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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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맹랑한 월남댁

손병현

   “아녀하오. 베트나 꾸엉이다.”
   반듯하게 일어서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앳된 아가씨를 마주한 창식과 나는 뜨악함을 감출 수 없었다. 베트남 국적의, 그것도 이제 갓 고등학교나 졸업했을 성싶은 아가씨와의 만남이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꾸엉 옆에 앉은 정복은 아주 흐뭇하거나 느긋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한 채 딴청을 부렸다.
   “아……, 예― 저는 이창식입니다.”
   창식은 너무도 공손한 꾸엉의 인사에 엉덩이까지 들어 보이며 답례를 했다. 얼떨결에 예의를 차리긴 했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은 어쩔 수 없었다.
   “야, 너 뭐냐? 왜 갑자기 베트남 아가씨는 데려와서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어, 임마.”
   나의 성질머리는 창식과 달라서 정복의 시선을 잡아채듯 따져 물었다. 그러잖아도 젊은 애들의 시선이 자꾸 신경 쓰이는 참이었다. 누가 봐도 요즘 핫하다는 동명동의 수제 맥줏집에 앉았을 행색이 아니건만, 베트남 아가씨까지 동석한 상황이니 다른 테이블의 청춘들이 힐끔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 앞으로 혀― 형수님으로 모셔라.”
   정복은 말을 더듬었다.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었다. 개구리처럼 눈을 끔벅이는 꾸엉처럼 창식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전 처음 본, 그것도 조카뻘이나 됨직한 베트남 아가씨에게 형수님이라니 처맞으려고 환장한 모양이었다.

   그날 정복의 전화는 사뭇 뜬금없었다. 남광주시장의 국밥집 ‘새벽시장’이나 말바우시장의 ‘득량만횟집’ 아니면 대인시장의 ‘이화점’에서 만나자는 것이 아닌, 동명동의 ‘애프터윅스’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수제 맥줏집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얌마, 뭐 잘못 처먹었냐?’ 소리를 내지르려던 찰나 ‘띠르―’ 앞서 전화가 끊겼다. 하―, 짜증 섞인 한숨과 더불어 변비 뒤끝처럼 한동안 찜찜한 기분에 휩싸인 건 어쩔 수 없었다. 행색으로나 나잇살로나 주머니 사정으로나 시장 스타일이 분명하고 또 그런 일상을 살아왔건만, 난데없이 풋풋한 이십 대들만 버글거리는 동명동의 수제 맥줏집이라니, 처 돌아도 한참 돈 모양이었다. 몸과 맘이 영 내키지 않았다.
   “정복이가 좀 이상한데. 오늘은 지가 산다고 맘껏 먹으래.”
   곧바로 걸려온 창식의 전화는 더 괴이했다. 한 번도 선뜻 계산을 치른 적 없는, 마지못해 궁지에 몰리고 닦달을 해야 억지로 한번 값을 치르는 정복의 일상으로 보건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그 새끼 그거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지금껏 지가 산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
   “있긴 있었지. 그래 놓고 도망쳤지만.”
   언제 적 일인지 기억에도 없었다. 기억에 있건 없건 창식의 말이 맞을 것이었다. 하는 모양이 찌질이 모질이 팔푼이 사촌뻘이니 하는 양이 딱 그 범주 언저리였다. 놈과의 첫 만남부터가 그랬다. 그러니까 정복을 처음 만난 것은 아니 놈을 다시 만난 것은 ‘박순자녹두집’에서였다. 예술의 거리 맞은편에 있는 박순자녹두집은 수제비가 주 종목으로 모든 술꾼들의 속풀이를 책임지는 그 신비하리만치 시원한 국물로도 유명하지만, 파전 빈대떡 코다리찜 오삼불고기 등 안주류도 가히 일품이었다. 하지만 나와 창식이 최고로 치는 것은 ‘간재미 회무침’이었다. 어제 마신 속풀이로 수제비 한 그릇씩을 들이키러 갔다가 간재미 회무침에 소주를 세 병이나 까고 있을 즈음 마라톤 선수들이나 입을 야시시한 핫팬츠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친 인간이 들어섰다. 초가을 날씨가 무색할 만큼 민망한 복장이었다. 놈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손님들의 이목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히말라야 등반 때나 씀 직한 물고기 비늘 같은 선글라스도 그랬지만, 돼지 뒷다리 같은 짧고 뭉툭한 허벅다리를 훤히 드러낸 모습이 한마디로 ‘꼴값하고 자빠졌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놈을 향해 눈을 째리거나 고개를 비틀어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한심하고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주둥이를 소주잔으로 틀어막았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개성 존중 예의범절 물구나무라지만 놈의 꼬락서니는 시선 민폐를 넘어서 욕지거리 유발 행위였던 것이다.
   “야, 저 물건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냐?”
   막 선글라스를 벗고 수제비 한 숟가락을 뜨려는 놈을 창식이 턱짓으로 가리켰다. 수제비 한 덩이를 국물과 함께 삼킨 놈은 만족한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맞네! 그놈. 말더듬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놈은 말을 더듬어서 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노인네 같은 알쏭달쏭한 웃음만 베어 문 채 겉돌았다.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노인네 같은 웃음만은 왠지 확연하게 잔상이 남아 있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놈이 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생선을 싸 왔다는 것이다. 도다리 우럭 농어 등 굽거나 졸인 생선을 싸 와서 비린내라고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맛나게 빨아 잡수셨던 것이다. 놈은 직장에 다니는 누이와 두암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정작 고향은 해남 땅끝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노화도 섬마을이라고 했다.
