는데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보라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도랑을 따라 우리 집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다시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내 눈이 절로 감겼어요. 나는 억지로 눈을 떴어요. 우리 집으로 계속 걸어오고 있는 여자를 바라봤어요. 여자는 꼭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어요. 열심히 종종걸음을 놓는데도 여자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거든요.”
   “우타, 누구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여자가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었어요. 그 여자였어요. 그 여자는 미군 과자를 먹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어요. 사람이 사람을 의심하는 건 나쁘지만 스파이로 의심 받지 않으려면 누군가를 스파이로 의심해야 하는 분위기니 어쩌겠어요. 나카모토 씨는 매일 다니는 마을길을 걸어가다가도 불쑥 뒤를 돌아다보곤 한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평소에 자신을 밉게 생각하는 이웃이 가야마 군대의 수족이 돼 자신을 미군 스파이로 점찍고 미행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하루 사이에 이웃 중 누가 가야마 대장의 수족이 됐을지 모르니까요. 하여간 스파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그녀는 비명을 토하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었다.
   “가야마 대장에게 ‘미군 스파이 장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요. 다들 꿰맨 주머니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소문은 들려와요…… 누구누구가 스파이 장부에 누가 올랐다더라…… 청년학교10)의 어떤 학생이 산 군대의 코로시야11)에 들어갔다더라…… 다음 차례는 누구라더라…… 그 다음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흥분해서는 오키나와 말로 중얼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불과 두 달 전까지도 우타는 고향인 오키나와 본섬 북부 사람들이 쓰는 말과 일본 본토 말을 섞어서 썼다.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고향 말을 곧잘 쓰곤 했다. 아이들은 일본 본토 말을 썼는데, 학교에서 철저히 일본 본토 말을 쓰게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오키나와 말을 쓰는 아이들의 목에는 어김없이 방언패찰12)이 걸렸다.
   그녀는 날카로워진 감정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일본 말로 말을 이었다.
   “여보, 혹시나 싶어서 하는 소리예요. 절대 조선말로 중얼거리거나 하면 안 돼요. 누군가 당신이 조선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당신을 스파이로 오해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2

   도리시마 마을의 여자가 기모노 수선을 맡기려 우타를 찾아온 건 사흘 전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여자가 우리 집 마당을 기웃거릴 때 나는 마당에서 수레의 부서진 곳을 손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구멍 난 양은솥을 땜질해 주고 그 대가로 구루쿤13) 두 마리를 받았다.
   그 여자는 비단 기모노를 펼쳐 보이며 우타에게 말했다.
   “내 남편이 한창 잘 벌던 시절에 배를 타고 나하에 나가 맞춰 입은 기모노라오. 가다랑어를 잡아 돈을 많이 벌 때 말이오. 내 남편이 가다랑어잡이 선수지요. 우리 집에 걸려 있는 자명종이 어디서 났는지 아오? 내 남편이 가다랑어 잡기 대회에 나가서 받은 경품이라오. 고급 담요, 주판, 성냥, 양은냄비, 흑설탕. 가다랑어잡이 철이 돌아오면 애들을 배에 태우고 한두 달 먹을 식량을 싣고 사이판으로, 트럭으로 가다랑어를 잡으러 갔다오. 애들이 아직 어린 데다 젖먹이가 있어서 데리고 다녀야 했다오. 남편이 바다에서 돌아오면 애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다랑어를 손질했지요.”
   그 여자가 가고, 기모노를 매만지던 우타가 말했다.
   “가다랑어잡이는 위험해요. 가다랑어잡이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과부가 된 여자를 나는 둘이나 알고 있어요. 그중 한 여자는 나하고 나이가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됐지요.”
   나는 그 여자 얘기를 두어 번 우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에이키. 그 여자 이름이요. 에이키는 이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이 섬의 우에구스쿠 마을에서 도리시마 마을의 어부에게 시집가 애를 셋 낳았어요. 그녀의 양 손등에는 하지치14)가 있어요. 그녀는 열세 살에 혼자 하지치를 찔러 넣었대요. 그녀가 일곱 살 때 원인 모를 병을 앓다 돌아가신 엄마의 손에 있던 하지치가 아름다웠던 게 자꾸만 생각나서요. 엄마가 살아계실 때 그녀는 엄마의 손을 탐내듯 만지곤 했대요. 엄마의 손의 하지치를 자신의 손에도 갖고 싶어서요. 돌아가시던 날에도 그녀가 손등을 어루만지자 엄마가 그러셨대요. ‘네가 열다섯 살이 되면 엄마가 하지치를 예쁘게 찔러 넣어줄게. 그럼 너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완벽한 여자가 되겠지.’ 그녀는 바늘 다섯 개를 구해 묶어 그것에 군청색 먹을 찍어가며 손등을 찌르고 찔렀대요. 새가 부리로 손등의 살을 쪼아 먹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대요. 마침내 양 손등에 보름달 모양의 둥근 하지치를 찔러 넣고 새로 태어난 듯 기쁘고 벅찼대요. 그런데 마을의 산파 할머니가 그녀의 손등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그러더래요. ‘찌그러졌네, 하지치가 찌그러지면 불길한데……’
   여보, 에이키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데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글자를 읽고 쓸 줄 몰라요. 피난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녀는 남편도 없이 혼자 애 셋을 데리고 도망 다녀야 했어요.
   에이키가 말했어요.
   ‘나뭇잎들 속에 아이들을 숨겼어!’
   ‘무덤 속에 아이들을 숨겼어!’
   ‘무덤 바닥에 널린 뼈들을 치우고 칡 줄기와 잎을 깔고 그 위에서 아이들을 재웠어!’
   그녀는 밤이 되면 무덤에서 나와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고 감자를 삶아 아이들에게 먹였어요. 낮에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나니까요. 나중에는 감자가 떨어져서 칡잎을 뜯어 물에 삶아 아이들에게 먹여야 했어요.
   무덤에 숨어 지낸 지 스무 날이나 지나서야 그녀는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녀는 아이들과 무덤에서 나와 집으로 갔어요. 하지만 집에서 살 수 없었어요. 피난 간 동안에 집이 불타 잿더미가 돼 있었거든요. 그녀는 잿더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쓸 만한 살림들은 찾아 가지고 나왔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의 오래 비어 있던 오두막으로 이사를 갔어요.”

   이후 해변으로 들어온 미군들은 하루 만에 탱크 스무 대를 몰고 북서쪽의 도리시마 마을과 우에다 숲까지 올라왔다. 가야마 대장의 피난 명령을 받은 주민들은 산으로, 숲으로, 유골들이 뒹굴고 있는 무덤 안으로, 가마15)로, 방공호로 피신했다.
   나는 집까지 찾아온 경방단원들에게 피신 명령을 들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나는 우타와 아이들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란도셀을 등에 멘 가즈오가 앞장섰다. 모서리가 헤지고 색깔이 바랜 란도셀 안에는 책과 공책 대신에 성냥과 초와 감자가 들어 있었다. 아기를 업고 이불 보따리를 손에 든 우타가 가즈오의 뒤를 따랐고, 아야코가 쓰구오의 손을 잡고 우타의 뒤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나는 맨 뒤에서 등에는 보따리를 매고 품에는 야에코를 안고 걸었다. 가즈오는 문득 뒤를 돌아다보곤 했는데 엄마와 동생들이 자신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니부찌 숲과 그 숲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우에구스쿠 산에는 그새 꽤 많은 주민들이 피신해 있었다. 보따리나 아기를 등에 짊어진 주민들이 적게는 네댓 명씩, 많게는 스무 명씩 무리 지어 다니는 광경은 마치 알에서 부화한 거미 새끼들이 흩어져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산에 흐르는 계곡물 근처에서 나는 우에즈 가족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바위 위에 모여 앉아 감자를 먹고 있었다. 유타16)인 츠루 씨가 도깨비처럼 괴상하게 생긴 나무의 잎을 따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 모습도 봤다. 장마가 지나고 온갖 풀과 버섯, 나무로 우거진 산은 모기 천지였다. 이끼가 바위와 나무줄기를 뒤덮고 있었다. 장마 때 떨어진 나뭇잎들은 벌레들을 품고 썩어가고 있었다. 뱀 천지여서 나는 산 초입에서부터 잿빛 뱀을 두 마리나 봤다. 산에서 하룻밤을 난 아이들의 몸은 모기와 벌레들에 물려 홍역을 앓듯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나는 뜬눈으로 지새우며 나뭇잎들 새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쌀뜨물 같은 옅은 빛과 함께 새롭게 창조돼 펼쳐지는 광경을 망연히 바라봤다.
   나는 우타와 아이들을 이끌고 니부찌 숲 깊숙이 들어갔다. 이 섬은 얼마나 깊던지, 이 작은 섬의 가장 안쪽에 닿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니부찌 숲에서 나는 나무가 뿌리 뽑히며 생긴 구덩이 같은 굴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 숨어 있는 노인을 봤다. 노인은 마치 태어나지 못하고 자궁 속에서 눈썹이 새도록 늙어버린 태아 같았다.
   나카치 마을 사람들은 야자—가마17)에 피신했다. 그 가마 바닥에는 돌과 바위가 우글우글 널려 있어서 사람들은 대나무를 베다 깔개처럼 깔고 그 위에서 지내야 했다. 마침 야자-가마 오른편으로 대나무 숲이 있었다. 나는 나카치 마을에 갔다 그곳의 사내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땀 냄새, 썩은 생선 냄새, 똥 냄새, 오줌 냄새, 그 안에 더 있다가는 악취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어. 벼룩은 또 얼마나 들끓던지. 미군들이 총으로 쏴 죽일 거라고 말렸지만 나는 가마에서 뛰쳐나와 숲으로 가서 숨어 있었어.” 야자가마 입구는 반달 모양으로 허리를 수그려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가마솥처럼 넓고 기타바루 마을까지 길게 이어졌다.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미군들이 이 섬에 상륙한 지 나흘째 되던 날부터였다. 우에구스쿠 산이 수원인 시라세 강 상류 주변을 헤매던 나카치 마을 주민들은 미군 무리와 마주쳤다. 혼비백산한 주민들은 미군들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작은 남자를 봤다. 주민들을 향해 웃고 있는 작은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던 주민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메이유 아니야?”
   그 소리를 들은 주민 사내가 물었다. “누구요?”
   “나칸다카리 어르신의 막내아들이요.”
   “나칸다카리 메이유요?”
   “맞네요, 맞아!” 주민 사내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메이유가 왜 미군들하고 같이 있을까?”
   주민 여자가 몹시도 의아해한 이유는 그가 오키나와 본토에서 미군 포로로 잡혔다고 들어서 알고 있어서였다.
   미군들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주민들의 귀에 나칸다카리 씨의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니시메 마을에 사는 나칸다카리 메이유입니다! 미군들은 선량한 주민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민들을 돌봐줄 것이니 안심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에 전념하세요! 일본은 미국을 이길 수 없어요!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산에서 내려가세요!”
   나칸다카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탄식이 터져 나오고 주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새들이 울었다.
   “저이 말을 우리가 믿어도 돼요?”
   “나칸다카리 어르신도 그렇지만 그분 아들들도 하나같이 평판이 좋답니다.”
   나카치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산을 내려가 집으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당장 이튿날부터 낫을 들고 논으로 가 익은 벼를 베기 시작했다. 마침 벼 베기 철이었다.
   한편 나카치 마을 주민들이 하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가야마 대장은 주민들에게 ‘산에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산하는 주민은 미군에 협력하는 자로 알고 총살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군들은 계속 나칸다카리 씨와 산 속에, 가마에, 방공호에 숨어 있는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은 결코 선량한 주민을 해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또한 ‘산에 숨어 있는 주민은 일본군으로 간주하고 총살하겠다’고 겁을 줬다. 산에 숨어 있을 수도,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혼란스러워하던 주민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왔다. 낫과 호미를 들고 논으로, 밭으로 나갔다. 산 속을 전전한 지 이레째 되던 날 나도 우타와 아이들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왔다.

