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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엄마

테리사 리

1

   타투 숍의 벨을 연달아 눌렀다. 한참 기다리다 전화를 걸었지만 먹통이다. 출입문을 비틀어 보아도 꼼짝하지 않는다. 치마를 잡아당겨 계단에 걸터앉는다. 칼날 같은 햇살이 4층 복도의 쪽창을 타고 넘어온다. 긴 남방의 소매를 걷어 올리자, 지렁이 수십 마리가 뒤엉켜 꿈틀대는 것 같은 손목의 흉터가 드러났다. 나는 손목을 응시하며 타투를 상상한다. 눈길로 흉터 위에 타투 글씨를 써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10시 30분, 휴대폰 시간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개뿔, 뭐야. 30분이 지나는데, 약속도 안 지키고.”
   나도 모르게 문에 대고 발길질했다. 발가락이 얼얼하고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메신저백을 둘러매고 계단을 뛰어내리는데 아래서 발소리와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층에서 부딪칠 듯 마주친 여자는 생일 초대라도 받았는지 풍성한 카네이션 다발을 안고 있다. 무의식중에 꽃다발을 받으려고 내 두 손이 올라가다 아래로 떨어졌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헉! 엠마 씨, 미안. 오늘따라 카네이션 찾아내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더라고요.”
   여자가 호주머니에서 방전된 핸드폰을 꺼내 보여 주었다. 코를 문지르며 여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숍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빠르게 손을 놀려 유리병에 물을 받아 카네이션부터 꽂았다.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여자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한 달 전의 일을 떠올린다.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흐린 오후였다. 쇼핑센터에서 생리대를 사서 나오다 입간판을 발견했다. 구직에 실패하고 힘없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숙소인 보딩하우스까진 1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엔 다음 날 가야 할 정육점 면접 생각뿐이었다. 그곳 또한 웨이트리스처럼 손목을 사용하는 미트 커트 일자리였다. 어떻게 주저흔을 숨기지?
   막막하던 내 눈앞을 막아선 타투 숍이란 글씨를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 시간 전에 만난 카페 사장이 떠올랐다. 그를 향한 분노가 식을 줄 몰랐다.
   시드니에서 처음 시도한 구직에서 만난 카페 사장은 긴팔 남방으로 꼭꼭 숨긴 내 손목 붕대를 귀신처럼 알아냈다. 꼬치꼬치 캐묻는 그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끝끝내 붕대를 풀게 하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 심각한 상처를 달고서 일자리를 구한다고? 쉽지 않겠지.”
   돈을 벌면 타투를 할 거라 사정하며 매달렸지만, 그는 콧방귀를 끼며 세차게 손을 뿌리쳤다. 카페를 나오면서부터 나는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타투 숍이 자리한 4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랐다. 숨을 뱉으며 출입문을 열었을 때 늦은 점심을 먹었는지 립스틱을 문지르며 여자가 준비실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움찔 놀랐다. 그동안 여자와 비슷한 사람을 보고 얼마나 많이 놀랐던가. 노르스름한 피부, 짙은 갈색 머리칼, 적갈색 눈을 보면 자동으로 손이 코끝으로 올라간다. 입이 벌어진 내 표정을 감추려고 코끝을 문질러 댄다.
   동양 여자를 보면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머릿속에 번쩍번쩍 빨간불이 들어왔다. 엄마일지도. 아무리 자제해 보려고 애를 써도 감정의 스위치가 뇌보다 한발 빠르게 작동해 버린다.
   내 담당 심리 치료사는 나무뿌리 같은 손을 휘젓거나 긴 속눈썹 속의 청회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에둘러 설명했다.
   “생각을 억누르면 오히려 리바운드가 일어나게 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둬. 차라리 상상의 이미지들을 모아서 머릿속에 폴라로이드 사진첩을 만들어도 좋고. 누가 알아, 멋진 창작물이 될지.”
   “무슨 말이래요.”
   “인간의 몸은 교향악이지. 0.1밀리미터 세포가 아기를 만들고 동시에 다른 크기의 세포가 곡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하고 별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몸을 보호하려고 병원균을 죽이고…… 그게 인간의 몸이지.”
   ‘자해하지 말라’고 몇 단어로 말해 주면 훨씬 빨리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처음 타투 숍을 찾아왔던 날은 웨이트리스 면접에 실패한 날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입양 서류에 기록된 내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게 정확한 내 출생일인지 나는 모른다. 부모의 신상 정보가 기록된 호적 등본, 나의 출생 일시를 공식화한 출생신고서, 내가 태어난 병원의 진료 차트는 버려졌다. 나와 관련된 서류나 기록이 사라진 자리엔 입양 기관에서 만들어낸 고의 족보가 있을 뿐이다.
   위탁 가정과 후견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열여덟 살이 되는 날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날부터 나 스스로 책임지고 일자리를 구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건 충분히 알았다.
