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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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단추공장 위층 스튜디오

이숙종

   프리랜서들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매니저 니디(Nidhi)가 샘플 세일에 관한 정보를 알린 다음이었다. 니디는 둔탁한 인도 악센트가 섞인 말을 끝내고 화장실로 가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들이 내는 소음이 점차 멀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는지 한국말로 떠드는 소리가 뚝 끊겼다. 갑자기 스튜디오가 적막에 잠겼다. 스튜디오를 나선 그들은 샘플 세일을 보러 다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것이다. 은행과 우체국에 들러서 일을 보고 32가 한인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다. 간혹 34가 백화점 지하에서 원두커피나 분쇄 커피도 살 것이다. 그렇게 밤낮이 바뀐 이상한 날이 또 시작됐다.

   넓은 공간이 휑하다. 세일즈맨들도 모두 외근 중이다. 최 선생과 정애 씨, 니디와 데미안, 그리고 내가 있다. 아, 한 사람이 더 있다. 저 여자다.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여자다. 여자는 벽을 등지고 앉아있다. 나와 마주 보는 자리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작업에 몰두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줄지어 놓인 빈 테이블을 본다. 같은 종류의 테이블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차이점이 확연하다. 높이와 상판의 기울기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평평하게 누구는 약간 기울게 또 누구는 매우 기울게 놓고 사용한다. 그녀의 테이블은 평평하다. 얀다이1)라 불리는 줄무늬, 체크무늬, 헤링본 등, 온갖 자를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는 좀 더 기울게 놓으려나. 아마 귀찮아서 그대로 두고 쓸지도 모른다.
   일감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일어선다. 빈 물통을 들고 니디가 들어왔던 문으로 나간다. 곧 돌아와서 물이 담긴 물통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원통 모양의 새끼손가락만한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물감을 섞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놓인 색색의 물감 튜브가 어지럽다. 어떤 물감은 통통하고 어떤 튜브는 몸통이 돌돌 말려 있어 다 쓴 치약 같다. 우리는 곧 날을 잡아, 필요한 재료를 사러 차이나타운에 가야 한다. 다 써서 없는 색은 동료에게 얻어 쓰며 버티다 결국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을 탄다. 커낼가(Canal Street) 역에서 내리면 붉은 깃발이 걸린 빌딩을 만난다. 재료상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펄럭인다. 우리는 그 빌딩으로 들어가 비좁은 통로에서 물감을 고른 다음 붓이 진열된 곳을 기웃거린다. 스튜디오 측에서 제공하는 몇 가지 재료를 제외한 나머지 물품은 프리랜서들 몫이다. 그녀는 좁게 자른 하얀 도화지에 섞어놓은 색을 한두 줄 칠한다. 색이 어느 정도 마르면 샘플 색으로 나온 천이나 실, 컬러 차트의 색감과 비교한다. 색감을 딱 떨어지게 맞추는 일은 어렵다. 잘못하면 색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간다. 그녀는 한 시간 남짓 색을 만드는 일에 골몰한다. 작업에 필요한 색이 테이블에 죽 놓일 때쯤,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에는 여러 색의 물감이 묻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한 번에 다 지워지지 않는 물감 때문에 여러 번 손을 씻을 것이다. 손을 씻고 온 그녀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지난 금요일 오후, 그녀는 복사기 옆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직물 쪼가리를 들고 패턴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샘플로 나온 프린트2) 직물은 꽃무늬가 어두워 복사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또 꽃송이는 화려하고 컸으며 샘플 사이즈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패턴을 늘리는 작업은 샘플이 어떻게 나왔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샘플을 복사해서 오려 이어붙이기도 하고, 연결해 그리기도 하며, 습자지 같은 반투명 종이를 천에 놓고 무늬를 베끼기도 한다. 일은 번거롭고 돈이 되지 않는다. 크기가 커서 한 장에 몇 백 불을 받아도 여러 날 붓질을 해야 하는 그런 반갑지 않은 일감이다.
   그녀는 한국에 다녀온 후부터 일찍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때쯤 일감을 들고 들어오는 세일즈맨들과 엇갈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녀가 먼저 나갔다. 그들이 가지고 온 일거리는 그날로 배분됐고 그녀는 다음날 일을 받았다. 그녀는 컬러 콤비네이션으로 나온 두 장짜리 일을 잠시 들여다본다. 일에 대한 분석이 끝났는지 만들어 놓은 색의 뚜껑을 연다. 그녀는 붓 하나를 고르더니 일을 시작한다.
