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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한국인의 밤

서수진

   클로이 최가 아버지에게서 한복 패션쇼에 대해 들었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은 주방의 간이 테이블에 놓인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클로이는 코가 빨갰고 한눈에도 커 보이는 한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다섯 살 때였는데도 그날의 기억은 또렷했다. 한글학교의 연말 발표회였고, 클로이의 반은 부채춤 공연을 했다. 프릴 원피스를 입고 간 클로이는 반 친구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교장은 시 낭송을 하는 고학년의 한복을 벗겨다 클로이에게 입혔다. 노란색 저고리의 소매는 둘둘 접어 올렸고 빨간색 치마는 어떻게 할 수 없어 바닥에 질질 끌리는 대로 두었다. 클로이는 당장 울음을 그쳤다. 교장은 움직이지 말고 뒤에 서서 부채만 흔들라고 당부했다. 색색의 한복을 입은 친구들과 함께 이리저리 부채를 흔들어대면서 신이 난 클로이는 무리를 따라 자리를 옮기다가 넘어졌고 얼굴이 바닥에 부딪혔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식당을 비울 수 없어서 발표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교장에게서 전화로 왜 클로이의 코가 빨간지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교장이 보내온 사진을 인화해서 액자에 껴 놓았다. 그 후로 한복을 입을 일이 없던 클로이에게는 한복 패션쇼가 일종의 코미디쇼처럼 들렸다.
   아버지는 클로이가 모델로 서는 거라고 했다. 클로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복 모델? 내가?”
   클로이가 되물었고, 아버지는 상기한 얼굴로 리플릿을 내밀었다. 리플릿에는 ‘한국인의 밤’이라는 제목 아래 시간별 프로그램이 나와 있었고, 한복 패션쇼 외에도 사물놀이와 태권도 시범, 부채춤, 비보잉 공연 등이 줄지어 있었다. 아버지는 엄청나게 큰 행사라고 말했다. 한국전 휴전 60주년 행사를 호주의 전쟁 기념일인 앤잭데이에 맞춰서 하는 거라 한국전에 참전한 호주 군인들이 전원 초대받았고, 양국의 지도층 인사와 장관까지 온다고 했다.
   “너 아트센터 해머홀 알아?”
   클로이는 고개를 저었다.
   “2400석 규모야. 이렇게 큰 행사는 처음이라고. 한인회부터 영사관, 한국문화원, 한글학교 연합회, 한인 교회 연합회가 동원될 거야. 빅토리아주에서 한자리하는 한인들은 다 온다고 생각하면 돼.”
   클로이는 그제야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알아챘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빅토리아주 한인회에서 임원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한자리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과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날이 앤잭데이니까 오전에는 퍼레이드가 있잖아? 거기서도 한복 입고 한국전 참전 군인들하고 같이 행진하는 거야. 호주 일간지에서도 엄청 크게 실어주기로 했어.”
   “그렇게 큰 행사에 내가 어떻게 서?”
   “그건 아빠만 믿어.”
   클로이는 대답하는 대신 한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행사 전날 아버지가 퍼레이드에서 입을 한복을 미리 받아왔다고 연락을 해와서 클로이는 대학 수업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일식당은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리는 한국인 식당이 밀집한 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클로이는 식당에 갈 때마다 일부러 코리아타운을 통과해 가곤 했다. 그곳을 가득 채운 한국 여자들은 호주 여자들이 잘 입지 않는 박시한 옷을 입고 있었다. 중성적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 피부는 하얗게, 볼과 입술을 붉게 바르는 화장.
   “이랏샤이마세!”
   클로이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늘색 기모노 상의에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종업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2시가 넘어 식당은 한산했다. 열두 테이블 중에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양손에 음료수 병을 든 종업원은 클로이를 알아보고 안도하는 건지 당혹스러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교자 오네가이시마스!”
   아버지의 목소리가 홀에 울렸다. 종업원은 테이블에 음료수병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뛰어갔다. 종업원이 교자를 내간 후에 클로이도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주방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일본어가 옷깃에 새겨져 있는 푸른색 일본풍 상의를 입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곤니치와!”