   “이름이 국정복이던가.”
   창식은 십수 년이나 지난 기억을 거슬러 이름까지 건져 올렸다. 창식과 나는 한참 동안 놈을 바라봤고 결국 놈과 눈이 마주쳤다. 놈도 우리를 알아봤는지 뜨악한 표정이더니 예의 그 노인네 웃음을 지어 보였다. 놈은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하는 눈치더니 제 앞의 수제비 그릇을 든 채 순순히 우리 테이블로 옮겨 왔다. 놈의 말더듬은 여전했지만, 세월 탓인지 넉살은 좀 늘어 있었다. 놈이 더듬거리며 풀어놓은 제 처지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생 꺾어지는 지금까지 아직 결혼을 못했으며, 광주의 한 변두리 중학교에서 예전 소사라 불리던 기능직 10급 공무원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말이면 산을 타거나 각종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메달 모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놈의 이력을 들으면서 창식과 나는 제각각 동병상련의 처지를 위안했고, 술잔 부딪칠 놈이 하나 더 늘었다는 안도감에 키득거렸다.

   정복은 ‘애프터윅스’에서의 어퍼컷 이후 미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곧바로 훅을 날려왔다. 한 달 후 꾸엉과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깜빡이 없이 마구 휘둘러대는 펀치에 창식과 나는 그야말로 마우스피스가 튕겨 나갈 정도로 아구창이 허벌창 되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기도 화성시의 병점 어느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전 기웃거린 적 없는 ‘애프터윅스’라는 곳도 순전히 스무 살 꾸엉의 나이를 배려한 것이었고, 머나먼 도시 병점에서의 예식도 순전히 꾸엉의 먼 친척 한 명이 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놈이 처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까무잡잡하고 비쩍 마른, 게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가씨 하나 때문에 인생을 통째로 올인 하는 모양이 빨가벗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어린아이와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것처럼 미친 듯 질주하는 놈을 마주한 창식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딱 한 가지, 마흔 살이 되도록 쓸모없이 시들어가던 놈의 거시기에 환장할 꽃비가 내린 게 틀림없었다.
   “한잔해.”
   대인시장 ‘이화점’으로 정복을 불러낸 창식과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배꽃이 바람에 흩날린다는 야리꾸리한 간판을 내건 이화점은 닭장떡국이 1번이고, 육전 보리굴비 조기짜박이 생선젓국 홍어삼합 등 전라도 특유의 맛을 살려내는 집으로 유명했다.
   “…….”
   막걸리 주전자를 든 내 손이 부끄러웠다. 정복은 특유의 노인네 미소를 머금은 채 도리도리 고개를 휘젓는 것이었다.
   “너 요새 전혀 너답지 않다. 왜? 베트남 아가씨하고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달리 보이냐.”
   창식이 빈정 상한 듯 비꼬았다. 내가 하려던 멘트를 반 박자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나의 성질머리에 비하면 예수나 다름없는 창식도 어지간히 속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그― 그게 아니고, 보― 보톡스 맞으러 가야 하거든. 이― 이참에 머리카락도 좀 심어볼까 생각 중이고…….”
   창식은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았고 나는 들었던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하―, 이놈이 정말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그 아웃사이더 말더듬이 국정복이 맞단 말인가. 실로 탄복할 노릇이었다. 늙수그레한 얼굴에 보톡스는 그렇다 쳐도 훤한 정수리에 머리카락을 심어 채우겠다는 놈의 결단에는 그야말로 빡쳐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물어보지 못했는데 너 꾸엉은 어떻게 만난 거냐?”
   이제는 내가 도리어 말을 더듬는 지경이었다. 사실 지난번 ‘애프터윅스’에서 꾸엉을 소개받을 때만 해도 모자란 자식 또 모자란 짓거리 한다 정도로 치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까지 한다니 적잖이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창식과 나는 결혼할 처지도 의욕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한잔씩 들이붓고 또 내일 그 짓을 되풀이하는 것을 의무요 사명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응당 정복도 같은 처지로 그렇게 시들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정복이 울타리 너머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감행 중이었다. 삼각 구도에 금이 가고 뭔가 해체되는 느낌은 분명 불안한 지각 변동을 의미했다.
   “너― 너거들도 인자 겨― 결혼을 해야지. 언제까지…….”
   정복으로부터 훈계를 듣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결혼이라는 단어로……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얌마! 어떻게 만났냐니까 뭔 헛소리야. 당장 바른 대로 말 안 해?”