   생각 없이 칠하고 또 칠하고…… 내가 기계 같아요.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점심을 먹을 때였다. 나는 생각 없이 일할 수 있어서 편하고 좋은데. 정애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더니 나는 그래요,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할 것 같은 증세도 생겨요. 영혼이 막 긁히는 것 같아요. 물론 어딘가 묶여 있는 느낌도 참을 수 없고요. 그럼 일하기 힘들잖아? 정애 씨가 물었다. 사무실에서 일해도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해도 육 개월만 지나면 영혼이 털리기 시작하는 게 느껴져요. 영혼이 다 털릴 즈음부턴 몸도 아프기 시작하고. 말을 끝낸 그녀의 얼굴이 혼란스럽다. 내가 왜 이 말을 했지 하는 후회가 얼굴에 가득하다. 직업이라는 게 다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지요. 의사도 매일 얼굴 찡그린 환자를 봐야 하고 판사는 맨날 판결해야 하고. 그 어떤 직업도 일을 반복한다는 점에선 같죠. 내가 말했다. 그녀는 공감대를 찾지 못한 탓인지 말을 멈췄다. 자기는 어떤 일이냐가 아니라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질리는 거 같아. 정애 씨가 요점을 파악한 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마 그런 거 같다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후 일하다가 그녀를 건너다볼 때면 자기가 기계 같다는 그녀의 말부터 먼저 떠올랐다. 어느 날 영혼이 다 털린 그녀가 이 스튜디오를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최 선생과 정애 씨와 나는 일이 없다. 지난 금요일에 주어진 일을 다 마쳤다는 뜻이다. 외근 나간 세일즈맨들이 들어와 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늦은 오후가 돼야 들어온다. 최 선생은 교포 신문을 읽고 정애 씨는 책상 정리를 한다. 그녀는 가방까지 정리하는 중이다. 데미안은 그녀처럼 지난 금요일에 받은 일을 한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미국인 프리랜서다. 그들은 한 사람씩 여기를 떠났다. 현재 데미안만 남았다. 내게는 가끔 농담도 건네는 그는 스튜디오 상황에 대해서 굳게 입을 닫고 있다. 그러나 테네시주에서 왔다는 그도 결국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나는 《더 뉴요커》3)의 목차를 훑어보다 덮는다. 아침에 걸어오다 뉴스 스탠드에서 한 부 샀다. 1987년 5월 18일 자 잡지다. 창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문은 불투명한 유리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 38가의 오래된 빌딩이다. 창문을 연다. 빌딩의 창문은 무겁고 뻑뻑하다. 맨해튼의 ‘가먼트 디스트릭트’4) 또는 ‘패션 디스트릭트’라고 불리는 곳이다. 뉴욕 의류에 속한 산업이 모두 모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텍스타일 디자인 아트 스튜디오는 40층짜리 빌딩의 39층에 있다. 아래층은 단추공장이다. 사실 공장인지, 도매상인지, 사무실인지 알 수 없지만 단추공장이라고 부른다.
   창문을 조금 열자 창턱에 앉은 비둘기가 놀라서 날아간다. 비둘기는 조금 후 다시 날아와 창턱에 선다. 비둘기의 발은 굵고 짧다. 날아가기 위한 발보다 걷기 위한 발 같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던 바다, 나는 배의 테이블에 앉아서 새들을 봤다. 그 작은 새는 날아가다가 세찬 비를 못 견디고 배의 난간에 앉았다. 작은 새의 다리는 유난히 길었고 다리와 발은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그 새의 다리는 날기 위해서 최대로 무게를 줄인 것 같았다. 새는 다시 날았다. 그러나 허공에서 비바람을 견디기에 새는 너무 작았다. 새는 다시 배의 난간에 앉았다. 새는 앉았다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작은 새는 고단해 보였다. 여자가 처음 스튜디오로 들어섰을 때 그 작은 새가 날아 들어온 것 같았다. 마치 폭풍우를 피하러 잠시 들어온 것 같았다. 고단해 보였다. 나는 과자를 부스러뜨려 창턱에 놓고 창문을 닫는다.
   “우리 배달시키려고 하는데, 점심 어떻게 해?”
   정애 씨가 그녀에게 묻는다.