   “여보, 며칠 전에 담뱃잎 따는 품을 팔고 집으로 돌아가는 에이키를 만났어요. 그녀가 내게 묻더군요. ‘나하18)에도 과부가 있겠지? 그곳에서는 과부들이 뭘 해서 아이들하고 먹고살아?’
   ‘공장에 다니거나 부잣집에 들어가 식모살이를 하지. 장사도 하고.’
   ‘장사?’
   ‘밥장사, 술장사.’ 그녀가 또 물었어요.
   ‘나하에 집이 많아?’ 여보, 그녀는 아무래도 나하의 집들이 전부 불타고 무너졌다는 소문을 듣지 못한 것 같았어요.” 작년 10월 10일 아침에 미 해군의 함재기들이 오키나와 본토를 향해 날아갔다. 벌떼처럼 몰려간 함재기들은 나하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나하는 열흘 내내 불길에 휩싸였고 땅 위의 모든 것이 불탔다. 집, 나무, 벼, 꽃, 돼지, 소, 말, 산양, 닭……. 그날 아침 나하에서 10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이 섬에도 미 함재기의 기관총 공격이 있었다. 가네구스쿠 부두 앞에 떠 있던 군량선들이 기관총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여보, 나는 그녀가 이 섬을 떠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녀가 부끄러워할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충고했어요.
   ‘애들을 데리고 이 섬을 떠나서 살려면 글자를 읽을 줄 알아야 해.’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묻더군요. ‘떠나? 그게 뭐야?’ 여보, 그녀는 떠나는 게 뭔지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태어나서 여태까지 이 섬에서만 살았으니까요. 이 섬을 떠난 적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이 작은 섬이 아주 커다란 세상인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새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둥지를 옮기듯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거야.’
   ‘왜? 왜 다른 곳으로 가려는 거야? 새도 아닌데 왜?’
   ‘다른 곳에 가서 다르게 살고 싶으니까.’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묻더군요.
   ‘우타, 다른 곳에 가면 다르게 살 수 있어?’ 내가 웃기만 하자 그녀가 내게 묻더군요.
   ‘우타, 너희는 왜 이 섬에 왔어? 다른 섬으로 안 가고 이 섬으로 온 거야?’” 바늘땀을 뜨는 소리가 끊겼다. 나는 훌쩍 고개를 들어 우타를 바라봤다. 그녀는 바늘을 쥔 손을 떨어뜨리고 허공의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 뒤 바늘땀 뜨는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여보,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그래요. 당신을 원망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린 다른 섬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이 섬으로 왔어요.”

   사 년 전 우타와 나는 나하 항구에서 구메지마로 가는 배를 탔다. 그때 우리에게는 가즈오와 아야코, 쓰구오, 야에코가 있었다. 아기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배에 오르는 우타의 품에는 젖먹이던 야에코가 안겨 있었다. 여섯 살이던 가즈오는 우타의 옷자락을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배에 오르다 말고 우타가 돌연 뒤를 돌아다봤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 눈빛으로 항구를 둘러봤다. 그러나 우리를 배웅하려 항구에 나와 손을 흔들어 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우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녀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는 사바나의 네다섯 배 되는 목조선으로, 짐짝과 사람을 한가득 태우고 9시쯤 항구를 떠났다. 나하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목조선이 항구에서 멀어진 뒤에야 나는 우타에게 문득 물었다.
   “우타, 어머니께 말씀드렸어?”
   “뭘요?”
   “우리가 구메지마로 살러 들어간다는 걸 말이야.”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그녀가 배에 오르다 말고 찾던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싶어서였다.
   “여보, 어머니는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아야코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보러 오지 않으셨어요. 쓰구오가 태어났을 때도, 야에코가 태어났을 때도 보러 오지 않으셨지요.” 우타의 목소리에는 그러나 원망의 기색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우타와 내가 나누는 얘기를 귀담아듣고 있던 가즈오가 우타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그 애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그랬단 말이에요. ‘가즈오, 글자를 배우면 할머니한테 편지해라.’”
   “가즈오, 편지에 뭐라고 쓸 거니?” 우타가 묻자 가즈오가 눈빛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할머니, 기다려요. 가즈오가 할머니를 만나러 갈게요.’ 나는 그렇게 쓸 거예요.”
   “가즈오, 편지를 쓰려면 받아쓰기를 열심히 해야 해.” 가즈오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어머니는 사이판에 계세요. 어머니가 얼마 전에 사이판으로 떠나셨다고 작은오빠가 내게 알려주더군요. 아버지가 일 때문에 그곳에 계시니까요.” 내가 우타와 살림을 차리고 살기 시작했을 때도 그녀의 어머니는 사이판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 우타가 조선인과 살고 있다는 소식을 작은아들에게 전해 들었다. 나는 우타와 자식을 넷이나 낳고 살고 있지만 그녀의 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여보, 그때는 누가 부두에 나와 손을 흔들어 줬어요?”
   “누가?”
   “당신이 부산을 떠나올 때요. 어머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하고는 집 앞 큰길에서 헤어졌어. 어머니가 집에서 큰길까지 울면서 따라오셨어.” 바닷바람에 헝클어진 아야코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던 우타가 목소리를 조금 높게 하고 물었다.
   “여보,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쓰구오를 가졌을 때 당신하고 부산 고향 집을 찾아가 부모님을 뵙는 꿈을 꿨다고요.”
   “우타, 얼굴조차 모르는 분들을 꿈에서 뵀단 말이야?”
   “그러게요.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분들을 나는 꿈에서 만났어요. 두 분이 집 앞에 나와 우리를 맞아주셨어요. 정말 이상하지요? 그 꿈을 꾼 날 나는 입덧을 했어요. 아기를 가졌다는 걸 알았지요.”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배 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우타도 야에코를 끌어안고 모로 누웠다. 쓰구오가 그녀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아야코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가즈오가 란도셀을 등에 멘 채로 우타의 등에 매달리듯 달라붙었다. 수평선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바다에 섬이 덩그러니 떠오른 것은 배가 나하 항구를 떠나고 두 시간쯤 지나서였다. 배는 파도를 타 넘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흐릿한 섬의 윤곽이 선명해지며 푸릇푸릇한 색이 떠올랐다. 한숨 자고 깨어난 우타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졌다. 가즈오는 벌써 깨어나 센베이를 먹고 있었다. 아야코는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여보, 저 섬이에요?” 우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타, 저 섬은 도카시키라는 섬야.” 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도카시키지마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을 때 가즈오가 갑자기 소리쳤다.
   “엄마, 저기 섬에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 그렇구나, 가즈오. 사람들이 있구나.”
   “엄마,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왜 저기 있어요?”
   “오, 가즈오. 손을 흔들어 주렴. 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렴. 안녕, 안녕.” 우타가 손을 흔들자 가즈오도 따라서 흔들었다. 도카시키지마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이 배 뒤로 밀려 떠내려가는 걸 나는 묵묵히 바라봤다. 아침에 나하를 떠난 배는 저녁에야 구메지마의 가네구스쿠 부두에 닿았다. 이듬해 우타는 가즈오가 쓴 편지와 함께 땅콩 한 자루를 어머니에게 보내드렸다.

   “여보, 설마 아기가 운다고 아기를 죽이지는 않겠지요?”
   “우타…….”
   “아무리 가야마 대장의 산 군인들이어도 아기가 운다고 아기를 죽이지는…….” 서쪽 창으로 비쳐 드는 빛이 떠돌고 있었지만 방 안은 금방 어둠에 잠길 것이었다. 그럼 우타는 아끼는 성냥을 그어 초를 밝힐 것이다. 난파당한 배처럼 어둠 속을 떠다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빛 속에 놓아둘 것이다. 쓰구오가 갑자기 발딱 몸을 일으켰다.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 쓰구오에게 우타는 조용히 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쓰구오, 쉿―!” 쓰구오의 벌어지던 입을 도로 다물렸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참고 있는 그 애의 입이 맹꽁이배처럼 부풀었다.
   “쓰구오, 쉿―!” 쓰구오는 공책 앞에 도로 개구리처럼 엎드렸다. 쓰구오가 연필심을 꾹 누르고 종이에 글자를 그리는 소리, 야에코가 잠꼬대하는 소리, 아야코가 아기의 야에코의 귀에 대고 모깃소리보다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소리가 똑 똑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에 섞여 떠돌았다.
   “가야마 대장의 산 군인들이 그 아기를 죽인 건 아기가 나칸다카리 씨의…….” 우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작게 하고, 손으로는 계속 바늘땀을 떠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 아기는 우리 아기보다 두 달 남짓 먼저 태어났어요. 나칸다카리 씨의 아기요……. 나칸다카리 씨의 아기가 태어나고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 우타가 나칸다카리 메이유 씨의 아기 얘기를 꺼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듣는 데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봄에 나는 나칸다카리 씨의 아내가 아기를 포대기로 꼭 감싸 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들판에 서 있는 모습을 봤다. 섬에서는 한창 모내기를 하고 담배 모종을 심고 있었다. 섬에는 산 군인들만 들어와 있었다. 나칸다카리 씨는 그때 오키나와 본토의 미군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그는 아기가 태어나고 얼만 안 있어 군인으로 징병돼 군용선을 타고 이 섬을 떠났다. 나칸다카리 씨의 아내는 남편이 있는 오키나와 본토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나는 니시메 마을을 둘러오다 나칸다카리 메이유 씨의 아버지를 봤다. 그는 혼이 나간 얼굴로 들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전쟁으로 아들을 넷이나 잃었다. 그의 장남은 나하 공습 때 전사했다. 또 한 아들은 남양군도에서, 또 한 아들은 중일전쟁에서 전사했다. 막내아들인 메이유는 산 군인들에게 난도질당하고 불태워져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랑말랑 출렁출렁 물방울 같은 아기 몸을 어떻게 칼로 찢었을까……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아기 가슴에 어떻게 칼을 꽂았을까…… 콩닥콩닥…… 심장 뛰는 소리가 저렇게 큰데, 저렇게 생기 찬데…… 꼭 껴안고 싶어도 터질까 겁이 나 살살 껴안게 되는데…… 아기 몸은 물방울, 아기 몸은 목화솜꽃, 아기 몸은, 아아 아기 몸은…… 아기를 한 번도 안아본 적 없는 군인일 거야, 아기 몸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군인일 거야…….”
   우타가 맥없이 바늘땀을 떠 넣으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쓰구오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섞여들었다.
   “나는 군인이 너무 좋아. 얼른 자라서 훈장을 달아야지, 하이, 하이…….”
   쓰구오는 공책에 일기를 쓰며 오늘 낮에도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쓰구오뿐 아니라 이 섬의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로, 언젠가 우타도 이 섬의 국방부인회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불러 흥을 돋웠다.
   “검을 들고, 말을 타고 하이, 하이 당당하게…… 나는 군인이 너무 좋아.”
   “쓰구오, 노래는 내일 부르렴.” 우타가 말했다.
   “내일요?”
   “오늘은 산에서 뱀이 많이 내려왔단다. 네 노랫소리를 듣고 뱀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오면 어쩌지? 그러니 노래는 내일 부르렴.”
   “내 노랫소리를 듣고요?”
   “그래, 뱀들은 너처럼 어린 소년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쓰구오가 조용해고, 우타가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에 힘이 실렸었다. 바늘이 부러지지나 않을까 염려될 만큼 그녀는 거칠게 바늘땀을 떠 넣었다.