   아버지는 경쾌하게 클로이에게 인사를 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 있으라고 한국어로 속삭였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한국인을 직원으로 쓰면서도 홀에서 한국어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인이 하는 일식당이라면 아무래도 가짜 같아 보인다는 거였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진짜 일본 식당으로 비치기를 원했다. 그래서 모든 직원이 일본 옷을 입고 인사부터 주방에 주문을 넣는 것까지 일본어로 외쳤다. 직원들은 예약을 확인하거나 제자리에 없는 소스 통을 찾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클로이는 2층으로 향했다. 직원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클로이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데 사용하는 식당의 2층에는 식탁과 의자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틈에 침대와 옷걸이,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가 뚫려 있어서 난간에 기대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하이스쿨에 다니는 내내 식당으로 하교했던 클로이는 디너타임이면 2층 난간에서 1층을 지켜보았다. 1층에서는 손님들이 메뉴판을 책 읽듯이 살피고, 꽃이 점점이 박힌 접시에 내온 음식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고, 사케 잔을 홀짝였다. 하늘색과 분홍색 기모노 상의를 입은 직원들이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주문을 받고 접시를 나르고 빈 잔을 치웠다. 가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손님들이 직원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 때가 있었다. “오이시”나 “아리가또” 정도에는 직원들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면서 생긋 웃고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문장이 길어질 때면 직원들은 클로이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본인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일본인들도 외국인임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일본어를 잘했다. 아버지가 일본어로 손님들을 응대할 때 클로이는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몸을 깊이 숙여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가 일본어를 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몰래 계단 아래로 내려간 적도 있다. 아버지의 눈은 반짝이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한국어를 할 때 아버지는 지친 얼굴이었고, 영어를 할 때는 화가 난 것처럼 얼굴이 잔뜩 굳어버렸다. 그리고 클로이를 바라보는 것이다. 뭐라도 말을 해보라고 손짓을 하면서.
   클로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통역사 노릇을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햄버거를 주문했고, 인터넷 요금제를 바꿨고, 주택자금 대출 이자율을 문의했고, 대장 내시경에 관한 지시 사항을 들었다. 식당으로 날아오는 벌금 용지를 광고지인 줄 알고 몇 개월에 걸쳐 무시하다가 영장을 받은 이후로는 집과 식당으로 오는 모든 편지 역시 클로이의 몫이었다. 사실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클로이도 대부분 알지 못했고, 사전을 찾아볼 때가 많았다. 클로이가 한참 핸드폰을 뒤진 후에야 세금 납부 방법을 설명하면 아버지는 그렇게 기본적인 한국어도 몰라서 찾아봐야 하냐며 클로이를 질책했다. 클로이는 잘 모르는 사람한테 부탁하지 말라고 화를 내는 대신 새로 배운 단어를 여러 번 입안에서 되뇌었다.
   한복 패션쇼에 나가면서 새로 배운 단어는 저고리였다. 클로이는 ‘저고리’를 여러 번 되뇌면서 옷걸이에 걸려 있는 한복을 꺼냈다. 하얀색 바탕에 손바닥만 한 빨간 꽃이 여러 개 그려진 저고리, 앞쪽에는 분홍색 끈이 달려 있었다. 치마는 빨간색 시스루 면이 여러 겹 덧대어져 있었는데 가장 바깥쪽 천에 금색 실로 작은 꽃이 가득 수놓여 있었다. 클로이는 티셔츠를 벗고 한복을 입어보았다. 저고리는 몸에 딱 맞아서 소매를 접을 필요가 없었지만 치마는 길어서 바닥에 끌렸다. 전신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다가 한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빳빳한 한복 옷감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클로이는 침대 옆에 있는 옷걸이에 손을 뻗어 직원용 기모노 상의를 만져보았다. 한복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천이었다. 밝은 하늘색 바탕에 하얀색 실로 수놓인 자잘한 꽃 사이사이에 간장 소스로 보이는 점들과 알 수 없는 얼룩이 퍼져 있었다.