   “샌드위치 싸 왔어요.”
   그녀가 머리를 들고 대답한다.
   “어디서 시키세요? 코너에 있는 식당이면 양파 수프 좀 같이 주문해주세요.”
   그녀는 다시 머리를 들고 정애 씨에게 말한다.
   우리는 둥근 테이블이 있는 곳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이왕이면 서울 보낸 김에 좀 더 있다 데려오지. 일을 조금밖에 못 해서 아기 프리스쿨 비용이나 나와?”
   정애 씨가 그녀에게 묻는다.
   “매일 애 데려왔으면 해서. 전화비가 렌트비의 반이나 나왔어요. 아직 말도 못 하는 애와 통화하겠다고.”
   그녀의 이상한 말투는 다 말하는데도 왠지 반만 말하는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다. 고단해 보이지만 서늘한 얼굴, 시선이 마주친다. 그녀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녀의 눈은 내 눈을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눈길은…… 머물지 않는다.
   “전화비 많이 나왔다고 데려왔다는 건 말이 안 돼.”
   “그건 그냥 내가 한 말이고, 프리스쿨 보내는 비용이 더 나가요.”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좀 힘들어도 가족은 같이 사는 게 좋지.”
   최 선생이 말한다.
   “이제 영표 씨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
   정애 씨가 내게 말한다.
   “참 이번에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지? 몇 달 안 남았네!”
   최 선생이 묻는다.
   “네.”
   “졸업하면 바로 돌아가?”
   “아직 모르겠어요.”
   “영화 만드는 거 공부한다며?”
   “네.”
   내 짧은 대답 때문에 대화가 끊긴다.
   “한국은 무슨 일 날 거 같다는데.”
   “왜요? 무슨 일이 있대요. 요즘 통화도 못 해서.”
   “동생이 전화했어. 서울대 학생 물고문하다 죽인 거 조작 은폐했다고. 명동성당에서 김승훈 신부님이 5.18 추도 미사 도중 알렸대.”
   최 선생의 말에 우리 모두 침묵한다. 그녀가 알 수 없는 신음을 낸다. 소리는 희미해서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떠나온 자들의 죄의식이 잠시 흔들린다.

   발소리가 시끄럽다.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그들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그녀가 잠시 얼굴을 들더니 미간을 찡그린다. 소란스러움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 같다. 그녀는 무리에서 튕겨 나온 사람이다. 그녀는 지금 밖에서 들어온 무리뿐 아니라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와 잘 지내긴 하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둔다. 정애 씨가 살갑게 챙겨주지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왠지 그런 그녀와 탯줄을 공유한 것 같다고 느낀다.
   프리랜서들의 뒤를 밟은 사람처럼 미진 씨가 들어온다. 아기 배낭을 지고 나타난 그녀는 우리 모두를 향해 미소 짓는다. 배낭에서 작은 아기가 자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남편과 함께 온 그녀는 프랫 인스티튜트5)에서 공부 중이다. 출산하게 돼서 학교를 쉬고 있다. 일을 집으로 가져가 작업해서 가져온다. 아기를 보면서 쉬엄쉬엄한다고 한다. 나는 이마를 숙이고 있는 그녀가 미진 씨처럼 밝고 씩씩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한다.
   미진 씨가 떠나고 니디가 연숙 씨를 부른다. 연숙 씨는 이 스튜디오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다. 연숙 씨와 대화를 끝낸 니디가 데미안에게 보자고 한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데미안은 테이블로 돌아와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한다.
   미국인들이 일하던 스튜디오, 그 좋은 수입에도 그들은 이곳을 떠난다. 밤일을 마다하지 않는 한인들 때문에 이 업계의 시스템이 바뀌는 중이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몇 달 후, 여기를 떠난다. 일을 주면 밤새 해다 줄게,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이 흘러 다녔다. 다 같이 여유 있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돈을 더 벌고 싶은 어둠의 욕망이 반칙을 저지른 걸까. 욕심이 화를 부르고 결국 본인도 피해를 보게 되는 걸 모른다. 돈 되는 일을 줄래. 내일 아침에 줄게. 누구였을까. 이 스튜디오에서는 누가 그런 어두운 작업을 걸었을까. 그러곤 스튜디오에 나와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다. 나는 밤일을 거부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데미안의 등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연숙 씨가 말한다. 내일 오전까지 해줘야 하는 급한 일이 많이 들어온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지만 잘하면 최대는 사백에서 오백 불은 벌 거라는 걸 남은 우리는 안다. 세일즈맨 다섯 명이 들어와 풀어놓은 일이 배분됐다. 오늘은 그녀도 일을 앞에 놓고 있다. 한국인들은 스튜디오를 떠나지 않고 일을 시작한다. 몇 명은 색깔만 만들어 일감을 들고 집으로 간다.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밤에 홀로 앉아 일할 것이다. 남자들은 다 스튜디오에 남는다. 그녀는 작업하던 일을 옆으로 밀어놓고 새로 받은 일감을 들여다본다. 그녀가 일어나 니디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간다. 전화를 건다.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오늘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는다.