   나는 구메지마까지 오는 동안 배를 타고 지나쳐 온 섬들을 떠올렸다. 이 섬에서 서쪽으로도, 남쪽으로도 많은 섬들이 있다는 얘기를 나는 도리시마 마을의 어부에게서 들었다. 우타의 부모님이 계시는 사이판도 그 섬들 중 하나였다. 나는 많고 많은 섬들을 두고 왜 이 섬으로 온 걸까. 나는 이 섬으로 온 걸 후회하지 않았다. 이 섬에 정착한 첫해에는 모든 게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우타는 국방부인회 회장을 하며 이 섬의 여자들과 친분을 쌓아 갔다. 감자와 고구마, 토란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것마저도 굶는 게 예사였지만 무리하고 강압적인 식량 공출로 이 섬의 주민들 대개가 굶주리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 섬의 주민들도 공출해 갔다. 작년 9월에 이 섬의 사내 160명은 이에지마20)로 징용을 떠났다. 이에지마에서 활주로를 다지는 노역을 하다 돌아온 사내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감자를 먹으며 소처럼 일했다고 했다. 하루에 세 번 감자 세 개가 배급됐는데 두 개는 벌레가 먹어 먹지 못했다고 했다. 땅을 5미터만 파내려가면 물이 솟아 우물이 되는 이 섬과 다르게 그 섬은 물이 귀해서 용출이라고 하는 곳에서 물을 받아다 먹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항상 줄을 길게 서 있어서 새벽에나 가야 겨우 물을 받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내게 말했다. “이에지마에 너 같은 조선인이 많이 있어. 조선인들은 소의 생간을 먹더군.” 내가 조용히 웃기만 하자 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일본군들이 조선인들한테 소를 도살하라고 시켰어. 조선인들이 도살한 소의 생간을 꺼내더니 그 자리에서 먹는 걸 봤어.”

   이 섬에서 공출한 식량을 실어 나르던 군량선의 선원이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너는 어디서 왔지?”
   “나하에서.”
   “그전에는?”
   “가고시마.”
   “그전에는?”
   “시모노세키 모지.”
   “그럼 그전에는?”
   “부산.”
   “부산?”
   “내가 태어난 곳.”
   “먼 곳이겠군.” 나는 선원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
   “그러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던 선원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했다. 출항을 앞두고 군량선은 미 함재기의 기관총 사격을 받고 침몰했다. 선원은 군량선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처음 부산을 떠나올 때 나는 혼자였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살던 곳을 떠나올 때 나는 우타와 아이들과 함께였다. 나는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서 왔다. 아이들은 내가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모른다. 부산을 떠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우타라는 여자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우타는 내게 아이를 더 낳아 주고 싶어 한다. 몸이 약한 편이어서 잔병치레가 잦지만 그녀는 아직 젊다. 나는 올해 쉰한 살로, 흰 머리카락이 부쩍 희끗희끗 올라오고 있었다. 우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저녁 전에 나도 경방단장의 집에 다녀왔다. 단장은 집에 없었다. 나는 단장의 부인을 향해 고개를 수그려 보이며 말했다.
   “부디 우리를 감싸 주십시오.”
   “여보, 그 여자는 배 속에 아기를 갖고 있었어요.”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가 거칠게 느껴질 만큼 빨라지다 한없이 느려졌다.
   “그 여자요…….”
   “엄마, 그 여자요?”
   “그 여자 이름이…….”
   “엄마, 그 여자요?”
   “그 여자는 자신의 남편이 스파이로 몰려 산 군인들에게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미쳐서 집을 뛰쳐나갔어요. 그 여자 이름이…….”
   “엄마, 그 여자요?”
   “쓰구오, 쉿!”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가 또다시 빨라지다 끊겼다.
   “가네코……! 그 여자 이름이요. 가네코 씨는 배 속에 아기를 품은 채 야마다 강 다리에서 몸을 던졌어요. 남편이 총살당하지 않았으면 그 여자는 강에 뛰어내리지 않았겠지요. 그랬으면 배 속 아기가…….” 지난 6월 27일이었다. 산 군인들은 가네코 씨의 남편인 아사토 씨를 총살했다. 내가 그 날짜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미군이 이 섬에 상륙한 이튿날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 본토의 슈리21) 출신인 아사토 씨는 전화국의 정비 직원이었다. 피난 명령을 받고 아내와 함께 산속 오두막으로 숨어든 그는 그곳에서 쓸 돗자리와 살림 몇 가지를 챙겨 가려고 집으로 내려왔다. 한밤중이 돼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던 그는 그만 미군들에게 발각돼 붙들렸다. 이튿날 미군들은 가야마 대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손에 들려 그를 우에구스쿠 산으로 올려 보냈다. 편지에는 투항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야마 대장은 그를 스파이로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

   “워쉬! 워쉬!”
   “쓰구오, 쉿!”
   “엄마, 미군들이 우물가에 나타나 옷을 흔들며 워쉬, 워쉬 했대요. 깜둥이 미군도 있었대요.”
   “쉿!” 쓰구오가 불쑥 말을 내뱉을 때마다 우타가 화들짝 놀라며 정색하는 것은 산 군인들 때문이었다. 닷새 전인 8월 15일에 천황은 항복을 선언했다. 미군들은 섬 주민들을 시청에 모아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옥음방송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전보다 더 가야마 대장과 산 군인들을 두려워하고 소름끼쳐 했다. 산 군인들의 수족 노릇을 하는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논이나 밭에 다녀오는 주민처럼 차려입고, 군도를 고사리 잎이나 짚으로 감싸 숨기고 산에서 내려와 자신들이 스파이로 지목한 주민을 처형했다. 그녀는 산 군인들이 마을에서 조금 외떨어진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 쓰구오가 하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서 그 애를 조용히 시키려는 것이다. 쓰구오가 입을 다물자 우타는 목소리를 한껏 낮게 하고 말했다.
   “우물이 있는 집에서 미군들 옷을 빨아주고 먹을 걸 한 보따리 받았다고, 후미코 아주머니가 알려주더군요. 소고기가 든 통조림하고 과자요. 후미코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미군들은 우리를 한 명밖에 죽이지 않았어. 산 군인들은 한꺼번에 아홉 명이나 죽였어!’”
   “엄마, 산 군인들이 손과 발을 철사로 묶었어요!”
   “쓰구오!”
   “천으로 눈을 가렸어요!”
   “쓰구오!”
   “총검으로 한 사람씩 찔러서 죽였어요!”
   “쓰구오! 쉿!” 기타바루 마을에서였다. 섬의 북서쪽에 자리한 마을로 내가 살고 있는 구마지에 마을과는 북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구메지마 서쪽에는 니시메 마을을 중심으로 세 마을이 삼각 모양으로 모여 있다. 북동쪽에 구마지에 마을, 북서쪽에 우에즈 마을, 남서쪽에 도리시마 마을. 그리고 구마지에 마을에서 북쪽으로 기타바루 마을이 있었다. 나칸다카리 마을은 섬의 북쪽 중간에 있었다.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꼬박 한종일이 걸리는 이 작은 섬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스무 개 남짓 있었다. 산 군대가 들어오기 전까지 구장과 촌장을 중심으로 질서를 유지해 나가던 마을들마다는 특색이 있었다. 니시메 마을 주민들은 주로 쌀농사를 지었고, 도리시마 마을 사내들은 대개가 어부였으며, 나칸다카리 마을에는 나칸다카리 성씨를 가진 이들이 모여 살았다. 산 군인들이 기타바루 마을에서 주민 아홉 명을 처형하던 날 밤, 나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 그 마을 한복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봤다. 아홉 명 중에는 나처럼 오키나와 본섬에서 이 섬으로 이주한 미야기 씨와 그의 부인도 있었다. 미야기 씨는 이 섬의 북쪽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소 목장의 주인이었다. 그는 목장에서 일하던 소년과 함께 미군 정찰대에 붙들려 주둔지까지 끌려갔다 풀려났다. 단지 미군에 붙들렸다 풀려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스파이로 의심받았다. 바로 나흘 전에 아사토 씨가 스파이로 낙인찍혀 총살당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미야기 씨는 아내와 섬의 북쪽에 있는 연못 근처 모밀잣밤나무 숲에 숨었다. 산 군인들은 그들을 찾아내 처형하고 초가집과 함께 불태웠다. 불길 속에는 겨우 열여섯 살이던 일꾼 소년도 있었다. 산 군인들은 그 소년을 숨겨준 이의 가족들과 그 마을의 구장, 그리고 경방단장도 처형하고 불태웠다. 화장터가 된 초가집은 미야기 씨가 살던 집이었다. 산 군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주민들은 잿더미가 된 초가집에 한동안 얼씬도 못했다.
   나는 산 군인들이 아홉 명을 어떻게 처형했는지 우타에게서 전해 들었다. 목숨이 끈질기게 붙어 꿈틀거리는 아홉 명을 산 군인들은 초가집이 피바다가 되도록 찌르고 찔러 죽였다고 했다.
   “여보, 단장님이 가야마 대장에게 우리 얘기를 잘해 주겠지요? 단장님은 내가 산 군인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 알고 있더군요. 나는 아기를 업고 산으로 그들이 먹을 밥을 날랐어요.” 문득 닷새 전 소나무 근처에서 경방단 단장을 만났던 게 떠올랐다. 그는 아내와 함께 밭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석연치 않은 데가 있었다.
   “여보, 단장님이 너무 늦지 않게 가야마 대장을 만나야 할 텐데요. 오늘 못 만나면 내일은 꼭…… 경방단장이어도 가야마 대장에게 우리 얘기를 하는 게 쉽지 않겠지요. 가야마 대장이 오죽…… 후미코 아주머니는 그러더군요. 눈곱만한 오해라도 사고 싶지 않으면 미군들이 있는 데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요. 산 군인은 겨우 서른 명 남짓이었다. 구마지에 마을 주민의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그들을 후미코 씨 같은 늙은 촌 아낙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집 뒤에서 풀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우타가 “가즈오?” 하고 불렀다.
   “가즈오? 가즈오?” 그러나 가즈오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풀 스치는 소리가 잦아들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바느질을 했다. 나는 불쑥 가즈오가 날 찾으러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섬에 들어와 산 지 석 달여가 지났을 즈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뒤틀린 부엌 문짝을 수리하다 말고 집을 뛰쳐나갔다. 텃밭에 양배추와 고야22) 모종을 심고 있던 우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돌아다보지 않았다. 나는 무덤들과 숯 창고를 지나고, 기와 굽는 집을 지나, 잡풀로 우거진 들판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걸어갔다. 이 섬의 동쪽에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다. 바다가 잔잔한 날에도 그곳은 파도 소리가 절벽을 물어뜯는 듯 거셌다. 절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입을 찢듯 벌리고 폐를 통째로 토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사방에서 채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절벽 위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남빛이던 바다가 먹빛으로 변하는 걸 바라보다 절벽에서 돌아섰다. 집에 돌아왔을 때 우타는 야에코를 등에 업고, 쓰구오의 손을 잡고, 아야코를 앞세우고 마당에 서 있었다. 마당에는 지금보다 짙게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우타와 아이들의 얼굴은 눈코입이 뭉개져 보였다. 우타가 물었다. “가즈오는요?”
   “가즈오?” 넋이 반쯤 나가 있던 나는 대뜸 되물었다. 가즈오가 누군지 순간적으로 망각해서였다.
   “가즈오를 못 봤나요?”
   “아, 가즈오! 못 봤어.” 나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찾으러 갔어요.”
   “누가?”
   “가즈오요.”
   “날?”
   “네, 가즈오는 당신을 찾으러 갔어요.”
   “가즈오가 날 어디로 찾으러 갔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날 우타와 아이들이 마당에 모여 서 있던 장면은 내 머릿속에 칼로 새긴 듯 선명히 남아 있다. 나는 종종 그 장면을 사진과 혼돈하곤 했다. 우타가 구시23)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 사진 속에서 우타는 야에코를 안고 있다. 아야코와 쓰구오는 우타 옆에 차렷 자세로 서 있다. 그 사진을 우타는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날 우타와 아이들이 모여 서 있던 장면과 구시에서 찍은 사진. 그 둘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 둘 어디에도 나도, 가즈오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날 나를 찾으러 갔다던 가즈오가 돌아온 것은 등잔불을 밝혀야 할 만큼 어두워져서였다. 그 애는 바지에 풀씨를 잔뜩 묻히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돌아왔다. 나는 가즈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조선 말로 물었다.
   “가즈오, 날 정말로 찾으러 갔었냐?”
   “날 어디로 찾으러 갔었냐?”