   급당황한 나는 윽박지르듯 다그쳤다. 외면하듯 덮어두었던 뭔가가 확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창식도 낯빛이 상기된 채 술잔을 집어 들었다. 창식과 나 그리고 정복은 이미 결혼을 포기한 채 여자를 술로 대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캬― 술맛 좋네. 여자보다 한 끗발 낫다니까’, 자조하듯 술잔을 부딪쳤다. 그도 그럴 것이 창식은 어느 감투 좋아하는 노인이 허울로 만들어놓은 사단법인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죽치고 앉았는 것이 일이었고, 나는 빈둥거리는 꼴에 진력이 난 부모님이 당신들이 운영하던 계림동의 헌책방을 일찍 물려줌으로써 헌책방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날이 헌책방을 찾는 발길은 뜸해지고 헌책이나 나나 함께 삭아 들고 있었다. 헌책에 먼지가 쌓이고 보풀이 일듯 헌책방 한구석에서 먹고 자는 나도 헌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희망이랄까 비전이랄까 그런 미래 지향적인 말은 애저녁에 던져버린 창식과 나는 허구한 날 막걸릿집을 전전하는 것이 일상이요 본업이었고, 또 그런 놈들이 흘러 흘러 세상 구석지로 몰리듯 어느 날 정복이 휩쓸려 들어왔던 것이다.
   “그― 그러니까 꾸엉이 취― 취업비자로 들어온 거여. 어― 어머니가…….”
   꾸역꾸역 털어놓은 정복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어머니의 작전 승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꾸엉은 취업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들어왔지만, 공장 대신 돈벌이가 좋은 농촌행을 택했고, 그곳이 하필 노화도였다. 어느 날 정복 부모님의 마늘밭에 일하러 온 꾸엉을 눈여겨본 어머니가 형광등에 불이 켜지듯 늙다리 정복을 떠올렸고, 그날부로 무작정 꾸엉을 집안에 들어앉혔다. 물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일당을 준다는 후한 인심과 함께였다. 그런 후 정복을 득달같이 불러들였고, 선착장 금은방에서 가락지 두 개를 구해다가 각각 손가락에 끼워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작은방에 합방시켰다. 다음 날 아침 꾸엉이 정복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는 말까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밤새 다섯 번을 뭐 거시기 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그동안 산행과 마라톤으로 굵어진 허벅다리의 효과를 톡톡히 본 모양이었다. 그런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보름 전에는 꾸엉과 함께 베트남에 들어가서 혼인신고까지 마쳤다고 했다.
   “신기하네. 국제결혼이 그렇게 쉽게 막 되는 거냐?”
   창식은 안주로 나온 보리굴비 살점을 고추장에 찍어서 잘근잘근 씹었다. 입맛 없을 때 녹찻물에 찬밥 말아서 그 보리굴비 살점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이 상쾌해지면서 거짓말처럼 식욕이 돌았다. 하지만 창식의 입안에서 씹히고 있는 그것은 입맛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마치 껌을 씹듯 잘근잘근 생각을 곱씹는 꼴이 꽤나 기괴했다. 정복처럼 창식도 맛탱이가 가는 모양이었다.
   “그― 그럼, 두― 두 달 만에도 가능하다니까.”
   정복은 검지와 중지 두 개를 들어 보이며 장담했다. 정복의 자신감은 결혼에 대한 확신과 기쁨의 다른 표현처럼 보였다. 그러나 과도한 자신감과 확신 그리고 기쁨은 왠지 모를 불안을 동반하기도 했다. 얼추 스무 살 차이 나는 어린 여자한테 홀딱 빠져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야, 정복아. 거 요즘 국제결혼 잘못했다가 신세 조진 노총각들이 많다더라. 그러니까 너도 잘 알아보고…….”
   “나― 나 간다 바빠서…… 그리고 조― 좀씩만 마셔라. 이― 이제 너거들도 건강을 생각해야지.”
   제 할 말을 끝내고 얼른 일어서 버리는 정복을 바라보는 창식과 나는 퍽치기라도 당한 듯 코마 상태가 되고 말았다. 행여 저 혼자 놔두고 일찍 들어갈까 조바심치던 정복은 멀리 출장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순간 이화점에는 창식과 나 둘만 남게 되었고, 기분 참 엿같았다. 무엇이 엿같은지 잘 몰라서 막걸리를 세 주전자나 퍼마셨고 정말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았다. 주인장 미자 씨가 서비스라며 홍어 몇 점을 썰어주었지만, 그것마저 입안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무엇을 먹은들 사라진 입맛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정복의 결혼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황량한 몽골 사막의 뜯어먹힌 동물 뼈다귀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넓은 예식장에 하객이라고는 정복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창식과 나 그리고 이화점 주인 미자 씨가 전부였다. 그나마 미자 씨는 운전용으로 사정사정 어르고 달래서 데려간 것이었다. 신랑 신부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가족 모임이라고 해도 별반 이상할 것이 없었다. 꾸엉의 먼 친척이라는 여자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결혼식 열흘 전 불법체류자 정부 합동단속에 걸려 추방당했다나 어쨌다나. 그런 이유 때문인지 꾸엉은 웨딩드레스만 입었달 뿐 표정은 장례식장 상주나 다를 바 없었다. 정복은 울상인 신부는 아랑곳없이 노화도에서 올라온 친인척들과 객담을 나누느라 바빴다. 예식 때 하객 정도를 보면 평소 그 사람의 처신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정복의 직장에서는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정복의 말로는 전부 봉투로 대신했다지만, 그 말의 진위 여부도 알 수 없었다. 과연 정복이 직원들의 경조사 때 꼬박꼬박 봉투를 했겠느냐 따져보면 그냥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상황이야 어쨌든 정복은 말로 할 수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의젓해 보이려 애썼다. 