   이렇게 급한 일은 완벽하지 않아도 돼. 디자이너들이 전체적인 느낌만 보면 되니까. 세일즈맨들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영악한 프리랜서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일이 약간 거칠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모두 일하는 데 속도를 낸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
   한 해를 앞서간다는 의류 디자인, 오늘 내게 배당된 일은 단색 티셔츠다. 색은 가을 냄새가 넘쳐나는 색들이다. 보통 기존의 색감을 조금 바꿔서 다른 이름을 짓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산호색의 색감을 조금 바꿔 ‘하와이안 코럴’이라 명명했다면 다음에는 또 약간 다른 색감을 만들어 ‘캐리비안 코럴’,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기존의 색깔만 조금씩 변경하는 게 아니다. 시즌을 대표할 눈부시게 매력적인 색을 두어 개쯤 만들어내야 한다. 아무래도 이 시즌을 이끌 색 중의 색은 내가 만드는 블루홀(Blue Hole)이란 색 같다. 블루홀이라 이름이 붙여진 검푸른색, 이런 선두 색은 각 회사의 컬러리스트들이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다. 매니저 일을 보는 니디도 컬러리스트다. 우리는 색이 잘 나오지 않을 땐 니디에게 묻는다. 나는 각기 색이 다른 셔츠 15장을 위해 색깔을 만든다. 정애 씨와 같은 일이라 중복되는 색이 있어 공유하기로 했다. 정애 씨가 받은 일은 내가 가진 단색 티셔츠에 옷깃이 달린 디자인이다.
   그녀는 어떤 일을 하는 걸까. 나는 그녀를 쳐다본다. 일감까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색을 만들면서 최 선생의 광주라는 말에 걸려든다. 사실은 아까 이미 걸려들었다. 명동성당, 광주 5.18 추도미사, 물고문 치사, 은폐 조작 등 말들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한다. 천주교인인 최 선생이 신부님 성함까지 말했다. 광주 5.18, 벌써 7년 전 일이다. 나는 그때 광주에 들어간 군인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시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계엄군 또는 진압군으로 불렸던 그날들을 자세히 떠올리지 못했다. 그 원인이 외부 충격인지 내 무의식의 의도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불면이 시작됐고 감은 눈꺼풀 안까지 피 튀기는 장면들이 찾아왔다. 여러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날은 차례대로 장면이 지나갔지만 어떤 날은 순서 없이 뒤섞여서 떠올랐다. 나는 떠오르는 장면을 열심히 뭉갰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계속 멀리 달아났다. 동해안에서 남해안으로 또 산으로 갔다. 그렇게 복학하지 못하고 일 년 반을 떠돌았다. 남해안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가려다 계획을 수정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섬이 갖는 고립이 무서웠다. 하지만 어디에 머물러도 잠들지 못했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깨면 추운데도 식은땀에 젖곤 하던 나를 부모님이 찾아왔다.
   엄마가 외삼촌에게서 받은 이민 초청장의 진행이 시작됐다. 서류가 들어간 지 칠 년째라고 했다. 부모님은 마음이 바뀌어 갈지 말지 고민했다. 나는 엄마에게 먼저 가서 나를 초청하라고 설득했다. 나는 나이가 넘어 부모님과 함께 갈 수 없었다. 부모님이 먼저 도착해서 나를 초청하면 이삼 년 안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복학해 학업을 간신히 끝내고 졸업했다. 주유하기 위해 앵커리지에 서는 비행기를 탔다. 케네디공항에 내렸다. 아버지와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추웠다. 그러나 내게 광주만 광주가 아니었다. 한국만 광주가 아니었다. 태평양을 건너도 광주였다. 내게는 모든 곳이 광주였다.