   런치타임이 끝났는지 종업원이 2층으로 올라왔다. 클로이는 몸을 일으켜 인사를 했다. 클로이보다 다섯 살이 많다고 들어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종업원은 고개만 까닥이고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평소에도 마주칠 때마다 인사만 주고받았을 뿐 대화는 해본 적이 없었다. 클로이가 그대로 몸을 다시 눕히려는데 종업원이 기모노 상의를 벗으면서 말을 걸었다.
   “고름을 잘못 맸어요.”
   “고름……요?”
   종업원은 베이지색 후드티를 걸쳐 입고는 클로이 옆에 앉았다.
   “이거요.”
   종업원은 클로이가 입고 있는 한복 저고리에 달린 끈을 가리켰다. 클로이가 나비 모양으로 끈을 매듭지어 놓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리본을 매는 게 아니고 한쪽으로만.”
   “아, 감사합니다.”
   클로이는 인터넷으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저 내일부터 안 나와요. 사장님한테 말은 안 했는데…… 아무튼 그만둘 거예요.”
   클로이는 고개를 돌려 종업원을 보았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말 나오면 시급 안 올려줘서 안 나오는 거라고 말해 줘요. 최저 시급도 안 주면서 팁까지 떼먹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도 말해 주면 더 고맙고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건 한국인끼리 가족처럼 지내자면서 등쳐먹는 것밖에 더 돼요?”
   종업원은 곧장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고, 이내 유리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클로이는 종소리를 들으며 사전을 열어 ‘등쳐먹다’를 검색했고, 그대로 일어나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복 치마를 양손으로 올려잡아야 했다. 식당 앞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종업원이 보이지 않았다. 클로이는 코리아타운 쪽으로 달렸다. 종업원을 따라잡으면 등쳐먹는다는 말은 너무 심하지 않냐고 쏘아붙일 작정이었다. 사전에 그 단어는 ‘착취하다’로 나와 있었다. 우리 아빠가 언니를 언제 착취했어요? 급여가 밀린 적이 있어요, 급여를 적게 준 적이 있어요? 시급은 서로 합의하고 시작한 거잖아요? 클로이는 따지고 싶었다. 언니야말로 영어 못하니까 한국인 사장님한테 낮은 시급 받고 일하는 거면서 왜 우리 아빠만 나쁜 사람 만들어요? 언니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게 불쌍하다고 아빠가 남은 음식 줄 때는 감사하다고 챙겨가 놓고 사람을 이렇게 배신해요? 그러나 끝내 종업원을 찾지 못했다. 클로이는 코리아타운 한가운데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워홀이라서 그래.”
   클로이는 혼잣말을 했다.
   “워홀 애들은 어차피 떠날 애들이야. 책임감이 없고 남 핑계만 대다 도망가 버리지.”
    한복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클로이는 아버지가 하던 말을 되뇌었다. 식당 직원들의 대부분은 유학생이거나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는데 결국 영주권을 따지 못해서 돌아갈 애들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그러니 책임감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정을 주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호주에 사는 한국인을 영주권자 이상, 이하로 나누었다. 영주권자, 시민권자들만이 함께 호주 이민의 고충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클로이가 새 친구를 사귀면 제일 먼저 한국인인지를 물었고, 곧이어 영주권이 있는지를 물었다. 남자 친구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영주권이 없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네 시민권을 노리고 접근하는 거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클로이의 가장 큰 장점이 시민권이라는 듯이.