보톡스와 머리카락 이식이 그나마 효과를 발휘했는지 제법 젊어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꾸엉은 나뭇등걸에 천 쪼가리를 걸쳐놓은 것처럼 휑뎅그렁했다. 가무잡잡한 낯빛을 가리려 눅진하게 찍어 바른 파운데이션은 오히려 우중충함을 가중할 뿐이었다. 이래저래 심란한 결혼식이었지만 정복이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냐 창식과 나는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물개박수를 쳤다. 예식도 예식이지만 돌아오는 길도 누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정복은 예식장 직원을 불러 기어이 남은 뷔페 음식을 싸달라고 했다. 결혼식이 한 팀뿐이어서 뷔페 음식이 고스란히 남은 상태였지만, 직원은 규정상 음식을 반출할 수 없다고 맞섰다. 가져간 음식이 상해서 탈이라도 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정복이 아니었다.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 온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휴게소에서 먹을 수 있게 조금만 싸달라는 말을 계속 더듬거릴 뿐이었다. 귀찮았던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던지 자신의 고향도 전라도 영광이라고 밝힌 직원은 지퍼백 몇 장을 가져다주었고, 소주와 맥주 몇 병까지 덤으로 챙겨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창식과 나는 결혼식 뒤풀이를 고속도로 위에서 아주 조촐하게 하지만 거나하게 치렀다. 미자 씨가 몰고 온 차량은 뒤쪽에 짐칸이 딸린 지프 밴이었다. 자신의 승용차는 장거리 타기에 불안하다며 레저용인 남편 차를 몰고 온 것이었다. 미자 씨는 위험하다며 한사코 말렸지만, 창식과 나는 짐칸에 자리를 폈고, 지퍼백에 담아온 음식을 안주 삼아 고속도로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흔들흔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술판을 벌였던 것이다.

   결혼식을 치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정복이 신혼집 집들이를 하겠다며 창식과 나를 초대했다. 말이 신혼집이지 정복 혼자서 살던 집에 꾸엉만 들인 것일 뿐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누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 적 없는 정복은 꾸엉에게 한국 문화도 가르칠 겸 만만한 우리를 부른 것이었다. 손님인지 꾸엉의 교육용 마루타인지 영 헷갈리는 부름을 받은 창식과 나는 먹기 싫은 떡을 앞에 놓은 것처럼 한참을 고민했다. 정복이 자신의 집에 사람을 초대한 것이 처음인 것처럼 창식과 나도 누군가의 집들이에 초대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점잔을 떨어야 할까 고민하던 창식과 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냥 하던 대로, 가서 죽도록 퍼마시자.
   “어― 어서 와. 오느라고 고생했네. 여― 여기가 워낙 외져서 차― 찾아오느라고 고생 좀 했을 거여.”
   “아녀하오. 바가습니다.”
   현관문이 열리자 앞치마를 두른 꾸엉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베트남식 인사가 원래 그렇게 공손한 것인지 아니면 정복이 가르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나는 헌책방에서 찾아낸 한국어 교재 몇 권과 24롤 휴지 한 통을 내밀었고, 창식은 30개들이 라면 한 박스를 내려놓았다. 창식이 라면을 산 이유는 정복이 행여 꾸엉이 차려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돼서라고 했다. 하지만 가격 대비 부피가 큰 것으로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나 라면이나 도긴개긴 니캉내캉이었다.
   “차리 거 없어. 마이케 드세요.”
   차린 게 없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였다. 식탁 위에는 쌀국수 새우파전 월남쌈 딱 세 가지뿐이었다. 그나마 양이나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마저 소량으로 젓가락 가져가기도 민망한 정도였다. 하긴, 화장지나 라면을 들고 와서 진수성찬을 바란다는 것도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긴 했다.
   “어― 어여 들어. 부― 부족하믄 뭘 좀 배달시키든가 하고…….”
   정복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복의 표정처럼 겸연쩍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정복의 눈앞에서 빈 접시를 개처럼 핥아댈지언정 절대로 안주를 배달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식과 나는 우리가 언제 안주 타령하며 퍼마셨더냐 소주부터 글라스에 콸콸 따랐다. 그나마 술은 소주며 맥주며 막걸리까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행여 창식과 내가 취하다 말아서 미친개로 돌변하지 않을까 염려한 덕분이었다.
   “어허~ 새우파전 이거 죽이네. 소주 안주에 딱이구먼.”
   나는 꾸엉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깐 새우를 실파 몇 가닥과 함께 밀가루에 버무려놓은 새우파전은 기름이 뒤범벅인 채로 느끼했다. 하지만 정복을 생각해서 차마 뱉어내지 못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그러네. 꾸엉, 파전집 차려도 되겠어요.”
   덩달아 창식까지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창식과 나는 파전이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안의 느글거림을 씻어내고자 서둘러 헹굼질했던 것이다. 창식과 나는 소주를 들이켜고 난 후 캬― 소리로 마무리를 했다. 토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넘겼다는 안도의 회신이었지만 정복과 꾸엉은 만족한 듯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새― 새우파전을 잘하더라고, 꾸― 꾸엉이 베트남에서 새우 잡다가 왔거던.”