   한 달 전 그날도 여자는 기록부터 서둘렀다. 날씨가 흐려 실내가 어두워 여자가 형광등 하나를 더 켰다. 내 아이디를 들여다보던 여자의 눈빛이 진자처럼 흔들렸다. 여자는 가끔 눈꺼풀을 손등으로 비벼 가며 내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을 기록하는 내내 손가락을 가늘게 떨었다. 그 바람에 삐뚤삐뚤 초등학생이 쓴 글씨 같았다. 여자가 내 손목을 잡을 때까지도 그 여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여자가 안면을 바꾸어 내 손목 붕대를 풀어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런 완전 생짜 상처에다 타투를 한다고요? 정신이 나간 타투이스트가 아니고서야 타투를 해 주겠어요?”
   안 돼요. 꼭 해야 해요. 내일 정육점 면접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앞이 깜깜하게 변하고 혼돈과 혼란으로부터 기억이 몰아쳤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내 눈을 잡아당기던 장면, 내 눈 모양을 보고 놀리고 쓰레기를 던지고 침을 뱉던 일들, 검고 뻣뻣한 내 머리카락을 돼지털 염색한다며 진흙을 덮어씌웠던 일들……. 그때 여자가 내 기억을 자른다.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이대로는 안 되죠. 어휴…… 피비린내.”
   나는 스프링처럼 일어났다. 쓰레기통에서 붕대를 찾아 손목에 둘둘 말았다.
   “한 달 후 봐요. 잊지 말고 상처 똑바로…….”
   여자의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닫히는 문에 잘렸다. 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오후 4시의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은 온통 먹구름뿐이었다. 카페 사장을 향한 분노로 들끓던 내 머릿속에 먹구름보다 더 짙은 생존의 고민이 깔렸다.
   걸어서 보딩하우스에 돌아왔다. 예닐곱 명이 한집에 사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상처를 돌보는 일은 어려웠다. 면도날에 깊게 잘린 손목은 아물 것 같다가 다시 속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정육점 면접은 가지 않았다. 고기 자르는 칼로 내 손목을 자를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타투를 한 뒤 당당하게 웨이트리스 일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바이러스에 걸린 것처럼 온통 타투 생각뿐이었다. 틈만 나면 꾸덕꾸덕 굳어 가는 딱지 위에다 형광펜으로 Eomma(엄마)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기를 거듭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를 향한 메시지를 화인처럼 새기리라고. 언제 어떻게 배태되어 내 안에 존재하게 된 분노인지 알 수 없지만, 아기를 버리지 말라, 배고파도 버리지 말라, 동양 아기를 왜 서양에 버리는가. 버리더라도…….
   Eomma 타투를 십자가처럼 팔목에 새기리라고. 그 생각에 빠지면 입술이 분노로 팽팽해지면서 심장이 후들후들 떨렸다. 형광펜으로 Eomma란 글씨를 그어 댈 때마다 정신은 바위처럼 굳어 갔다.
   챗봇에 물어보았다. 애증이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마음에 아픔이 뒤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이 아픈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점점 더 Eomma를 새겨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꼭 그 여자에게 가서 타투를 새길 것이라고 마음을 굳혔다.
   미처 돌도 지나지 않은 나를 입양해 엠마란 이름을 지어 준 부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일곱 살이었다. 그 뒤로 이런저런 백인 가정으로 버려지며 위탁되었다. 어느 날 나는 주변 사람들 모두를 더욱 속상하게 하고 삐뚤어진 행동을 보여 주지 못해 안간힘을 다하는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내 미성년의 페이지는 힘겹고 거칠고 더디게 넘어갔다.
   내 상념을 자르며 창문으로 걸어간 여자가 커튼을 젖힌 뒤 카네이션과 소녀의 사진을 더 가까이 붙여 놓고 되돌아온다. 타투 숍 깊숙이 점령한 햇살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걸어오는 여자는 정작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는 건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여자의 어깨 너머 창틀에 놓인 카네이션과 그 옆 소녀의 사진으로 시선을 옮긴다. 고개를 돌리자, 타투 도안들, 의자, 테이블, 아이비, 스툴, 석고상 같은 사물들이 갑자기 카네이션의 후광을 받고 환하게 피어난다. 여자의 지시대로 나는 카우치에 비스듬히 앉는다. 스툴을 당겨 앉은 여자가 한 달 전과 마찬가지로 한 손엔 기록장을 남은 손으로 내 손목을 잡는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 상처가 왜 이래요?”
   레이저 같은 시선으로 흉터를 뚫어지게 보던 여자가 인상을 찌부러뜨렸다.
   “필기구로 상처를 떠들썩거렸군요. 이 상태론 안 되죠. 표피에 잉크가 스미지 않는데…….”
    나는 여자의 말을 자른다.
   “전화 통화할 땐 된다고 하고선. 한 달이 지나면 무조건 된다고 큰소리친 거 잊었어요?”