   나는 여기저기로 일하러 다녔다. 극심한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창고 일도 했다. 심지어 건축 일 같은 강도 높은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불면증은 호전하는 듯했다. 외삼촌은 메릴랜드로 내려오라고 했지만 나는 뉴욕에 있겠다고 말했다. 불면증이 나아지자 다운타운에 있는 학교에 갔다. 그러나 광주가 강의실까지 따라다녔다.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이 스튜디오에 일하러 왔다. 웬일인지 광주가 이곳까지 오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휴식할 수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곳에서 내가 떼어내려는 광주, 그 광주 같은 여자를 봤다. 날카롭게 꺾인 작은 삭정이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람 같았다. 가슴속을 찌르는 삭정이를 손수건 같은 것으로 덮고 짐짓 모르는 체하는 것 같았다. 그 광주 같은 여자, 폭풍우 바다의 작은 새 같은 여자가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그 새가 배 난간에 잠깐 앉았던 것처럼 그녀도 오래 머물 것 같지 않았다.
   정애 씨가 여자의 테이블로 가 일을 들여다본다.
   “색깔 다 만들었어?”
   “아직요.”
   “티셔츠는 달라도 우리와 같은 일이네. 우리 티셔츠 색이 자기 셔츠엔 팔에만 들어갔어. 이거, 이거, 이거…….”
   그녀가 손으로 색깔, 네 개를 가리킨다.
   "만들지 말고 우리 거 써. 이미 다 만들었어. 우드와 에그플랜트는 내가 만들었고 이 블루홀과 헌터그린은 영표 씨한테 달라고 하고. 이 보르도와 차콜은 우리 나눠주면 되겠네.”
   정애 씨의 말이 여기까지 들린다. 나는 색을 덜어 그녀의 테이블로 가지고 간다.
   “차콜이 딱 떨어지지 않는 거 같아요.”
   그녀가 말한다.
   “이 정도면 완벽. 더 완벽해지려다 엉뚱한 데로 가서 비싼 물감 다 버리지 말고 여기서 멈추는 게 좋아.”
정애 씨가 색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자기는 너무 정확하게 하려는 게 병이야. 그러니 스트레스받지. 이건 예술품이 아니고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는 상품이야.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정애 씨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잠시 붉어진다. 그녀는 작은 통에 보르도와 차콜을 덜어서 나와 정애 씨에게 건넨다.
   “전화 왔대!”
   정애 씨가 그녀에게 니디를 가리킨다. 니디가 전화기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애 씨가 알려줄 때까지 그녀는 모르고 있다. 그녀는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간다. 금방 통화를 끝내고 온 그녀가 자리에 앉아 일을 계속한다.
   “혹시 광주에 산 적이 있어요?”
   이런 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녀에게 물어볼 계획은 없었다. 실수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것이 그냥 나와버렸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
   “나요?”
   그녀가 물었다.
   “네.”
   “아뇨.”
   “가본 적은요?”
   “없어요. 왜요?”
   “그냥 그곳에 살지 않았나 싶어서요.”
   “나도 가본 적 없는데 영표 씨는 가 봤어?”
   정애 씨가 묻는다.
   “아뇨.”
   나는 거짓말을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반은 거짓이고 반은 사실이다. 나는 거기에 없었으니까. 나는 광주에 있었으나 나는 그곳에 없었다. 앞뒤가 안 맞는 이 말이 내게만은 진실이다.
   “그런데 왜?”
   나는 모자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난 서울에 살았고 경주에 잠시 머문 거밖에 없어요.”
   그녀가 말한다.
   “경주에서 어딜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길게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장면만 지금까지 또렷해요. 어디쯤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부근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늦은 밤이었는데 앞에서 차들이 한 줄로 서기 시작하는 거예요. 승용차 뒤에 앉았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언뜻 군인들이 보였어요. 그들이 차 안에 탄 사람들을 검문했어요. 건너편을 보니 탱크가 서 있었어요. 가로등 아래 탱크가 몇 대 서 있었어요. 사실은 한 대였는지 몇 대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앉아서 봐서 그런지 탱크가 컸고 불빛 아래라 유달리 검었던 기억만 나요.”
   “부마6)네.”