   한껏 신이 난 정복은 자랑하듯 부연설명을 늘어놓았다. 꾸엉의 집은 베트남 남동부의 해안 도시 ‘껀저’라는 곳으로 메콩강에서 가족 모두가 새우잡이로 생계를 유지했다. 꾸엉이 한국에 취업비자로 들어온 이유는 딸만 일곱인 집안의 사정 때문이었다. 셋째 딸인 꾸엉은 밑으로 여동생 네 명이 자신처럼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새우잡이로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았다. 꾸엉은 여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정복의 부연설명을 간추리자면 대충 그러했다.
   “꾸엉, 훌륭해요. 굿― 시스터.”
   나는 또 한 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마흔이 되도록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삶을 살아온 나는 이타적 인간들을 만날 때면 경외심까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제가 오늘처럼 오늘이 내일처럼 술만 처먹다가는 죽을 때까지 이타적 삶의 한 행보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극미에 또 한잔 들이켰다.
   “오빠, 고마스니다. 땡큐.”
   오빠라, 오래전 잊어버린 단어인 것처럼 까마득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오빠인 적이 있었던가. 나도 누군가에게 오빠이고 싶다. 술기운 탓인지 외로움 탓인지 자꾸만 센티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친구 정복이도 잘 부탁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애가 워낙 착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거든요.”
   창식은 꾸엉에게 매우 고난도 언어를 구사했다. 사자성어나 속담을 섞어 쓰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역시나 꾸엉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세 놈 다 얼굴만 다를 뿐 상태로 따지자면 한 놈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모라 모라. 나 어러워.”
   술을 못 마시는 꾸엉은 일찍 방으로 들어가고, 한 놈 같은 세 놈이 마주 앉아 권커니 잣거니 신혼집인지 술집인지 ‘비 내리는 호남선 완행열차에―’ 떼창을 질러댔고,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 정복은 걸치고 있던 추리닝을 훌러덩 벗어던지더니 으쌰― 으쌰― 팬티 바람으로 팔굽혀펴기를 해 보이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창식과 나는 ‘청춘을 돌려다오―’ 한탄하듯 또 한 잔을 들이켰다.
   “아 돼 아 돼. 오빠 이써.”
   “하― 한번 하자 지― 지금 하고 싶어.”
   이게 뭔 소린가 갑자기 술이 확 깨는가 싶더니 귓구멍이 콧구멍처럼 벌렁거렸다.
   “곤 론 쭈엇(돼지 같은 놈). 께 저번(더러운 자식).”
   방안에서 알아듣지 못할 베트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철썩― 철썩― 등짝 스매싱 소리가 이어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등짝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스매싱 효과 때문인지 시끄럽던 방안은 이내 잠잠했다. 창식과 나는 삼키지 못한 채 입안에 머금고 있던 술을 꼬르륵― 삼켰다. 맨등짝에 내려치는 스매싱 소리로 봐서 정복을 향한 꾸엉의 체벌이 분명했다. 그나마 뺨을 후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꾸엉 체면도 체면이지만 거실에 앉았는 친구들 생각도 해야지 저 혼자만 좋아라고 그 짓을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괘씸한 놈이었다.
   “머거. 빠리 가.”
   다음날 아침 꾸엉은 창식이 사 들고 간 라면으로 아침상을 차렸다. 눈빛이나 말투나 어제의 공손한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숫제 귀찮으니 빨리 먹고 꺼지라는 듯 손까지 휘휘 내저었다. 한심한 놈들 그러니 니들이 아직까지 결혼도 못하고 지지리 궁상이지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접에 퍼준 라면 위에는 어제 파전을 부치고 남은 것인지 기다란 실파가 한 주먹씩 올려져 있었다. 이것이 베트남식 라면인지 아니면 처먹고 속 쓰려 죽어버려라 에둘러 표현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세 놈 다 찍소리 못한 채 라면 위에 올려진 생파를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해장술이 간절했지만 그랬다가는 정복이 맞았던 그 스매싱이 창식과 나의 등짝에도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대가리를 대접에 푹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라면을 코로 마셨는지 입으로 빨아 드셨는지 그야말로 긴장된 상태로 흡인한 창식과 나는 쫓겨나듯 도망치듯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집안에 남은 정복의 안전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알 바 아니었다.