   내 항변에 여자는 내 눈을 파헤칠 듯 뚫어지게 본다. 그 눈빛이 너무 예민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입 안에서 녹아 버린다. 대신 식빵 같은 갈색 카펫 바닥으로 눈길을 내리자 지난 한 달이 떠오른다. 시골 맥도날드에서 일해 모아 둔 저금은 타투 비용으로 지불하려고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자선 단체를 찾아다니며 무료 식빵을 구해 버터와 우유로 한 달을 버텼다. 지금은 여자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말한다고 해서 휴대폰 대금, 보딩하우스 주세, 인터넷, 물세, 전기세, 가스세가 밀려 있는 내 사정을 알 리 없다.
   용수철처럼 일어나 메신저백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금속에 새긴 활자처럼 내 안에 각인되어 있던 버림받았다는 증오심이 여자를 향했다. 내 감정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는 상대를 향해 폭발한다.
   여자가 벌떡 일어나 내 남방 자락을 와락 당겼다. 나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고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적의 어깨에 손을 얹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럼 해치웁시다. 새로 출시된 특수 젤리를 덧발라서. 젤리 비용이 추가된다는 것만 알아 둬요.” 내 어깨 위에 그대로 얹혀 있는 여자의 손을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지급하지. 방법이 있겠지. 타투가 끝나자마자 줄행랑을 놓아 버리면…….
   잠시 뒤, 여자가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마우스를 스크롤하자 나비, 뱀, 해골, 잉어, 주사위가 등장했다. 여자가 눈짓과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것이 디자인을 고르란 건지, 내 마음을 저울질하겠다는 건지? 잠시 여자가 내 표정과 창가의 카네이션에 번갈아 시선을 던지다 말고 다시 마우스를 움직인다. 파도, 꽃, 리본, 거미줄, 성모상, 천사, 코알라, 제비, 비행기가 불려 나왔다. 그러던 여자가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더니 할미새의 꼬리처럼 머리를 털었다.
   “이것저것 다 싫으면, 성모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상은 어때요? 물론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워터마크 배경도 넣고.”
   “한 개의 대문자와 나머지 네 개의 소문자를 새길 사정밖에 안 돼요.”
   설레발을 치는 여자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복잡한 도안을 강요한 뒤, 고액을…… 그 비용을 나더러……. 타투가 끝나자마자 여자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달아나는 수밖에. 하지만 나도 여자의 흉내를 내며 고개를 털고 마음을 돌린다. Eomma로 할 거니까. 돈 때문이 아니야. 다시 말할 기회를 노린다. 그때 내 손목과 카네이션에 다시 눈길 그네를 타던 여자의 시선이 휘청 흔들렸다. 그리고 얼마나 세게 인터넷 창을 클릭해서 닫는지 여자의 손 떨림이 내 손목에까지 전해진다. 컴퓨터를 끈 여자가 내게 무언가를 청하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볼 때 나는 손을 빼낸다.
   “Eomma란 글씨로 해줘요.”
   “알아요. 자신의 이름을 몸에 새기고 싶은 허황한 인간의 심리.”
   여자가 입술을 비트는 것이 심드렁한 건지 의뭉스러운 것인지 알 수 없다. 뭐래! 설마하니 경험 많은 당신이 Emma와 Eomma를 구분하지 못한다고요? 똑똑히 들어요, Emma는 내 이름이고 Eomma는 마더라고요. 계속 말을 참고 있다간 가슴이 폭발할 것 같다. 그때 여자가 내 생각을 기습했다.
   “Are you Korean?”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의 국적을 물어보려다 손바닥으로 입을 막는다.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 또는 일본인이라면. 그리고 내 표정이 굳었다. 어쩌다 만났던 몇몇 한국인들, 그들의 눈빛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입으론 값싼 동정을 쏟아내면서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눈빛에서 읽었던 것들. 한국인 입양아, 생긴 건 동양인인데 풍기는 분위기는 백인, 과도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도 묘하게 부끄럼을 타는, 그러면서 공격적인……. 그때마다 나는 투명 인간이 되어 그들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싶었다.
   “한국어…… 못해요. 시골에서 자라서 기회가 없었어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여자는 여전히 자신의 국적엔 굳게 입을 닫고 이번엔 팔을 배너 풍선처럼 휘저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이 무수한 흉터를 어떤 타투로 감추고 싶은 거요?”
   무수한! 여자의 말에 기가 죽은 나는 애써 마음을 다독여 용기를 낸다.
   “Eomma는요?”
   청각 장애자 같은 여자가 뭔가 우월감에 도취한 사람처럼 어깨를 흔들며 재게 창가로 걸어간다. 가다 고개를 돌려 내 표정을 확인하기까지. 나는 여자의 눈길을 피하려고 시선을 깔았다. 그리고 여자가 내 손목에 남긴 끈적거리는 땀을 스커트에 쓱쓱 닦아 냈다. 잠시 뒤 여자가 카네이션 화병을 집어 들고 되돌아오는 걸 지켜보다 가까이 오기 전에 큰 소리로 말한다.