   딱히 아버지에게 반항하려 한 건 아니었지만, 클로이는 이제껏 영주권이 없는 남자만을 만나왔다. 학교에서도 보통 한국 유학생들이나 어렸을 때 이민 온 한국 애들과 어울렸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드는 법이 없지만 수학 시험에서 늘 만점을 맞는 아이들. 쉬는 시간이면 K-POP 가수의 사진을 돌려 보고, 방과 후에는 시내의 한국 카페에 가는 아이들. 사실 클로이는 여자처럼 화장한 K-POP 가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외에 한국에 관해 알고 있는 것도 없었으며, 그 애들이 자신들만의 암호처럼 사용하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했는데도 그 애들과 어울렸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 대부분이 금발에 파란 눈이었다. 뒷마당에 점핑캐슬을 설치한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가고는 했다. 그런데 하이스쿨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신기하게도 인종으로 무리가 갈렸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지도 않고, 성격이 비슷하지도 않은 아이들이 피부색이 같다는 이유로 어울려 다녔다. 그렇게 친해진 친구들은 클로이에게 그녀가 ‘ABK, Australian Born Korean’이라고 했다. 흘려듣던 아버지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클로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녀에게 클로이가 호주인이 아니라고 말하곤 했었다.
   “네가 너를 호주인이라 생각해도 누구도 너를 호주인으로 보지 않아. 너를 보면 아시안이라고 생각하지. 네 얼굴이 그래.”
   클로이는 하이스쿨에 다니면서 문득 친구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때가 있었다. 새카만 눈. 직선으로 뻗은 굵은 머리칼. 주근깨가 덮이지 않은 볼. 땀이 맺히는 코. 바로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클로이는 헤비메탈 공연에 가서 줄을 서고 부모가 없는 집에서 마약을 하며 파티를 하는 대신 한인 학원에 다니고 한국인 의대생에게 과외를 받으며 의대 입시를 준비했다. 클로이의 의대 합격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며칠간 한국의 친지들에게 전화를 돌려 타지에서 하는 고생을 이렇게 보상받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의대에 진학한 후에는 점핑캐슬에서 같이 뛰던 백인 친구들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렸다. 호주의 대학이었지만 중국인, 인도인, 한국인의 대학이었다. 클로이는 의대의 또 다른 ABK들과 어울려 한국 식당에서 한국식 양념 치킨과 소주를 먹었다. 그 식당에 얼마나 자주 갔던지 클로이를 기억하고 계란찜 따위를 무료로 주는 직원도 있었다. 그와 잠깐 사귀기도 했는데, 그는 클로이가 교포처럼 보인다고 했다. 화장이나 옷차림 때문이 아니라 얼굴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그 미묘함이 너무나 분명해서 클로이가 한국에 간다면 모두 그녀가 교포임을 알아볼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클로이의 그런 얼굴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클로이는 코리아타운 한가운데서 ‘집밥’을 상호로 내건 식당 전면 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한복을 입은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전 연인의 말대로 클로이의 얼굴은 코리아타운을 지나는 한국 여자들과 매우 달라 보였다. 똑같이 부모가 한국 사람인데 왜 내 얼굴은 이렇게 달라 보이는 걸까. 식당 안에서 밥을 먹던 무리가 클로이를 쳐다보았다. 클로이는 돌아서서 나비 모양으로 매놓은 리본을 풀고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식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호주의 전쟁 기념일인 앤잭데이에 가장 인기가 많은 행사는 참전 군인 행진이었다. 2차 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에 참전한 호주 퇴역 군인과 그들의 가족이 현역 군인과 함께 시내를 행진하는 것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군인 중 하나가 대열의 가장 앞에서 휠체어에 탄 채로 손을 흔들며 지나가면 양쪽 길가를 메운 인파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 뒤로 참전 군인 수천 명이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해 천천히 행진했다.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클로이는 학교에서 앤잭데이 행진에 대해 배웠고 사진도 자주 보았으나 한 번도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클로이의 아버지 역시 참석은커녕 언급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의 앤잭데이 행진은 달랐다.
   오전 8시, 행진이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클로이와 아버지는 영사관 직원, 한국 주간지 기자와 함께 페더레이션 광장으로 들어섰다. 클로이는 양손으로 한복 치마를 들어 올린 채 광장을 가득 메운 플래카드와 깃발을 둘러보았다. 플래카드와 깃발에 쓰인 참전 국가와 부대명은 모두 달랐지만, 구호는 같았다.

