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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겨울의 행방을 물으신다면 외 1편

안희연

겨울의 행방을 물으신다면

얼굴은
목이라는 벼랑 끝에 놓인
어항,

이끼로 뒤덮여 있다

안쪽까지 깨끗이 닦고 싶어서
물가로 갔다

비를 내려주세요
살아 있고 싶어요

오긴 왔는데
폭우였다

나뭇가지에 뺨을 긁혔어요
흙탕물이 출렁여서 앞이 안 보여요

정오의 태양 아래
주저앉아 있다

무사히 옮겨낼 수 있을까요
나의 영혼
나의 물고기

기도를 하면
죽음이 와서

모래로 뒤덮인 나의 어항

횡단보도의 불이 바뀌었는데
건너는 사람이 없다

나만 홀로 반대편으로 건너왔을 때
아 겨울이 왔구나
알게 되고


액체의 자세

나는 흐릅니다

용기를 찾고 있어요

나를 담아줄
시간 위의 집

고인 모습 그대로
내가 되는 방

*

어느 늦은 밤, 호리병 속으로 흘러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도요새의 긴 부리가 다급히 나를 깨웠지요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어서 도망쳐야 해

새벽 다섯 시, 폭격 소리1)를 들었습니다

*

거리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합니다
총성이 울리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입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발이 신발을 놓치고
얼굴이 표정을 놓치고
무엇이 무엇을 놓쳐야
오는 것이 종말인가요

*

나는 배 위로 옮겨졌습니다
출항입니다
바닥의 감정을 배우라는 전언일까요
성난 파도가 뺨을 때리듯이
여기도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여기도 네가 있을 곳은 아니야 말하는군요

이름을 알 수 없는 붉은 열매가 익어갑니다

수레에 끌려가는 죽음은 싫어요

*

수없이 많은 문을 지났습니다
수없이 많은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더는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더는 내려갈 수 없을 때까지

이 시간의 의미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

내가 흐를 때 멀찌감치 나를 따라오는 저것은 무엇입니까

*

눈앞에는 새벽과 절벽을 동시에 끌어안은 나무가 있습니다

백발이 된 내가 나를 맞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게

사랑이여, 자비의 두 팔을 벌려주세요
쓰다듬는 순간 색이 변하는 것, 내일이라 부르겠습니다

각주

1) 올가 그레벤니크, 정소은 옮김, 『전쟁일기』, 이야기장수, 2022.

필자 약력
안희연 작가 프로필 사진

안희연,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저술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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