   “Eomma로 해줘요. 다른 건 안 해요.”
   여자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카네이션을 탁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놓은 다음 낮게 신음한다. 그런 뒤 여자가 다시 내 손목을 억세게 움켜잡았다. 여자의 악력에 내 입술은 그대로 얼어 버린다. 어느새 여자가 내 흉터를 짓찧을 것처럼 들여다본다.
   “Eomma든 Emma든? 어휴, 답답해. 그깟 글자 몇 개로 이 많은 흉터를 가릴 수 있다고 기대해? 바보처럼. 한 달 전 기억 안 나? 피 흐르는 데다 타투해 달라고 떼쓰던.”
   여자는 혀를 차며 어느새 하대했다. 뭐래? 나는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누르며 횡설수설하는 여자의 말을 더 이상 귀담아듣고 싶지 않았다. 그때 여자가 심장에서 터지는 것 같은 깊은 한숨을 훅 뱉었다. 그리고 돌변하더니 두 눈을 치켜떴다.
   “말귀를 못 알아듣나 본데, 이렇게 글씨를 새겨 봤자 사이사이 흉터가 훤히 다 보여. 도대체 숨기시겠다는 거야, 떠벌리고 다니시겠다는 거야.”
   여자가 타투 물감을 손가락에 찍어 흉터에 글씨를 갈겼다. 그러곤 스캐너처럼 내 표정을 훑는다. 이미 나의 속사정과 속마음을 모두 꿰고 있다는 낯이다.
   나는 여자의 손아귀에서 거칠게 손목을 빼내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소매를 내렸다. 타투 숍이 여기뿐인 줄 아나 봐. 여자를 향해 말을 뱉지 못해 미칠 것 같다.
   “잠시만! 고약한 성질머리하고는. 도대체 한 달 전이랑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여자가 내 메신저백의 어깨 고리를 와락 잡아당겼다. 고개가 휙 뒤로 당기는 충격을 받는 순간 바닥난 교통 카드를 비롯한 현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눈앞이 깜깜하게 변하고 혼돈과 혼란으로부터 막다른 기억이 몰아쳤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백인 부모 말고 진짜 너의 노란 부모는 어디 있니?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대답을 강요하던 아이들. 대답할 수 없을 때마다 소리 없이 외쳤다. 내 외모가 너희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는가, 피해를 준다면 어떤 피해를?
   어느새 여자가 카네이션 화병을 내 코앞에 들이댔다. 이번엔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더니 전략을 바꾸어 살살 달래는 투로 나온다.
   “이 꽃, 엄마 사랑 심벌인 거 알아? 꽃잎을 포테이토칩처럼 얇게 부풀리는 거야. 그런 뒤 플리츠 스커트처럼 피어난 분홍 꽃의 한가운데 새빨간 꽃술을 새겨 넣는 거지.”
   여자가 한 손으로 고불고불 주름을 만들어 보인다.
   “어때?”
   “예?”
   “이 카네이션!”
   “그럼, Eomma는요?”
   답답한 심정을 감추려고 나는 코끝을 세게 문지른다. 하지만 빨대 같은 여자의 고약한 눈길이 내 영혼까지 빨아들일 기세다.

2

    여자가 내 손목에 전사지를 붙인 뒤 어깨를 두 번 토닥여 주고 준비실로 사라졌다.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여자를 생각한다. 짧게 자른 직선으로 뻗은 굵은 머리카락, 원래 피부보다 더 하얗게 바른 파운데이션, 붉게 칠한 볼과 입술…… 엄마일지도. 무작위로 상상이 뻗어간다.
   고개를 내리고 탈취제로 감싼, 꾸덕꾸덕 마르고 있는 전사지를 응시한다. 그때 젖빛 유리 너머 준비실에서 컥…… ……큭, 컥…… ……큭 하는 소리, 내가 기억하는 한국말의 K-억양이다. 나는 토끼처럼 양쪽 귀를 쫑긋 세운다. 저건 분명 내가 들어본 한국말이야. 여자의 전화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국인일까.
   한동안 여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계속 벽시계를 쳐다본다. 11시가 한참 지나서야 여자가 준비실에서 검정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손수레를 끌고 나왔다. 하얀 유니폼과 검은 장갑이 천사와 악마만큼이나 선명하게 대비되어 보인다.