   They shall grow not old. We will remember them.
   그들은 늙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앞서 걷던 영사관 직원이 노란 플래카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클로이는 참전 국가와 부대명을 읽었다.

   KOREA, 1950-1953
   KAPYONG BATTALION 가평대대

   플래카드 뒤로 왼쪽 가슴에 훈장을 잔뜩 단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자녀로 보이는 사람들이 노인의 옆을 지키고 있었고, 아마도 손주일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영사관 직원이 클로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클로이가 사진과 노인들을 한 명씩 비교해 가며 무리를 눈으로 훑고 있는데 진행 요원 명찰을 단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코스튬은 안 됩니다. 행진에서 코스튬은 금지되어 있어요.”
   클로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보니 참전 군인들은 모두 남색 재킷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가족도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뒤편에 진녹색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있었고, 남색 해군 유니폼과 하늘색 공군 셔츠를 입은 무리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클로이는 자신이 입고 있는 한복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꽃이 그려진 하얀색 저고리와 금색 꽃이 수놓인 빨간색 시스루 치마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아, 이건 코스튬이 아니에요. 퍼레이드에서 한국전 참전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한국 전통 의복을 입은 거예요.”
   영사관 직원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진행 요원은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프린트물을 내밀었다. 형광펜으로 표시된 부분에는 앤잭데이 행진에서는 위엄을 갖춘 옷을 입어야 하며 국가의 전통 코스튬은 금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영사관 직원이 클로이를 향해 끄덕여 보였고, 클로이는 한복을 벗었다. 민소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어서 찬바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퍼레이드가 아니라 행진이에요. 군인의 가족이 아닌 사람은 행진에 참여할 수 없고요.”
   진행 요원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하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영사관 직원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참전 군인 측에서 참여를 허락받았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한복은…… 사진 찍을 때만 입고 벗는 거로 하죠.”
   영사관 직원은 얼굴을 찾는 것을 포기했는지 큰 소리로 참전 군인을 불렀다.
   “미스터 윌리엄 스미스.”
   앞쪽의 중년 여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여자 옆에는 몸을 잔뜩 웅크린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행진 전에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으므로 영사관 직원과 한국 주간지 기자는 마땅한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클로이의 아버지가 좋은 곳을 알고 있다고 앞장섰다. 참전 군인 윌리엄과 휠체어를 미는 그의 딸이 뒤처졌고 클로이는 그들과 속도를 맞춰 걸었다.
   “나는 가평 대대를 전역했다네. 자네 가평 전투를 알고 있나?”
   윌리엄이 클로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저는 호주에서 태어나서 한국 역사를 잘 몰라요.”
   윌리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클로이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평 전투라고 하셨죠? 찾아볼게요. 죄송해요.”
   “사과할 거 없어. 나는 일부러 코리아타운에 있는 식당이나 술집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어. 가평전투를 아느냐고 묻고 싶어서. 몇 명이나 알고 있었을 것 같나?”
   클로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윌리엄의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광장을 빠져나와 야라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기자는 클로이에게 한복을 입으라고 한 후에 강을 배경으로 윌리엄과 클로이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영사관 직원과 사진을 살펴보며 몇 마디 나누더니 그녀에게 카메라를 넘겨주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반갑습니다. 4월 24일, 어제가 가평 전투를 기념하는 가평데이였다고 들었는데요. 시드니에서 매년 개최되는 가평 퍼레이드를 혹시 보셨나요?”
   기자의 목소리가 밝고 경쾌해서 클로이는 흠칫 놀랐다.
   “아니야, 재작년이 마지막이었지. 이제 가평대대는 타운즈빌로 옮겨갔네. 퍼레이드도 타운즈빌에서 치렀지.”
   윌리엄은 차분하게 답했다.
   “아, 그렇군요.”
