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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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자카르타에게, 고양이 부부

서미숙

자카르타에게

아! 자카르타
이십몇 년을 그곳에서 깃들어 살았다

파란 적도의 하늘 아래
어느 날은 한국의 가을을 머리맡에 두고
어느 날은
작고 고운 고국의 꽃잎들
가슴에 묻고 살았다

깨끗한 운동장에
만국기가 휘날리던 가을 운동회와
고궁의 단풍이 아름답던 가을소풍을 담고 살았다

흰 겨울 산을
바람을
적도의 태양을 닮은 노랗고 큰 해바라기에 담긴
온화하고 따뜻했던 고국을 그리워하며
적도의 하늘 아래 살았다

적도의 우기처럼
늘 젖어 있던 나
눈물우표 붙여 자카르타에서
고국에 보냈던 편지

그러나 이젠 아니다
푸른 하늘과
붉은 적도의 태양과
화사한 꽃이 보고 싶다
스콜에 몸이 젖고 싶다

아이들이 다니던 한국 학교와
외국인 학교
성당과 그리고 카페가 있는 대형 백화점
인도네시아의 음식들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운동장이 그립다



고양이 부부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인사 올리러 찾아간 김포공원묘원 부모님 묘소 벚꽃나무 그늘 아래 들고양이 두 마리 서로 등을 기대어 졸고 있다 저 다정한 부부애 약과를 집어줬더니 나눠 먹는 모습까지 다정하다 암수 고양이 눈매와 입매를 오래전 어디선가 본 듯하다 꽃나무 가지를 흔들며 와서는 부모님의 다정한 팔인 듯 목덜미를 감아주는 따뜻한 바람과 수풀 속에 숨어 나직이 노래하는 풀벌레 절을 올리고 술을 붓고 묘소를 내려오다 뒤돌아볼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는 고양이 부부 어쩌면 저 고양이들은 이국에 살던 자식을 그리워하며 생전에 못 다한 정을 나누는 부모님의 환생일지도 모르겠다

필자 약력
서미숙 프로필 사진.jpg

충남 예산 출생. 1992년 《아시아문학》 해외문학공모전 대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2020년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집 『적도의 노래』, 『자카르타에게』, 산문집 『추억으로의 여행』, 『적도에서 산책』 등을 펴냈다.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회장을 역임했다.