   여자가 내 손목의 전사지를 꾹꾹 눌러 확인한 뒤 카네이션 도안을 붙이자,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자의 몸에서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뒤섞여 풍긴다. 여자가 가느다란 솔로 기계를 닦을 동안 팔목을 들어 올려 카네이션을 살핀다. 첫 번째의 동그란 꽃봉오리는 엄마의 자궁벽에 상처를 낼까 봐 꼭 오므린 아기의 앙증스러운 주먹을 닮았다. 서서히 꽃이 벌어지는 나머지 네 단계는 얼굴이 빨갛게 된 아기가 슬로 모션으로 안간힘을 다해 첫 주먹을 펴려는 모습이다. 아기들의 동영상을 수없이 보았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여자가 선 채로 투명 젤리를 내 손목에 골고루 펴 바른 뒤 입으로 호호 불어 말린다. 스위치를 누르자 기계가 윙 진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여자가 손수레 위의 무수한 바늘 뭉치에서 한 개를 뽑아 익숙한 솜씨로 기계에 끼우는 것을 보자 왈칵 두려움이 몰려온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에 시달렸던 기억이 딸려 나온다.
   잠든 사이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눈을 감으면 형체도 없는 악령이 나타났다. 벌떡 일어나 불을 밝히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찰나에 덮친 어둠의 공포가 퇴적층처럼 쌓여서 자해를 유혹했다. 울음도 빼앗겨 버렸던 공포의 순간들. 그건 내가 저녁노을이나 무지개를 보면서 이유 없이 혼자 울음을 터뜨리곤 했던 공포와 같으면서 달랐다.
   여자가 한 손에 기계를, 다른 손으로 스툴을 잡아당겨 등을 구부렸다. 여자의 몸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에 코를 킁킁댄다. 엄마 냄새일까. 마침내 여자가 목을 꺾고 분홍 잉크에 바늘을 적신다.
   “꽃봉오리부터 새긴다. 아파도 아가처럼 울지 마.”
   “안 울어요.”
   높은 광도의 조명이 내리쏘고 있는 카우치에 누운 내 몸이 떨린다. 분홍색 잉크를 듬뿍 머금은 바늘이 내 살갗을 파헤치게 될 걸 두렵게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죽은 듯 깊이 눈을 감고 표피 깊숙한 곳을 한 땀 한 땀 빠르게 찔러대는 바늘의 촉감에 눈썹이 움찔움찔한다. 살이 타는 누리끼리한 냄새가 난다. 근육이 불판 위의 마른오징어처럼 배배 꼬이고 관절 마디마디가 뻣뻣하고 쩌릿쩌릿하다. 날카로운 물건으로 손목을 자해했던 기억이 토네이도처럼 정신을 덮친다. 덩달아 영혼이 아득해진다.
   열네 살이 되어서 첫 자해를 했다. 뚱뚱하고 작고 탐욕스러운 부인과 돼지기름으로 제조한 것 같은 몸을 가진 남편이 사는 집에서였다. 세 번째 위탁 가정이었다. 첫 자해를 한 그날 이후 끊임없이 내 몸에 상처를 냈다. 다시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날카로운 물건이면 뭐든 사용했다. 면도날, 유리 파편, 가위, 송곳, 과도……. 내 몸에서 피가 뭉클뭉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피에서 풍기는 비린내에 구토했다. 서서히 몸이 마비되어 가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의 숨결에서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 김치 냄새일까? 나는 잠시 눈을 뜨고 여자를 일별한다. 이마에 잔뜩 주름을 세운 여자가 한 손은 내 팔을 누르고 기계 잡은 손으로 점점 빠르게 표피에 점을 찍고 선을 그어간다. 여자의 살점을 꼬집어 멈추게 하고 싶다. 고통을 이기려고 내가 태어나는 상상에 빠져들어 간다. 꽃봉오리는 엄마의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내 모습이다. 피어나는 꽃잎 한 장 한 장은 엄마의 자궁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이다. 상상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른다. 꽃잎이 한 장씩 벌어질 때마다 덩달아 엄마의 외침도 점점 고조된다. 조금 더, 조금 더, 내 소리 없는 외침과 움찔움찔 놀라는 몸은 꽃과 일체가 된다. 잠시 뒤 나는 상상에서 깨어난다.
   “엄마, 조금만, 조금만 더.”
   “아프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여자가 다시 기계를 잡고 표피를 찌르고 그으며 마지막을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숨이 끊어지는 절규 그리고 꽃의 만개. 으앙!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한다.
   “보기보다 잘 견디네. 주저흔을 타투로 가리려는 사람들 독한데. 잘 참았어. 마지막 꽃술도 참을 수 있겠지?”
   “…….”
   “어떡해? 꽃술 해? 말아?”
   타투이스트가 기계를 끄고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진다. 그리고 물감과 땀으로 축축한 흰 유니폼의 소매를 걷어 올린다. 그때 여자의 왼쪽 손목을 뒤덮고 있는 카네이션 타투, 나는 윗몸을 벌떡 일으킨다.
   “하겠어요. 한국어로 해줘요. 전화 소리 들었어요. 한국인 맞죠? 활짝 핀 분홍 꽃 속에 엄마란 글씨, 분홍 꽃이 빨간 꽃술을 꼭 껴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으로요.”