   기자는 노트북에 타자를 치면서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나 이내 다시 밝은 목소리로 가평 전투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한국의 독자들이 궁금해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클로이는 윌리엄의 얼굴을 살폈다. 윌리엄이 한국의 독자가 정말로 궁금해하느냐고 반문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윌리엄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 쉭, 하는 바람 소리가 나지. 그 바람 소리가 총에서 탕, 하고 발사되는 소리보다 크다면 믿겠나? 얼마나 많은 총알이 날아들던지 세찬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 같았지. 귓전에 울리는 바람을 뚫고 달렸어. 우리 소대원 대부분이 쓰러졌을 때 나도 총에 맞고 쓰러졌지. 사실 그때는 총에 맞은 건지 어디를 맞은 건지도 몰랐네. 그냥 엎드려 있었어.”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던 영사관 직원이 다가오면서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윌리엄은 말을 멈추었다. 영사관 직원은 클로이에게 잔디밭에 앉으라고 하고는 클로이의 치마가 넓게 퍼지도록 매만진 후에 “오케이,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했다.
   “참전 용사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담을 거니까 조금 고개를 올려주세요. 윌리엄, 다시 이야기해 주세요.”
   윌리엄은 잠시 말없이 클로이 너머 어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스터 윌리엄?”
   영사관 직원이 채근했다. 클로이는 그녀를 제지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한국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지 몰랐다. 대신 치마를 잡아당기지 않기 위해 양손을 꼭 마주 잡았다.
   “그 밤에, 그렇게 엎드려 있는데 공격이 잠잠해지면서 중국군이 참호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머리를 쏘아서 확인 사살을 하자는 이야기였겠지. 우리도 그런 대화를 했으니까. 나는 도망쳐야 했어. 뛸 수 있는지는커녕 일어날 수 있을지조차 몰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목에 차고 있던 경기관총과 벨트에 달려 있던 탄약을 단번에 풀고 벌떡 일어났다네. 그제야 오른쪽 넓적다리에 총알이 관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다리를 절며 뛰었어. 20야드, 아니 30야드를 뛰었던가, 낮은 둑이 있었고 그 뒤로 몸을 던졌어. 뛰는 내내 뒤편에서 난사가 펼쳐졌지. 그래, 운이 좋았어. 정말 운이 좋았지. 전쟁에서 살아남지 않았나.”
   윌리엄은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클로이도 숨이 차는 것만 같아서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1993년에 한국에 초대되어 갔다네. 동료들의 묘를 걸었지. 이름과 군번이 새겨진 나무 십자가가 있었어. 너무 많은 이가 거기 묻혀 있어. 나는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영사관 직원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클로이 씨, 고름이 언제부터 풀려 있었어요?”
   클로이가 저고리를 내려다보니 고름이 모두 풀려 있었고, 자신의 양손이 고름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클로이는 그제야 자신이 고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영사관 직원이 지난 사진을 넘겨 가며 사진을 다 못 쓰겠다고 불평하는 동안 클로이는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기자는 바쁘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윌리엄은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클로이는 윌리엄이 차고 있는 훈장을 보았다. 그중 하나에 KOREA라고 새겨져 있었다. 자신 역시 그런 딱지가 붙어 있는 것처럼 느끼던 때가 있었다. 선택하지 않은. 그러나 떼어낼 수 없는. 그 딱지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윌리엄은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클로이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드레스처럼 넓게 펼쳐진 붉은 치마를 잡아당겨 헝클어뜨렸다.
   “한국 땅에서 호주인이 중국인과 싸우다 죽었다고 하면…….”
   윌리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기자가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금 더 크게 이야기해 주시겠냐고 했고, 클로이는 자기도 모르게 기자를 향해 “No.”라고 말했다. 기자는 클로이를 흘긋 보고는 윌리엄에게 다시 한 번 말해 달라고 했다. 윌리엄은 손을 내저으면서 인터뷰를 그만하겠다고 했다. 기자는 영사관 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영사관 직원은 인터뷰 초반 사진을 쓰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기자는 노트북을 덮었다.
   “행진이 곧 시작될 테니 지금 돌아가면 딱 맞겠네요.”
   영사관 직원은 손뼉을 여러 번 치며 서두르자고 했다.
   광장으로 돌아가면서 윌리엄이 옆에서 걷는 클로이에게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슨 말을 했다. 클로이는 몸을 구부렸다.
   “우리를 누가 기억해 주겠나?”
   클로이는 행진에 참여하지 않았다. 영사관 직원과 기자는 기사를 건졌으니 됐다고 행진을 보지 않고 돌아갔고, 클로이의 아버지는 지금 돌아가야 가게 문을 제때 열 수 있다고 서둘렀다.
   클로이는 아버지와 함께 트램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직원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느냐고 걱정했다. 클로이는 런치타임 직원이 오늘 나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등쳐먹지 말래, 아빠. 클로이는 길 건너 행진 대열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말을 삼켰다.