   “그 여자도 산 군인들이 살해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내가 아무 대꾸를 않자 우타가 또 말했다. “여보, 그 여자요.” 나는 여전히 아무 대꾸를 할 수 없었는데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였다. 산 군인들에게 또 죽임을 당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
   “그 여자 이름이…… 그 여자 이름이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여자를 알아요. 친구는 아니지만 그 여자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전화국 앞에서 우연히 그 여자를 만났는데 내게 말을 걸어온 적 있거든요. 무척 부끄러움 타는 여자였어요. 하지만 그 여자는 내게 말을 걸어왔어요. 날 알고 있었어요. 그 여자 이름이…….” 우타는 혼란스러워했다. “여보, 그 여자 이름이…… 야마다 강으로 몸을 던져 떨어진 여자 말이에요…….”
   “가네츠요!” 쓰구오가 말했다.
   “쓰구오? 네가 그 아줌마를 어떻게 알지?” 우타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가 가네츠라고 했잖아요. 그 여자 이름이 가네츠라고요!”
   “그래, 그렇구나…….” 우타는 쓰구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탄식을 토하고는 목소리를 작게 해 말을 이었다.
   “모를 일이에요. 후미코 아주머니의 말마따나 모를 일이지 뭐예요. 그 여자가 다리에서 몸을 던지는 걸 본 사람은 없으니 말이에요. 그 여자의 아버지도 딸이 양잿물을 먹은 것처럼 괴로워하다 집을 뛰쳐나가는 걸 봤지만 야마다 강으로 스스로 떨어지는 건 보지 못했다니 말이에요. 여보, 우리 모두 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여자가 스스로 다리에서 몸을 던져 강으로 뛰어내렸다고 해도 산 군인들이 죽인 거나…….” 우타는 뜨거운 것에 손을 데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며 말을 흐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마당을 살피듯 내다봤다. 마당에는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는 마당을 내다보며 말했다.
   “남편이 총살당한 것 때문에 충격을 받아 미쳐서는 집을 뛰쳐나가 그렇게 됐으니 말이에요.”
   “음…….”
   “그 여자의 아버지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위하고 딸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겠어요.”

   “엄마, 배고파요.” 그러잖아도 아까부터 쓰구오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쓰구오, 아침이 돼야 먹을 게 있단다.”
   “엄마, 나는 아침이 되기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몰라요.”
   “쓰구오, 아무도 굶어 죽지 않아.” 우타는 내일 아침이 될 때까지 감자를 내놓지 않을 것이었다. 감자를 먹어버리면 내일 아침에 먹을 감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일 아침에도 아이들은 감자 한 알과 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가 빨라졌다.
   “우에즈 집에 갔을까?” 우타는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리고는 쓰구오에게 물었다. “가즈오 형이 우에즈 집에 갔니?”
   “엄마, 우에즈 형이 참외를 줬어요. 강에서 돌로 참외를 깨뜨려서는 가즈오 형하고 내게 나눠줬어요.” 우에즈는 가즈오의 친구로 한 마을에 살았다. 그 애는 학교에서 가즈오의 짝이기도 했다. 나는 그 애뿐 아니라 그 애의 아버지 노리야키 씨를 잘 알고 있었다. 나와 노리야키 씨는 친구지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는데, 타관인 이 섬에서 그가 사촌지간쯤 되는 듯 정이 갔다. 그래서 그의 집 앞을 지나갈 때면 목소리를 크게 해 “노리야키 씨,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곤 했다. 그럼 노리야키 씨가 “다나카와 씨?” 하고 대꾸해 왔다. 내가 큰 소리로 노리야키 씨를 부르는 것은 그의 귀가 먹어서 잘 안 들리기 때문이었다.

   “쓰구오, 가즈오 형이 우에즈 집에 갔니?”
   “아니요. 형은 그 집에 가지 않았어요.” 쓰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형이 어딜 갔지?” 우타가 추궁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은 사이판에 할머니를 만나러 갔어요.”
   “쓰구오, 어서 가서 가즈오 형을 불러오렴.” 우타는 아무래도 가즈오가 어디에 있는지 쓰구오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배가 벌써 남쪽으로 떠났을걸요.” 쓰구오가 말했다.
   “쓰구오, 그게 무슨 말이니?”
   “남쪽이요. 그 배가 벌써 남쪽으로 떠났단 말이에요.”
   “쓰구오, 어떤 배 말이니?”
   “그 배요. 가즈오 형은 그 배를 탔고 그 배는 남쪽으로 떠났어요. 사이판은 남쪽에 있어요.”

   “엄마, 그 배에는 군인들하고 조센삐들이 타고 있어요. 형을 태우고 남쪽으로 떠난 배요.”
   “쓰구오!”
   “형들이 조센삐라고 했단 말이에요.”
   “쓰구오, 그건 나쁜 말이야.”
   “형들이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낫코 숲24)에서 만난 형들이요. 그 형들은 가즈오 형보다 커요. 형들은 조센삐들을 구경하러 부두로 달려갔어요.” 낫코 숲은 우리 집에서 야마자토 마을 쪽으로 10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있었다. 꽤 우거진 숲으로 늦봄과 여름 내 나비로 들끓었다. 우타는 나비를 저승에서 이승을 찾아온 인간의 혼으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나는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면 이승에 미련과 원망이 남은 인간의 혼이 떠돌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아무튼 나비로 들끓는 낫코 숲은 내게 이승을 떠도는 인간의 혼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야마자코 마을은 구마지에 마을의 북쪽에 있었다. 두 마을의 경계에 있어서 낫코 숲은 두 마을의 아이들이 뒤섞여 노니는 장소이기도 했다.
   “엄마, 배는 벌써 남쪽으로 떠났어요.”
   “쓰구오!” 오늘 따라 쓰구오는 우타를 힘들게 했다. 낮에도 잠든 아기의 볼을 꼬집어 깨워서 우타에게 혼났다. 아침에는 물 대접을 엎지르기도 했다. 쓰구오의 상상 속 배, 그러니까 군인들과 조선인 여자들과 가즈오를 태우고 남쪽으로 떠난 배는 마냥 상상 속의 배는 아니었다. 쓰구오는 재작년에 가네구스쿠 부두에 들어와 엿새 넘게 머물고 다시 남쪽으로 떠난 배를 떠올리며 가즈오 형이 그 배를 타고 떠났다고 우기고 있었다.

   재작년 봄 어느 날로, 우리 가족이 우에즈 마을에서 구마시에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모리야스 씨의 돼지 농장에서 삼백 보쯤 떨어진 곳에서였다. 나는 소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수레를 끌며 돼지 농장 쪽으로 발을 놓고 있었다.
   “조센징!” 하고 부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땅딸막한 사내가 말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내게 돌진하듯 다가왔다. 짓무른 가지 같은 입을 벌리더니 시큼한 소주 냄새를 흠씬 풍기며 말했다.
   “조센―삐!” 사내는 주먹을 꽉 쥔 돌덩이 같은 손으로 서쪽을 가리켜 보였다. 닭 볏만큼이나 붉은 목의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조센―삐! 조센―삐!” 내가 얼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자 사내가 더 흥분해서는 말했다.
   “가네구스쿠 부두에 조센―삐들이 있소. 어서 부두에 가보시오.” 그날 내게 조선인 여자들이 가네구스쿠 부두에 있다고 알려준 사내는 야마구스쿠 마을의 기와 굽는 집에서 일하는 사내로, 그는 어디서든 나와 우연히 마주치면 “조센징!” 하고 알은체를 해왔다. 그러면 나는 “아라카치 씨, 안녕하십니까” 하고 정중히 인사했다. 나는 그가 거칠고 술에 찌들어 살지만 고의적으로 남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심지어 그가 겁이 많고 온순한 사람이라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는 조선인인 내게 조선인 여자들이 있다는 걸 너무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시큰둥하게 보였을 수도 있는 내 반응에 몹시 실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녀들을 조센―삐라고 부른 것은, 일본군들과 함께 다니는 그녀들을 대개의 오키나와인들이 조센삐라고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삐’에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그가 ‘조센―삐’라고 발음할 때 나는 그러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날 나는 가네구스쿠 부두에 가지 않았다. 오키나와 본섬에 살 때부터 그녀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던 나는 그녀들이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섬에 조선인 여자들이 있다는 걸 내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주민은 아라카치 씨 말고도 더 있었다. 누구는 그녀들을 ‘조선반도의 여자들’ 혹은 ‘조선에서 온 여자들’이라고 불렀고, 누구는 아라카치 씨처럼 ‘조센삐’ ‘조센삐야’라고 불렀다.
   “다니카와 씨, 목욕탕에서 조선인 여자들을 봤어요.”
   “다니카와 씨, 조선인 여자들이 히가 씨네 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더군요.”
   “다니카와 씨, 조선인 여자들이 시장에서 두부를 사더군요.”
   “다니카와 씨, 조선인 여자들이 군인들과 배를 타고 남쪽으로 떠났어요.” 조선인 여자들은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 섬에 들어왔고,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 섬을 떠나갔다. 작년 10월 미군의 나하 공습 이후에도 조선인 여자 셋이 이 섬에 들었다. 그녀들 역시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 섬에 들었고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 섬을 떠나갔다. 나는 그 배도 남쪽으로 떠나갔다고 들었다. 나는 그녀들이 우에즈와 함께 우에즈 씨의 고추밭에 있는 걸 보기도 했다.