   내가 꿈을 꾸는 것 같다. 여자는 끝까지 자신의 국적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없다. 묵묵히 소매를 내리더니 스위치를 눌렀다. 기계가 윙 소리를 내며 다시 돌아간다. 한참 뒤 드디어 꽃술까지 끝났다. 여자가 유니폼 자락을 당겨 이마의 땀을 훔친다. 내 손이 저절로 타투로 갔다. 여자가 잽싸게 내 손을 쳐낸다.
   “만지면 안 돼, 제발, 흥분하지 마.”
   여자가 뼛성 섞인 말로 발끈했다. 나는 당장 꽃잎의 감촉을 맛보고 싶고 꽃술에 인사하고 싶다. 아직도 내 몸속에서 푸르스름하게 어둠을 발하는 두려움에 안녕을 고하고 싶다. 그리고 생명 기운을 불러내고 싶다.
   “뭐가 그렇게 슬픈데?”
   여자가 크리넥스 한 장을 뽑아 던진다. 내가 눈물을 닦고 있는 사이 여자가 손을 씻고 돌아온다. 에포스(EPOS)를 내밀며 나달나달한 내 운동화를 유심히 쳐다본다.
   “잔액이 모자라잖아.”
   “5주 뒤 리터치 하러 올 때 지불할 겁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꼭 갚아야 한다. 태닝 조심하고 크림을 꼭 바르고 청결 지키고 문지르면 안 돼. 특히 긴팔 입지 말고.”
   카네이션 화병을 창가 소녀의 사진 옆에 돌려놓고 돌아오는 여자를 보다 앗 소리를 쳤다. 여자가 전선에 걸려서 넘어지는 줄 알았다.
   “엠마, 배고프지? 공짜로 밥 먹는 데 가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 혼자 있고 싶었다. 뭔가 달라진 건 알겠는데 뭐가 달라진 건지 느끼고 싶었다.
   “숙소까지 걸어 15분이에요.”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은행 카드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지 마, 잠깐이면 갈 수 있어.”

3

   여자가 운전하는 조수석에 앉아서 후방 거울에 달랑거리는 사진을 가끔 올려다보았다. 타투 숍의 창틀에 있던 것과 같은 사진이었다. 나는 술에 취한 것 같은 기분으로 카네이션과 그 속의 엄마란 타투를 송곳처럼 응시했다.
   “오늘이 한가위다.” 한참을 달리던 여자는 무슨 비밀처럼 한마디 뱉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잠깐이라던 여자는 족히 한 시간 넘게 주행했다. 행사장을 알리는 배너가 임시 시설물에서 펄럭이는 것이 눈길을 끈다. 오후의 햇살이 성긴 잔디밭에 분분히 내려앉아 잔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보인다. 몇 바퀴 돌던 여자가 즐비한 차들 사이에 아반떼를 세웠다. 북쪽 야외 무대에서 사람들이 고전 악기를 두드리며 모자챙에 달린 하얀 꽃을 빙글빙글 돌리며 춤을 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여자를 따라 여러 개의 임시 천막들 앞을 지나치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닿았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푸드코트에만 몰려 있다. 음식 냄새를 맡으며 배를 쓸어내렸다. 테이크아웃한 음식을 손에 들고 떠드는 곳으로부터 유난히 K-악센트가 많이 들린다. 한국인이 많이 모인 곳이 처음인 나는 어리둥절하다.
   “뭘 먹을까? 김치 먹어 봤어?”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먹어 본 적은 없다. 여자가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손에 들었다. 무료 시식하는 코너도 더러 눈에 띄었지만, 공짜란 여자의 말은 거짓이었다. 여자가 가장 긴 줄 뒤로 가서 서는 것을 본다. 나는 시선 둘 곳을 찾다 그만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말았다. 내 눈길과 마주친 아기가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부리나케 사람들 속으로 숨었다.
   곧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특별히 괴로워 보이지도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차분하고 안온한 모습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뭔가 가슴에 아득한 충돌이 일었다. 홀로 두려움을 끌어안고 안온이란 것이 없었던 내가, 순간 쓸쓸하게 되비쳐졌다. 어디론가 빨리 달아나고 싶었다. 여자가 음식을 구매하는 데 정신이 팔린 틈을 타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한국인이 없는 호주의 시골에서 늘 시선의 따가움에 지쳐 있던 내가 한국인들로부터 더 따가운 시선을 느낀 것은 기이한 일이다. 한참을 달리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휴대폰을 꺼냈다. 카네이션 속 엄마 글씨를 확대해 인증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보낼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지도 앱을 열자 돌아갈 길이 멀었다. 그때야 여자를 따라온 일이 후회막심했다. 200킬로미터도 더 멀리 떨어진 내가 자란 곳을 가야 할 일이 막막했다. 하지만 한 번은 그곳에 가야 했다.