   가까이 앉은 최 선생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슬며시 끼어든다. 나는 그녀가 준 보르도와 차콜 색을 들고 내 자리로 돌아온다. 자리에 앉으면서 내가 열었던 창을 본다. 그 창에 검은 그림자가 진다. 아까 그 비둘기가 아직도 있는 걸까?

   갑자기 불이 나갔다. 암흑이다. 정적이다. 내가 일을 삼분의 이 정도 마쳤을 때다. 모두 숨죽이고 기다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곧 전기가 들어올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다려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 라이터를 켠다. 최 선생이다. 라이터는 곧 꺼진다. 다시 어둡다. 엘리베이터도 섰을 텐데……. 여자의 목소리다. 절망적이다. 누굴까! 얼굴이 보이지 않자 목소리 구분이 힘들다. 그제야 사람들은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물감 뚜껑을 닫는다. 탁. 탁. 탁 탁 탁……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어둠 속에서 붓을 물통에 넣는다. 어둠 속에서 줄무늬를 만들 때 사용하는 펜에 남은 물감을 닦아낸다. 제대로 닦였는지 알 수 없다. 붓은 밤새 물통에 담가 놓으면 붓털이 구부러져서 못 쓰게 되지. 어둠 속에서 붓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누가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기저기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다시 라이터를 켠다. 가방을 챙기는 소리. 누가 문을 향해 먼저 나선다. 사람들이 뒤따라 나간다. 그녀는 저 앞에 있다.
   작업 중이던 일을 그대로 두고 계단 앞에 당도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건 아니다. 막 지나친 엘리베이터는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엘리베이터는 어느 층에서 멈추었겠지. 아니면 층과 층 사이에 끼어 있던가. 나는 라이터 불빛 속에 어렴풋이 드러나는 엘리베이터의 육중한 문을 보면서 생각한다. 누가 계단으로 난 문을 연다. 뒤에 선 누가 그곳에 라이터를 든 손을 넣는다. 갇혀있는 공기의 퀴퀴한 냄새가 난다.
   모두 계단 벽에 한쪽 어깨를 대고 붙어 선다. 오래된 빌딩의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옛날 건물이어서 층고가 높은 탓에 계단은 급경사다. 계단 아래는 어둠이 꽉 찼다. 빈틈없는 어둠. 소수의 남자가 켠 라이터,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발밑을 보면서 일렬로 계단을 내려간다. 맞은편 벽에서 움직이는 커다란 그림자. 발소리……. 누가 작은 소리를 내면 소리는 반대편 벽을 치고 뚫린 공간 아래위를 돌며 울리다 사라진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의 바닥으로 걸어 내려가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지구의 지각을 뚫고 저 아래 뜨거운 맨틀까지 닿으려는 것 같다. 데미안이 부럽네! 누가 작게 속삭이지만 울림이 커 다 들린다. 겨우 여섯 층 내려온 거야! 한 사람이 말을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속삭이기 시작한다. 어둠에 조금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대화로 긴장감이 다소 풀리자 분위기가 따뜻해진다.
   저 아래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잠시 계단에 가려 보이지 않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녀는 어둠 속을 떠다니는 것 같다. 나는 그녀가 발과 다리를 들고 두 팔을 뻗어 어둠을 가르며 나가는 상상을 한다. 팔과 다리를 우아하게 흔들며 어둠을 가르는 물고기 같은 그녀, 깊은 물속 같은 어둠 속을 유영한다. 그녀는 마치 블루홀로 잠수하는 다이버 같다. 다합7)의 블루홀일까. 물속에 터널로 들어서는 아치가 매혹적이라는 블루홀. 죽음도 불사하게 유혹적이라는 블루홀. 그래서 많은 다이버가 죽었다는 그 블루홀. 내가 스튜디오에서 만든 그 검푸른 색깔의 물속으로 유유히 내려가는 여자는 내가 있는 곳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카이로대학을 졸업했다는 카이로가 블루홀 사진을 여러 장 내밀었다. 그가 여러 나라에서 필름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 섞여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블루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주위의 학생들처럼 감탄사를 연발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구에 이런 곳이 있다고! 사람들이 그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고! 잠수하다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는 지구에 이런 곳이 여러 군데 있지만 다합 블루홀의 장점은 바로 해안에 있어 배를 타지 않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거두어들이면서 유달리 반짝이던 카이로의 크고 검은 눈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나는 그의 눈빛을 이해했지만 외면했다. 카이로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해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동병상련하고 있지!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언제 끝날까 하는 걱정에도 나는 마지막 계단을 밟는다. 밖으로 나오자 비바람이 불고 있다. 빌딩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바로 빗속으로 흩어진다. 최 선생과 정애 씨와 그녀는 함께 택시를 탄다. 최 선생이 내게 먼저 내려준다고 타라고 한다. 잠시 망설이다 거절한다. 나는 지금 계단이 아닌 평지에서 걷고 싶다. 유리창이 내려가더니 그녀가 접힌 우산을 내민다. 내가 우산을 받고 그녀의 손이 택시 안으로 들어가자 창문이 올라가고 택시가 출발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 한 비둘기가 철문이 닫힌 가게 아래서 서성인다. 나는 앉아서 비둘기를 본다. 비둘기가 나를 인지하는지는 알 수 없다. 비둘기의 눈은 내게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다. 비둘기는 그냥 서성인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 비둘기의 붉은 눈이 불빛에 번쩍인다.