   “여보, 야마자토 씨요…….” 우타는 목소리를 아주 작게 하고 말을 이었다. “그도 가야마 대장이 노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음…….”
   “그래서 숨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틀 전에, 그러니까 나칸다카리 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살해되던 날 나는 야마모토 씨를 봤다. 그는 삿갓을 쓰고, 어깨에 자루를 둘러매고 어딘가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야마모토 씨” 하고 불렀지만 그는 돌아다보지 않고 발을 놓았다. 야마모토 씨와 나는 서로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로, 나는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양조장 앞에 모여 있는 청년들을 보고는 촌장님이 다가가 그러더군요. ‘몰려다니지 마! 흩어져!’”
   “…….”
   “청년들이 모여 있는 걸 산 군인들이 보면 스파이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촌장의 말을 듣고 청년들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
   “여보, 쌀을 짊어지고 우에구스쿠 산으로 올라간 청년들을 돌아오지 못했어요…… 청년들이 올라가고 산에서 총소리가 났어요.”

   “여보, 시장에서 산 군인을 봤다는 얘기를 내가 했나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산 군인이 국숫집 처마 밑에서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어요. 군복을 벗고 허름한 기모노를 입고 있었지만 산 군인이었어요. 나는 산 군인을 단번에 알아봤어요. 여자들하고 두부를 쒀 산으로 올라갔다 그 군인을 봤어요. 그 산 군인하고 눈이 마주쳤거든요.” 우타는 어깨를 움찔하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다들 집에 먹을 거라고는 고구마하고 감자뿐이었지만 우리 여자들은 두부를 쒀 군인들에게 가져다줬어요. 일본이 미국을 이겨야 하니까요. 어쨌든 오키나와는 일본하고 한 운명이니까…….”
   “두부를 쒀 산 군인들에게 가져다줄 때만 해도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줄 알았어요. 산 군인들이 전하는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었으니까요.”
   주민들은 대본영의 발표나 산 군인들을 통해 전쟁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았다. 통신이 차단돼 대본영 발표를 들을 수 없게 되자 학생들이, 경방단장들이 전쟁 뉴스를 전해 듣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산 군인들에게 들은 뉴스를 그대로 주민들에게 전했다. ‘우리 일본 해군이 남양에서 미군 군함 한 대를 격침했다.’ ‘일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미기 세 대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남양에서 격침당한 군함이 일본 군함이고, 태평상 상공에서 떨어진 함재기 세 대가 일기라는 걸 알게 된 주민들은 산 군인들이 전하는 뉴스를 믿지 않았다.
   “우타, 아사토 씨가 총살당하기 직전에 고맙다고 했다지?”
   “네, 그렇게 들었어요. 스파이를 살려둘 수 없다며 권총 총구를 겨누는 가야마 대장에게 고맙다고 했다더군요.”
   “음…….”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맞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 거겠지요.25) 가야마 대장이 총을 한 발 쐈는데 죽지 않아서 군인들이 양쪽에서 총검으로 찔러서…….”

   가즈오는 어디에 있는 걸까. 가즈오를 찾으러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무기력에 휩싸여 우두커니 마당을 내다보기만 했다. 오늘 내가 먹은 것은 감자 두 알이 전부였다. 굶주림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낫코 숲 속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야에코의 손을 잡고 그 숲으로 걸어 들어가던 가즈오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두 아이가 들고 숲에서 직박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에코는 다른 동생들보다 가즈오를 유난히 따랐다. 가즈오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더 즐거운 가즈오는 야에코를 떼어놓으려 애를 쓰곤 했다.

   “니가키 씨는 미군 캠프에서 부역을 하고 있다더군요. 가네구스쿠 마을의 미군 캠프요. 미군들이 니시메 절벽에 레이더를 설치하려고 옹벽을 만들 때 그는 그곳에서 시멘트를 날랐어요.” 미군들이 니시메 절벽에 옹벽을 설치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미군들에게 받은 식량을 자루에 담아 어깨에 둘러매고 집으로 걸어가는 니가키를 씨를 봤어요. 정말이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요령 좋은 사람이지 뭐예요. 한 달 전까지도 산 군인들을 만나러 우에구스쿠 산으로 올라가는 걸 봤어요. 미군 캠프에 있다니 산 군인들도 그를 어쩌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니가키 씨가 누군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스즈요 씨와 마찬가지로 니가키 씨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 섬의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이 섬에는 만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태어났으며, 그리고 누군가는 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 똑같은 성씨를 가진 이들이 많아서 ‘내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보쿠루 씨’가 내가 아는 보쿠루 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이 섬을 돌아다니다 들판에서, 인적이 뜸한 외진 길에서, 우물가에서, 혹은 무덤이나 가마 앞에서 낯선 주민과 마주치곤 했다. 그들 중 간혹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 눈빛에 적의가 담겨 있지 않다고 해도 나는 괜히 긴장되고 당혹스러웠다. 아자야마사토 마을에서 만난 훈도 선생도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낯선 주민 중 하나였다. 그날 나는 우에즈 씨와 숯쟁이의 오두막에 숯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숯쟁이의 오두막이 있는 야산 부근에서였다. 옷차림이 말끔하고 야마토 사람 같아 보이는 사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사내는 내 얼굴 어딘가에 불도장이라도 찍듯 강렬히 쏘아보고는 휙 몸을 돌려 마을 쪽으로 휘적휘적 올라갔다. 그의 모습이 덤불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야 우에즈 씨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구시카와 국민학교 훈도 선생이에요!”

   “스미코 씨는 친정에 다니러 갔다 우물가에 모여 미군들 군복과 속옷을 빨고 있는 마을 여자들을 봤대요.” 스미코 씨는 우타가 가깝게 지내던 이웃 여자였다. 산 군인들에게 줄 두부를 수레에 싣고 우에구스쿠 산으로 올라갔던 여자들 속에는 그녀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친정이 가네구스쿠 마을이라고 들은 기억이 났다.
   “워쉬! 워쉬!”
   “쓰구오, 쉿!” 나도 도리시마 마을의 우물에서 미군들의 빨래를 빨고 있는 여자들을 봤다. 해안을 따라 길게 친 빨랫줄 가득 미군들 군복과 속옷이 널려 있었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손에는 미군 과자 봉지가 들려 있었다.
   “동쪽 마을에서는 노인들도 비행장 놓는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하더군요. 그곳 주민들은 미군들하고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지낸대요.” 미군들은 얼마 전부터 이후 해변 근처에 비행장 활주로를 놓고 있었다.
   “엄마, 미군들이 뱀 잡는 걸 봤어요. 미군 하나는 머리를 잡고 하나는 꼬리를 잡고 웃고 있었어요. 부엌에서 잡은 뱀보다 크고 검은 뱀이었어요.” 쓰구오의 말을 받아 아야코가 말했다.
   “나도 봤어요.” 섬 곳곳에서는 미군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산양들을 실은 미군 트럭이 구메지마의 미군 캠프로 달려가는 걸 보기도 했다. 니시메 마을에서는 변소와 붙어 있는 돼지우리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는 미군을 봤다. 윗도리를 벗고 모자를 쓰고 입에 담배를 문 미군은 돼지우리에 대고 흰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어 그 광경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경방단장 집에서 나와 길에 멍하니 서 있는 날 보고 후미코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넋 떨어지겠어. 설마 벌써 떨어진 거야? 내가 유타라도 불러서 찾아 넣어줄까?’ 내가 웃자 후미코 아주머니도 덩달아 웃더군요. 까마귀가 울며 날아가자 정색을 하고 묻더군요. ‘전쟁이 정말 끝난 걸까?’”
   “……”
   “여보, 전쟁이 정말 끝난 걸까요?” 본섬에서 미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벌써 스무 날도 더 전이었다. 그러나 닷새 전에도 미군은 구시카와 국민학교에서 사이렌을 울리고 30분 동안 우에구스쿠 산을 향해 총을 쏴댔다.

   “아야코, 학교에 훈도 선생님이 계시지?” 아야코가 대답하기도 전에 쓰구오가 말했다. “우에하라25)훈도 선생님이요?”
   “올해 초에 새로 오신 선생님 아니시니?” 우타가 쓰구오에게 물었다.
   “네, 훈도 선생님은 나하에서 배를 타고 오셨어요.” 쓰구오가 말했다.
   “여보, 훈도 선생님은 왜요?” 내가 우물쭈물하자 쓰구오가 그 틈을 타 말했다. “우에하라 선생님이 이치로를 불러서 물어봤어요. 에이키도 불러서는 물어봤어요.” 나는 이치로와 에이코를 몰랐지만 쓰구오의 학교 친구들일 것이다. 그 애는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해 다른 마을의 아이들을 사귀었다.
   “쓰구오, 우에하라 훈도 선생님이 그 애들에게 뭘 물어봤다던.” 내가 물었다.
   “음, 뭐라고 물어봤냐면요…… ‘너의 부모님이 미군들을 만나는 걸 보았느냐?’ ‘집에서 부모님이 방언을 쓰시느냐?’” 쓰구오는 어른 목소리를 흉내 내 말했다.
   “오, 쓰구오, 훈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왜 그런 걸 물어봤을까?”
   “엄마, 훈도 선생님이 형하고 누나들을 모아 놓고 수류탄 터트리는 훈련을 시켰어요!”
   “오, 쓰구오, 쉿!” 그녀는 쓰구오를 조용히 시킨 뒤에 마당을 내다봤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아주 작게 해 내 등에 대고 오키나와 말로 속삭였다.
   “우에하라 훈도 선생이 청년학교 학생한테 수류탄 두 개를 들려줬대요.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옥쇄26)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곤 한다지 뭐예요. 전력으로 싸우다 명예와 충절을 지키고 죽어야 한다고요. 피난 때도 방공호에 함께 숨어 있던 주민에게 여차하면 옥쇄해야 한다고 했대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데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은 공포 때문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었다.