   *

   오후, 한국인의 밤 리허설 첫 순서는 한복 패션쇼였다. 백스테이지에서 진행 요원은 한복을 입은 모델들에게 모자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전등갓처럼 나무살에 원색의 종이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부채와 흙색 도자기 병, 대나무 파이프 따위의 소품도 하나씩 주었다. 클로이는 초록색 끈이 달린 빨간색 모자와 흙색 도자기 병을 받았다.
   “무대라고 생각하고 포즈를 취해 볼까요?”
   진행 요원의 말에 모델들은 파이프를 뻐끔뻐끔 피우는 흉내를 내고, 부채를 부쳤다. 클로이는 도자기 병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아니, 아니. 술을 마시는 흉내를 내야지.”
   진행 요원이 클로이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이거 술병인 거 몰라요?”
   모델들의 시선이 클로이에게 쏠렸다.
   “그런데 한복이 왜 이래요?”
   클로이는 자신의 한복을 내려다보았다. 치마의 끝자락이 땅에 끌려서 구겨지고 시커멓게 더러워져 있었다.
   “한복이 커요.”
   “한복 치마는 원래 크게 나오는 거예요. 그걸 당겨서 입어야지 질질 끌고 다니면 어떻게 해요?”
   진행 요원이 클로이의 뒤쪽으로 손을 뻗어 치마 끝을 끌어당겼다.
   “이렇게 당겨서 붙잡으세요.”
   진행 요원에게서 치마 끝을 건네받아서 잡아당기니 아래로 퍼지던 치마가 슬림하게 다리에 붙었다. 클로이는 치마 끝을 꼭 쥐고 심호흡을 했다.
   한복 패션쇼 리허설이 끝나고 사물놀이 리허설이 이어졌다. 네 명이 무대에 올랐을 뿐인데 악기 소리가 어찌나 큰지 클로이는 이어폰을 끼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서도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클로이는 한복을 입고 모자까지 쓴 채 바닥에 앉아 휴대전화로 가평 전투를 검색했다. 중국군의 인해전술을 읽었고, 유엔 연합군의 반격을 읽었다. 총검을 들고 싸웠다는 것을 읽었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는 것을 읽었다. 공연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뀌었다. 클로이는 벌떡 일어나 관객석으로 들어갔다. 비보잉 무대였다. 남자들이 팔 하나로 몸을 지탱한 채 다리를 공중에서 돌리고, 다리를 꺾으며 앉았다가 튕겨 오르고, 헬멧을 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몸을 프로펠러처럼 빙빙 돌렸다.
   사회자가 2부의 시작은 한글학교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외치자 태권도복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나왔다.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팔을 이리저리 내뻗고 다리를 여기저기 차 보였다. 그 후에 어른들이 나와 공중을 날아 발로 나무판자를 깨고 주먹으로 벽돌을 부수었다. 뒤이어 분홍색과 보라색 시스루 면을 덧댄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분홍색 부채를 들고 나왔다. 아이들은 입술을 빨갛게 바르고서 부채를 이리저리 흔들며 무대를 오갔다.
   리허설이 끝나고 관객 입장이 시작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 클로이는 진행 요원을 찾아가 한국전 참전 군인들이 어디에 앉느냐고 물었다. 오전 행사에서 인터뷰한 참전 군인에게 확인받아야 할 게 있다고 둘러댔다. 진행 요원이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몇 번 두드려 좌석 배치표를 보여줬다. 2층 중앙에 한국전 참전 군인과 그들의 가족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행사는 7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멜버른 총영사를 비롯해 호주 다문화부 장관, 빅토리아주 상원 의원, 한국에서 온 장관들이 계속해서 축사를 이어갔다. 클로이는 백스테이지와 무대를 잇는 통로에서 커튼을 들추고 관객석을 살펴보았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 때문에 관객석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복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코리아타운의 식당들에서 흘러나오던 한국 가요가 울려 퍼졌다. 모델들은 빠른 음악에 맞추어 경쾌하게 걸었다. 클로이는 치마 끝을 당겨 잡고 있었던 탓에 보폭이 짧아져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치마 안에서 다리가 부딪쳤다. 이대로 걷다가는 넘어질 것 같았다. 클로이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고, 무대 중앙에 다다랐을 때에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술병을 들어 올리면서 2층의 관객석을 살폈다. 무대로 쏟아지는 조명에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관객석에는 커다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클로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여전히 눈앞은 어둠 뿐이었다. 클로이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종종걸음으로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려는데 “와” 하는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돌아보다 바짝 잡고 있던 치마 안에서 다리가 엉켰고 커튼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클로이는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음악 소리에 묻혔다. 넘어진 채로 돌아보니 진보라색 꽃이 뒤덮인 한복을 입은 모델이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사물놀이의 악기 소리가 백스테이지를 날카롭게 채우고, 연이어 비보잉 음악이 벽을 타고 크게 울렸다. 베이스가 쿵쿵 울릴 때마다 클로이의 심장이 같이 뛰었다.
   “볼륨이 너무 큰 거 아니에요?”
   클로이가 진행 요원을 찾아가서 물었다.
   “관객이 이천사백 명이에요.”
   진행 요원은 클로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까닥거렸다.

