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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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국화차 외 1편

곽상희

국화차

파리 불빛 번화한 미셀 거리
커피숍에서 티를 마신다
붉은빛 차에서 노란 국화차 향 맛,
걸러진 인종맛이다

굽이 굽이 국경선을 돌고 돌아온 국화차에서
여행자들의 윗도리 혼합된 땀 냄새,
지치고 들뜬 피 냄새,
또 다른 시간들의 종합 맛이다

타박 타박 연노란색
붉고 푸른 검은 색을 넘어왔는지
너는 옛부터 변두리 없는 몸이었다

너의 앞가슴에는 백의의 문화내(耐)도
멀고 먼 시간의 수레바퀴 소리도 나는구나

동방나라 행진곡도 들려온다
백두산에서 한라산, 또 출렁거리는
동해바다 그 너머
하늘 천 따지 나라 피어 고요하다

여긴 문이 없다
둥글고 둥근 모서리 없는 모두가 열린 문일 뿐
잠복한 경계선도 없다

국화꽃 향내 아리랑, 아려 아려, 동서남북 흐를 뿐
인종도 벽도 없는 빛의 전시장에서 너는 다만
아련, 아련, 먼 데로 피고 있을 뿐,


쓸쓸함에 대하여

4월, 간밤 무슨 바람 불었는지
마음 놓고 쑤욱 내려간 영하의 날씨
빼꼼 문을 열었던 연분홍 매화꽃 맹아리는
불신의 문 닫아걸고 검붉게 오들 떤다
매화꽃 가지 사이 손바닥만 한 새집도
오금 내리는지, 새들은 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가랑잎 봄눈 오는
뉴욕 변두리 바위 웅덩이
죽은 듯 누워 있는 금붕어 몇
바람도 불지 않는데 누구의 발짓에 채였는지
수선화는 허리 꺾여 길가에 누워 버렸다
32번가 브로드웨이에 황혼처럼 누워 있는
한인 홈리스 여인
우크라이나 피난민 속 열차 창문에 비친
아이의 두려운 눈동자, 시인이여
병적인 쓸쓸함을 앓는 시인이여
호숫가 모래밭 피 흘리는
그 물고기 한 마리, 그리고 물고기들의 떼죽음
그러나 쓸쓸함 없는
오히려 쓸쓸한 풍경을 그리는 SNS,
온종일 흰 구름 오락가락 비도 오락가락
‘그럼에도’ 위로받은 흔적조차 없는 날
날개 하나 없는 쓸쓸한 애벌레 하나
꿈틀꿈틀 발등에 툭,
몇 백 년 묵은 참나무 검은 구멍에서
새의 죽음 조장하는 거미 떼 분주하다
시인은 별자리 하나씩 얻어
봄이 흠칫 오는 밤, 하늘 원고지에 시를 쓰고
덧없이 살 한 점이면 족하다고
살 한 점 빚어 죄 없는 쓸쓸이란 한 줌
꽃물 쓴다
꽃나비, 후우 후우 날려 보낸다 먼지처럼
꽃나비는 오대양 육대주를 돌고 돌아
구석구석 모서리 돌아 돌아
보리밭 연청빛 하늘꽃씨알 훔쳐왔는지
온종일 하늘빛 하얗다
그만하면 족하다고, 시인은
무지개 철필로 피리어드를 적는다, 간신히
몸으로,

필자 약력
곽상희 작가 프로필 사진

곽상희,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까지 미국의 여러 기관에서 한글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곽상희 서신집필, 곽상희 치유문학 칼럼(코스미안 뉴스)를 연재하고 있으며 뉴욕 시문학회 고문을 맡고 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미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1회 박남수 문학상 대상, 영국백과사전 국제시인상, Olypoetry(Spain), UPLI 계관시인상, 그리고 2022년 제6회 동주해외작가특별상을 수상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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