   “여보, 우리만 모르는 게 있는 걸까요.”
   “음…….”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우리만 모르는 게…… 기타바루의 구장 부인처럼 말이에요. 그녀는 남편이 살해된 걸 나흘이 지나도록 몰랐어요. 다들 쉬쉬하며 아무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아서요.”
   “…….”
   “어쨌든 우리는 이 섬 토박이가 아니니까요. 더구나 당신은…….”
   “엿새 전에는 마을회관에서 국방부인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여자 둘을 만났지 뭐예요.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들이 나를 보고는 약속이나 한 듯 얼른 입을 다물더군요. 두 여자가 똑같이 입술을 꼭 붙이고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섬뜩하더군요.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을 내게 들키지 않으려 미소로 위장하고 있는 것 같은 게 무척 불쾌했어요. 여보, 오봉인데 섬이 왜 이리 조용할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조금 전까지도 산양이 울었다는 걸 잊은 듯했다.
   “전쟁이 한참이던 작년 오봉 때도 돼지를 잡는 소리가 섬 여기저기서 들렸어요. 그런데 올 오봉에는 쥐 잡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 섬은 쉬지 않고 소리 내고 있었다. 온갖 새소리, 가축들이 내는 소리, 바람에 나무와 사탕수수와 담뱃잎들이 흔들리는 소리, 파도 소리……. 이 섬에서는 모든 것에 입이 있어서 돌도 소리를 냈다. 구름도 이 섬에 이르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엄마……” 야에코가 열에 들뜬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우타가 기모노를 옆으로 밀어놓고 야에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나흘 새 볼이 옴폭 팬 그 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야에코가 미군 약을 먹었어요?”
   “오, 쓰구오, 누가 그러든?” 우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쓰구오를 다그쳤다.
   “엄마, 엄마…….” 야에코가 다시 엄마를 불러댔다. 그 애는 마치 깊은 숲을 헤매며 애타게 찾듯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애는 너무 깊고 캄캄한 숲속을 헤매느라, 엄마가 곁에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야에코, 깨지 말고 잠들렴. 날이 밝고 온갖 새들이 깨어나 우짖을 때까지 깨어나지 말고 더 자렴…….” 우타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나직이 중얼거리다 ‘세 마리 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난겨울에 그녀가 밤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옛날 옛적에 구메지마라는 작고 작은 섬에 세 마리 새가 살고 있었단다. 까마귀, 왜가리, 매였단다. 새들은 달이 환히 뜬 밤이면 구시카와 마을의 산에 모이곤 했단다. 그 산은 풀이 무성하고 아무도 찾지 않아서 새들이 한가롭게 달빛을 즐기기에 그만이었단다. 황금빛 보름달을 바라보던 까마귀가 까악 하고 슬프게 울더니 말했단다. ‘내가 아기 까마귀일 때만 해도 이 섬이 부유했어. 굶는 사람이 없었지. 밤이면 사람들이 모여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달빛을 즐겼어. 그런데 쌀독이 비고 옷이 떨어지고 돼지우리의 돼지가 줄어든 뒤로 사람들이 달빛을 즐길 줄 몰라.’ 보름달을 향해 길고 우아한 목을 늘어뜨리고 있던 왜가리가 말했단다. ‘태풍과 가뭄, 홍수 탓이야. 결국 운명 탓이지.’ 왜가리의 말을 잠자코 듣던 까마귀가 말했단다. ‘왜가리야, 미안하지만 네 생각이 잘못된 것 같구나. 하늘은 좋은 일은 좋은 일로, 나쁜 일은 나쁜 일로 되돌려준단다. 행복과 불행은 운명이 아니니라 인간 자신의 마음 씀씀이와 의지에 달려 있어. 우리는 이 섬에서 태어나 이 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 사람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지. 이 섬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굶지 않고 헐벗지 않을 수 있을까? 왜가리야, 너는 논에서 사니 벼 수확에 대해 잘 알겠구나. 매야, 너는 들판을 날아다니니 농장에 대해 잘 알겠지.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니 집에 대해 잘 알지. 매야, 네가 먼저 말해보겠니?’
   ‘나는 오늘 낮에 이 섬의 동쪽을 날다 목화를 따고 있는 여자들을 봤어. 간밤에 이 섬을 휩쓸고 지나간 비바람에 목화가 거의 다 날아가고 없었어. 식물들은 저마다 맞는 땅이 있어. 목화는 땅을 가리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땅에는 심지 않는 게 좋아. 이 섬은 바람이 많이 불지. 나는 이 섬 사람들이 목화를 덜 심고 곡물을 심으면 좋을 것 같아.’ 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던 왜가리는 염려스러워했단다. ‘하지만 목화가 부족하면 옷감이 부족할 거고 그럼 사람들은 옷을 짓지 못하지. 노인들은 겨울에 옷이 없어 언 몸을 녹이느라 잠을 잘 수 없을 거야.’”27)

   야에코가 다시 잠들고 바늘땀을 떠 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당을 응시하며 쓰구오에게 물었다.
   “쓰구오, 오늘 일기에 뭐라고 썼니?”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바늘땀 떠넣는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마당을 내다보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쓰구오가 고개를 들고 날 올려다봤다. 야에코가 잠꼬대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우타에게 물었다.
   “우타, 꿈에 내 어머니를 뵀다고 했지?”
   “그래요, 나는 언젠가 꿈에 어머니를 뵀어요.”
   “내 어머니 모습이 어땠지?”
   “어땠냐고요?” 그녀는 말끝에 웃음을 흘렸다.
   “내 어머니가 혹시 웃고 계셨어?”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야 말했다. “울고 계시지는 않았어요.” 나는 방에서 나가 마당으로 나섰다.
   “어디 가려고요?” 그녀가 물었다.
   “바람 좀 쐬고 오려고.”
   “여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요. 당신은 선량한 사람이지만 정말이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아무 대꾸를 않자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보, 나칸다카리 씨도 얼마나 선량한 사람이었는지……. 우물을 파던 이웃이 가스에 질식해 쓰러지자 그는 그 이웃을 구하러 우물로 들어갔어요. ‘누가 구하러 들어갈 것인가?’ 다들 겁에 질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그는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왔어요. 허리에 동아줄 같은 걸 달랑 매고는 우물로 내려갔어요.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산 군인들은 그를 스파이로 찍었어요. 나칸다카리 씨는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아채고 이후 해변 근처 숲 속 오두막에 숨었어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안심하고 낚시를 하러 갔어요. 그가 모습을 나타내길 기다리던 군인들은 그를 죽였어요. 오두막에 숨어 있던 그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찾아내 죽이고, 오두막과 함께 불태웠어요.” 우타의 날아다니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마당을 걸어 나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 앞까지 따라왔다.
   “여보, 아기 이름이요! 우리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언제까지나 아가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나는 개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가쥬마루 나무 쪽으로 발을 놓던 나는 우뚝 멈춰 섰다. 개울가의 우거진 풀에 대고 나무막대 같은 걸 휘두르고 있는 사내애가 아무래도 가즈오 같아서였다.
   “가즈오?” 서쪽으로 지고 있는 해의 빛을 받아서 사내애의 얼굴은 뭉개져 있었다.
   “가즈오?” 나는 이름을 부르며 가즈오 가까이 다가갔다. 가즈오는 못처럼 꼼짝 않고 서서 내가 자신의 곁에 가까이 다가오는 걸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 가즈오…….”
   “왜요? 내가 가즈오가 아닌 줄 알았어요?”
   “가즈오…….”
   “삼촌, 내가 가즈오가 아니면 누군 줄 알았어요?” 그 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개울에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울려 퍼졌다. 가즈오는 내 친아들이 아니다. 내가 우타와 살기 전에 그녀에게는 이미 가즈오가 있었다. 그 애의 친아버지는 야마토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애가 태어나기 전에 그 애의 친아버지에게 버려졌다. 그녀는 자신이 우치나 여자라서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오키나와 본토에 살며 나는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인들을 차별하고 하대하는 걸 종종 목격했다. 나는 오사카에서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다 온 오키나와인과 친분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혀와 입에 박힌 오키나와 억양을 뿌리 뽑으려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는 고향인 구시에 돌아왔다 다시 오사카로 떠났다. 가즈오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섬 주민들과 산 군인들도 알고 있었다.
   “삼촌, 내가 누군 줄 알았어요?”
   “가즈오, 어서 집으로 가거라!”
   “삼촌, 그 형은 미군이 쏜 총알을 맞고 죽었어요.”
   “누구 말이냐?”
   “그 형이요.”
   “누구?”
   “그 형이요! 그 형이 죽기 전에 나는 그 형을 봤어요. 엄마하고 밭에 땅콩을 캐러 가다가요. 할머니한테 보내 줄 땅콩이요. 땅콩을 캐러 가기 전에 나는 할머니한테 편지를 썼어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사이판에 할머니를 만나러 갈게요.’ 하지만 나는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했어요. 삼촌은 어부가 아니니까요. 도리시마 마을에 살고 있는 미키 짱의 아버지는 어부예요. 에이코 짱의 아버지도요. 도리시마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다 어부예요. 미키 짱은 가다랑어를 잡으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사이판에 가봤다고 했어요.”
   “가즈오, 어서 집에 가라.”
   “나는 산양 우리 앞에서 그 형을 봤어요. 어른들이 그 형을 에워싸고 있었어요. 어른들이 그 형에게 소리쳤어요.
   ‘왜 죽였어?’ 어른들은 화가 나 있었어요. 그 형이 새끼 산양처럼 떨며 말했어요.
   ‘가야마 대장이 죽이라고 해서 죽였어요. 총으로 쏴 죽여 달라고 해서, 우리는 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어요.’ 산양들에게 줄 뽕나무 잎을 손에 든 아줌마가 그 형에게 물었어요.
   ‘우리가 누구야?’ 그 형이 아무 말도 못하자, 손에 곡괭이를 든 아저씨가 다그쳤어요.
   ‘우리가 누군지 말해!’ 그 형은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 형이 닭이 내는 것 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말했어요.
   ‘우리는 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우리는 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는데 가야마 대장이 칼로 찔러 죽이라고 명령했어요. 손발을 철사로 묶고 천으로 눈을 가린 아홉 사람을 나란히 세워 놓고 전부 한 명 한 명 칼로 찍어 죽이라고 했어요. 한번 찔러서 죽지 않아서 찌르고, 찌르고 또 찔러야 했어요.’ 그 형이 훌쩍훌쩍 울자 눈썹이 하얀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저 아이한테 먹을 걸 줘.’ 어떤 아줌마가 바구니에서 주먹밥을 꺼내 그 형에게 줬어요. 할아버지는 그 형이 주먹밥 먹는 걸 바라보며 말했어요. ‘너도 불쌍하구나. 창창한 나이에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됐으니. 평생을 손가락질 받으며, 지네처럼 좁고 어두운 길만 골라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말이야.’ 엄마하고 나는 산양 우리를 지나 땅콩밭에 땅콩을 캐러 갔어요. 엄마하고 내가 땅콩을 캐고 내려왔을 때 아무도 없었어요. 그 형도, 그 형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한 할아버지도, 그 형에게 주먹밥을 준 아줌마도요.” 가즈오가 형이라고 부르는 그 소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니시메 출신으로 산 군인이 됐다. 기타바루 마을에서 산 군인들이 주민 아홉 명을 죽이고 초가집과 함께 불태울 때 그 소년은 산 군인들 속에 있었다. 눈동자가 유난히 검던 그 소년은 얼마 뒤 미군이 쏜 총을 맞고 죽었다.
   “삼촌, 나도 열여섯 살이 되면 산 군인이 되나요? 그 형은 열여섯 살에 산 군인이 돼 해군 제복을 입을 수 있었어요. 산 군인들은 해군이니까요.”
   “가즈오, 어서 집으로 가라.” 가즈오는 그러나 집으로 갈 생각을 않고 풀에 대고 나무막대기를 거칠게 휘둘렀다. 조각난 풀들과 꽃들이 그 애의 얼굴 앞에서 벌레처럼 튀었다. 무기력한 심정이 돼 말없이 가즈오를 바라보던 나는 그 애가 우리에게 오던 날을 떠올렸다. 구니가미손28)에 살 때였다. 세 살 먹도록 그 애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야코가 태어나자 우타의 어머니는 가즈오를 우리에게 보냈다. 겁먹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애에게 우타는 말했다. “가즈오, 삼촌이라고 부르렴.” 사생아로 태어나 젖을 떼자마자 할머니에게 맡겨진 것은 그 애에게 불행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애를 정성스레 보살폈다. 오직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지만 나는 그녀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친아버지가 오키나와인도, 조선인도 아닌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가즈오가 자부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어쩌다 내게 감지될 때가 있다. 물론 그 애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나하 항에서 그 애는 일본군들의 감시를 받으며 가축들처럼 모여 있는 조선인들을 봤다.
   “가즈오?” 가즈오가 나를 바라봤다.
   “어디로 갔었냐?” 가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날 나를 찾으러 어디로 갔었냐?”