   인터미션 시간, 클로이는 관객석에 가기 위해 복도로 나섰다. 복도가 몹시 소란스러웠다. 클로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관객석으로 통하는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맙소사, 외치는 목소리. 괜찮냐고 묻는 목소리. 의료팀을 부르라는 목소리. 클로이는 반사적으로 무리를 헤치고 들어갔다. 처음 보는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클로이는 노인의 코에 귀를 갖다 댔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클로이는 노인의 배에 올라탔다. 금색 꽃이 수놓인 빨간색 치마가 노인의 가슴과 배를 덮었다. 클로이는 치마를 거칠게 잡아당기고 가슴에 단단하게 깍지 낀 손을 얹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클로이가 서른 번을 내리누르는 동안 노인의 가슴은 점점 더 딱딱해졌다. 아무런 반동이 느껴지지 않는 몸을 클로이는 사력을 다해 밀었다. 그리고 노인의 입을 잡아 벌리고 숨을 불어넣었다. 숨이 들어가지 않았다. 클로이는 다시 노인의 가슴을 눌렀다. 클로이의 모자를 묶은 초록색 끈이 풀어져 노인의 얼굴에 그림자를 일렁였다. 회색빛 얼굴. 무언가 떠나 버린 빛깔. 클로이는 무서워서 이가 떨렸지만 계속했다.
   복도는 고요했다. 한복 치마가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누가 클로이를 끌어내리고 대신 노인의 위에 올라탔다. 클로이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노인의 가슴을 압박하는 다른 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완전히 굳어버린 노인의 얼굴과 손, 몸을 보았다. 그제야 노인의 재킷에 달린 수많은 훈장이 눈에 띄었다. 클로이의 모자가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곧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것을 가지고 뛰어와, 노인을 실어갔다. 클로이는 천천히 일어나 모자를 쓰고 끈을 묶었다. 저고리의 끈도 다시 매고 치마도 앞으로 단단히 잡아당기는데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대단해요. CPR을 해본 적이 있는 거죠?”
   부드러운 빛깔의 금발 머리를 한 남자였다. 클로이는 의대를 다닌다고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코스튬이 정말 예쁘네요.”
   클로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2층 관객석으로 들어갔다. 윌리엄은 어디에도 없었다.

   2부가 진행되는 동안 클로이는 백스테이지에 앉아 있었다. 영사관 직원은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기자님, 일 년을 준비한 행사인 걸 아시잖습니까.”
   영사관 직원은 의자에 앉아 몸을 앞으로 잔뜩 구부렸다.
   “사고 기사를 싣지 말라는 게 아니라요, 뭐가 메인인지를 말씀드리는 거죠.”

   *

   다음 날 클로이는 새벽에 깼다. 머리가 아팠다. 지난밤에 클로이의 아버지는 그녀의 무대 영상이 한인회 홈페이지에 오른 것을 보고 손뼉을 칠 정도로 좋아했다. 한국의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식당 주방에 있느라 가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클로이는 목이 말라서 베드사이드 테이블을 손으로 더듬어보았지만 물을 찾을 수 없었다. 1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은 어두웠고, 슬리퍼를 신지 않아 타일 바닥의 냉기에 발이 시렸다. 불을 켜지 않고 찬장을 열어 컵을 꺼냈다. 컵에 수돗물을 받아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사진 액자를 쏘아보다가 덮어버렸다.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클로이는 물컵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 몸을 돌려 다시 주방에 내려가 사진 액자를 집어 들었다. 한 손에는 물컵을, 한 손에는 사진 액자를 들고 클로이는 계단을 다시 올랐다. 아직 새벽이었다.

참고사항

가평 전투에 관한 윌리엄의 진술은 Australian Government /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에 실린 Stanley Connolly, Kerry Smith와의 인터뷰를 참고하였다.

필자 약력
서수진 작가 프로필 사진

서수진, 2020년 한겨례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2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와 중편소설 『유진과 데이브』를 집필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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