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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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옛집에 샹들리에를 두고 왔다 외 1편

전희진

옛집에 샹들리에를 두고 왔다

고가의 물건은 아니었지만 오색찬란한 빛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 아래서 우리는 계절의 훌륭한 만찬을 즐겼다 어둠 속에선 머리에 뿔을 매단 붉은 개미들과 쥐들이 퍼레이드 음식을 바삐 나르고 밤이면 가끔 나오는 여자를 두고 왔다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출렁이는 그녀는 방과 화장실 사이에서 살았다 자기 집처럼 복도의 수납장을 열고 침대보와 옷가지를 꺼내서 다시 개키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그녀의 너무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나는 내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캐묻게 되었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냉장고 문을 여는 내가 자연스럽지 않았으며 내 손이 맞나 내 팔이 맞나 내 양쪽 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과 피부를 빌려 쓰는 것 같았다 냉동고와 냉장고 사이에서 새 나오는 서늘한 기운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뒷모습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그녀는 앞모습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워낙 큰일이 많아 이 일을 큰일로 다루지 않았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부디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이면 고르게 들리는 도마 소리 잠옷 차림으로 부엌에 누가 있을 것 같아서 화장실에서 일만 보고 침실로 되돌아오곤 했다 수레국화 빛 새벽하늘을 잘게 썰던 도마 소리는 이내 중단이 되었고 아침과 낮은 누구에게나 잊어버리기 좋은 계절이었으므로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부디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들잎 같이 유연하게 자라던 아이들은 산에서 내려온 산짐승들과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 먹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아빠의 생활 전선은 철갑처럼 무겁고 턱걸이하듯 목에 간신히 걸리는 희망이라서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크는 법을 터득해 갔다 늦은 밤 쿵, 소리를 들으면 이게 오렌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인지 이웃의 총소리인지 아이들의 귓바퀴가 점점 벌어지다가 이내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워본 적이 없다 아이들의 키도 재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키운 것은 앤젤레스 뒷산이었으며 이사하면서 산을 통째로 두고 왔다 이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분노하지 않는다

지난 5월 텍사스주에서 총기 난사로 초등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지고,
이달 4일에도 독립기념일 행사 도중 7명이 목숨을 잃는 등
총기 참극이 잇따르자 새로운 총기 규제법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그녀가 처음 미국에 온 그해 겨울
사막의 도시 캘리포니아에 한 달 동안 비가 내렸다
그러나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결같이
가뭄은 부도덕한 정치가들의 신념처럼 완강했으며

사람들은 변한 게 없어 보였다
분노한 사람들에겐 M16 머신건 아래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처럼 통쾌한 것도 없었다
어제나 그저께나 신문은 한결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종이 앵무새로 보였고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것은 성서까지 믿으려 들지 않게 되었다 대신 총을 믿게 되었다 총기가 자신을 구해줄 거라 믿었다 무모한 어떤 이는 물에 빠진 자신의 리볼버를 구하려고 총기의 뒤를 캐다가 계곡의 급류에 휩쓸려 이 도시에서 아무도 모르게 제거되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 믿음대로 되었다

이제 그녀는
총기 난사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숨진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
수년 전 버지니아 총기 사고에서 33명의 사람들이 숨진 것에 화가 나지 않는다
총기 문제로 해마다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지는 것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그녀가 분노하는 것은
채식주의자인 그녀가 타코벨에서 주문할 때 콩으로 만든 빈타코를 주문하는데 집에 와서 보면 빈타코는 없고 쥐똥만 한 고기들이 빼곡히 타코셸 깊은 계곡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약력
전희진 작가 프로필 사진

전희진, UC Santa Barbara에서 Fine Art를 전공하고 FIDM에서는 Fashion Design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2011년 『시와정신』을 통해 등단하였고 재외동포문학상, 미주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 『우울과 달빛과 나란히 눕다』,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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