   그녀가 준 우산을 펼쳐 들고 웨스트 10번가까지 걷는다. 집은 협소하지만 아직은 축축함에 침범당하지 않아 쾌적하다. 나는 데일 것처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바로 자리에 든다. 그런데 잠은 달아나고 광주가 다시 나를 찾아온다. 오랜만이다. 어둠의 계단 탓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비둘기의 붉은 눈처럼 모호하다. 이미 최 선생의 광주라는 말에 걸려들었잖아.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나는 창밖이 어슴푸레해질 때까지 광주를 몰아낸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몰려온다. 감은 눈꺼풀 속으로 폭력의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때, 계속 잠을 못 잔 우리의 눈은 비둘기 눈처럼 붉었다. 건빵으로 때우는 식사는 구토를 일으키며 우리의 몸을 극도로 흥분시켰다. 그들이 순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은밀한 암시는 자꾸 걷어내도 뇌에서 악취를 풍기며 검붉은색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총, 칼, 곤봉 같은 피를 튀기던 무기들이 감은 눈꺼풀 속에서 일어난다.
   광주는 나의 몸속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것은 몸속 어느 곳에 바이러스처럼 숨어 있다 내가 조금만 약해지만 어김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가 정문 앞을 지키던 그 대학의 여학생이었을까. 책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기 위해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던 여고생이었을까. 나는 광주와 상관없다는 그녀를 자꾸 그 여학생들과 겹쳐놓는다. 그렇게 광주는 질겼고 독했으며 때로는 야비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스튜디오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가을 학기 복학 절차를 마치기 위해 학교에 간 날 그녀는 스튜디오에 나타나 짐을 들고 갔다. 물론 정애 씨가 전한 말이었다. 내게 광주 같은 그녀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대학생 집회에 직장인들이 합류했어.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전화에서 대뜸 그렇게 말했다. 대학생이 물 고문 받다 죽었잖아. 다른 대학생이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서 혼수상태야. 최루탄을 쏠 때는 위로 솟아오르게 쏴야 한다는데 누가 표적 삼아 쐈나 봐. 아니면 실수였거나. 넌 학교 끝나도 오지 말고 당분간 거기 있어라. 아버지가 대학생도 아닌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스튜디오를 떠나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찾는 한인 타운 식당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소심하게 기대했다. 거리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았다. 나는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도 좌석에 파묻힌 승객들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그녀가 어느 좌석에 앉아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와 연결된 푸른 탯줄을 끊고 다합의 저 깊은 블루홀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곳이 너무 아름다워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상에 없는 것 같았다.

각주

1) Yarn Dyed Fabric 염색된 여러 색의 실로 디자인하면서 직조하는 직물
2) Printed Fabric 하얀색 천에 디자인한 무늬를 찍어낸 직물
3) The New Yorker: 코멘터리, 각종 비평, 에세이, 시, 단편소설을 싣는 주간 잡지.
4) Garment District: 뉴욕 맨해튼, 대략 5번가에서 9번가 사이, 34가에서 42가 사이를 말함.
5) Pratt Institute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사립대학교
6) 1979년 부산-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항쟁
7) Dahab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동쪽의 작은 어촌 마을

필자 약력
이숙종 작가 프로필 사진

이숙종, 1997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과 2005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1년 장편소설 『보트하우스』로 목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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