   우타의 어머니가 딸의 얼굴조차 바라보려 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조선인과 살고 있어서다. 이 섬에 들어와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큰오빠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보를 받고 우타는 나하에 다녀왔다. 나하에서 돌아온 날 밤에 그녀는 말했다. “병실에 와 있는데 어머니가 들어오셨어요. 어머니는 내게 눈길을 주지 않으셨어요. 내가 바라보자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시더군요. 나는 닭을 병실에 두고 떠나왔어요. 내가 그 닭을 구메지마에서부터 가져왔다는 걸 어머니는 모르셨을 거예요. 땅콩을 보내드렸는데도 내가 구메지마에 살고 있다는 걸 모르고 계신다니 말이에요.” 우타의 어머니는 딸이 조선인과 살고 있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딸이 조선인 사내와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오키나와에서 조선인이 더럽고 무서운 존재, 일본군의 소나 말 같은 존재로 인식돼 있어서다. 30여 년 전 내가 처음 오키나와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오키나와에는 조선인들이 드물었다. 나는 열여덟 살에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로 와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고시마까지 내려왔다. 그곳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오키나와로 들어왔다. 조선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1942년부터였다. 나는 조선인들이 수십 수백 명씩 무리 지어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거나 트럭에 태워져 실려 가는 광경을 봤다. 곡괭이를 들고 언덕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조선인들도 봤다. 살과 뼈가 녹아드는 열기 속에서 푸른 옷을 입고 땅을 평평하게 다지고 있는 조선인들을, 일본군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봤다. 내가 처음 조선인 무리를 본 곳은 요미탄촌29)의 들판이었다. 보험 외판원이던 나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보험 상품을 팔았다. 언덕진 곳의 가쥬마루 나무 그늘 아래서 주먹밥을 먹고 있던 나는 바다 쪽에서 줄지어 걸어오고 있는 무리를 봤다. 풀이 무성히 자란 들판을 가로지르며 동쪽으로 걸어가는 이들이 조선인 사내들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을 싣고 온 듯한 배가 해안가에 정박해 있는 게 보였다. 바다는 옥빛이었고 수평선 부근에는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다. 구메지마로 이주할 즈음에는 조선인 여자들도 부쩍 눈에 띄었다. 나하 쓰지30)근처에서였다. 야에코를 업고 쓰구오의 손을 잡아끌며 내 뒤에서 터벅터벅 발을 놓던 우타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보, 저 여자들 좀 봐요!”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가 또 말했다. “조선 여자들 같아요.” 그제야 나는 훌쩍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어디?”
   “저쪽으로 걸어갔어요.” 우타는 쓰지의 유곽 거리를 손으로 짚어 보였다. 오키나와 땅에서 조선인들과 마주칠 때면 나는 반가우면서도 불편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러니까 조선반도가 아닌 낯선 땅에서 온 이들을 바라보듯 멀찍이서 그들을 바라봤다. 나는 조선에서 산 햇수보다 오키나와에서 산 햇수가 더 길다. 땅을 밟아도 조선 땅보다 오키나와 땅을 더 많이 밟았다. 물을 마셔도 조선 물보다 오키나와 물을 더 많이 마셨으며, 쌀 역시 오키나와에서 난 쌀을 더 많이 먹었다. 오키나와인 여자와 살며 자식을 넷이나 낳았지만 나는 오키나와 사람이 아니다. 일본인 행세를 하며 일본인처럼 보이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지만 오키나와인들은 내가 조선인인 걸 금세 알아차렸다. 그것은 오키나와인들이 본토에서 본토 표준어를 쓰며 일본인 행세를 하려 해도 피부색과 억양 때문에 들통나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구메지마로 이주해 오기 전 나는 오키나와인들이 조선인들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말 먹이려고 고구마하고 비지를 솥에 삶고 있는데 피골이 상접한 조선인 사내가 다가오더니 구걸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지 뭐야.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고구마를 꺼내 먹으라고 줬지.”
   “조선인이 일본 군인한테 매질 당하는 걸 봤어. 다 큰 어른이 ‘아이고’ 소리를 내며 우는 모습이 이상하대.”31) 우타의 어머니도 먹을 걸 구걸하는 조선인들을 봤을 것이다. 일본군에게 매질을 당하며 아이고, 아이고 우는 다 큰 조선인을 봤을 것이다.

   “가즈오, 어서 집으로 가라!” 가즈오가 나무막대를 휘두르며 마지못한 듯 집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다 가쥬마루 나무로 발을 놓았다. 기타하라 마을이 내려다보는 곳을 지나며 나는 오가타 씨를 떠올렸다. 보름 전쯤 나는 그곳에 서 있던 오가타 씨를 봤다. 그는 안짱다리를 벌리고 서서 기타하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수레를 세우고 오가타 씨를 불렀다.
   “오가타 씨!”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바람이 휙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불었다. 그의 하얗게 센 눈썹들이 일어나 물결처럼 일렁였다.
   “오가타 씨, 안녕하십니까.” 그가 광채에 휩싸여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너는 조선반도 사람!” 그의 굵은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음, 부디 조심해. 스파이— 스파이—.” 그는 그리고 기타하라 마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도 탔어!” 그는 섬 주민 아홉 명과 함께 불타버린 초가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재가 날리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일본 군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흔드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다 나는 수레를 끌며 집 쪽으로 발을 놓았다. 열 발짝쯤 멀어졌을 때 그가 노래를 부르듯 리듬을 실어 부드럽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쿠루나이사32)!”

2

   “다니카와, 집에 있지 마!”

   “산 군인들이 오늘 밤 널 죽이려 네 집을 찾아갈 거야!”

   들판에서 낯선 듯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가쥬마루 나무와 함께 어딘가로 한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가쥬마루 나무는 줄기가 여러 개로 걸어 다니는 나무다. 뿌리 여러 개가 겹치고 뭉쳐 줄기가 된 것인데, 어스름한 시간에 언덕에 서 있는 가쥬마루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치 다리가 여러 개인 신령한 짐승이 몹시 느리게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쥬마루 나무 아래에 홀로 서 있곤 하는 이유였다. 목소리는 어쩌면 바람이 들판을 휩쓸고 지나가며 만든 환청인지도 몰랐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들판을 응시했다.
   “누구요?” 들판에서는 그러나 낫을 휘두르는 것 같은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다니카와는 누구요?” 가쥬마루 나무의 가지에 찢긴 그물처럼 치렁치렁 매달린 뿌리들이 귀기를 발산하며 흩날렸다. 땅까지 길게 내려온 뿌리들이 물결처럼 흐느적거렸다.
   ‘다니카와, 다니카와 노보루…….’ 중얼거리던 나는 집 쪽으로 황급히 발을 놓았다. 다니카와가 누군지 그제야 깨달아서였다.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닭이 우는구나, 우리 집 닭이 우는구나!’

3

   내 얼굴로 황금 백금 달빛이 쏟아진다. 오늘은 오봉이자 가즈오의 생일이 아닌가. 나는 땅을 머리에 베고 누워 있다. 한 덩이의 땅이자 섬이 내 어깻죽지 아래에 놓여 있다. 어깻죽지가 꿈틀거리자 땅이 덩달아 꿈틀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 얼굴을 지우듯 쓸고 지나간다. 검은 그림자들이 내 얼굴 위에서 춤을 춘다. 내 목에 걸린 밧줄이 당겨진다. 입이 절로 벌어진다. 나는 밧줄에 목이 걸려 개처럼 끌려가고 있다. 내 머리가 땅에 끌린다. 돌멩이가 머리를 찔러온다. 피가 머리카락을 적시고 목을 타고 흐른다. 날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걸까? 밧줄이 당겨진다. 섬이 통째로 내 몸뚱이와 함께 밧줄에 끌려간다.
   “삼촌! 삼촌!” 쓰구오가 겁에 질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내 발을 붙들고 매달린다. 쓰구오는 제 형 가즈오를 따라서 나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아야코도 야에코도 나를 아버지가 아닌 삼촌이라고 부른다.
   “삼촌!” 쓰구오, 도망가…… 밧줄이 목을 조이고 있어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못한다.

   가쥬마루 나무를 떠나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간 나는 쓰구오를 데리고 곧장 도리시마 마을로 향했다. 니시메 절벽에 미군들이 레이더를 설치하고 주둔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산 군인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이 섬에 상륙한 나칸다카리 메이유 씨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가족들과 피신해 있던 오두막은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이후 해변 근처에 있었다. 나는 쓰구오와 함께 도리시마 마을의 오두막에 딸린 방공호에 숨어들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촌민처럼 위장한 산 군인들은 나를 찾아냈다. 그들은 나를 방공호에서 끌어내자마자 내 목에 밧줄을 둘렀다. 등짝을 세차게 밀어 땅에 쓰러뜨렸다. 내가 쓰구오를 데리고 피신한 것은 산 군인들이 그 애를 죽일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내가 스파이로 의심받는 것은 조선인이기 때문이었고, 쓰구오는 내 친아들이었다. 우타는 산 군인들이 가즈오는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애의 친아버지는 가야마 대장과 같은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우타와 아이들은 무사히 도망갔을까. 산 군인들은 내 집에도 갔을 것이다. 내 집에 먼저 갔을까? 아기가 깨어나 울부짖던 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아기는 이 섬에 태어나던 날처럼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오가타 씨도, 후미코 씨도, 경방단장의 부인도 우타가 아기를 낳았다는 걸 알았다. 이웃 여자 하나는 아기를 보러 찾아오기도 했다. 아, 그 여자가 스즈요 씨였을까?