   집들이 이후 한동안 정복을 볼 수 없었다. 정복에게서도 연락이 없었지만 창식이나 나도 선뜻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못한 것이었다. 죄를 지은 것도 같고 수모를 당한 것도 같은 복잡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신혼집에서 점잔을 떨지는 못할망정 개차반 짓거리로 정복의 위신을 깎아 먹은 것은 아닌지, 아무리 그렇더라도 남편 친구들에게 라면이나 먹고 빨리 사라지라는 냉대는 좀 너무한 것 아닌지, 이래저래 한숨만 내쉬어지는 지경이었다. 정복도 비슷한 이유로 속앓이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친구들이라고 데려온 놈들이 눈치도 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줄창 퍼마시는가 하면, 그런 놈들을 거실에 두고 안방에서 꾸엉에게 들이댔으니 애초에 없던 인격이나 체면은 고사하고 영혼까지 탈탈 털린 기분일 것이었다. 창식과 나는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애써 그날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똥을 싸질렀을망정 엉덩이로 깔아뭉개지는 말자 뭐 그런 심경이었다. 정복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셋이 나눴던 쓸쓸함을 둘이 나눠야 했고, 두 놈이 다투면 한 놈이 뜯어말리던 시시껄렁한 재미도 없었다. 그저 한 놈 없을 뿐인데, 술맛은 곱절이나 덜어졌다. 그냥 시원찮은 놈으로 치부했는데 막상 없으니 어금니가 빠진 것처럼 허수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었다. 언제부턴가 시간은 꺾어진 내리막길로 사정없이 내달렸다. 갈 테면 혼자서나 가지 왜 자꾸 끄집어가는지 따라가기 버거웠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 때문에 저절로 목이 움츠러들었다. 창식과 나는 서방터미널에서 창평행 담양 군내버스를 기다렸다. 남광주시장 국밥집 ‘새벽시장’에서 가끔 조우했던 ‘목각 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광주 천변 허름한 공방에서, 송판 다탁 부엉이 오리 등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들어 팔던 조씨 성을 가진 나무 조각가였다. 새벽시장에서 그러구러 인연이 되어 술추렴을 했지만, 한 해 전 창평으로 들어간 후 연락이 끊어졌다. 애들 소꿉장난 같은 짓거리는 이제 그만하고 진짜 예술을 해보겠다며 사라진 후 처음으로 소식을 전해 왔다. 세상에 선보일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전언과 함께였다. 창식과 나는 그 뭔가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또 한잔 찌끌어 보자는 심산으로 창평행 버스에 올라탔다. 늘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지만, 광주 도심을 벗어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 정복인가? 맞네, 그 마을회관 옆이서 당산나무 골목으로 쭉 들오다 보믄 몬뎅이 대문 없는 집이네. 마당이 넓어서 훤― 허니 잘 보일 것이여.”
   목각 조가 전화를 끊고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마당으로 승용차 한 대가 쑥 미끄러져 들어왔다. 마루에 걸터앉아 묵은지 한 보시기를 앞에 놓고 막걸리 한 대접씩을 들이켜던 창식과 나는 순간 토방으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정복이 차를 몰고 오다니…… 그것도 중형 신차로. 광주천에서 용이 승천했다거나 무등산에서 화산이 폭발했다는 소식보다 더 놀라운 장면이었다.
   “…….”
   “치― 친구들 왔는가. 여― 여기서 만나네.”
   차에서 내린 정복은 예의 그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이 아닌 말끔한 면바지에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내린 꾸엉도 예전의 거무스름한 낯빛의 깡마른 모습이 아닌 제법 살이 오른 희부윰한 얼굴이었다.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 그래. 정복이 너도 잘 있었지? 못 알아볼 뻔했다야.”
   반짝 정신을 차린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당황한 낯빛은 감출 수 없었다. 창식은 목구멍 속으로 혀가 말려들어 갔는지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멀뚱히 쳐다만 볼 뿐이었다. 마당 안까지 쑥― 승용차를 몰고 들어온 정복은 예전의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턱주가리를 마주하던 그 꾀죄죄한 정복이 아니었다. 전혀 딴사람 형국이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색할 정도였다.
   “자― 장승 좋네요. 혀― 형님이 알콜홀릭이긴 해도 까― 깡이 있어요이~.”
   술자리를 힐끗 쳐다본 정복은 곧바로 마당 한쪽에 세워진 장승에게로 향했다. 본체만체 꾸엉도 정복의 뒤를 따랐다. 목각 조가 1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깎은 것은 항일 애국지사 얼굴이었다. 둘레가 2미터에 높이가 4미터나 될성싶은 큰 나무 등치에, 김구 유관순 윤봉길 안중근 등 수많은 애국지사 얼굴을 양각으로 조각한 모양은 가히 볼 만했다. 명실공히 생활 잡동사니 취미생활에서 번듯한 예술조각가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할 수 있었다.
   “정복이 자네처럼 뭘 볼 줄 아는 사람헌테나 허는 말인디, 나가 그냥 나무통에 불과했던 것얼 요로코롬 지사들의 혼얼 살려내기까지는…….”
   목각 조는 옳다구나 장승에 관심을 보이는 정복에게 착 달라붙었다. 오자마자 마루에 퍼질러 앉아 막걸리잔을 들이켜는 창식과 나를 향해 괜한 헛기침만 토해내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창식과 나는 그런 꼴을 또 안주 삼아 꿀럭꿀럭 막걸리를 들이켰다. 갈수록 술맛이 깊어지는 참이었다.
   “야, 국정복! 헛지랄 떨지 말고 와서 한잔해. 니가 뭘 볼 줄 안다고 거서 설치냐 인마.”
   취기가 오른 김에 훅― 던진 말이었지만 정복의 옆에 있던 꾸엉의 눈빛이 희뜩 반짝였다.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뭔 말인지 대충 알아들은 눈치였다. 어리긴 해도 안사람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모양이 제법 야무져 보였다.
   “그래 정복아 이리 와서 앉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얼굴 좀 보자고.”
   창식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거들었다. 꾸엉은 창식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찬바람만 쌩― 하니 불 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자의 직감으로 제 남편에게 해가 될 놈으로 나를 찍은 것이 분명했다. 저놈만 떼어내면 내 남편이 사람 구실을 좀 하겠거니 짐작하는 눈치였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소. 아매 닭이 다 삶아졌을 시각인디…….”