   약 한 달 전, 학교로 가던 발길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자해하다 들킨 다음 날이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무작정 뛰었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거대한 시드니는 견학을 와서 잠깐 본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시골에서 볼 수 없는 노숙자들이 도시의 뒷골목에 우글거리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노숙자가 되지 않으리라 입을 앙다물었다.
   “왜 달아났어?”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등 뒤에 여자가 서 있다. 여자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눈부셔서 있을 수가 없었어요, 말하는 대신 코를 문지른다.
   “데려다줄게.”
   “혼자 갈 겁니다.”
   혼자 있고 싶어요, 혼자 생각에 빠져들고 싶고, 뭔가 달라진 것을 찾아내고 싶어요. 진심이에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여자로부터 놓여날 기회를 노리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타투에 손이 갔다. 재빠르게 여자가 내 손목을 탁, 친다.
   “내가 말했지? 손대면 안 된다고. 태닝을 조심하고 크림을 꼭 바르고 청결해야 하고. 서둘러. 오후 늦게 타투 손님 있어.”
   “조건이 있어요. 제가 자란 곳에 태워 줘요. 짐을 챙겨 와야 하고 위탁인에게 신고해야 학교도 마칠 수 있고, 청년 수당도 받을 수 있어요. 바로 돌아올 거고, 잠깐이면 돼요.”
   말하는 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타투 손님과 약속을 취소하는 여자의 옆에서 걷자, 마음이 불편했다.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는 아반떼를 세워 둔 몇 미터 앞으로 날아갔다.
   “주소를 대야 가든지 말든지?”
   여자가 스마트 차 키를 눌렀다.
   “가는 길에 모래사막이 나와요. 안나 베이 아시죠?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찍었던 곳이에요.”
   “주소 달랬지, 정보 달랬어?”
   “거기예요.”

4

   “스시인가요?”
   “김밥.”
   스시를 간장과 와사비에 찍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맛보는 김밥에서 참기름 냄새 외에도 짠맛, 단맛, 신맛, 고소한 맛이 섞인 조금 시큼한 냄새가 난다. 짭짭 쩝쩝 김밥을 씹으며 차창을 끝까지 내린다.
   도시를 빠져나온 우리는 산과 목장, 골프장 같은 곳을 지나쳤다. 이전의 익숙한 경치들이 처음 보는 것처럼 생경함이 묻어났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석양빛을 받으며 소, 말, 양들이 풀을 뜯으며 배를 채우고 있다. 곧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평선에서 뻗쳐 오던 바늘 같은 빛을 마지막으로 해가 떨어지자, 대기는 금세 어스름에 잠겼다. 곧 차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언덕을 오른다. 여자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엔진이 붕 소리를 뿜고 계기판의 RPM 바늘이 빠르게 올라간다. 후방 거울에 달린 사진이 심하게 흔들린다.
   “저 소녀 누구예요?”
   “미라 말하는 거니?”
   “…….”
   드디어 언덕 위에 올라선 아반떼가 숨을 가라앉히며 조용해졌다.
   “가방 좀 집어 줄래?”
   나는 허리를 뒤틀고서 뒷자리에서 가방을 끌어당긴다.
   “그럼, 미라 엄마 팔목에 새겨진 카네이션 타투는요?”
   “가방 안에 흰 병 좀 꺼내 줘.”
   “…….”
   “뚜껑을 따 줘야 마실 것 아냐.”
   음료에서 터져 나온 산미와 산도의 텁텁한 냄새가 순식간에 차 안을 꽉 채웠다. 다시 차창을 끝까지 내린다. 여자가 목을 뒤로 젖히며 음료를 마실 때마다 차가 휘청 흔들린다. 여자가 칵, 하는 소리를 토한다.
   “살아 있다면…….”
   “몇 살인가요?”
   “아이와 만날 싸웠지. 타투? 미혼모인 내 자식을 뺏어 간 운명과 대결해 본 거다. 내 운명이 기구하면 얼마나 더 기구한지, 나도 할 때까지, 가는 데까지 가볼 참이었다. 오늘은 미라 열여덟 살 생일이니까 한잔 마셔도 되겠지? 너도 마셔 볼래?”
   나는 두 손을 휘저었다. 칵, 미라 엄마가 다시 흰 음료를 마셨다.
   “카네이션을 미치도록 좋아하던 아이였지. 그리고…….”
   여자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음료를 마실 때마다 차가 심하게 비틀거린다.
   “앗, 캥거루다!”