   밧줄에 목이 잡아당겨지며 몸이 끌려간다. 군인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이 힘을 합쳐 나를 끌고 있다. 나는 군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문둥이들처럼 얼굴을 천으로 감싸 가리고 있었다. 죽은 개처럼 사지를 늘어뜨리고 끌려가는 내 몸을 땅 위의 모든 게 찔러온다. 돌, 풀, 나무뿌리, 흙.
   “아아, 아아 삼촌! 삼촌!” 쓰구오가 울며불며 내 발을 붙잡고 매달린다. 아야코, 야에코도 내 발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아기를 업은 우타와 가즈오도 내 발에 매달려 함께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 으, 손등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구나. 종아리가 찢기는구나. 허벅지에서 피가 토해지는구나. 으으, 등짝이 갈라지는구나. 내 입에서 조선 말이 토해진다.
   ‘아버지…… 어머니…… 무서워…… 무서워…….’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즈음 우타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고 있었다. 낡고 헤진 기모노로 아야코에게 입힐 치마를 만들던 우타가 말했다.
   “여보, 구메지마에서 배를 타고 동남쪽으로 한나절 꼬박 배를 타고 가면 미야코33)라는 섬이 있대요.”
   “미야코?”
   “네, 그 섬이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고 하네요.”
   “그래?”
   “후미코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그녀는 미야코에서 이 섬으로 시집왔어요. 열일곱 살에 어부인 아버지의 배를 타고요. 얼마나 순진했는지 나하로 시집가는 줄 알고 신나서 고향 섬을 떠나왔다고 했어요. 내가 미야코라는 섬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그곳에 자신의 남동생과 여동생 둘이 살고 있으니, 그들에게 부탁하면 우리가 살 만한 빈집을 알아봐 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섬이지만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빈집이 있을 거라고 했어요.”
   “후미코 아주머니는 내 말을 미야코지마에서 살고 싶다는 말로 들었나 봐요.”
   “우타, 여기가 끝이야.”
   “끝이요?”
   “여기가 끝이야.”
   “여보, 끝은 없어요.” 그녀는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구는 둥글어요. 그러니 끝이 있을 수 없어요. 세상 그 어디도 끝이 될 수 없어요.”
   “우타, 나는 여기서 더 멀리 가지 않을 거야.” 내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짓고 바느질하던 손을 다시 놀렸다.
   “후미코 아주머니는 첫 자식을 낳을 때까지도 아버지가 어째서 자신을 고향 섬보다 작은 섬으로 시집보냈을까 원망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대요. 기왕에 바다 너머로 시집보낼 거면 본섬으로 보내지 미야코보다 작은 섬으로 시집보냈을까 싶었대요. 본섬 사람들이 미야코나 야에야마 같은 선도(先島)34) 출신 처녀총각과는 혼인을 꺼리고 금기할 만큼 하대하고 업신여긴다는 걸 알고서야 이해가 됐다네요. 미야코에서 시집 온 자신을 비호의적으로 대하는 시댁 어른들의 태도도 그제야 납득이 갔고요. 나도 어릴 때 친척 어른이 하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요. ‘야에야마 처녀요? 아무리 처녀가 없어도 신붓감으로 야에야마 처녀를 얻을 수는 없지요.’ 후미코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구메지마, 미야코지마, 야에야마지마. 똑같이 망망대해를 쓸쓸히 떠도는 섬에서 나고 자란 처지들끼리 피부색이 까맣네, 말이 억세서 도통 못 알아듣겠네, 하면서 멸시하는 게 우습지? 그러면서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인들을 멸시한다고 분개하는 모습은 우습고 안쓰러워…….’”

4

   내 머리는 절벽에 놓여 있다. 바늘처럼 일어선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피투성이인 내 머리가 제물처럼 놓여 있는 절벽에서 나는 언젠가 사바니 대여섯 척이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광경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고적하고도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쓰구오……?’ 쓰구오는 어디에 있는 걸까. 잡풀이 어지럽게 우거진 풀숲에서 그 애는 내 발을 놓쳤다. 파도소리가 너무 거칠고 커서 그 애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절벽까지 날 질질 끌고 온 밧줄이 목을 조여 온다. 나는 눈동자를 토할 듯 부릅뜨고 하늘을 올려본다. 초저녁에 내가 그토록 찾던 달이 내 얼굴 위에 떠 있다.
   ‘우타, 내가 뭐랬어…… 여기가 끝이라고 했지…….’ 흰 천을 감은 얼굴이 달을 가린다. 밧줄이 목을 파고든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우리 아기…… 나는 우리 아기에게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에필로그-목소리

   그날 밤 달이 눈부시게 빛났어. 촌민으로 변장한 산 군인들이 다니카와 씨의 목에 밧줄을 걸고 도리시마 해안까지 3백여 미터를 산 채로 질질 끌고 갔어. 섬이 쥐죽은 듯 조용했어. 다니카와 씨의 아이가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났어. 그리고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주민 하나가 다니카와 씨가 숨어 있는 속을 산 군인들에게 알려줬어. 가야마 대장이 그랬다다더군. ‘그를 놓치면 부락민들 전부가 스파이다.’35) 산 군인들은 해안 절벽에 그를 놓고 목 졸라 죽였어. 달빛이 쏟아지는 절벽 밑으로 그를 밀어 떨어뜨렸어. 다른 산 군인이 그의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어. 발버둥치는 아이를 죽은 아버지 위로 던졌어. 아이가 아버지의 몸에 매달려 울부짖었어. 산 군인들이 절벽 아래로 내려가더니 칼로 아이의 몸을 찢기 시작했어.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찢었어. 산 군인들이 말했어.

   * 구중회 씨 일가의 몰살 사건을 이해하고 관련 자료를 모으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오세종(류큐대학 인문사회학부 교수,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저자)• 우에마 카나(사키마 미술관 학예사)•야마자토 나오야(구메지마 박물관 학예사)•김지혜 (『철의 폭풍』 공역)•전효리(교토예술대학교 캐릭터디자인학과 재학)•손경여 선생님(출판인). * 장남 가즈오와 동급생이자 현재 구메지마의 주민으로, 구 씨 일가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신 우에즈 노리야키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각주

1) 오키나와의 악귀를 쫓는 수호신 조각상.

2) 경방단(警防團). 태평양전쟁 당시 공습과 화재로부터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마을 단위로 조직된 단체.

3) 구스쿠 시대(11~12세기부터 류큐 왕국에 의해 오키나와 섬들이 통일된 1429년까지)의 성터가 있는 산. 표고 310미터.

4) 오키나와를 일컫는 우치나에 대응해 일본 본토를 일컫는 말.

5) 전시 중 구메지마에 주둔해 있던 일본 해군 통신대.

6) 오키나와의 어부들이 타던 전통 돛단배.

7) 오키나와의 전통 증류주.

8) 우타 씨와 갓난아기, 그리고 가즈오가 살해된 장소.

9) 음력 7월 15일로 오키나와의 추석 명절.

10)
구 일본의 교육 기관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학교 교육법이 제정될 때까지 존재했다. 당시 의무 교육 기간이었던 초등학교 졸업 후 중등 교육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일하는 청소년들에게 사회 교육을 제공했다.

11) ころしや(殺し屋). 살인청부업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12) 방언벌칙패찰(方言札). 지배국인 일본이 오키나와에서 일본어를 표준어로 강제하며 방언(오키나와 본섬과 제도에 속한 섬들에서 쓰던 언어)을 추방하기 위해 고안한 수단.

13) 오키나와의 대표 생선으로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며 몸 길이가 10~20센티 정도다.

14) ハジチ. 오키나와의 섬들에서 여성들이 손에 여러 문양의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 성인 의식, 결혼 증명서, 액막이의 의미가 담겨 있다. 결혼 전에 남성이 돈을 지불하고 하지치를 전문적으로 새겨주는 사람에게 의뢰해 결혼할 여성의 손에 하지치를 새기기도 했다.

15) 석회암 지대인 오키나와에 많이 발달해 있는 자연 동굴. 오키나와전 때 많은 가마가 반공호로 쓰였다.

16) 마을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며 넋을 달래주는 존재.

17) ヤジャーガマ. 구메지마의 나카치 마을에 있는 천연 동굴로 길이가 800미터에 이른다.

18) 오키나와의 현청 소재지이며, 경제의 중심지다.

19) 게라마 제도 최대의 섬으로서 오키나와 본토에서 서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20) 오키나와 본토에서 북서쪽으로 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

21)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류큐 왕국의 왕궁이 있는 지구.

22) 쓴 맛이 나는 박과 채소로 오키나와의 대표 식재료.

23) 오키나와 남부 서해안에 위치한 도미구스쿠시.

24) 구 씨의 두 딸이 살해된 장소. 일본군들은 두 여자아이를 집에서 700미터 정도 떨어진 그 숲 앞까지 유인해 살해했다.

25)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들은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겪지 말라"는 전진훈(戦陣訓)의 행동규범을 철저히 교육받았다.

26) 옥쇄(玉碎). 오키나와 전투(1945년 4월 1일~6월 23일) 때 일본군은 후퇴 없이 끝까지 위치를 사수하다 ‘천왕을 위해’ 죽는 옥쇄를 오키나와의 주민과 민간인들에게 강요했다. 그로 인해 오키나와에 곳곳에서 집단 자결하는 참화가 벌어졌다.

27) 나카무라 히로시 시역(試訳)의 『구메지마의 세 마리 새 이야기』에 실린 이야기 인용.

28) 오키나와 최북단에 있는 구니가미군의 촌(村).

29) 오키나와 나카가미군의 현.

30) 오키나와의 나하항 앞 유곽이 있던 마을.

31) 오세종,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소명출판, 2019)에 실린 오키나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함.

33) 오키나와 본토에서 남서쪽으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과 동중국해의 사이에 있는 섬.

34) 사키시마 제도. 난세이 제도의 중부, 오키나와의 남서부에 모여 있는 미야코 제도, 야에야마 제도의 크고 작은 섬들을 말한다.

35) 『陸軍中野学校と沖縄戦:知られざる少年兵「護郷隊」』(川満 彰, 吉川弘文館)에 실린 당시 주민의 증언. ‘그를 놓치면 부락민들도 동죄다.’

35) 구중회 씨와 둘째아들이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경방단원의 증언 인용. 1972년에 오키나와의 교직원이 작성한 『これが日本軍だ』에 그 증언이 실려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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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1997년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소설집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장편소설 『철』, 『노란 개를 버리러』,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떠도는 땅』, 『듣기 시간』, 『제비심장』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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