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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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과일 파는 시리아인 하산

괵셀 튀르쾨쥬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의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 가 합성된 말이다. 이 말은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외의 지역으로 추방되고 흩어지면서 유래되었다. 유대인에 의해 처음 사용된 ‘디아스포라’는 현재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사람,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현재 튀르키예에서 마주하는 ‘디아스포라’는 대표적으로 시리아인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2011년 3월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많은 시리아인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인 튀르키예로 목숨을 걸고 넘어왔다.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간 시리아 난민도 많지만 이곳에 정착한 이는 더더욱 많다. 튀르키예의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난민으로 등록된 시리아인은 385만 명이지만 실제는 5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유입하여 튀르키예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중부 도시 카이세리에서도 난민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100만 명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카이세리에만 시리아 난민이 10만 명 정도 될 것이라 하니 나의 주변에도 시리아에서 온 사람이 열 명 중 하나 있는 셈이다. 3년 전 시장에서 처음 만난 과일 장수 하산은 시리아인인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터키어를 구사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내가 한 말 중 일부를 이해하지 못하자 그때서야 자신이 시리아인이라는 것을 밝혔다. 하산은 1988년생으로 서글서글하고 참 성실한 청년이다. 2015년에 튀르키예에 왔으며 올해로 어느덧 8년차가 되었다. 여전히 거주증이나 국적을 취득한 것은 아니지만 난민증의 기간을 매년 갱신하며 살고 있다. 하산의 튀르키예행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산은 고종사촌과 함께 사촌의 외가 식구들이 있는 카이세리를 목적지로 하여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국경 지역인 킬리스(Kilis)에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킬리스 근처 도시 가지안테프(Gaziantep)에서 튀르키예 경찰에게 붙잡혔으며 심문이 끝나자 경찰이 터미널에 데려다주면서 원하는 지역 어디든 가도 좋다고 했단다. 그렇게 곧장 카이세리로 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새로운 터전에서 지금까지 씩씩하게 버티고 있다. 같이 온 고종사촌은 결혼을 위해 시리아로 돌아갔고 하산은 튀르키예 잔류를 선택했다. 그리고 2017년에 부인을 만나 지금은 슬하에 아이가 셋 있다. 튀르키예 정부에서는 난민들에게 여러 지원을 하지만 우선 대상자가 배우자가 없는 여성, 노년층, 환자이다 보니 이미 가족을 형성한 하산은 겨울에 목탄 등 일부만 한 번씩 지원받는다. 공통적으로 난민들의 병원비는 무료이며 약값은 5%만 지불하면 된다. 학령기 아동이 있는 가정에는 학용품 명목으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고향 할렙(Halep)에서 미용사이던 하산은 튀르키예에 와서 미용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당장 미용실을 개업할 자금이 없어 현재 요일마다 시장을 돌며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 처음 카이세리에 와서 약 2년 정도 건설 현장과 공장에서도 근무했지만, 우연히 친구가 근무하는 세차장에 갔을 때 시장에서 일하는 한 아저씨를 만나면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을 일하고 있는 하산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하루 일과가 시작되어 저녁 7∼8시에 집에 돌아간다. 주기적으로 여러 동네를 다니게 되니 틈틈이 재활용이 될 만한 것을 모아 고물상에 판다. 쉬는 날에는 푹 쉬는 편이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아버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남의 나라에서 셋방살이하면서 서러운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리아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고 했다. 현재 시리아는 전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작년에 아사드 정권이 재임에 성공해서 그가 물러나기 전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돌아가면 하산은 입대해야 하고 그 기간은 무려 6년이라고 한다. 복무 대신에 세금 9,000달러를 납부하면 되지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또 5,000∼6,000유로로 브로커를 통해 독일에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마저도 힘겨운 실정이다.

   앞으로 하산의 꿈은 유럽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 나라 중 네덜란드라고 꼭 집어 말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1년 머물면 거주증을, 3년 머물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한 번씩 터키나 시리아 고향을 다녀가면 좋겠다고 한다. 난민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외국을 드나들 수 없고 튀르키예만 있어야 한다. 그러니 시리아에 있는 부모님을 못 뵌 지도 8년이 되었고, 전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부모님이 무척 그립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이산가족들의 한(恨)을 시리아인들도 겪고 있고 살아생전에 부모를 볼 수 있을지 애태우고 있다. 네덜란드 이야기를 들으니 매년 여름 유럽에서 튀르키예에 고향 방문하는 교포들이 가득한 카이세리 도로에 올해는 네덜란드 차량1)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하산이 말한 이유로 네덜란드에 사는 튀르키예 교포들이 꽤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산은 유럽이 큰 꿈이라 했고 지금 당장은 시장에서 자릿세를 낼 수 있으면 굳이 유럽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시장에서 자리를 하나 얻는데 최소 500,000TL(약 3800만 원)이 든다고 하니 나는 미약하게나마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과일은 하산에게 가서 구입하며 무한한 응원을 보내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모국, 고향만 한 곳은 없을 것이다. 튀르키예에 오기 전까지 고향 할렙을 벗어난 적 없는 하산이 카이세리까지 오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여러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어엿하게 결혼하여 아이를 세 명이나 두고 책임감 있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 개인적으로 시리아에서 내전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을 찾으면 여기서 적응하고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면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지만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돌려보내는 게 맞는다고 본다. 난민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서러움을 위로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응원한다.

각주

1) 유럽과 튀르키예 차량 번호판에는 차를 등록한 국가/지역을 표기하고 있다.

필자 약력
괵샐튀르쾨쥬 작가 프로필 사진

괵셀 튀르쾨쥬, 에르지예스 국립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이자, 유라시아 한국학연구소 소장과 중동유럽한국학회 회장을 맡고있다.
양귀자, 안도현, 한강, 황석영 등 유명 작가들의 저서를 번역했으며 튀르키예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 교재를 저술하였다.
1997년 제 6회 외국인 한글 백일장 시 부문에서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과 2012년 한국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한 바가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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