   갑자기 길 위로 튀어나온 캥거루를 본 나는 소리치고 여자는 그걸 미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외침은 이미 늦었다. 캥거루와 차가 부딪치는 쾅, 하는 차량 충격음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차가 옆으로 넘어지는 순간 나는 차 밖으로 튕겨 나가 아슬아슬하게 비탈에 얹혔다. 아반떼는 빙그르르 돌면서 언덕 반대편으로 굴러가 버렸다. 나는 곧 언덕 아래로 빠르게 미끄러졌다. 평형을 잃은 몸을 가누려고 팔을 저어 대는데 가냘프게 삐삐 삐삐 우는 소리가 들렸다. 차에 부딪혀 죽은 엄마 캥거루의 육아낭에 아기가 있었던가. 내 머릿속의 흐름이 갑자기 정지되면서 하얗게 비었다.
   골절된 다리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뒤틀린다. 그리고 피, 그때까지 한 움큼 움켜쥐고 있는 잡풀에 피가 묻어 있다. 올려다보는 비탈은 너무 가파르고 골절된 다리로는 되올라갈 수 없을 만큼 높다.
   누가 나와 미라 엄마를 찾아낼 수 있을까? 내 소유란 찢어진 옷이 전부다. 메신저백도 휴대폰도 차와 함께 날아갔다. 살려달라고 얼마나 소리쳤는지 목소리까지 사라졌다. 차가운 냉기에 마비되어 가는 부어오른 몸은 정신을 지탱할 수 없다. 이를 악물고 추위를 참아 내려고 하자 턱이 덜덜 떨리고 이빨이 딱딱 소리친다. 기운을 내야 해. 하지만 저절로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5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어떤 지점, 텅 빈 기억의 그곳, 내 진짜 아이덴티티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주에 로그인할 수 있고 엄마를 초대할 수 있다. 엄마의 이름이 뭘까? 사이버 닉네임은?
   모래를 한 움큼 집는다. 미생물 냄새가 난다. 언덕 위로부터 바람에 실려 오는 동물의 체취, 식물의 향기, 유칼립투스 나무의 톡 쏘는 냄새, 코알라 냄새, 바다 냄새, 땅 냄새, 공기 냄새, 별 냄새, 하늘 냄새……. 내 머릿속 폴라로이드 사진첩에 저장한 상상의 냄새들, 자궁 냄새, 분만실 냄새, 젖 냄새, 아기 똥 냄새, 트림 냄새, 방귀 냄새……. 냄새로 나의 첫 울음소리를 기억해 낼 수 있어. 그리고 엄마를 기억해 내야 해. 냄새의 기억은 유전된다고 했으니까. 냄새는 감정의 느낌을 가장 섬세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기억한다고 했으니까. 냄새의 기억은 가장 길고 오래 간다고 했으니까.
   팔에 힘이 빠져 뒤로 벌렁 드러눕는다. 얼어붙은 검푸른 하늘에서 UFO 모양의 노란 달과 파란 별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엄마가 존재하는 하늘이 보일까. 그쪽 하늘을 향해 눈을 깜빡거린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나는 그 세계를 믿는다. 내가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에 엄마와 내가 같은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퍽 위로가 된다. 저기 별 하나가 어디서 엄마를 지키고 또 다른 별 하나가 나를 지키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소원을 빌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손목의 타투를 달빛에 비춰 보며 기도한다.
   미라 엄마! 살아서 반드시 운명과 싸워야 해요. 파멸할지라도 패배해선 안 돼요.
   날이 밝을 때까지만 살게 하소서! 내 생일이니까. 버려졌던 날이니까. 떠오르는 태양을 이 두 눈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붉은 해가 둥근 내 이마를 비출 때 엠마, 하고 누가 내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만 부디 살게 하소서.
   떠돌이 구름이 보름달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서쪽 하늘에선 범고래 모양의 구름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유유히 헤엄친다.
   갑자기 호흡이 빨라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동물의 호흡이 빨라지는 건 죽음의 임계점에 가까운 것이라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읽었어. 지구상의 포유류들은 모두 심장이 뛴 횟수만큼 산다고. 지금 내 몸의 체온을 유지하려면 심장을 빨리 뛰게 할 수밖에 없어. 달리 방법이 없어. 하지만 엄마가 그리워서 심장이 빨리빨리 뛰었던 건, 사랑 때문이었어. 사랑 때문에 심장이 빨리 뛰는 걸 어떻게 막겠어. 그것이 죽음의 길인 걸 알더라도.
   수없이 자해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토록 강렬하게 살고 싶은데. 내가 살기를 바라는 건, 엄마의 몸을 안아 보고 만져 보고 비벼 보고 깨물어 보고 꼬집어 보고 핥아 보기 위해서야.
   엄마가 팔을 뻗어 내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는 순간 우리가 각자 왔던 멀기만 했던 길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리라.
   밤바람에 모래가 흘러내린다. 언덕 위 허공에서 보름달의 후광을 받은 풀꽃 하나가 저 혼자 흔들린다. 어디서 삐삐 삐삐 아기 캥거루 울음소리가 들린다.

필자 약력
프로필_테리사리.jpg

테리사 리. 2013년 재외동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을 썼다. 《호주동아일보》 신년문학상, 캐나다 민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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