   목각 조가 부엌으로 들어갔고, 정복이 는적는적 마루로 왔다. 그 옆에 새초롬히 꾸엉도 따라왔다. 네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끼어들었다. 꾸엉이 나타나기 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한 침묵이었다.
   “뜨걸 때 어여 뜯더라고 나가 요 집에 오자마자 삥아리를 사다가 꼭 1년 키운 집닭이네. 놔 믹여 길러나서 묵어보믄 확실히 맛이 다를 것이여.”
   목각 조가 큰 양은 쟁반에 삶은 닭을 내왔다. 거짓말 한 톨 없이 칠면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컸다. 김이 모락모락 구수한 냄새까지 훅― 끼쳐왔다.
   “오― 오늘 제대로 보양하겠네. 호― 혼자 사는 친구들 많이들 들어. 이― 이때 아니믄 언제 먹겠는가. 나― 나야 집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위하는 척 자신의 처지를 높이는 정복의 말투에 빈정이 상했지만 그러려니 흘려보냈다. 정복이 결혼을 하고부터는 창식과 나를 한수 아래로 깔아 대하는 폼이 역력했다. 예나 지금이나 상투 튼 놈이 한점 먹고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자, 요놈 한나 뜯으시오. 흐벅지게 뜯어 잡숫고 정복이 닮은 놈으로다가 아들이든 딸이든 한 놈 쑥― 뽑아주시요.”
   목각 조가 다리 하나를 뚝― 떼어서 꾸엉에게 내밀었다. 정복은 흐뭇한 표정으로 어깨를 폈다. 항상 움츠려 있던 어깨가 사뭇 넓어 보였다. 그러다 어깨가 뒤로 접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아저씨 고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국말이 좀 늘었는지 발음이 제법 알아들을 만했다. 새삼 똑똑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 정복이 자네도 한잔 받아. 요럴 때 한잔해야제 언제 또 한잔허겄는가.”
   목각 조가 정복에게 술잔을 권하자 정복이 꾸엉을 쳐다봤다. 꾸엉은 제 얼굴 크기만 한 닭다리를 양손으로 잡은 채 그야말로 고군분투 중이었다. 잘하면 내일까지 뜯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 한잔해라. 술 깨고 저녁때 가믄 뭔 일 있겄냐.”
   내가 거들자 마지못해 정복이 술잔을 받았다. 그러자 꾸엉이 또 나를 곁눈질로 째렸다. 씹던 살코기가 그만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고 말았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정복은 또 더듬더듬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봤자 꾸엉 자랑이었다. 결혼 후 꾸엉은 곧바로 양산동 닭공장에 취직했고, 다른 베트남 사람들까지 불러들여 그들 몫의 소개비까지 매달 받는 모양이었다. 월급도 정복보다 많아서 타고 온 차도 꾸엉이 계약자라고 했다. 정복은 꾸엉이 대견한지 얘기 도중에도 한 손으로 자꾸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눈에는 심봉사 심청이 쓰다듬는 꼴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했다.
   “부럽다. 넌 결혼해서 인생 폈구나. 나도 결혼하고 싶다.”
   창식이 정복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정말 부러운 눈치였다. 밤마다 잠은 안 오고 뼛속까지 밀려드는 외로움은 송곳 칼바람 같으니 그 마음 왜 아니 모르겠는가. 진정 축하한다는 의미로 잔을 부딪쳤다. 닭은 정말 말할 수 없이 맛있었다. 졸깃졸깃 기름진 것이 정말로 풀어놓고 키운 닭 본연의 맛이었다. 안주가 좋으니 술도 술술 먹혀들었다. 거나하게 취한 정복이 방으로 들어가 눕자 꾸엉도 그 옆에 자리를 폈고, 남은 셋이서 또 부어라 마셔라 유체이탈을 시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창식은 갈퀴 같은 닭발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닭맛은 닭발이라나 뭐라나. 그러는 사이 해가 지고 별이 떴다.
   “버―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됐나. 내― 내일 출근할라믄 가야겠는데. 차― 차를 두고 가야 하나 어쩌나…….”
   “얀마, 오늘 같은 일요일 날 박봉 짭새들이 무슨 애국충정으로다 음주단속을 하겄냐. 지들도 어디서 소주나 한잔 걸치고 있겄지.”
   나는 혼잣말처럼 툴툴거렸다. 정복이 겁 많음을 놀려주려는 심산이었다. 어느 날 새벽, 술에 취한 채 예술의 거리를 걷다가 골동품 가게에서 내놓은 작은 맷돌 한 짝을 집어든 채 ‘정복아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이거 한 짝씩 들고 가자’ 했더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냅다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창식과 나는 죽어라 웃었다.
   “아 돼 아 돼 하지 마.”
   운전석에 앉으려는 정복을 꾸엉이 잡아끌었다. 양팔로 엑스 자를 그려 보이기까지 했다.
   “괘― 괘찮아 내― 냄새 안 난다니까.”
   정복은 꾸엉의 얼굴에 후― 후― 숨을 불어댔다. 꾸엉은 큼― 큼― 코로 냄새를 들이켜더니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생각만큼 그렇게 술 냄새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야―, 새 차라 가죽 냄새가 아직 살아 있네.”
   나는 취한 창식을 뒷좌석 안쪽으로 밀어 넣고 그 옆자리에 탔다. 어쩔 수 없었던지 꾸엉도 조수석에 올라앉았다. 술에 취한 근육들이 풀리면서 나른했다. 낮부터 마신 막걸리가 울렁울렁 속에서 파도를 쳤다. 오늘은 또 이렇게 한잔 걸쳤지만 내일은 또 어디서 무슨 건수로 한잔 걸친단 말인가 걱정 아닌 걱정이 밀려들었다. 하―, 늘어지게 하품이 쏟아졌다.
   “어― 어 아이쿠―.”
   쿵― 소리와 함께 앞 등받이에 머리를 사정없이 처박았다. 창식은 아예 바닥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정복과 꾸엉은 놀랐는지 찍소리도 못한 채 차 안에서 오소소 떨고 있었다. 나는 뻣뻣한 고개를 주무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전봇대를 들이받은 차는 앞 범퍼가 찌그러진 채 보닛이 한 뼘이나 솟아 있었다. 바로 앞 과속방지턱에서 핸들을 놓쳤는지 길가 전봇대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숙취가 덜 가셨든지 졸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정복아 얼른 차 빼라. 지나가던 차들이 신고라도 하면 큰일이다.”
   운전대를 꽉 잡은 채 꼼짝 않던 정복이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후진해서 차를 뺐다. 그리고 저만치 후미진 곳에 차를 세웠다.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듯 네 명이 차 안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반짝반짝 윤기 나던 새 차는 어느새 찌그러진 헌차가 되어 있었다. 창식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웩― 웩― 뱃속의 것을 토해냈다. 너무 많이 마셨는지 충격 때문인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처먹고 토할 것을 뭣하러 그렇게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신히 창식을 건사해 일으켜보니 정복과 꾸엉이 없었다. 혹시 마실 것이라도 사러 갔나 도로변으로 나가봤지만 흔적도 없었다. 하여간 도망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정복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새 차가 헌차 돼버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수리비나 보험료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어쩌면 꾸엉에게 심한 닦달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말의 책임과 궁금증에 자꾸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지도 메시지에 답도 없었다. 창식과 둘이서 마시는 술도 어지간히 되게 느껴졌다. 흥이 빠진 술은 취기가 빨리 찾아왔다. 낮부터 남광주시장 국밥집 ‘새벽시장’에 마주 앉은 창식과 나는 별말도 없이 술만 들이켰다. 창식은 머릿고기 대신 된장에 청양고추를 안주 삼았고, 나는 괜한 막걸리를 탓하며 소주로 갈아탔다. 그러다 혹시나 받을까 정복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새꺄, 내 남편 전화하지 마.”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꾸엉의 앙칼진 목소리에 취기가 확 달아났다.
   “꾸엉? 정복 좀 바꿔줘요.”
   “닥쳐.”
   닭공장에서 일하더니 닥쳐 하나는 제대로 배운 모양이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녜요. 빨리 정복이나 바꿔봐요.”
   정복을 봐서 한 번 더 참아냈다. 억지로 참아내느라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닥쳐, 내 마 모 알아들어? 남편 전화하지 마.”
   닥쳐를 두 번 들으니 목이 획―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참았던 화가 불쑥 치밀어올랐다.
   “야, 월남댁! 보자보자 하니까 디아스포라 주제에 이게 어디서 함부로…….”
   “닥쳐, 나 아니 너 디아스포라 아라드러써? 임마.”
   디르―, 전화는 끊어졌고 닥쳐의 여운은 길게 이어졌다.
   “꾸엉 승.”
   옆에서 전화 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창식이 술잔을 들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변명 없이 KO패였다. ‘아라드러써? 임마’ 되받아치는 솜씨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녹이 슬어서 잘 닫히지 않는 셔터문을 내리고 혼자서 멸치에 소주를 마신다. 천장과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곰팡내와 책 삭아 드는 냄새가 퀴퀴하게 콧속을 파고든다. 꾸엉과 다툰 후, 아니 일방적으로 당한 후 정복과는 완전히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자발적인지 꾸엉의 강요 때문인지 하여간 전화 한 통 없었다. 한 달 전 꾸엉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창식을 통해 들었을 뿐이었다. 창식도 요즘 술을 끊고 목하 열애 중이다. 꾸엉이 닭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베트남 아가씨를 소개해 준 덕분이었다. 정복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 아가씨에게 홀딱 빠져 거의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이다. 어두컴컴한 책방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흡사 귀신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사람 소리라도 들으려 라디오를 켜두었지만 외로움은 무좀균처럼 끈질기고 집요하다. 콸― 콸― 글라스에 소주를 채운다. ‘나 아니 너 디아스포라’, 꾸엉의 말이 새삼 뼛속을 파고든다. 무덤 속에서 정복과 창식을 끌어낸 꾸엉을 위해 한잔 죽― 들이켠다. 나만 미워한 맹랑한 월남댁,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라. 1)

각주

1) 이 소설은 2023년 6월 해남 <백련재 문학의집>에서 창작되었다.

필자 약력
프로필_손병현2.jpg

197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났다. 199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내 곁에 유령』, 『동문다리 브라더스』, 작품집 『해 뜨는 풍경』,『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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